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41화 (41/120)

41화: 서부의 신궁 (4)

“공자님을 따라가겠어요. 아버지.”

“로빈……!”

“저도 어머니를 지키지 못했어요. 그땐 너무 어렸기 때문이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후회도 남아요. 어떻게 해 볼 수 없었나 하는.”

과거의 한 장면이 펼쳐졌다. 큰 전쟁을 앞둔 성년의 로빈은 지금처럼 말하곤 했다.

새로운 삶을 얻고 난 뒤 다시 만난 로빈은 생각 이상으로 의젓했다.

“결국, 힘이 없는 사람은 살아남지 못해요. 저는 과거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요.”

“역시 아들이 아버지보다 훨씬 현명하군.”

로빈은 시몬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공자님을 지키는 사람이 될 거라고 한다면 따라가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공자님의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거라면, 한번 해 보고 싶어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냐?”

“예. 아버지. 공자님께서 약속하셨잖아요? 사냥개처럼 쓰지 않겠다고요.”

그 말에 켈로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평생 어린아이인 줄 알았는데, 오늘처럼 이렇게 대견해 보일 수가 없었다.

문득 오히려 아들의 발목을 잡는 게 본인이 아니냐는 시몬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네가 그렇게 정했다면, 내가 말리지는 않으마.”

“감사해요. 아버지!”

“내 요구를 들어줘서 고맙다. 로빈. 너를 반드시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

시몬은 로빈에게 악수를 청했다. 로빈은 손을 옷에 슥슥 닦더니 조심스레 시몬의 손을 맞잡았다.

“후우, 그보다 켈로그. 먹을 것 좀 있나? 몸을 좀 움직였더니 배가 고픈데.”

“공자께서 드실 만한 음식은 없소만.”

“치사하게 왜 빼고 그래? 저기 갓 잡아 온 동물들 잔뜩 있구만.”

아까 잡아 온 동물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곳을 가리켰다. 켈로그는 피식 웃었다.

그때 그의 동료들이 다가왔다.

“저, 공자님. 정말…… 저희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겁니까? 저희는 불충하게도 공자님께 활을…….”

“음? 자네들과 무슨 일이 있었나?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공자님!”

“됐어.”

시몬은 흔쾌히 없던 일로 해 주었다. 로빈을 얻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동료들은 감격스러웠다.

이쯤 되니 어쩔 수 없었다.

한숨을 내쉰 켈로그가 팔을 걷었다.

“좋소. 대 아크튜러스의 첫째 공자께 올릴 만한 음식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솜씨 좀 발휘해 보지.”

“진즉 그렇게 나오셔야지. 그보다 활 좀 빌려도 되나?”

“뭐에 쓰시게?”

“귀한 아드님 실력 좀 보고 싶어서.”

켈로그는 본인이 쓰던 활을 내주었다.

활을 받아 든 시몬은 천막 한옆에 있는 숲으로 들어갔다. 로빈은 센스 있게 화살을 몇 개 챙겨 왔다.

시몬은 시위를 당겨 보았다.

평소에 관리를 철저히 했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매우 견고한 활이었다.

“활은 얼마나 쏴 봤나?”

“매일매일 쏘고 있어요. 활을 든 지는 3년 정도 됐구요.”

“참, 너 몇 살이지?”

“올해로 열다섯입니다.”

“열다섯이라.”

너무 많지도, 그렇다고 너무 적지도 않은 적당한 나이다. 정말 천재들은 10대 초반부터 재능을 보여 주곤 하니까.

“저기 붉은 나무 보이지? 맞힐 수 있나?”

대략 1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나무를 가리켰다. 로빈은 활에 살을 먹이며 대답했다.

“눈 감고 쏴도 저 정도는 맞힐 수 있어요.”

“한번 해 봐.”

로빈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활을 들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시위를 놓았다.

피잉!

탁!

화살은 정확히 붉은 나무의 줄기에 꽂혔다.

“허풍은 아니었군.”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

“소중한 분을 지키는 기사가 돼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활보다는 검을 잘 쓰는 분을 붙이는 게 맞지 않나요?”

“좋은 지적이군.”

시몬은 손을 뻗었다. 그러자 로빈이 들고 있던 활을 시몬에게 건넸다.

시몬도 활에 살을 먹이곤 눈을 감았다.

“진짜 실력 좋은 궁사들은 원거리든 근거리든 가리지 않는다. 매 순간 기민하고, 민첩하지. 멀리서 적을 제압할 수 있기 때문에 유리한 점이 많다.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이야기야.”

