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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53화 (53/120)

53화: 아크튜러스의 방식 (1)

저녁 근무를 마친 드비안느가 헤라 부인의 거처에서 나왔다.

그녀는 헤라가 총애하는 시녀였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외모와 성격을 가져서만은 아니었다. 드비안느는 후작 부인이 명하기 전에 움직일 줄 아는 센스가 있는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일을 잘했다.

게다가 로이드 가문은 연금술과 약초학에 뛰어난 조예를 보이는 곳이었다. 그래서 시녀 일을 하는 것에 도움이 되었다.

‘약이 잘 들어서 정말 다행이야.’

최근 헤라 부인은 시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황녀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다.

게다가 아들이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최측근인 드비안느는 주치의의 처방만 신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특별히 부탁해 신경증에 좋은 약을 달여 왔다.

며칠 약을 먹은 헤라는 확실한 차도를 보였다.

헤라 부인에게 듣기 힘들다는 ‘고맙다’는 말을 듣고 나오는 길이었다.

‘아휴, 시몬 공자님이 왜 황녀님하고 혼사를 깬다고 하시는 건지 정말 이해가 안 간다니까?’

중앙 귀족으로의 진출을 간절히 바라는 드비안느의 입장에서는 시몬의 행동이 단순한 일탈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예 생각이 없는 분은 아닌데.’

어려서부터 시몬과 라니에리와 줄곧 어울려 다녔다. 그때부터 시몬은 천재적인 면모를 보였다.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황녀와의 혼인을 물리겠다고 하니 이해할 수 없었던 것.

“드비안느 님. 지금 퇴근하세요?”

“응. 오늘 마님께서는 좀 일찍 잠드실 거야. 약을 드셨거든. 깨시지 않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아아, 고생 많으셨어요!”

교대 근무를 하려고 찾아온 하녀가 드비안느에게 꾸벅 인사했다.

“고생은 무슨. 오늘은 야간 근무니?”

“맞아요. 아무튼 드비안느 님이 안 계셨더라면 저희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왜?”

“요즘 마님 심기도 많이 불편하신 것 같아서 다들 긴장하고 있거든요.”

조금이라도 실수하게 되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헤라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 최근에 하나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미온 마님께서 그렇게 건강해지실 줄 누가 알았겠어요? 정말 기쁜 일이지만, 저희가 더 힘들어졌네요.”

“나는 잘된 일이라고 생각해. 일은 힘들수록 더 가치가 있는 거 아니겠어?”

“앗, 아하하하. 역시 그렇죠?”

그렇다고 드비안느는 하녀들의 편만 들어 주진 않았다. 실수는 엄하게 지적하는 타입이었다.

시녀가 하는 일은 후작 부인의 허영심을 채워 주는 것만이 아니다.

때로는 이상한 소문이 퍼지지 않게끔 관리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시몬 도련님은 못 하시는 게 없는 것 같아요. 도련님이 만든 약을 드시고 씻은 듯이 나으셨다면서요? 와아, 검술이면 검술, 외모면 외모, 이제는 약초학에까지 식견을 넓히시다니 대단해요!”

하녀는 얼굴이 벌게진 것도 모른 채 시몬을 칭찬하기에 바빴다.

드비안느는 시몬의 성격에 대해 한마디 하려다가 말았다.

하녀가 공자에게 환상을 품은 것을 굳이 산산 조각내고 싶진 않았다.

때론 그것이 삶의 원동력이 될 테니까.

“레나. 마님께서 일찍 주무실 테니 조용히 하란 말은 잊지 않았지?”

“앗, 그러네요. 죄송해요.”

“수고해. 내일 보자.”

“조심히 들어가세요!”

드비안느는 바로 마차에 올라 로이드 가문으로 향했다. 로이드 가문의 저택은 아크튜러스의 본가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작고 허름한 곳이었다. 저택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어렸을 때는 아담하고 포근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이제는 좀 아쉬운 느낌이 든다. 가세가 그만큼 기울어 가는 게 보였으니까.

역시나 오늘도 로이드 가문의 가주는 실험실에 틀어박혀 약초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다녀왔어요. 아버지.”

“일찍 왔구나.”

드비안느의 아버지 퀘벡은 키가 작고 왜소한 사람이었다. 얼굴에는 피부병으로 남은 흉터가 가득했고, 안경까지 쓰고 있어 인물이 별로였다.

