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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40화 (40/120)

40화: 서부의 신궁 (3)

피잉!

살을 베듯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켈로그가 쏘아 낸 화살이 시몬의 심장을 노렸다.

‘바로 급소를 노리는군. 장난이 아니라는 건가?’

그렇다면 시몬도 제대로 대답에 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쐐애애액!

‘날카로운 공격이긴 하지만, 오러가 실리지 않은 화살 따위를 막는 건 일도 아니지.’

시몬은 굳이 오러를 끌어올리지 않고, 가볍게 검을 휘둘러 화살을 쳐 냈다.

쨍!

쇠와 쇠가 부딪쳐 맑은 공명음을 내었고, 화살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시몬은 검 끝을 까딱거리며 켈로그를 도발했다.

“너무 느려서 지루하군. 활은 안 통할 것 같은데 다른 방법을 써 보지그래?”

“오만한 놈!”

애초에 이 싸움의 승패는 정해져 있었다. 일반인과 오러 유저는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다만 중요한 것은 켈로그에게 어떻게 실력을 증명해 보이냐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몬은 켈로그가 달려오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켈로그는 활을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허리춤에 걸린 단검을 꺼낸 것은 아니었다.

맨손이었다.

‘무기를 쓰지 않겠다는 거냐?’

척!

이윽고 시몬도 검을 검집으로 갈무리했다. 더 이상 검을 쓰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크하하하! 나를 상대로 근력을 쓰겠다는 말이냐? 그 비리비리한 몸으로?”

“뭐, 해 보면 알겠지. 머릿속까지 근육으로 차 있지 않기를 바란다.”

“이놈!”

“아버지!”

그때 로빈이 윽박질렀다.

주먹을 쥐고 달려들던 켈로그가 잠시 주춤했다.

“왜 싸우시는 거예요? 그분은 손님이잖아요! 싸울 마음도 없다고 하셨고요!”

“손님? 웃기지 마라. 아크튜러스 가문의 첫째 아들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아버지…….”

“그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의 원수다. 사실이 아니라면 사칭죄로 처단하면 그만인 거고.”

한마디로 어느 쪽이든 싸워도 된다는 논리였다.

시몬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않았다.

전생에서는 로빈과 친하게 지냈다. 그래서 그의 과거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쳐들어온 산적들에게 어머니를 잃었다고 했었지.’

당시를 떠올려 보면, 로빈은 어머니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매우 자책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활을 빨리 연마했다면 어머니는 물론 마을 사람들을 지킬 수 있었을 텐데, 하면서.

‘그에 비해 켈로그는 조금 다른 한을 품고 있는 것 같군.’

그는 아크튜러스 가문을 원수라고 말하는 것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즉, 산적이 침입해 아내와 마을 사람을 몰살시킨 탓을 아크튜러스 가문으로 돌리는 것이다.

말이 안 되는 이유는 아니었다.

당시 병력을 일방적으로 움직이게 한 것은 시몬의 아버지인 드뇌브 후작이 내린 결정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는 치안의 공백이 있었다.

‘그것까지는 내가 어떻게 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네 아들을 훌륭한 기사로 키워 주지. 속죄의 마음으로.’

시몬은 굳이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켈로그를 진심으로 능멸하는 것이었으니까.

“지켜보아라. 아들아! 이놈이 진짜 아크튜러스의 핏줄인지 아닌지를!”

“아버지!”

“닥쳐라!”

그때 지켜보던 동료들이 달려들어 말리려던 로빈의 어깨를 붙들었다. 그리고 엄하게 꾸짖었다.

“이건 네 아버지의 싸움이다. 말릴 생각하지 말아라.”

“하지만……!”

“사냥꾼의 긍지를 무시하면 안 돼!”

사냥꾼의 긍지.

방금 아버지가 한 말이기도 했다.

사냥꾼은 사냥을 해서 먹고살아야 한다고. 누구의 개로 일하는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활을 쏘고 동물을 잡아야 한다고.

