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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43화 (43/120)

43화: 서부의 신궁 (6)

물론, 이것으로 승부는 확실해졌다. 빨간 영역에 화살을 모두 몰아넣은 드뇌브 후작의 승리였다.

마지막 남은 두 발이 모두 빗나간다고 하더라도 승리는 확실시되는 상황.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전혀 이긴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군. 시몬 이 녀석, 대체 이 아이를 어떻게 알고 데려온 거지?’

후작은 시몬을 빤히 바라보았다. 시몬은 미묘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사실 이런 전개는 시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박빙의 승부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 로빈이라는 소년은 영리한 것 같았다.

‘아크튜러스의 가주를 이기는 것은 큰 죄를 저지르는 거니까, 패배를 선택했군. 하지만 쉽게 물러서진 않겠다는 그런 의미야. 이 녀석은 정말 천재다.’

마음 같아서는 손뼉을 치며 크게 웃고 싶었다.

비록 이번 승부로 2억 실링이 날아가게 되었지만 상관없었다.

로빈이라는 엄청난 인제가 자신의 손에 들어왔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니까.

오히려 이제 여유를 부리는 것은 시몬 쪽이었다.

“자, 이제 각하 차례입니다. 마지막 두 발이군요. 긴장되십니까? 이미 승부는 끝난 것 같습니다만.”

“화살이 줄어들 때마다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점점 많아지는군.”

“하하하하. 이따 자세히 나누시지요.”

후작은 남은 두 발을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도 마음만 먹으면 전에 쐈던 화살이 있는 자리에 그대로 새로운 화살을 박아 넣을 자신이 있었다. 집중을 좀 더 하면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저 소년을 의식한다는 게 드러날 터인데.’

체면의 문제였다.

이미 로빈은 쏜 화살을 모조리 쪼개 버렸다.

후작에게 남은 화살은 단 두 발. 두 발을 쏴서 쪼갠다고 해도, 로빈의 기록을 넘어설 순 없다.

‘게다가 저 녀석은 마지막 한 발이 남아 있다. 큰 이변이 없다면, 그것도 전에 쏜 화살을 쪼개 버리겠지.’

침음이 흘러나왔다.

‘선택의 여지가 없군.’

결국 후작은 두 발의 화살을 붉은 영역으로 집중시키기로 결정했다. 오히려 앞선 화살에 맞지 않도록 빈 곳을 공략해야 했다.

피웅!

턱!

이윽고 두 발의 화살이 모두 날아갔고, 사방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역시 각하십니다! 다섯 발 모두 명중이군요!”

“멋진 솜씨였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이 내기는 각하의 승리다!”

기사들이 애써 목소리를 높여 주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대결의 주인공은 드뇌브 후작이 아니라 로빈이라는 사실을.

“축하드립니다. 각하. 이 내기는 각하께서 이기셨군요.”

“아직 한 발이 더 남지 않았더냐?”

“아, 그렇지요.”

냉정한 후작의 말에, 시몬은 웃으며 로빈에게 손짓했다.

로빈이 다시금 시위를 당겼다.

피웅!

쩌어억!

이번에도 로빈은 이미 박혀 있던 화살을 반으로 쪼개 보이는 신기를 발휘했다.

즉, 쏘아 낸 다섯 발의 화살을 한 점에 집중시키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우와아아! 정말 대단해! 어떻게 저렇게 정확할 수 있지?”

“바람까지 전부 계산한 건가…… 저런 솜씨를 가진 궁사가 있다는 말은 못 들었어!”

“게다가 나이도 어리잖아! 대체 어디서 온 녀석이지?”

“시몬 공자님께서 직접 발탁하셨다고 하더군.”

“역시 공자님의 안목은 달라!”

군중 속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이것은 오로지 로빈과 시몬의 몫이었다.

“제가 졌습니다. 각하. 과연 대륙 제일의 명궁이십니다.”

활을 내려놓은 로빈이 드뇌브 후작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후작은 복잡한 표정으로 로빈을 내려보았다.

“내가 이긴 것은 사실이나, 뭔가 기분은 썩 좋지 않구나.”

