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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42화 (42/120)

42화: 서부의 신궁 (5)

“사고라니? 무슨 섭섭한 말씀을.”

“보는 눈이 너무 많습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시몬은 씨익 웃으며 로빈을 가리켰다.

“네가 포섭에 실패했던 바로 그 녀석이다. 서부의 신궁.”

“신궁이라고 하기엔 너무 평범하군요.”

“편견 좀 버려라. 쯧. 아크튜러스의 현자라고 불리는 녀석이 그렇게 선입견에 사로잡혀서야.”

“선입견이 아니라 감상을 말씀드린 겁니다. 근데 가주님은 왜 나와 계신 거지요?”

드뇌브 후작은 멋들어진 장식이 붙어 있는 거대한 활을 든 채 가신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후작은 여유가 넘쳤다.

가신들에게 농담을 건네며 껄껄 웃을 정도로.

“못 들었어? 아버지와 내기를 했지. 내가 데려온 녀석하고 활쏘기 시합을 할 거다.”

“활쏘기 시합이요?”

“그래. 이기는 쪽이 2억 실링을 얻게 되는 내기도 걸렸지. 합법적으로 돈을 두 배로 불릴 절호의 찬스다.”

라니에리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아크튜러스의 가주인 드뇌브 후작은 검술은 물론, 활을 비롯한 대부분의 병장기에 통달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과 얼핏 봐도 어려 보이는 소년이 활로 대결한다니.

“차라리 검술 대결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건 나라도 상대하기 버겁지.”

“계란으로 바위를 치려고 하는 느낌입니다.”

“뚜껑은 열어 봐야 아는 거 아니겠어? 계란이 아니라 피닉스의 알일 수도 있잖아.”

“너무 어린 친구에게 부담감을 주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사냥꾼의 후예를 너무 무시하지 말라고. 맨손으로 호랑이도 때려잡는 사람들인데.”

잠시 말을 끊은 시몬이 로빈에게 다가갔다. 기사에게 활을 받은 로빈은 시위를 당겨 보고 있었다.

평범한 활이었다.

그런데도 팔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사냥꾼 마을에서 실력을 테스트할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이래서는 활을 아예 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모여든 사람들이 거의 백 명에 육박하고 있었다.

가신뿐만 아니라 아크튜러스의 일원들도 구경을 나왔다. 헤라와 미온 부인, 그리고 케나드와 이올린도 나와 있었다.

거기에 제1기사단장 파월과 제2기사단장 한스도 친히 나섰다.

아무리 로빈이 실력이 좋다고 해도, 실전 경험이 없기 때문에 긴장하게 되면 보통 소년과 다를 게 없을 터.

“로빈.”

“예. 도련님.”

“너무 떨지 마라. 평소 실력의 절반만 발휘해도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하지만 제가 어찌 감히 영주님과 대결을…….”

시몬은 손가락을 까딱이며 웃었다.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 대결은 이기는 게 목적이 아냐. 네가 얼마나 활을 잘 쏘는지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려는 거지.”

“하지만 공자님. 2억 실링이나 거셨잖아요?”

“그건 괜찮아. 잃으면 또 용돈 타면 되니까. 아니면 근처에서 말썽 피우는 도적 떼 좀 혼내 주면 돼.”

허물없이 말하는 시몬 덕분에 마음이 좀 풀렸다. 만약 이곳까지 오는 과정에서 친밀감을 형성할 기회가 없었더라면 긴장을 풀지 못했을 터다.

피식 웃은 시몬은 로빈의 어깨를 다독였다.

“진짜 괜찮아. 눈 감고 쏴도 돼! 과녁에서 벗어나도 상관없고. 그러니까 네가 평소 하던 대로 쏴. 아버지에게 배운 걸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하란 말이다. 그렇다고 사람을 맞히진 말고.”

“그럴 일은 없어요.”

“그럼 됐다.”

시몬의 격려가 통한 걸까.

고개를 끄덕인 로빈이 심호흡을 한번 하더니 활을 들었다. 떨림이 훨씬 줄어들었다.

“이제 좀 괜찮아졌어요. 감사해요. 공자님.”

“감사해야 할 사람은 나지.”

“아직 승부가 나지 않았는데도요?”

시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가 나를 따라와 준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고마워하고 있다. 이번 대결은 그냥 가벼운 이벤트 정도라고 생각하라고.”

