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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36화 (36/120)

36화: 협상 (1)

결론부터 말하자면 케나드는 3서클의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시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서클이 하나 더 생기려고 하다니…….’

좀처럼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시몬이 만든 비약은 잘해야 서클을 하나만 늘려 줄 수 있는 효능을 가지고 있다. 완벽하게 잘 자란 약초를 구한 것도 아니라 효능도 조금 떨어진 상태.

그런데 케나드의 몸, 정확히는 심장은 단 한 톨의 오러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단약이 내뿜은 오러를 모조리 흡수해 버렸다.

그 결과, 세 번째 서클이 만들어짐과 동시에 네 번째 서클의 자리까지 생겨난 것이다.

“형님……?”

시몬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케나드가 조심스레 물었다.

통증은 씻은 듯 사라졌고,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일이 잘 풀린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형의 표정이 너무도 진지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케나드는 집중력을 끌어올려 오러를 살폈다.

세 개의 오러가 분명히 느껴졌다.

다른 사람이 혈맥을 짚어 주게 되면 매우 희박한 확률로 부작용이 발현되어 서클이 망가지는 일이 생기곤 한다.

그것의 의심하기에는 서클이 너무나도 멀쩡했다.

한편, 시몬은.

‘이 녀석, 진짜로 천재로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뒤늦게 입가에 미소가 걸리는 것을 확인한 케나드는 그제야 안도했다.

시몬이 물었다.

“왜 한숨을 내쉬냐?”

“아뇨, 그게. 뭔가 일이 잘못된 줄 알았습니다.”

“그게 아니라는 건 네가 더 잘 알 텐데?”

“맞습니다. 몸이 너무 가벼워서 날아갈 것만 같네요.”

“아무튼 축하한다. 케나드. 너는 이제 3서클의 경지에 올랐다.”

몸을 일으킨 케나드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형님. 이게 다 형님 덕분입니다!”

“그런데 하나 더 축하해야 할 일이 있구나.”

“네? 그것이 무엇입니까?”

“네 심장에 네 번째 서클이 자리 잡으려 하고 있다.”

“예에?”

상상하지도 못할 일이었다. 약 하나 먹고 서클이 하나 는 것도 대단한 일인데, 서클 자리가 하나 더 생기다니.

가히 기적이라고 할 만한 일이었다.

“약초의 효능에는 한계가 있는데, 너의 천부적인 신체가 그것을 남김없이 받아들인 모양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설명할 방법은 없겠지.”

“그럼 제가 곧 4서클,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에 들어서게 된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시몬은 예감했다.

‘킬스톤 지방에서 오크와 한바탕 싸우고 나면 깨달음을 얻겠지. 그 깨달음이 시너지를 냈으면 좋겠는데…….’

어차피 동생이 훈련을 게을리할 일은 없다. 매일, 매순간 오러는 쌓이게 될 거고 전장에서의 깨달음이 그것을 서클로 변환시켜 줄 것이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케나드가 단기간에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에 들어선다면 후계 경쟁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아크튜러스는 무를 숭상하는 가문.

아무리 제국에 장자 계승의 원칙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약한 후계자는 인정되지 않는다.

‘적당히 힘을 숨기고 케나드에게 양보하면 끝날 일.’

게다가 케나드는 더욱더 시몬을 존경하게 되었다.

이제는 죽으라고 하면 바로 칼을 꺼내 심장을 찌를 것 같은 충성심을 보이고 있다.

‘아주 좋아. 잘 풀리고 있어.’

만족스럽게 웃은 시몬은 케나드에게 손짓했다.

“이제 아크튜러스 검식의 ‘살검’을 전수할 시간이다. 검을 들어라.”

“예!”

케나드는 힘차게 발검했다.

“잠시 오러를 넣어 봐도 될까요?”

“얼마든지.”

지이이잉!

진한 푸른색의 오러가 검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케나드는 더욱 더 강한 힘에 도취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그러기엔 케나드는 너무나 성실한 기사였으니까.

눈매를 날카롭게 좁힌 케나드가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검을 좀 더 바르게 든 뒤 시몬을 바라본 채로 검식을 준비했다.