투두둑!

피웅!

탁!

시몬이 쏘아 낸 화살이 붉은 나무줄기에 틀어박혔다.

그런데 그냥 박힌 게 아니었다.

“와…….”

로빈이 놀란 이유는 그가 눈을 감고 활을 쏴서 표적을 맞혔기 때문이 아니었다.

시몬이 쏜 화살은, 방금 로빈이 쏜 화살의 뒤를 뚫고 들어가 반으로 갈라 버렸다.

점처럼 작은 표적을 정확히 맞힌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저보다 활을 잘 쏘시는 것 같아요. 공자님.”

“아니. 활은 잘 못 쏴. 활보다는 역시 검이 체질에 맞지.”

“잘 못 쏘는데 어떻게…….”

“오러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시몬은 살짝 과장을 취했다. 방금 쏜 활은 오러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쏜, 순수하게 그의 실력으로 만들어 낸 작품이었다.

“가문으로 돌아가면 너에게 오러 수련법을 알려 줄 거다. 최대한 빠르게 오러 서클을 만들고 수련에 들어가야 해. 열다섯 살이면 조금 늦은 편이거든.”

“제가 잘해 낼 수 있을까요? 오러에 대해서는 전혀 몰라요.”

“포기하지 않고 잘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해줄 테니까.”

“……믿기지가 않아요.”

“뭐가?”

“갑자기 공자님이 나타나서 저를 데려간다고 하시고, 또 오러 유저로 만들어 준다고 하시니까…….”

시몬은 다시금 눈을 감았다. 활을 힘껏 당기고, 화살을 쏘아 내었다.

이번엔 보통의 화살이 아니었다.

푸른 빛을 머금은 화살이 빠르게 날아갔다.

콰지직!

화살은 나무에 박히지 않았다. 나무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고는 사라져 버렸다.

쿠웅!

줄기를 잃은 나무가 쓰러졌다.

로빈은 오러의 위력을 처음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때. 멋지지?”

“예…… 정말 대단해요.”

솔직히 전생에서의 로빈이 훨씬 더 대단했다. 활 하나로 수백의 적병들을 쓸어버릴 정도였으니까.

“너도 곧 이렇게 할 수 있을 거야. 이유는 묻지 말고 그냥 따라오면 돼. 세상에 갑자기라는 건 없어. 찾아보면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정 궁금하면, 네가 그 이유를 찾아보도록.”

“네!”

“대답 한번 씩씩해서 좋네.”

시몬은 다시금 활을 들었다.

피웅!

날아간 화살은 훨씬 더 먼 곳에 열린 열매를 꿰뚫었다.

* * *

켈로그의 배려 덕에 노숙을 피한 시몬은 느지막이 일어나 출발 준비를 했다. 로빈은 일찍부터 짐을 다 챙긴 모양이었다.

천막 안으로 켈로그가 들어왔다.

“시몬 공자.”

“왜?”

“물어볼 게 하나 있소.”

“원하면 아들을 만나러 가도 되냐고?”

“……어떻게 알았소?”

“얼굴에 다 쓰여 있는데 어떻게 몰라?”

시몬은 품에서 아크튜러스 가문의 징표를 꺼내 휙 던졌다.

곰이 그려진 멋진 주화였다.

“그걸 들고 저택으로 찾아와. 그럼 아무도 막지 않을 거다. 그렇다고 이상한 데에 쓰면 곤란해.”

“고맙소.”

“말 나온 김에 그것도 줘야겠네.”

자리에서 일어난 시몬은 밖으로 나가 말에 매달아 두었던 돈주머니를 가져왔다.

“이게 뭐요?”

“돈.”

“됐소.”

켈로그는 다시 돈주머니를 내밀었다.

“얼마 들었는지는 확인하고 거절을 하지?”

“아들을 판 게 아니오. 얼마가 들었든 돈은 받을 수 없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군. 아크튜러스 가문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은 직무에 합당한 봉급을 받아. 미리 당겨서 받는 거라고 생각하라고.”

“으음.”

그렇게까지 말하자 거절하는 모양새도 웃기게 되었다.

돈주머니에 든 돈은 정확히 1억 실링이었다. 드뇌브 후작이 내준 돈에서 빼 온 것이다.

“그럼 잘 보관해 두겠소.”

“그보다 식량 좀 얻을 수 있나? 어제 먹은 육포 끝내주던데.”

“다 준비해 놓았지.”

