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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34화 (34/120)

34화: 미래에서 온 비약 (2)

‘딱히 비밀로 할 생각은 없었다만.’

막상 이렇게 몰려와 목소리를 높이니 심기에 거슬렸다.

시몬은 일단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기로 했다.

삐딱하게 벽에 기댄 채 레밍턴 남작에게 물었다.

“오랜만이군. 레밍턴 경. 킬스톤에 관한 이야기는 누구한테서 들은 이야기인가?”

“가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고?”

그렇다면 이렇게 몰려온 것이 이해가 좀 된다.

‘나름 머리를 쓰신 거로군.’

아크튜러스의 가신 중 대부분이 시몬을 따르고 있다. 그가 다음 가주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물론 케나드를 따르는 가신들도 있지만 매우 소수이며 형식상의 충성을 바치는 수준에 불과하다. 아예 따르는 사람이 없다면 운신이 힘들어지니까.

그런데 최근 대세와 역행하는 분위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나를 따르는 자들도 슬슬 불안해지겠지. 열병의 후유증으로 머리가 돈 게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가문 승계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가문이 이익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이 상황에서 케나드가 후계로 급부상한다면 소란이 일어날 것은 자명하다.

뭔가 알 수 없는 변수가 일어났고, 그 움직임을 가속시킨 것이 바로 킬스톤 사건.

마이너 마을로 가기 전, 시몬은 드뇌브 후작에게 장담했다. 케나드를 ‘살검’의 경지에 올릴 테니 그를 킬스톤으로 보내 공을 세우게 하라고.

‘그 이야기를 가신들에게 일부러 흘려서 나를 압박하시려고 하는 것 같은데. 괜한 일을 벌이시는군.’

시몬은 여유롭게 웃으며 가신들의 태도를 냉철하게 관찰했다.

그들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장남이라면 모름지기 가문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알데바란과 평화 조약을 이끌어 내시고, 또 군대 주둔권까지 가져오셨는데 왜 갑자기 킬스톤으로 가지 않으신다는 것입니까?”

“저희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공자님!”

시몬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때마침 복도 끝쪽에서 서기관 칼림이 흥미로운 시선을 이쪽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저 여우 같은 표정 좀 봐라.’

딱히 칼림 경에게 억하심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오래 끌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내가 겁먹은 것 같아?”

“그런 건 아닙니다만…….”

“이렇게 몰려와서 따지는 걸 다른 사람이 보면, 그대들이 마치 내가 전쟁터로 나가서 죽기를 바란다는 것처럼 보일 것 같은데.”

“어,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오해십니다!”

가신들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조아렸다. 더 할 말이 많았으나, 오랜만에 만난 가신들을 보니 괜히 마음이 약해졌다.

“군단 사령관으로서 냉철히 판단했을 뿐이다. 나보다는 케나드 쪽이 훨씬 더 효율적으로 군대를 움직일 수 있다고 판단한 거지. 그러니까 그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도록.”

“하지만…….”

“그대들은 누가 가문을 잇는 게 더 중요한 건가? 영지의 안위가 아니라?”

그 한마디에 가신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누가 보더라도 그들은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줄타기, 중요하지. 괜히 썩은 동아줄을 쥐었다가는 한없이 바닥으로 추락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정도라는 게 있다. 나는 아직 여독이 풀리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몰려와서 따지는 것도 상식 밖의 일이고, 나의 형제인 케나드를 불신하는 것도 상식 밖의 일이다. 정녕 그대들이 우선시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죄송합니다. 저희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레밍턴 경.”

“예. 공자님.”

“그대의 가문이 얼마나 아크튜러스를 위해 충성하고 희생하는지 잘 알고 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잘 중재하도록.”

“명을 받듭니다. 공자님.”

“이만들 물러가라. 조만간 연회를 열어 그대들의 공을 치하할 것이다.”

이번에는 공수표를 남발했다.

딱히 그들을 위해 연회를 열어 줄 생각은 없었다. 앞으로 몇 달간은 정말 바쁘게 움직여야 할 테니까.

가신들이 물러나자 한쪽에서 지켜보고 있던 칼림이 다가왔다.

“공자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칼림 경.”

시몬은 칼림에게만큼은 하대를 하지 못했다. 그는 정말 영지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무서운 사람이다.

‘잔챙이를 돌려보내니 보스가 바로 나오는군.’