드비안느의 아름다운 외모는 어머니 덕분이었다.

혹자는 기적이라고도 말한다.

“연구실 꼴이 이게 뭐예요? 정리 좀 하시라니까.”

“우주의 규칙이란 그런 것이다. 불규칙적인 것에 규칙이 있는 법이지. 그러니 가만히 두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께 규칙적으로 잔소리 듣지 않으시려면 치우시는 게 좋을 거예요?”

“……알았다.”

드비안느는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서류를 하나로 가지런히 모았다. 그리고 남은 약초를 보관함에 도로 넣었다.

그러다 문득, 아버지가 예전보다 살이 더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녁은 드시고 일하시는 거죠?”

“으음, 오늘은 그다지 내키지 않는구나.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이라서 말이야.”

“우리 사용인들 급여 밀릴 뻔한 문제 말고 또 다른 문제가 있어요?”

책상 위엔 예전에 한번 본 약초들이 늘어서 있었다. 바로 시몬이 구해 달라고 했던 약초들이었다.

드비안느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버지. 들여다본다고 뭐 답이 나와요? 공자님이 배합법 알려 준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래도 뭔가 내 힘으로 찾아보고 싶었단다. 이 약초를 어떻게 배합해야 심폐 기능이 좋아지는 명약으로 바뀌는지에 대해 말이다.”

미온 부인의 병이 나았다는 건 이미 대부분의 가신들이 인지하고 있었다.

특히 의학과 관련이 있는 가문은 그 사건을 굉장히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아무도 못 한 것을, 아크튜러스의 대공자가 해낸 것이었으니까.

“하루아침에 알아낼 수 있었다면 명약이 아니었겠죠.”

“하긴, 그것도 그렇구나.”

드비안느가 품에서 잘 접힌 종이를 꺼냈다.

“받으세요. 공자님이 보내 주신 약초 배합법이에요.”

“오오……!”

“머릿속에 넣고 바로 태우라는 엄명이 있었답니다?”

퀘백 남작은 매우 총명한 사람이었다. 종이에 적힌 것을 슥 보더니, 옆에 있는 촛불을 이용해 종이를 바로 태워 버렸다.

“보름달 빛에 약초를 숙성시켜야 한다는 비밀이 있었구나. 마나의 농도가 짙어지는 걸 이용한 숙성법이군. 역시, 탁월한 기법이야. 매번 공자님께 신세만 지는 것 같구나. 이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최대한 약초를 많이 확보하는 걸로 보답해 달라고 하셨어요. 약초꾼들 분위기는 좀 어때요?”

“나쁘지 않지.”

씨익 웃은 퀘백 남작은 손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란했다.

약초들이 보기 좋게 다듬어졌고, 적당한 크기로 잘려 나가 수조에 담겼다.

“이 약초들은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지만, 그렇다고 위험한 곳에 있지는 않단다. 화염초나 빛초롱이 같은 것처럼 몬스터가 자주 출몰하는 곳에 있지는 않지.”

“돈이 많이 들지는 않는다, 뭐 그런 말씀이시죠?”

“그래.”

“어차피 경비도 다 지원해 주시기로 했으니까 크게 걱정할 건 없을 것 같아요. 비약 한 개에 재료비로 2500만 실링을 주시기로 했어요. 거기에 500만 실링은 예비비로 올려 두신다고 했고.”

“오호, 좋은 소식이구나! 2500만이라…… 게다가 아크튜러스 기사단에서만 사용되는 비약이라면 편하게 납품할 수 있고 말이다. 여러모로 기쁜 일이구나.”

시몬이 문서에서 제시한 제작량은 한 달에 10개. 지금보다 조금 바쁘게 움직인다면 목표량을 상회하는 비약을 제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비안느의 아버지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탐욕이 아닌, 일 욕심이었다.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생긴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퀘백 남작의 두 눈엔 생동감이 넘쳤다.

“……음? 뭘 그렇게 보고 있느냐?”

“그냥, 옛날 생각이 좀 나서요.”

“옛날 생각?”

퀘백 남작은 잠시 손을 멈추고 딸을 바라보았다. 드비안느는 부끄러웠는지 딴청을 부렸다.