“기뻐하는 게 너무 잠깐인 것 같은 느낌인데?”

“어차피 저는 형님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응, 아니야.

오히려 재능이 있는 건 너야.

“좋은 자세다. 서클이 올랐다고 온종일 들떠 있는 건 얼간이들이나 하는 짓이지.”

“전 준비됐습니다.”

스릉!

이번엔 시몬도 검을 꺼냈다.

“전에도 말했지만 아크튜러스의 기본 검식은 베기, 내려치기, 찌르기다. 이 기본 자세만 완벽히 익히고 사용할 수 있다면 격검을 마스터하게 되는 거지.”

“예.”

“하지만 살검은 그 차원이 다르다. 사용이 아니라 응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속도와 패도를 살려서 말씀이십니까?”

“역시.”

‘하나를 알려 주면 열을 안다’는 말은 케나드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너는 이미 응용의 묘리를 알고 있을 거다. 아까 허수아비를 밀치고, 찌르고, 베었으니까.”

“그렇다면, 오러를 이용해 그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해 보겠습니다.”

“나를 허수아비라고 생각하고 들어오도록.”

‘위험하지 않을까요?’라는 상투적인 말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형님에 대한 모독이었다.

눈앞에 있는 저 거대한 산맥처럼 우뚝 선 사람은 아크튜러스의 공식적인 후계자다. 결코 만만히 볼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긴장하는 것은 케나드 쪽이었다.

“갑니다. 형님.”

“오너라.”

시몬은 가볍게 검세를 잡았고, 이윽고 케나드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음?’

시몬이 예상하던 것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공격이 시작되었다.

‘점프를?’

케나드는 실드 차징을 응용하여 살짝 뛰어올랐다. 빠르게 거리가 좁혀지며, 오러를 실은 검을 그대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카아아앙!

오러와 오러가 부딪치며 거친 소리를 발했다.

‘만약 생으로 막았더라면 몸이 반쪽이 될 뻔했군.’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검을 흘려 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케나드는 검을 베어 내듯 휘두르고 있었으니까.

마치 물이 계곡을 흐르는 것처럼 부드러우면서도, 한없이 깊은 폭포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속도를 품었다.

따앙!

‘야, 좀 살살해!’

시몬은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거리를 벌릴 필요가 있었다. 이어질 케나드의 공격이 뭔지 짐작이 갔기 때문에.

‘내려치기와 베어내기…… 모두 격검의 초식이지. 그다음은?’

찌르기.

역시나 검을 수평으로 세운 케나드가 그것을 내지르며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쐐애애액!

마치 명궁이 쏘아 낸 화살을 보는 듯했다.

‘이건 막기 좀 빡세겠는데.’

‘환영의 검’의 능력을 끌어올린다면 어떻게든 5서클 수준의 오러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슬아슬하게 이기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래야 후계를 양보할 때 케나드가 어느 정도는 납득할 수 있을 테니까.

‘피한다.’

시몬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전생에서 익혔던 아크튜러스 체술을 발휘했다.

스슥!

순식간에 옆으로 피했고, 케나드의 검은 목표를 놓치고 말았다.

“형님. 방금 그건……?”

분명 검을 들어 막을 거라고 생각했다. 피할 수 없는 속도였으니까.

하지만 시몬은 놀라운 신위를 발휘해 찌르기를 피해 냈다.

그것도 처음 보는 체술로.

“운이 좋았다. 스텝이 좀 꼬였는데 어떻게 잘 피해 냈군.”

“제가 보기엔 극도로 효율적인 체술 같았습니다만.”

“동생아.”

“예, 형님.”

“하늘 같은 형님의 말에 의문을 품으면 안 되는 법이다.”

흠칫 놀란 케나드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형님.”

“그보다 대단하구나. 네가 펼친 바로 그 초식이 아크튜러스 검식의 ‘살검’이다.”

케나드는 오러가 걷힌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느낀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살검부터는 정해진 초식이 없다. 기본 초식을 어떻게 응용하느냐에 달린 셈이지.”

