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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60화 (60/120)

60화: 드래곤의 심장 (2)

아예 예상하지 못한 상황은 아니었다.

레서 드레이크가 깊은 잠에 빠져 있다고 해도, 진입할 때 오러를 사용했으니까.

물론 이곳은 ‘드래곤 레어’ 같은 곳이 아니다.

동굴을 지키는 크리처도 없었고, 어떤 마법적인 결계로 보호되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깨어날 수 있다는 생각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렇게 바로 일어나 버리면 좀 곤란한데. 한 방은 먹여야 수월했을 텐데.’

루비처럼 영롱한 두 눈이 시몬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명백한 살기.

그 내부엔 강력한 ‘마나’가 들끓고 있었다.

오러와 같지만 다른 힘.

고대인들이 사용하던 미지의 힘.

그 힘이 꿈틀거리며 당장이라도 터져 나오려 하고 있었다.

‘막 깨어났으니 온전히 그 힘을 되찾았다고 할 수는 없지. 충분히 해볼 만하다.’

드드드드!

천지가 진동하며 천장에서 돌먼지가 떨어졌다. 거대한 레서 드레이크가 몸을 일으킨 것이다.

시몬은 차분히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리며 검을 뽑았다.

스릉!

이어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싸우기 적당한 곳은 아니군.’

애초에 공동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았다. 레서 드레이크가 한번 포효한다면 사방에서 돌무더기가 쏟아질 만한 지형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있는 건 아니야. 이대로 드레이크를 밖으로 내보냈다간 도시 하나가 송두리째 사라질 테니까.’

시몬은 검세를 취한 뒤 오러를 집중시켰다. 오러에 잠식된 검이 짙은 푸른색 광채를 발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놈을 때려잡는다.’

레서 드레이크의 눈이 한차례 번뜩였다.

눈앞의 필멸자가 내뿜는 오러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크르르르…….”

그럼에도 레서 드레이크는, 눈앞의 필멸자가 좋은 먹잇감이라 생각했다.

쿵! 쿵!

낮은 울음과 함께 레서 드레이크가 시몬에게 접근했다. 동시에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광풍을 만들어 냈다.

휘이잉!

산을 송두리째 날려 버릴 것 같은 강력한 돌풍.

그러나 날아온 것은 바람만이 아니었다.

바람의 모양을 한 날카로운 물체가 시몬을 향해 빠르게 쏘아졌다.

“어딜?”

순간 시몬의 팔이 움직이더니, 날아들던 바람칼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땅! 따당! 땅!

쇳소리가 들리며 바람이 흩어졌다.

모든 바람칼을 막아 낸 시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쏟아졌다.

“나처럼 성질 더러운 놈이 또 있었군.”

콰아앙!

두꺼운 꼬리가 방금까지 시몬이 있던 자리를 완전히 박살 내 버렸다. 땅이 깊게 꺼질 정도였다.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피한 시몬은 발에 오러를 실어 재빨리 움직였다.

탁, 타다닷!

땅을 박차더니, 바닥에 박혀 있는 꼬리를 통해 등으로 접근했다.

쐐액!

무언가가 등 쪽으로 기어오르는 느낌을 받은 드레이크는 날개를 펄럭였다.

순간 뒤쪽에 기류가 형성되며 시몬의 진격을 막았다.

시몬은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쏴악!

쏴아악!

오러에 바람이 잘리는 기묘한 소리.

길이 뚫리자 시몬은 순식간에 레서 드레이크의 목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허공에 붕 뜬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망할.”

콰과과과과광…….

레서 드레이크가 힘껏 날아오르더니 천장에 등을 박고 말았다.

다양한 크기의 바위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당장에라도 공동이 무너질 것 같았다.

공격을 간신히 피한 시몬은 오러를 일으켜 떨어지는 바위를 검으로 쳐 냈다.

그런데 그때, 강한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설마?’

드레이크는 낮게 날고 있었다.

날개를 펄럭이며 바람을 쏘아 내고 있는데, 거대한 용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는 것이 분명히 보였다.

드래곤 브레스.

진짜 드래곤이 내뿜는 브레스보다는 약하겠지만, 그래도 레서 드레이크다. 뿜는 불길에 휘말리면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물론 시몬은 오로지 힘으로 브레스를 돌파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옷이 성치 못하겠지. 발가벗은 채로 나돌아다닐 수는 없으니…….’

시몬은 오러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호신강기.

