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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45화 (45/120)

45화: 파병 회의

연회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아크튜러스 가문의 회의실에 기사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부터 기사들의 표정은 전쟁을 앞둔 것처럼 매우 진지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오늘은 킬스톤으로 출정을 위한 회의가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회의라니. 기사들은 정말 부지런해서 탈이야.”

“공자님께서 게으르다는 생각은 안 해 보십니까?”

늦잠을 자는 시몬을 깨우느라 너무 많은 공을 들인 라니에리의 어투는 칼처럼 날카로웠다.

“사람은 충분히 수면을 취해야 건강히 오래 살 수 있는 법이라고. 아카데미에서 그런 거 안 배웠냐?”

“그럴 땐 충분히가 아니라 지나치다는 표현을 써야 옳습니다.”

“잘나셨어, 정말.”

오늘부터 아크튜러스 가문의 정식 기사가 된 로빈은, 그 엄청난 장면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어제 연회 때부터 느낀 것이었지만 두 사람의 허물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한편으로는 시몬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왜 썼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로빈.”

“예.”

“적응 안 되지?”

“아…… 예.”

“노력해라.”

흠칫 놀란 로빈이 정자세를 취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네!”

“참, 기사들이 갈구거나 하지 않았지? 신입들 괴롭히는 버릇이 여전히 있나 싶어서.”

“아뇨. 다들 잘 대해 주세요. 특히 케나드 공자님께서 너무 잘해 주셔서 적응하는 데 문제는 없을 것 같아요.”

“다행이군. 누가 괴롭히면 바로 나한테 말해.”

사실 부딪힐 일은 크게 없었다.

정식 기사가 되었다고 해도, 기사단에 소속되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시몬이 직접 임무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원정에서도 자연스레 이름을 올리지 않게 되었다.

별도로 임무를 주겠다는 부분에서는 드뇌브 후작도 허락한 상황.

“그리고 곧 너희 아버지도 이곳으로 올 거다. 네 영지가 수도와는 거리가 좀 있긴 해도 사냥감들이 많은 곳이니 눌러앉기 나쁘지 않을 거야.”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자님.”

“나한테 감사할 필요는 없고, 이게 다 각하의 은덕이라고 생각해라.”

실제로 시몬은 봉토 배정에 관여하지 않았다. 사냥감이 많은 숲을 끼고 있는 토지를 내린 것은 온전히 드뇌브 후작의 배려였다.

자신이 관리하는 영지에서 세금 걱정 없이 마음껏 활을 쏠 수 있다.

사냥꾼에게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있을까?

“저도 들어가도 될까요?”

대회의실로 이어진 거대한 문 앞에서, 로빈이 조심스레 물었다. 시몬이 피식 웃었다.

“라니에리는 군단 참모로 회의에 참여한다. 화장실에 갈 때도 따라다니라는 말 못 들었어?”

“아, 들었습니다.”

“그럼 가야지.”

끼릭!

거대한 문이 열리며 대회의실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기사단의 중역들은 이미 모두 모여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케나드가 일어나자 기사들이 전원 기립했다.

“사령관께 경례!”

오른손으로 심장을 두드리며 시몬에게 군례를 취했다. 마치 한 사람이 움직인 것처럼 절도가 넘쳤다.

“늦어서 미안하군.”

“아닙니다. 어서 오십시오. 사령관.”

평소라면 드뇌브 후작이 앉아야 할 상석이 비어 있었다. 그 자리는 시몬의 것이었다.

그 옆은 케나드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에 이어 제1기사단장 파월과 제2기사단장 한스가 근엄히 앉아 명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라니에리와 로빈은 시몬이 앉은 뒤쪽에 섰다.

“다들 앉지.”

케나드와 기사들이 일제히 자리에 앉았다.

시몬이 개회를 선언했다.

“오늘 이렇게 모인 것은, 그대들도 잘 알고 있겠지만 킬스톤으로의 파병을 논하기 위해서다. 즉, 오크족과의 전쟁을 시작한다는 의미겠지. 라니에리. 현황 보고를 하도록.”

“예.”

라니에리는 미리 준비된 지도 앞에 서서 지휘봉을 쥐었다.