“그렇다면 심검 단계는 어떤 것입니까? 도무지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마음 가는 대로 검을 부릴 수 있다. 그래서 심검이라는 이름이 붙었지.”

시몬은 이미 심검의 경지는 물론, 새로운 아크튜러스 검식을 창안하기까지 했다. 그에 대해서는 몇 시간이고 쉬지 않고 설명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했다.

“나보다는 아버지께서 더 잘 알고 계실 거다. 나중에 배움을 청해 보도록. 너무 나에게만 의지하는 건 좋은 모습이 아니니까.”

“명심하겠습니다. 형님!”

“이만 돌아가 봐. 좀 쉬어야겠다.”

케나드를 돌려보내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그 안락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녀가 들어오더니 조심스레 고했다.

“저, 공자님. 주인님께서 찾으십니다.”

“바쁘다고 하면 안 되겠지?”

하녀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최근의 시몬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냥 해 본 말이야. 쫄지 마라.”

“가, 감사합니다, 공자님…….”

아버지가 왜 불렀는지 알 것 같다. 시몬은 창가로 걸어갔다. 커튼을 걷으니, 미온이 환하게 웃으며 정원을 산책하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은 그길로 드뇌브 후작의 집무실을 찾았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

“너, 대체 무슨 마술을 부린 거냐?”

드뇌브 후작은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옆에는 가문의 주치의인 메디안 경이 서 있었다.

“둘째어머니의 일 말씀입니까?”

“메디안 경이 수년간 고생했는데도 고치지 못한 그 병을 약 하나로 해결했다던데. 믿기지 않는구나.”

“기쁘시지요? 어머니께서 저렇게 밝은 표정으로 산책하시니 말입니다.”

“크흠…….”

솔직하지 못하시긴.

씨익 웃은 시몬이 메디안 경에게 나가 보라고 손짓했다.

“비약을 좀 썼습니다. 제가 전생에서 개발한 비약인데 아주 효과가 좋지요.”

“흥, 웃기는군. 로이드 가문이 관여했다고 들었다. 제조법을 훔친 것이냐?”

“설마요. 로이드 가문은 비약의 제조법을 아직 모릅니다. 제가 약초 준비만 시켰거든요. 의심되시면 당장 드비안느를 불러서 확인해 보시면 될 겁니다.”

설마 했는데 드뇌브 후작은 진짜 드비안느를 불렀다.

“시몬의 말이 사실이더냐?”

“예. 소녀는 물론, 저희 아버지도 조제법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다만?”

“공자님께서 로이드 가문에 약 조제법을 알려 줄 테니 같이 사업을 해 보자고 하셨습니다.”

그 얘기는 할 필요 없잖아?

하지만 시몬은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기왕에 말 나온 김에 드뇌브 후작이 인지하고 있으면 오히려 이야기가 빠를 거다.

증언을 마친 드비안느가 돌아갔다.

“도대체 믿을 수가 없는 일이군. 침대에 처박혀 있기만 한 네가 새로운 조제법을 찾았다고?”

“전생의 경험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공교롭군.”

드뇌브 후작은 아예 ‘전생’이라는 말을 필터링한 것처럼 반응했다.

“그래서. 그 약은 어떻게 활용할 생각이냐? 사업이라면 만들어 판다는 일일 텐데.”

“요즘 상단에서 일 좀 하는 거 아시지요?”

“들었다.”

“앞으로는 상단 일에 좀 관여해 볼 생각입니다. 가문의 부가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요.”

“가문을 잇지 않는다고 큰소리치더니 마음이 바뀐 게냐?”

“부를 축적하는 것과 가문을 잇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아버지. 은퇴 자금이라고 할까요? 그걸 좀 모을 생각입니다. 그러니 제 공헌분만큼은 제가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허어…….”

“허락하지 않으시면 뭐 알데바란 상단하고 얘기를 해 봐야겠죠.”

“이놈이!”

드뇌브 후작은 테이블을 내리치며 큰소리를 냈으나, 그게 다였다.

누가 보더라도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건 시몬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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