“요, 용서를…….”

“아니. 너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다.”

한숨을 내쉰 드뇌브 후작이 씁쓸히 웃었다.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기사들을 키워 왔다. 늘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상대가 누구든 방심하지 말라는 거였지. 그런데 오늘 난 그 가르침을 어기고 말았다. 나 스스로 말이다. 네 실력을 너무 얕보고 있었군.”

후작이 로빈을 손수 일으켜 주었다. 로빈은 감격스러운 표정이었다.

드뇌브 후작은 로빈이 앞으로 큰 인물이 될 것을 직감했다. 이렇게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겸손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승리하셨습니다. 약속대로 2억 실링을 드리죠.”

집사들이 배당금을 나누는 와중에, 시몬이 수표를 후작에게 건넸다. 후작은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이로써 너는 또다시 빈털터리가 되었군.”

“예.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얻었으니 만족스럽습니다. 충분히 투자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후후후. 그렇겠지.”

찝찝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유쾌한 기분이 들어 후작이 웃었다.

최근 아크튜러스의 장남이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고 있다. 나름 성공도 하고 있었다.

서기관과 의논해 봐야 할 일이긴 하나, 조만간 상단을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너에게 상재가 있는 것 같구나. 시몬.”

“그런 거 없습니다.”

“또 그 이야기를 꺼낼 셈이군.”

이번엔 드뇌브 후작이 선수를 쳤다. 시몬이 웃으며 로빈을 가리켰다.

“각하. 오늘 사람들의 가슴을 울릴 만한 실력을 보여 준 로빈에게 마땅히 포상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당연히 그래야지.”

드뇌브 후작이 사람들 앞에 섰다. 웅성거림이 잦아들고, 이윽고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제국의 후작이자 아크튜러스 가주의 이름으로 상을 내리겠다. 로빈을 세습 가능한 준남작에 봉한다. 동시에 아크튜러스의 기사 작위를 내릴 것이니 그리 알도록. 또한, 앞으로 로빈의 가문은 ‘마크스먼’이라 불릴 것이다. 아크튜러스 가문의 적법한 가신이 되었으니 널리 이 사실을 공표하도록.”

“여, 영광입니다. 영주님!”

바싹 엎드린 로빈에게 시몬이 충고했다.

“이제는 영주님이라고 하면 안 된다. 주군이라고 하도록.”

“예! 주군!”

그때 후작의 시선이 시몬 쪽으로 옮겨갔다.

“……또한 훌륭한 인재를 발굴한 시몬에게도 포상을 내린다. 4억 실링을 지급하도록.”

“예. 주군.”

서기관 칼림이 명령을 받았다.

시몬은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4억 실링이라면…… 내심 내기에서는 졌다고 생각하시는 거로군.’

시몬은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전생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올곧은 기사로서의 긍지와 자애로운 영주로서의 모습을 모두 갖추고 있었던 멋진 아버지.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데도, 역시 아버지께 배울 게 많이 남은 것 같군요.’

시몬은 드뇌브 후작을 향해 가벼이 예를 올렸다.

뒷짐을 진 드뇌브 후작이 외쳤다.

“오늘은 가문의 경사가 있는 날이다! 연회를 베풀 것이니 모두 참여하라!”

“예. 각하!”

* * *

그날 밤, 저택의 대연회장에서 연회가 열렸다. 곧 오크와의 전쟁을 준비해야 했지만, 드뇌브 후작은 돈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정말 믿을 수 없군요.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라니에리가 와인 잔을 시몬에게 건네며 말을 걸어왔다.

시몬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돈 땄으니 된 거 아냐?”

“얼마 못 땄습니다. 무엇보다도 공자님께 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좀 별로군요.”

“지긴 뭘 져. 대결에서 이긴 건 아버지 쪽이었는데.”

“솔직히 궁술로만 봤을 땐 로빈 경이 압도적인 것 같습니다. 저기에 오러만 쓸 수 있다면…….”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궁사가 될 것이다.

무예에 조예가 없는 라니에리가 보더라도 명백하게 알 수 있는 결과였다.

