63화: 격돌 (1)
아크튜러스 가문과 오크족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힘’을 숭상한다는 것이다.
쿠웅!
“흐억!”
거대한 둔기에 얻어맞은 병사 하나가 보기 좋게 날아갔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둔기를 휘두른 것은 거대한 오크였다.
그뿐이 아니라 오크의 허리와 등엔 온갖 무기들이 걸려 있었다.
아니, 무기라기보다는 도살을 위한 도구라고 해야 알맞을 것 같은 외형의 것들.
손에 들린 둔기, 허리춤에 걸린 도끼, 그리고 활, 심지어는 투척용 단검까지.
보기만 해도 섬뜩했다.
갑옷조차 제대로 가리지 못할 정도로 우락부락한 근육이 그것을 지탱하고 있었다. 체구는 인간보다 훨씬 커서 3미터에 육박하는 놈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기사들도 오크 앞에 서면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물며 일반 병사들은 어떨까.
“Tapa see!”
둔기를 휘둘러 피를 털어 낸 오크가 외쳤다.
사방에서 호응이 들려왔다.
“Tapa see!”
“Tapa see!”
오크어로 죽이라는 뜻이었다.
콰앙!
이번에는 하급 기사 하나가 간신히 오크의 공격을 막아 내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강력한 충격에, 방패를 쥔 손이 부러지고 말았다. 아찔한 고통에 사지가 벌벌 떨렸다.
“끄아아아악!”
이윽고 그림자가 얼굴에 드리워지더니 종말이 찾아왔다.
쿵!
오크는 사정없이 하급 기사의 얼굴을 으깨 버렸다.
“Venki!”
“Venki!”
“Venki!”
사방에서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실제로 이긴 것은 아니었다. 때때로 오크들은 전투 도중 함성을 지르며 동료들의 사기를 올리곤 했다.
“대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알 게 뭐야! 현혹되지 말라고!”
“우리도 이길 수 있다! 모두 싸워라!”
“방패를 들어!”
“와아아아!”
숫자는 아크튜러스-알데바란 연합군 측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개전 초기, 연합군은 수적 우위를 가져가지 못했다. 선봉에 선 오크족 전사들이 엄청난 무력을 과시했기 때문에.
콰직!
오크들은 둔기는 물론 도끼도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워낙 힘이 강해, 도끼에 당한 병사들은 반으로 갈라지거나 사지가 잘려 나갔다.
“사, 살려……!”
콰직!
이번에도 이름 없는 병사가 목숨을 잃고 말았다.
야생마처럼 거친 오크 전사들이 전방에 놓인 바리케이드를 몸으로 들이박았다.
쿠구구구궁!
일선 방어선이 그대로 뚫렸다. 1진은 완전히 무력화되었고, 본진이 드러나게 되었다.
“젠장!”
그렇다고 오크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크튜러스 제1기사단의 주력들은 일제히 오러를 발출해 오크들에 맞섰다.
“죽어라!”
촤아악!
일방적으로 밀렸던 1진과는 다르게, 본진의 기사들이 투입되자 난전이 펼쳐졌다. 연합군, 특히 아크튜러스의 기사들은 정말 용맹하게 싸웠다.
그것은 제1기사단장 파월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소드 익스퍼트에 오른 강자.
“더 이상의 진격은 허락할 수 없다! 무기를 들고 적들을 몰살시켜라!”
파월은 누구보다도 힘들고 지쳤다.
하지만 이대로 쓰러질 순 없었다. 앞서간 부하들의 희생을 헛되게 할 수 없었기에.
서걱!
“Kraaaaaaaa!”
파월의 검이 그어지자 녹색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앞길을 막던 오크 전사의 팔이 잘려 나갔고, 놈이 휘청거리자 파월은 검을 수평으로 세워 심장을 갈랐다.
“Kup!”
“꺼져라! 괴물 같은 놈!”
푸확!
발로 오크를 밀쳐내 검을 뽑은 파월 경이 주변을 살폈다. 거친 숨이 몰아쳤다.
“이놈들은 지치지도 않나?”
킬스톤에서 물러난 뒤 전선을 수십 킬로미터나 뒤로 물렸다.