알데바란의 남부 지역, 즉 전역으로 상정된 킬스톤 지역은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오크족의 침략지로 예상되는 곳은 알데바란의 킬스톤 지역입니다. 남부에 위치해 있으며, 덥고 건조한 기후가 특징인 곳입니다. 보급이 원활하더라도 장기전은 어려운 지역이지요.”

“풍토병이 있나?”

“있습니다. 고열을 동반한 괴질이 잘 퍼지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오크 놈들은 풍토병에 강하다. 지리적으로 우리에게 좋은 싸움은 아니지.”

“그보다 누구를 파견할지 결정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사료됩니다. 사령관.”

제1기사단장 파월이 근엄히 말했다. 마치 자기를 뽑아 달라는 듯이.

“그렇지. 두 기사단을 모두 파견하는 건 솔직히 무리고, 고르라면 하나를 골라야 할 텐데.”

“그간의 전공을 생각한다면 우리 제1기사단이 파병되는 것이 옳다고 사료됩니다. 사령관.”

“전공? 웃기는군.”

가만히 있을 한스가 아니었다.

그는 얼마 전 시몬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비상벨을 다시 한번 눌러 제1기사단의 비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달라고.

그만큼 제1, 제2기사단 사이에서는 경쟁이 치열했다.

서열만 놓고 본다면 제1기사가 우선이다. 가장 먼저 창설된 기사단이기도 했고, 평균적인 무력 수위도 제1기사단이 우월하다.

“최근 있었던 메르시 지방 산적 토벌 작전을 기억 못 하는 건 아니겠지? 그때 우리 기사단은 손실 없이 임무를 완수했었다네.”

“어린아이 싸움 같은 걸 전공으로 포장할 수 있는 그대의 혜안에 놀라울 지경이군. 그런 건 자경단으로도 충분히 토벌할 수 있어.”

“뭐라고?”

“최근 있었던 일이라고 하니 그걸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군. 공자님의 비상 호출에 7초나 늦은 자들이 있었지 아마?”

“크, 크윽!”

약점을 찔리고 말았다.

솔직히 할 말 없는 일이기도 했다. 제1기사단은 정말 놀라운 속도로 시몬의 처소에 도착했으니까.

그에 비해 제2기사단 비상대기조는 제1기사단에 비해 7초나 늦은 시간에 도착했었다.

7초면, 당시 시몬의 말처럼 사람 목이 떨어지고도 바닥을 구를 충분한 시간.

“오히려 그대들은 이곳에 남아 충분히 훈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네만.”

두 기사단장 사이에 불꽃이 튀는 듯했다.

이러다가 결투로 승부를 보자는 말이 나올 것 같았다. 잠자코 지켜보던 시몬이 나섰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지. 파월 경. 너무 몰아붙이지 마라.”

“송구합니다. 사령관.”

“제1기사단 일부와 제2기사단 일부를 차출해서 파병하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그건 별로 효율적이지 못하지. 손발을 맞춰 볼 시간이 적으니까.”

“사령관께서 선택해 주십시오.”

제2기사단장 한스가 엄숙히 말했다. 시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평하게 가자고.”

그렇게 한마디 하더니 대뜸 뒤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라니에리가 미리 준비해 둔 무언가를 시몬의 손에 내려놓았다.

그것은 장인의 솜씨로 만들어진 매우 깔끔한 주사위였다.

기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 두 기사단의 실력은 비슷하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행운의 여신의 사랑을 받는가를 살펴보면 되겠지. 방식은 간단하다. 주사위를 굴려서 승부를 보는 거야.”

“사령관! 이번 전쟁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걸 주사위로 결정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돼.”

시몬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파월을 응시했다.

“사령관의 명령이니까.”

“…….”

“후작 각하께서 나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셨다. 그러니 내 말은 곧 아크튜러스 가문의 의지임을 분명히 해야겠군.”

시몬이 주사위를 파월에게 건넸다.

“하이로 할래 로우로 할래?”

“음…….”

“남자라면 하이지요!”

한스는 자신이 있어 보였다. 시몬이 파월에게 되물었다.

“하이로 하자는데 어쩔 거야?”

“으음. 저도 높은 쪽으로 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먼저 굴리라고.”