“아버지 젊었을 때가 생각났어요. 집안 살림도 내팽개치고 실험에 몰두하던 그때의 그 눈빛이, 방금 다시 반짝이는 것 같았거든요.”

“하하하! 녀석. 아직도 그때의 일을 마음에 두고 있는 거냐? 뭐, 내가 잘못하긴 했었지. 지금도 딱히 잘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든다만.”

“사과하라고 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문득, 시몬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마운 일이었다.

로이드 가문이 단순히 약초학과 연금술에 능통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주었을까? 아니라는 생각이 앞섰다.

“공자님이 돌아오시면 같이 인사드리러 가요. 이번 일은 정말 큰 도움을 받은 거예요.”

“응당 그래야지. 언제쯤 오신다더냐?”

“조만간 오실 것 같아요. 자세한 건 저도 모르구요.”

딸을 바라보는 퀘백 남작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는 말할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 이내 입을 열었다.

“예전에는 너와 공자님이 썩 친하게 지냈었는데 말이지.”

“흘러간 옛이야기는 갑자기 왜 하고 그러세요?”

“내 젊은 시절 이야기를 먼저 한 건 너란다.”

“으윽.”

퀘백 남작이 안경을 벗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테이블 한쪽을 바라보았다.

드비안느의 어린 시절을 담은 초상화가 놓여 있다.

퀘백 남작은 액자를 쥐고 회상에 잠겼다.

“아직도 그 마음이 남아 있더냐?”

“무슨 마음이요?”

“시몬 공자님을 좋아하던 그 마음 말이다.”

그 말에 드비안느가 깜짝 놀랐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이상한 소리라고 치부하기는 어려웠다.

아버지의 말은 사실이었으니까.

그 증거로, 어두컴컴한 연구실에서 드비안느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럴 리가 있겠어요? 안 그래도 너무 잘나셔서 밥맛이었는데, 이번에 열병을 앓고 사람이 더 이상해졌다구요. 친한 척도 하고 싶지 않아요.”

“하하하.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아직 잊지 않은 모양이군.”

“아버지?”

“뭐, 농담 삼아 말해 본 거란다. 너무 마음에 두진 말거라.”

“조금도 마음에 안 두고 있거든요? 제 목표는 변하지 않았어요. 황도로 가서 사교계를 주름잡는 도시 여자가 될 거라고요.”

“그러려면 애 좀 써야겠구나.”

한숨을 내쉰 드비안느는 문을 벌컥 열고 연구실을 나섰다. 그러다 뭔가 떠올랐는지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 저녁은 꼭 챙겨 드세요. 안 드시면 저 내일 출근 안 할 거예요. 그리고 어디 가서 옛날이야기 하지 마세요. 요즘 큰 마님 심기 불편하시니까요.”

“알았다. 알았어.”

아버지를 빤히 바라본 드비안느는 문을 쿵 닫고 올라가 버렸다.

* * *

“푸엣취!”

재채기를 한 시몬은 손으로 코를 슥 닦았다.

“누가 내 얘기하나? 갑자기 근질근질하네.”

“…….”

“넌 또 왜 표정이 그 모양이야? 황도의 멋진 레이디들 마음을 빼앗을 시간도 없이 너무 급하게 나와서 그래?”

“설마요.”

마차 반대편에 앉은 라니에리는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을 태운 마차는 아크튜러스 영지에 근접하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 시몬은 독대 자리에서 황태자와 했던 이야기를 빠짐없이 라니에리에게 전했다.

“하아.”

라니에리는 이마를 짚었다.

약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편두통이 밀려올 것 같았다.

“주군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겁니다. 징계를 내리실지도 모르겠네요.”

“아닐걸? 오히려 잘했다고 칭찬하실 거다.”

“어떻게 그렇게 장담하실 수 있습니까? 후계를 결정하는 것은 공자님이 아니십니다. 오로지 주군께서 하실 수 있는 신성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으실 텐데요.”

애초에 후계를 양보한다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양보한다고 하더라도, 드뇌브 후작이 후계를 결정해 버리면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 허락도 없이 황태자에게 질러 버리고 온 것이다.

“게다가 태자 전하께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선전포고와 다를 게 없습니다.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불이익과 견제가 쏟아질 겁니다. 무엇보다도 아크튜러스의 방계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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