“곧 쓸 수 있을 거다.”

“방법이 있으십니까?”

“비약을 먹일 거야. 좀 고통스럽긴 할 텐데 녀석이라면 잘 이겨 낼 거다.”

시몬은 저편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는 로빈을 바라보았다. 얼굴을 붉힌 채 쑥스러워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보다 서부 지역에 뻐꾸기 좀 날려라. 로빈 녀석 아버지를 데려와야 하니까.”

“이미 전서구를 보내 놨습니다.”

“소식을 들으면 어떤 표정을 할지 기대되는군.”

기사 작위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세습 가능한 준남작 작위는 정말 뜻밖일 것이다.

세습 가능한 작위에는 봉급 외에 봉토가 주어진다. 크기에 관계 없이 관리할 수 있는 영지가 생긴 것이다.

즉, 로빈의 아버지 켈로그는 굳이 떠돌이 생활을 하지 않더라도 정착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로빈!”

시몬이 손짓해 로빈을 불렀다. 그가 빠르게 달려왔다.

“생각해 보니 소개를 안 해 준 것 같아서 말이야. 인사해라. 이쪽은 베텔게우스 가문의 라니에리 경이다.”

“인사드립니다. 라니에리 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네가 지켜야 할 분이기도 하다.”

로빈의 눈이 반짝 빛났다.

시몬이 말했던 매우 소중한 사람.

저택으로 오면서 가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이렇게 실제로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미천한 실력이지만, 최선을 다해 라니에리 님을 수호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야말로 잘 부탁한다. 으음, 공자님께서 무슨 험담을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니 어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전혀 그런 일 없었어요.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건 칭찬이잖아요?”

“…….”

라니에리는 다시금 이마를 짚었다. 편두통이 시작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칼림 경께서 알아서 챙겨 주시겠지만, 라니에리 네가 봉토 관리는 좀 도와주도록 해.”

“당연히 그럴 생각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

그때 케나드와 이올린이 다가왔다. 시몬은 로빈에게 그들을 소개했다.

“이쪽은 내 동생 케나드, 그리고 이올린이다.”

“인사 올립니다. 로빈입니다.”

“아아, 정말 멋진 활 솜씨였습니다. 로빈 경! 꼭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었습니다!”

특히 케나드의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검술 스승을 만난 것처럼 열정적으로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활을 잘 쏠 수 있는지에 대해 말이다.

시몬은 라니에리에게 자리를 맡기고 한쪽으로 움직였다.

그곳엔 드뇌브 후작이 있었다.

칼림 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시몬이 다가오자 칼림 경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자리를 피해 주었다.

“연회까지 열어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덕분에 녀석이 사람들 얼굴을 익힐 수 있었네요.”

“녀석이라고 하지 마라. 로빈 경은 아크튜러스의 가신이 아니더냐?”

“아아, 그렇지요.”

드뇌브 후작은 와인을 홀짝였다. 시몬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가로젓는다.

“뭔가 너의 행동이 우리 가문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구나.”

“갑자기요?”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미온이 건강을 되찾았고, 이올린은 웃기 시작했고, 케나드는 미친 듯이 수련에 몰두하고 있고. 가신들과 영지민은 나와 너를 칭송하고 있지. 거기에 오늘 있었던 인상적인 대결도 포함해야겠지만.”

“이게 다 아버지의 은덕 아니겠습니까?”

“속 보이는 뻔한 말은 하지 마라. 너는 지금도 시골로 내려가 살 궁리를 하고 있겠지.”

시몬은 어깨를 으쓱여 그 말을 부정했다.

“킬스톤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내일부터는 전쟁 준비 체제에 돌입해야지요.”

“으음.”

“걱정하지 마십시오. 케나드는 분명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올 겁니다. 그리고 저도 황도에서 아주 근사한 소식을 가지고 돌아올 생각입니다.”

“그건…… 가문의 명운을 건 일이다. 실패는 용납될 수 없음을 명심해라.”

“실패는 한 번으로 족합니다.”

시몬은 후작을 향해 잔을 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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