“예.”

시몬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모여든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시작했다.

“다들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갑작스럽긴 하지만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어 아주 기쁘군요. 지금 여기서 궁술 대결이 열립니다. 바로 드뇌브 각하와 로빈이라는 소년의 대결이지요.”

“각하! 살살 하십쇼! 애 울리지 마시고요!”

“하하하하!”

“오랜만에 주군의 궁술을 볼 수 있겠군! 오길 잘했어!”

일방적인 응원이 드뇌브 후작 쪽으로 쏟아졌다. 후작은 손을 슬쩍 들어 보이는 여유를 보였다.

“하지만 어떨까요? 로빈은 정통한 사냥꾼의 후예입니다. 타고난 궁술로 앞으로 신궁이라 칭송받을 인재이기도 하지요.”

“저렇게 평범해 보이는 꼬맹이가?”

“시위는 제대로 당길 수 있을지 모르겠군!”

“으하하하하!”

비아냥이 쏟아졌다.

시몬은 로빈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이런 멋진 경기에 내기가 빠지면 섭섭하지요. 자, 여러분들이 응원하는 상대에게 돈을 거십시오.”

시몬이 손뼉을 치자 집사 둘이서 커다란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이거 본전치기나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그러게. 당연히 가주께서 이기실 테니.”

“원래 내기는 역배당이 제맛이지.”

“허어! 월급을 그런 말도 안 되는 모험에 다 털어 넣는다고?”

반응은 아주 뜨거웠다. 특히 기사 중엔 얼마 전 받은 봉급을 전부 털어 넣는 사람들도 있었다.

베팅이 모두 끝나자 집사들이 장부와 상자를 들고 돌아왔다.

“넌 안 거냐?”

시몬이 라니에리를 은근히 압박했다.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이런 뻔한 내기에는 흥미가 없어서 말이죠.”

“쫄보 자식.”

“…….”

안경을 슥 올린 라니에리는 품에서 100만 실링 수표를 꺼내 상자에 넣었다.

드뇌브 후작이 이기는 쪽에 건 것이다.

“그래. 그렇게 나오셔야지.”

시몬이 장부를 확인했다. 차이가 극명했다. 대부분 드뇌브 후작에게 돈을 걸었다.

하지만 로빈에게 큰돈을 건 사람들이 몇 명 있어, 전체 액수로 따지면 어느 정도 해 볼 만한 내기가 되었다.

“이런 이런, 차이가 생각보다 크군요. 하지만 오늘 경기는 그 결과가 어떻든 간에 여러분들을 조금도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 제가 약속하지요.”

그때 드뇌브 후작이 자신 있게 말했다.

“나는 좀 더 뒤에서 쏘도록 하지. 과녁이 너무 커서 방해가 되는군.”

“편하실 대로 하시죠. 그럼 각하께서 먼저 쏘시고, 다음으로 로빈이 연속으로 두 번, 그다음 각하께서 연속으로 두 번, 이렇게 반복해서 총 다섯 발 쏘는 방식으로 하겠습니다.”

“좋군.”

드뇌브 후작이 라인에서 20보 정도 뒤로 물러났다.

가볍게 심호흡을 한 뒤 활을 들었다.

“오오…….”

기사들이 감탄하며 그 장면을 감상했다. 시위를 당기는 동작에 조금의 낭비가 없었다.

교본으로 삼아 후대에 전하고 싶을 정도로 완벽한 자세.

거기에 감각까지.

드뇌브 후작은 변화무쌍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의 피부를 통해 느끼고 있었다.

이윽고.

피웅!

화살이 날아갔다. 그 순간 후작의 입가에 씨익, 미소가 걸렸다.

턱!

화살은 동전만 한 붉은 영역 한가운데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명중이군!”

“오오! 실로 완벽한 궁술이야!”

주변에서 찬사가 쏟아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정도에서 쏘는 화살은 오러를 싣지 않아도 원하는 곳에 꽂아 넣을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니까.

“이거 힘을 너무 줬나? 오랜만에 쏘는 활인데도 가운데로 잘 들어가는군. 하하하하.”

후작은 묘하게 시몬을 도발했다. 그 영향이 로빈에게까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의 장면이 펼쳐졌다.

눈을 감은 로빈이 조금의 미동도 보이지 않았던 것.