미처 하지 못한 한마디를, 로빈은 떠올렸다.

‘그리고 자연에 감사한다.’

그 생각에 미치자 로빈은 힘을 풀었다. 아버지를 말릴 수 없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때마침 싸움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켈로그가 덤벼들었다.

부웅!

크게 휘두른 주먹이 엇나갔다. 진보한 아크튜러스 체술을 익힌 시몬이 맞기에는 너무 느리고 둔했다.

‘피지컬은 좋지만, 그뿐이다. 기사의 체술을 능가할 수는 없지.’

부웅! 부우웅!

만약 켈로그가 조금이라도 진정했더라면, 공격이 유효타를 기록할 수 있었을 터.

그러나 그의 머릿속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억울하게 죽어 간 아내의 복수를 하겠다고 말이다.

“죽어! 죽으란 말이다!”

쇄애액!

탁!

명치를 질러 오는 주먹을 툭 쳐 낸 시몬이 옆으로 돌아서며 거리를 벌렸다.

이제 슬슬 싸움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시몬이 계획한 것은 일방적인 승리가 아니었다. 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만한 특별한 이벤트가 필요했다.

‘애초에 라니에리에게 데려오라고 시킨 것도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였지.’

일종의 빌드업.

애초에 시몬은 켈로그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더 화를 낼 거고, 과거의 상처를 떠올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다음, 직접 찾아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만큼 켈로그의 ‘과거’를 자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주먹에 잡념이 너무 많은데? 아직도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가?”

“과거의…… 망령?”

“네 아내의 일은 유감이다.”

“……!”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둔탁하게 내질러 오던 주먹이 시몬의 눈앞에서 턱, 멈췄다. 시몬은 공격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그를 응시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는 상투적인 위로는 하지 않겠다. 어차피 나도 그때는 어린 시절이라, 군대를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입장이었으니까.”

“네놈…… 진짜 아크튜러스의 장남이냐?”

“진짜라고 했잖아.”

주변이 웅성거렸다.

동료 사냥꾼들이 동요했다. 그가 진짜가 맞다면, 그를 상대로 엄청난 일을 벌인 거니까.

화살을 겨눈 것뿐만 아니라 싸움을 걸었다. 귀족 모독죄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다.

시몬이 당당히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거다. 불필요한 희생을 줄이고, 영지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지.”

“평화와 번영이라, 웃기는군.”

“뭐가 웃기지?”

“누구를 위한 평화와 번영인가? 나는 매일 악몽에 시달려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다.”

“그건 네 사정이고.”

“…….”

“너의 그 오만한 아집 때문에 아들의 출셋길을 막으려는 생각이냐?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로빈의 잠재력은 위대하다.”

“닥쳐!”

퍼억!

켈로그가 휘두른 주먹이 시몬의 얼굴을 타격했다.

분노가 서린 강력한 공격이었으나, 시몬의 얼굴이 살짝 돌아가는 정도로 끝났다. 오러를 입힌 덕분이었다.

이렇게 되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켈로그 쪽이었다.

‘왜, 왜 피하지 않았던 거지?’

귀족을, 그것도 대 아크튜러스 가문의 장남의 얼굴을 때리고 말았다.

시몬은 미간을 찡그리며 뺨을 어루만졌다.

“아우, 생각보다 아프네. 이거 멍들었겠는데?”

“……왜 피하지 않는 거냐?”

“주먹이 워낙 빨라서 말이야. 거기에 감정과 원한까지 실렸는데 내가 어떻게 피하냐고.”

시몬은 오러를 미세하게 조정해, 뺨에 멍을 만들어 냈다. 그냥 멍도 아닌 피멍을.

“축하한다. 너는 아크튜러스 가문의 후계자를 때린 첫 번째 평민이 되었군. 유일무이한 기록이겠지. 용맹스러운 사냥꾼으로 기억될 거다.”

“…….”

“귀족을 때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지? 그것도 후계자를 때렸으니 너와 로빈은 사형이다. 목이 잘려 저잣거리에 던져지겠지. 그리고 방관했던 너희들도 모조리 처형이다.”