쉬지 않고 행군했다. 때로는 뛰기도 했다.
그러나 오크들은 지치지도 않고 쫓아와 이렇게 병사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파월 경!”
알데바란 측 기사가 달려왔다. 그는 알데바란 기사단장 자이모였다.
그 또한 기사단장다운 실력을 갖춘 자였다.
“퇴각하는 게 좋을 것 같소! 1진이 너무 빨리 밀렸어!”
“그게 무슨 소리요! 아직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했는데!”
“피해가 너무 크단 말이오!”
자이모가 윽박지르며 몸을 홱 돌렸다. 그의 검이 사선으로 움직이는가 싶더니, 뒤를 노리던 오크의 가슴을 베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뒤통수가 날아갈 뻔했다.
자이모도 소드 익스퍼트 등급의 강자였다.
“그대의 군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후우! 우리 기사들은 대 오크전 경험이 그리 많지 않소! 숨 쉴 시간이 필요하다고!”
“나약한 소리 하지 마시오!”
채앵!
이번에는 뒤에서 날붙이가 날아왔다. 그것을 가뿐히 쳐 낸 파월이 검세를 취했다.
활을 버린 오크가 거대한 도끼를 들고 달려들고 있었다.
“징그러운 새끼들!”
파월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오러를 더 끌어올리며 오크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놈의 빈틈을 찾기 위해 시야를 좁혔다.
부우웅!
오크의 도끼가 먼저 휘둘러졌다.
그 찰나의 틈을 포착한 파월은 뒤로 몸을 슬쩍 빼냈고, 도끼가 지나가는 궤적을 따라 검을 휘둘렀다.
스컥!
“Guaaaaaaaaa!”
도끼가 주인을 잃고 바닥을 굴렀다. 파월이 오크의 손목을 잘라 버린 것.
보통이라면, 격통과 출혈 때문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하지만 오크는 역시 오크였다.
피가 철철 흐르든 말든, 남은 왼손으로 둔기를 꺼내더니 파월을 향해 달려들었다.
“Hundino!”
오크가 욕설을 지껄이며 둔기를 휘둘렀다.
콰앙!
검기가 서린 검과 둔기가 부딪혔다.
“크으으윽…….”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오크는 오러를 쓰지도 않고 있었다. 단지 그 야성적인 힘으로 파월을 찍어 누르려 하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사이한 기운이 솟아올랐다.
붉은 오러가 하늘로 치솟더니, 파월을 상대하고 있는 오크의 몸속으로 쑥 들어가고 말았다.
“Ho vau!”
오크의 눈이 붉게 번뜩였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득한 두려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망할…… 오크 샤먼까지?”
붉은 기운은 사기를 끌어올리는 버프 마법이었다. 오크 샤먼은 자연의 힘을 어둠의 힘으로 바꿔 그것을 대상에게 주입할 수 있었다.
그 개체는 많지 않지만, 이번 전쟁에서 목격되었다는 보고가 있긴 했다.
“크윽!”
파월의 검이 덜덜 떨렸다.
야성의 힘에 붉은 기운이 더해졌다. 이제 눈앞의 오크는 오러를 쓰는 기사와 다를 게 없어졌다.
아니, 어떻게 보면 그보다 훨씬 강해졌다.
오크의 야성의 힘은 종종 인간이 상상하는 것을 초월하곤 했으니까.
함께 퇴각을 논하던 자이모 경은 그를 도와줄 수 없었다. 그 또한 붉은 기운을 흡수한 오크와 난전을 벌이고 있었다.
터엉!
“크억!”
눈 깜짝할 새에 날아온 도끼가 파월 경의 어깨를 쳤다.
호신강기를 끌어올린 상황이었기에 도끼가 박히진 않았지만, 그의 검세를 흐트러뜨리기엔 충분했다.
오크가 기세를 잡았다.
“Tapa see!”
그 한마디와 함께 오크가 파월 경의 머리를 노리고 둔기를 내리쳤다.
그러나 그보다 검이 좀 더 빨랐다.
서걱!
오크의 머리가 툭 하고 떨어졌다. 사이한 기운을 품던 두 눈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파월은 깜짝 놀랐다.
방금 움직인 검은 자신의 검이 아니었기 때문에.