“말 잘 통해서 좋네. 오케이! 그럼 슬슬 가 볼까.”

밖으로 나오자 켈로그의 동료들이 보따리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육포 등 먹을 만한 고기가 잔뜩 들어 있었다.

“기회가 되면 또 찾아오겠다. 가능하면 이곳에 정착하는 게 좋겠군. 너무 떠도는 것도 위험하니까.”

“어, 그게…….”

“세금은 걱정하지 마라. 내가 돌아가는 대로 처리해 줄 테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마을을 하나 세우든지.”

“정말 감사합니다! 나으리!”

시몬은 말에 로빈을 태우고 힘차게 달려 나갔다.

그렇게 며칠 후, 시몬과 로빈은 아크튜러스 가문의 저택에 도달했다.

오면서 두 사람은 많이 가까워졌다.

시몬이 편하게 대해 준 것도 있었고, 로빈은 아버지와 다르게 그렇게 과묵한 편은 아니었다.

궁금한 것은 바로 질문했고, 시몬은 귀찮은 기색 없이 그것을 해결해 주었다.

“와! 엄청 큰 저택이네요. 이런 건 처음 봐요!”

으리으리한 저택을 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시몬은 싱겁게 웃었다.

“우리 저택이 좀 큰 편이지. 그래도 황도에 가면 이것보다 더 큰 건물이 많다. 황궁은 대륙 최고의 규모를 자랑하지.”

“와…… 대륙 최고면 어느 정도일까요? 한번 가 보고 싶어요.”

“조만간 가게 될 거다.”

말에서 내린 시몬은 바로 드뇌브 후작을 만나러 갔다. 로빈을 소개해야 했고, 처리해야 할 몇 가지 행정적인 일이 있었다.

마침 드뇌브 후작은 집무실에서 영지의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누구냐?”

“로빈입니다. 평민이라 예법에 익숙지 않은 점, 이해해 주십시오.”

“평민이라고?”

드뇌브 후작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로빈을 내려다보았다. 무릎을 꿇은 로빈은 덜덜 떨며 얼굴을 들지 못했다.

시몬이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일으켰다.

“로빈. 떨지 말고 일어나라.”

“하, 하지만…….”

“활 쏘는 실력은 영주님보다 네가 더 뛰어날 거야. 그러니 주눅들 것 없다. 사냥꾼의 긍지를 잊었나? 자신감을 가지라고.”

“허헉!”

로빈은 기겁했다.

반면, 드뇌브 후작은 껄껄거리며 웃기만 했다.

“하하하하! 저 아이가 나보다 활을 잘 쏜다고? 긴장을 풀어 준다고 쳐도 농담이 너무 지나친 거 아니냐?”

“농담 아닙니다.”

“……뭐라?”

시몬은 자신만만하게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였다.

“내기하실까요? 로빈이 활을 더 잘 쏜다에 2억 실링을 걸겠습니다.”

“이 녀석이!”

2억 실링은 로빈을 만나기 전 받은 용돈의 남은 액수이기도 했다. 시몬 나름대로 전 재산을 건 것이다.

아크튜러스 가문은 무를 숭상하는 가문.

쿵!

가주 드뇌브 후작은 의자의 팔걸이를 내리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무리 저 아이가 뛰어나다고 한들 나보다 활을 더 잘 쏠 수 있겠느냐? 지금이라도 말을 거둬라!”

“혹시 겁나십니까?”

너무나도 충격적인 말에 드뇌브 후작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겁이라는 말은 아크튜러스 가문과는 정말 인연이 없는 말이었다.

시몬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한번 쏴 보시면 아실 겁니다. 이 아이가 왜 인재라고 불리는지를 말이죠.”

“흥. 말은 그럴듯하게 하는구나. 여봐라! 뭣들 하나? 어서 활을 준비하라!”

“예!”

잠시 후, 연무장에 과녁과 활이 준비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훈련을 끝낸 기사들과, 저택에서 일하던 사용인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가주님께서 활쏘기 시합을 벌이신다던데?”

“상대는 누구지?”

“시몬 도련님 아닐까?”

“이거 흥미진진한걸! 내기해도 되겠군!”

“다들 봉급 좀 털리겠구만!”

하지만 몰려든 사람들은, 드뇌브 후작의 상대가 시몬이 아니라 이름도 모르는 평민 소년이라는 사실에 경악하고 말았다.

뒤늦게 나온 라니에리는 이마를 짚었다.

“……대체 무슨 사고를 치신 겁니까? 공자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