“으윽!”

이렇게 된 이상 동료 사냥꾼들은 살인멸구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순순히 잡히는 것보다 평생 도망자 생활을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으니까.

그들이 무기를 들려 하자, 시몬이 검을 빼 들었다.

우우웅!

쐑! 쐐액! 쐐애액!

검이 딱 세 번 움직였다. 동시에 오러가 일어났고, 사냥꾼들이 쥐고 있던 활이 모두 잘려 나가고 말았다.

“허헉!”

“암살 미수로 끝난 걸 다행으로 여겨라.”

그제야 사냥꾼들은 시몬이 힘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망갈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오러가 날아와 몸을 두 동강 낼 테니까.

“자, 즉결 처분을 해 보도록 할까. 피고. 켈로그는 귀족 모욕죄에 특가법을 적용해 3족을 멸한다. 그리고 아크튜러스 가문의 핏줄을 위협한 피고의 잔당도 모조리 목을 벤다…….”

시몬은 잠시 말을 줄였다.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켈로그는 체념하듯 웃고 있었다.

“하하하. 이제야 아내의 곁으로 갈 수 있겠군. 뜸 들이지 말고 죽이시오.”

“……그러나 정상을 참작하여 피고와 그의 동료들의 죄를 면한다.”

사냥꾼들이 일제히 놀랐다. 시몬은 피식 웃으며 켈로그에게 다가갔다.

“한 대 친 걸로 너의 분노는 풀리지 않겠지. 내가 네 손에 죽는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거다. 아크튜러스 가문이 멸문한다고 해서 네 아내가 돌아오는 것은 아닐 테니까.”

“…….”

“즉, 그 원한은 씻을 수 없는 것.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한 대 때린 걸로 너의 분노가 조금이라도 가라앉았길 바란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조금은 후련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대체 원하는 게 뭐요?”

“로빈이 필요해.”

“무엇에 쓰려고.”

“수호기사로 키울 생각이다.”

이번에는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저번에 라니에리가 보낸 사람들보다는 말이다.

하지만 켈로그는 의문을 표했다.

“아크튜러스에는 위대한 기사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왜 어린 내 아들을 수호기사로 키운다는 말이오?”

“자세한 이야기는 해 줄 수 없다. 어차피 들어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

시몬이 손짓했다. 그러자 로빈이 가까이 달려왔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소년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이 녀석을 오러 유저로 만들 생각이다.”

“오러…… 유저?”

“너는 모를 거다. 네 아들이 생각보다 더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나도 모르는 걸 당신은 어떻게 안단 말이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거든. 앞으로의 일을 엿본다거나 하는 그런 일 말이야.”

미래 예지.

정확히는 전생의 기억이다. 굳이 평범한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쥐어짜 낸 핑계인 셈이다. 회귀라는 말은 해서도, 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아들은 내줄 수 없소. 녀석은 훌륭한 사냥꾼이 될 거요.”

“누구의 개로 일하는 게 아니다. 주체적으로 활을 쏘고 동물 같은 놈들을 잡게 될 거야. 그리고 자연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되겠지.”

“……뭣?”

전생에서 로빈이 자주 했었던 이야기였다. 아버지의 훌륭한 가르침이었다고.

그것이 시몬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켈로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네 아들은 나를 지키는 사람이 되지 않아.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지키는 기사가 될 것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

“나는 네 아들을 개처럼 부릴 생각이 없단 말이다.”

켈로그는 침묵했다. 그에 비해 로빈은 두 눈을 반짝였다. 소년의 가슴은 어느 때보다도 빨리 뛰고 있었다.

“……나는 아내를 지키지 못했다. 그런데 내 아들이 누군가를 지킬 수 있다는 거냐?”

“물론이지. 원래 아들이 아버지보다 더 잘난 법이거든. 나도 그렇고.”

“아들의 선택을 따르겠다.”

모두의 시선이 로빈 쪽으로 집중되었다.

로빈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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