“고, 공자님!”
“괜찮나?”
케나드가 손을 뻗었다.
이미 그는 수십 마리의 오크를 베어 낸 상황이었다. 오크의 피를 뒤집어써 온몸이 녹색으로 변해 있었다.
파월은 케나드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후우, 괜찮습니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샤먼들 때문에 전황이 좋지 않아. 이렇게 대놓고 지원을 나올 줄은 몰랐는데…….”
“수가 어느 정도 됩니까?”
“백 마리는 넘어 보이는군.”
파월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샤먼 백 마리가 각각 오크 전사 열 마리에게 버프를 넣어 준다고 한다면, 적어도 천 마리가 넘는 오크들이 미쳐 날뛸 수 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래도 이대로 물러설 순 없다.”
후방에는 아직 대피하지 못한 민간인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케나드는 이곳에서 어떻게든 오크를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러선다고 딱히 시간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건 두 눈 뜨고 지켜볼 수 없을 만큼 기사도가 투철했다.
지금 이 오크들의 기세라면, 아마 알데바란은 물론이고 알퐁스 지역까지 침범할 가능성이 컸다.
“샤먼은 내가 잡겠다. 경은 기사들을 이끌고 위험한 곳을 지원해.”
“위험합니다! 공자께서는 아직 비기너 아닙니까? 제가 샤먼을 잡는 게 더 나을 겁니다.”
케나드는 3서클의 오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지적한 것이었다.
하지만 케나드는 웃었다.
“형님께서 전쟁은 서클만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 하더군. 처음엔 그게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이제는 좀 알 것 같단 말이지.”
“그게 무슨…….”
“나중에 설명할 기회가 있을 거다. 어서 움직여!”
“예!”
시몬에게 진보된 아크튜러스 검식을 전수받았다.
‘형님의 검술은 정말이지 대단했어.’
검술을 전수받고 수련에 매진할 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형님이 아버지보다 더 강하지 않을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무엄한 생각이었다.
진보된 아크튜러스 검식은, 전생의 시몬이 지금으로부터 30년 이상이나 수련과 연구에 매달려 얻어 낸 비기와도 같은 것.
검식은 검의 시작이자 끝이다.
말 그대로 ‘검술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 검술의 모든 것이 아크튜러스 기사들과는 결이 달랐다. 그래서 케나드는 확신했다.
‘비기너이지만, 할 수 있다. 형님께서 엄청난 검술을 전수해 주셨으니까!’
케나드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형님이 부탁한, 오크 족장 뮬라타를 생포에 오라는 지시를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길 뿐이었다.
촤아악!
“Kuaaaaaa!”
검격을 맞은 오크 샤먼이 쓰러졌다.
동시에 날아드는 도끼를 체술로 피해 냈다. 약간의 오러를 소모하긴 했으나, 괜찮았다.
‘오러를 아끼면서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발이 지면에 닿자마자 검을 휘두르니 녹색 피가 튀며 두 마리의 오크 전사가 쓰러졌다.
벌써 한 시간째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케나드는 시간의 흐름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서걱!
스칵!
사각!
푸욱!
그저 검에 모든 것을 맡길 뿐이다.
‘검이 나인 듯, 내가 검인 듯.’
물아일체의 경지에 오른 케나드는 곳곳에 포진해 있는 오크 샤먼들을 베어 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방해하는 오크 전사들까지 모조리.
“허, 케나드 공자님께서 저렇게 실력이 출중하셨다니…….”
“정말 대단하군!”
“처음엔 시몬 공자님인 줄 알았지 뭔가?”
후방에서 전투를 준비하던 기사들은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구경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어서 지원을 나가세!”
“전군, 케나드 공자님을 구출한다! 모두 돌격하라!”
“우아아아아아!”
후방에 대기하고 있던 연합군이 진출을 시도했다.
넓게 진형을 유지하던 연합군은 능숙하게 오크 무리를 감쌌다. 그리고 포위 공격을 전개했다.
그리고 그때.
‘저놈인가?’
케나드가 안력을 돋웠다.
한창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저편에서 유독 눈에 띄는 오크가 시야에 잡혔다.
거대한 마울을 휘두르는 오크족 영웅.
뮬라타가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