몸을 보호하는 강력한 기운을 사지에 두르고, 레서 드레이크가 브레스를 쏘아 낼 타이밍을 기다렸다.

‘쏘아 낸 직후, 브레스를 가르고 날아가 놈의 목을 꿰뚫는다.’

그것이 바로 시몬이 세운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때, 변수가 생겼다.

츄츅!

“끄어어억?”

모아들던 불길이 사그라들고, 레서 드레이크가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불이 뿜어져야 할 입에서 시뻘건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굉장히 빠르시네요. 주인님. 진짜 따라잡느라 애먹었어요.”

진이었다.

사뿐히 내려선 그녀는 볼트를 재장전했다.

철컥!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게다가 실력도 보통이 아니었다. 브레스를 뿜으려던 드레이크의 아가리에 볼트를 꽂아 넣을 생각을 하다니.

몬스터를 잡아 본 경험이 많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어떻게 따라왔어?”

“세레스 가문을 우습게 보시면 곤란해요. 나름 추적술은 마스터했거든요.”

“우습게 본 게 아니라, 주인 말 안 듣고 그렇게 나대면 곤란하다는 말이지.”

“걱정되기도 했고, 좀 궁금했어요. 레서 드레이크라면 어떤 영물일까 싶어서요. 알데바란 내에 레서 드레이크가 있다는 건 처음 듣는 이야기라.”

“궁금한 거에 목숨 걸면 쓰나? 가뜩이나 나이도 젊은데.”

“제가 공자님보단 나이 많은데요?”

굳이 시몬은 회귀했으니 너보다 오래 살았다는 말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궁금한 거에 목숨 건 게 아니라 주인님께 건 거예요. 제 목숨은 그리 저렴하지 않아요.”

그러면서 묘한 미소를 짓는 진. 하지만 그 아름다운 미소가 통할 리가 없었다.

시몬은 씨익 웃고는 다시 검세를 취했다.

“온 사람 내쫓을 수도 없고, 기왕 온 거 후방 지원 좀 해라. 옷 태울 뻔했는데 잘됐군.”

“맡겨 주세요.”

“정말 괜찮겠어?”

“걱정하지 마세요. 몬스터는 많이 사냥해 봤으니 발목을 잡는 일은 없을 거예요.”

레서 드레이크의 브레스를 강제로 멈추게 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급소를 정확하게 노리고 볼트를 날렸다는 거니까.

“오늘 실력 제대로 보겠군.”

“조심하세요.”

“조심은 네가 해야지. 순직 처리 안 되니까 재주껏 피해라.”

시몬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동시에 표적을 겨냥한 진이 볼트를 쏘아 냈다.

푸슉!

팅!

아쉽게도 볼트는 바라던 곳에 꽂히지 않았다. 레서 드레이크의 눈을 노렸으나, 드레이크는 머리를 돌려 비늘로 쳐 냈다.

하지만 그 잠깐의 순간은 시몬에게 큰 기회를 주기에 충분했다.

촤아아악!

“꾸에에에에!”

검이 레서 드레이크의 허벅지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피가 철철 흘렀는데, 놀랍도록 빠르게 상처가 아물어 갔다.

트롤보다도 더한 재생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시몬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피에 묻은 피를 털었다.

“역시 목을 자르는 수밖에 없겠는데?”

“틈을 노리세요.”

진이 석궁을 내던지고 로브를 확 펼쳤다.

그러자 잘 벼려진 암기가 양손에 감기는 듯하더니, 빛처럼 빠르게 전방으로 내던져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슈슉!

푹!

예리한 암기가 레서 드레이크의 목덜미에 틀어박혔다. 비늘을 꿰뚫진 못했는데, 비늘과 비늘 사이를 물고 버티고 있었다.

“지금!”

콰아아앙!

암기가 폭발하며 엄청난 충격파를 내뿜었다. 오러가 주입된 암기였다.

“끼에에엑!”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리는 사냥감을 가만히 지켜볼 시몬이 아니었다.

있는 오러를 모조리 끌어내 검에 집중시켰다.

‘이 한 방으로 끝낸다.’

시몬은 진보된 아크튜러스 체술을 발휘했다.

파앗!

순식간의 레서 드레이크의 꼬리에 올라서더니 허리와 등을 올랐다. 급격한 경사였으나 마치 평원을 뛰놀듯 자연스러웠다.

바로 그 순간,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쿠웅!