‘과연 시몬의 눈에 들어온 꼬맹이란 말이더냐? 기대되는군.’

활을 내린 후작은 다음 순서를 기다렸다.

이제 로빈이 활을 두 번 쏠 차례였다.

“로빈, 쏴라.”

눈을 뜬 로빈이 활을 들었다. 평범한 자세였다. 활에 살을 메기는 것도 특별할 게 없었다.

피웅!

화살이 날아갔고, 그것이 과녁에 꽂히자 주변이 웅성거렸다.

“뭐지?”

“한참 빗나간 거 아냐?”

과녁은 크게 두 개의 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가운데 붉은 영역이 명중 구역으로, 작은 원으로 되어 있었고 그것을 감싸는 하얀색 큰 원이 있었다.

로빈이 쏜 화살은 붉은 영역을 벗어나 왼쪽 상단의 하얀색 부분에 꽂혔다.

“저런 실력으로 각하와 시합을 하려고 해?”

“기만이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공자님!”

“내 돈 돌려주세요!”

기사들이 날뛰기 시작하자, 시몬이 손을 들었다.

“아직 네 발 남았다. 소란을 피우면 쫓아낼 테니 그리 알도록.”

이윽고 2발째의 화살이 로빈의 손을 떠났다.

파악!

과녁 쪽에서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뭐야. 빗나간 건가?”

“화살이 안 보이는데?”

무예와 거리가 먼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화살의 흔적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사들의 눈은 달랐다.

“같은 곳을…… 맞혔어?”

“그것도 전에 있던 화살을 쪼개 버리면서?”

“허어!”

이번에도 화살은 과녁을 벗어나 좌측 상단에 꽂혔다.

그런데 문제는, 기존에 박혀 있던 화살을 조각내 버릴 정도로 똑같은 구역에 꽂혔다는 것.

“우연이겠지?”

“우연이어도 신기하군. 한가운데도 아니고…….”

“그러게 말입니다. 전 아무리 쏴도 저렇게 안 되던데.”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 것은 드뇌브 후작도 마찬가지였다.

‘제법 쏘는군.’

하지만 철저히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화살이 붉은 과녁을 벗어날 리가 없기 때문에.

“각하의 차례입니다. 두 발 쏘시면 됩니다.”

“으음.”

후작은 차분히 활에 살을 먹이고 시위를 당겼다.

피웅!

첫 번째 화살이 붉은 영역에 꽂혔다.

피잉!

두 번째 화살도 마찬가지.

후작은 매우 빠른 속도로 화살을 날려 총 세 개의 화살을 과녁에 명중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자, 로빈. 화살 두 발을 쏘면 된다.”

로빈이 차분히 시위를 당겼다.

화살을 쏘아 내려던 바로 그때.

바람이 바뀌었다.

그것도 머리카락이 흩날릴 정도의 강한 바람이.

“미끄러지겠군.”

“엉뚱한 데로 날아가지 않으면 다행이겠는데?”

“애초에 저런 꼬맹이에게 너무 버거운 시합이었다고.”

기사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지만, 로빈의 시선은 과녁에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피웅!

쩍!

이번에도 나무가 갈라지는 기이한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기사들이 기겁했다.

“……이번에도 같은 장소라고?”

“또다시 화살을 쪼갰어?”

“이게 말이 되나?”

세 번째 화살이 두 번째 화살을 쪼개고 똑같은 곳에 박혔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모든 사람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천재였어! 과연 시몬 공자님의 말씀이 틀리지 않았군!”

“과녁을 맞히는 것보다 전에 쏜 화살을 맞히는 게 더 어려운 거 아닌가?”

“당연하지! 크기도 크기지만 입사각도 중요하니까!”

“대단해!”

그제야 드뇌브 후작은 큰아들의 음흉한 미소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 녀석……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게냐?’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다면, 화살을 붉은 과녁 안으로 몰아넣는 것이 가능할 텐데.

‘왜 바깥으로 쏘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되는 일이 없었다.

바로 그 순간.

사방에서 다시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네 번째 화살도 전에 쏜 화살을 갈라 버렸어!”

“미친! 세 번 연속이라니! 이게 가능한 일이야?”

“바람이 이렇게 부는데 저 녀석은 그걸 계산하면서까지 쏠 수 있다는 건가!”

“오러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후작은 꽤 오랜만에 느꼈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는 그런 아찔한 느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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