주사위를 쥔 파월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파병 결정을 이런 식으로 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잘됐다고 생각했다.

굳이 지저분한 방식으로 승부를 보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깔끔하기도 했고, 자신은 늘 강운을 타고났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갑니다.”

또르르르.

두 개의 주사위가 테이블 위를 굴렀다.

이윽고 멈췄다.

“……!”

“10!”

“10이야!”

“오오오!”

제1기사단 소속 기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주사위 두 개로 낼 수 있는 가장 높은 수는 12다. 여기에서 10은 굉장히 높은 숫자에 속했다.

“10이군. 아주 좋은 숫자네. 고대로부터 10은 완전함을 상징하는 숫자이기도 하지.”

“큭…….”

한편, 주사위를 넘겨받은 한스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승부에서 이기려면 적어도 11, 12라는 숫자를 얻어야 한다.

‘10이 나와서 재경기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주사위를 꽉 쥔 한스가 눈을 감았다.

이윽고 주사위가 던져졌다.

또르르륵!

한참을 굴러가던 주사위가 모서리를 축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집중되었다.

이윽고.

“우오오오!”

“이겼다!”

기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제1기사단 소속 기사들이었다. 주사위의 눈은 1과 2.

합계 3이 나왔다.

“히하하하. 10 대 3. 이번에도 7 차이로 제1기사단이 이겼군. 이쯤 되면 그 7이라는 차이가 진짜 실력의 차이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한스 경.”

“……면목이 없습니다.”

“날 잡아서 신전에 좀 다녀와. 정성을 들여야 하늘이 보살펴 주지. 주사위에서도 지면 정말 없어 보이잖아.”

“…….”

시몬은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좋아. 이것으로 제1기사단을 킬스톤 지방으로 파견하는 것으로 의결하지. 원정대 사령관은 케나드가 맡는다. 제2기사단은 영지 방어에 신경 쓰도록.”

“예! 꼭 아크튜러스에 승리를 가져다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명을 받듭니다.”

“파월 경. 구상해 둔 전략은 있나?”

제1기사단장 파월은 자신 있게 답했다.

“오크족은 우리와 닮은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힘을 숭상한다는 거지요. 그래서 적장을 사로잡거나 죽이는 걸로는 별로 재미를 못 볼 겁니다.”

“음, 뭐. 그렇지.”

“대규모 회전으로 최대한 많은 피해를 주고, 위계를 써 부족끼리의 갈등을 유발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말이 쉽지.”

파월은 아주 정석적인 공략 방법을 제시했다. 피해가 큰 만큼 적에게 주는 타격도 확실하다.

그러나 시몬이 걱정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풍토병은 어떻게 할 건데?”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지요.”

“행군에 지친 녀석들이 그런 거 신경 쓸 거 같아? 발 뻗고 쉬기 바쁘겠지.”

은근히 웃은 시몬이 라니에리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라니에리가 지휘봉으로 녹색 지역을 가리켰다.

“이곳은 베이론 지역으로, 킬스톤 지역의 북부에 위치한 곳입니다. 전역을 이곳으로 설정하는 건 어떨까 합니다만.”

“킬스톤을 버리고 오크를 그쪽으로 유인하자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불필요한 피해가 늘어날 텐데…… 킬스톤은 사막 지역이 많아 민간인들의 피해가 적을 테지만, 베이론은 다를 거요.”

“알 게 뭐야? 그건 알데바란 녀석들이 고민해야 할 문제지.”

기사들은 입을 다물었다. 씨익 웃은 시몬이 말을 이었다.

“이건 알데바란 측에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거다. 그러니 경들이 사소한 문제엔 신경 쓸 것 없다.”

“놈들이 거절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럴 리 없다.”

진을 이용하면 그만이거든.

안 그래도 해약을 보내야 할 시기였으니 그것과 함께 명령을 전달하면 딱이다.

“자, 내가 수고를 좀 덜어 줬으니 대신 임무를 하나를 더 주지. 오크족 영웅 뮬라타를 꼭 생포해. 그리고 내 앞으로 데려와라. 알겠나?”

“예! 사령관!”

케나드가 두 눈을 빛냈다. 이번에야말로 형님에게 꼭 보답하겠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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