기다란 드레이크의 꼬리가 시몬의 앞길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느렸다.

이미 시몬은 머리를 향해 도약한 상황.

검이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는 순간, 뒤늦게 위험을 인지한 레서 드레이크가 눈을 부릅뜨며 안광을 쏘아 내려 했다.

“끼에엑!”

진홍색 눈으로 심오한 에너지가 맺혔다.

하지만 늦었다.

서걱!

툭!

시몬이 좀 더 빨랐다.

거대한 머리가 떨어져 나가고,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푸확!

시몬은 목을 잃어 발버둥 치는 레서 드레이크의 가슴에 다시금 검을 꽂아 넣었다.

푸욱!

파르르 떨던 몸뚱어리가 움직임을 멈췄다.

시몬은 여전히 박혀 있는 검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가슴이 쩍 하고 갈라졌다.

그 안엔 주먹만 한 구슬이 박혀 있었다.

“설마…… 이게 심장인가요?”

“맞아. 진짜 심장은 아니고 은유적인 표현이라고 할까. 레서 드레이크의 마나가 응집된 귀한 재료지. 그래 봐야 짝퉁이긴 하지만.”

시몬은 오러를 두른 손을 뻗어 드레이크의 가슴 속에서 심장을 끄집어냈다.

“신기하네요.”

“아주 좋은 재료가 될 거야.”

“대체 어떤 영약을 만드실지 궁금하네요.”

“대강 짐작은 하고 있지 않아? 마력이 가득 담긴 걸로 뭘 만들겠어? 내가 마법사도 아니고.”

“오러 서클을 늘리는 영약인가요?”

“맞아.”

시몬은 심장을 미리 준비해 온 케이스에 담았다.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상자의 뚜껑이 굳게 닫혔다. 재료를 신선하게 보관하는 특수 상자였다.

상자를 가방에 잘 넣고 이번엔 컵을 꺼냈다. 시몬은 사체를 움직여 그곳에 피를 담았다.

톡 쏘는 역한 냄새가 났다.

시몬은 그것을 진에게 건네며 선심 쓰듯 말했다.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긴 했지만, 뭐 여기까지 와서 나름 공을 세웠으니 선물을 줘야지. 마셔라.”

“어떤 효과가 있는 건가요?”

“그건 직접 확인해 보시고.”

드래곤의 피는 전설 속에서 불로장생의 약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눈앞에 쓰러진 것은 드래곤이 아니라 몬스터다. 피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상황.

몬스터 대부분의 피에 독성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레서 드레이크의 피 또한 인체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었다.

이미 중독된 상황이니까. 그것도 베텔게우스 가문의 비법이 담긴 독약에.

진은 피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마셨다.

“호오, 안 마실 줄 알았는데.”

“…….”

“표정은 또 왜 그래?”

“와…… 이거 엄청 쓰네요. 켁, 쿨럭!”

“하하하! 몸에 좋은 게 쓴 법이지.”

간신히 기침을 멈춘 진은 입을 슥 닦았다.

아무런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뭘까?’

오러를 일으켜 보아도, 진은 그것을 간섭하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오러가 늘어나거나 뭔가 변화가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주인님께서 선물이라고 표현하실 정도면 뭔가 효과가 있는 게 분명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되는 바가 없었다.

한편, 시몬은 레서 드레이크의 사체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해체해서 가져가면 쓸 만한 게 많은데, 아쉽네.”

가죽과 뼈는 방어구의 재료로 쓰인다. 그리고 내장을 이용하면 해독이 어려운 독약을 만들 수 있다.

“나머지 부산물들은 제가 부하들을 시켜서 해체해 놓을게요.”

“아니. 그냥 이대로 묻자.”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괜히 드레이크가 있었다는 소문이 나면 영지에도 좋을 게 없거든. 오크에 드레이크까지 떴다고 하면 아주 쌍으로 난리가 날걸?”

밖으로 나온 시몬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오러를 일으켰다. 그리고 절벽을 무너뜨려 입구를 봉쇄했다.

진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정말이지 주인님처럼 물욕이 없으신 분은 또 처음이네요.”

“멋있지?”

“예. 아주 멋있어요. 한눈에 반할 정도로.”

“미안해서 어쩌나. 난 이미 임자가 있는 몸이라.”

“황녀님과는 끝났다면서요?”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이 있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시몬이 오러를 일으켰다. 어느새 그의 신형이 저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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