무력이 세거나 정치적 야욕이 있어서 무서운 게 아니었다. 사람의 내면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진 현자였다.

그래서 오래도록 드뇌브 후작의 총애를 받는다.

“이젠 후유증이 싹 사라지신 것 같군요. 가신들을 호령하는 모습에 감명받았습니다.”

“그 이야기 꼭 아버지께 전해 주십시오.”

“당연한 말씀을.”

고개를 든 칼림의 눈이 반짝였다.

“그보다 요즘 상단에서 재미있는 일을 하시더군요. 가명까지 쓰시고 말입니다.”

“칼림 경께서 상단 일을 챙기실 정도로 그리 한가한 분이 아님을 제가 잘 압니다만.”

“들려오는 이야기까지 쳐 낼 정도로 바쁘진 않습니다.”

“가문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군요.”

“평소에도 빵에 그리 관심이 많으셨습니까?”

따지듯 묻는 게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을 보였다. 시몬은 차분히 응수했다.

“침대에서 먹기 편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음료와도 아주 잘 어울리고 말이죠.”

“아아, 요즘 식사를 침대에서 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있으면 편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칼림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로 보기엔 납득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시몬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눈치군. 이런 식으로 나오시겠다?’

물론 시몬은 빵집도, 루아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어쨌든 황녀와의 혼담을 깰 수만 있다면 루아와의 교제는 어렵지 않은 일이 될 테니까.

“제 개인적인 습관이 서기관께 걱정을 끼친 모양입니다. 앞으로는 종종 식당에서 식사를 하도록 하지요.”

“아뇨. 아닙니다. 허허. 공자께서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작은 걱정일 뿐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시길. 그럼, 보중하십시오.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정중히 인사한 늙은 여우가 몸을 돌렸다. 그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시몬도 다시 방 안으로 돌아와 작업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날 밤, 달빛을 머금은 세 개의 비약이 완성되었다.

시몬은 일단 시험 삼아 하나를 먹었다.

차분히 앉아 혈맥에 오러를 쏟아부었다. 약효가 흡수되기 시작하면서 기존에 있던 오러와 함께 합쳐지더니 심장에 자리 잡았다.

설명은 간단했지만, 실제 과정은 매우 힘들고 복잡한 일이었다.

‘서클이 하나 늘었군.’

씨익, 웃음이 나왔다.

약물로 서클을 늘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운이 좋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상황.

‘회귀했기 때문인가? 나는 이미 9서클을 달성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니.’

아직은 가설일 뿐이다.

그래도 시몬은 그게 맞을 거라 생각했다. 9서클이나 되는 오러를 수련했던 것이 도움이 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이로써 시몬은 4서클에 들어섰다.

순수한 능력만 보았을 때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에 진입한 것이다.

‘효과가 확실하니 사용해도 되겠어. 어떤 반응들을 보일지 기대되는데?’

시몬은 경주마처럼 휘달리는 오러를 갈무리하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 * *

다음 날, 가장 먼저 시몬이 찾아간 곳은 둘째 부인 미온이 머무는 거처였다.

“어머니께서는 안에 계시느냐?”

“예. 공자님. 아뢸까요?”

“그래.”

곧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니 침상에 누워 있는 미온의 모습이 보였다. 적지 않게 놀랐는지 몸을 일으키려고 하고 있었다.

황급히 다가간 시몬이 그녀를 말렸다.

“어머니. 그대로 누워 계십시오. 괜히 저 때문에 일어나실 필요는 없습니다.”

“시몬.”

통증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일까.

미온은 눈시울을 붉혔다.

“갑작스러운 말이지만, 네가 이곳에 온 지 얼마나 되었는지 알고 있니?”

“그게,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앞으로는 자주 들르겠습니다.”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란다. 네가 찾아왔다는 게 너무나 기뻐서…… 자주 오겠다는 그 말만 들어도 너무 좋구나. 시몬.”

미온은 시몬이 아침 일찍 찾아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곧 손을 흔들어 하녀들을 모두 물렸다.

“혹, 중요한 일이라도 있니?”

“어떻게 보면 중요한 일이겠지요.”

“편히 말하렴.”

“요즘 건강은 어떠십니까?”

“나쁘지 않단다.”

약을 바꿨는데도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애써 참고 있는 게 보였다.

미온이 겪고 있는 것은 심장병.

어려서부터 심장이 약해 잔병치레가 많았는데, 이올린을 낳은 이후로 건강이 점점 악화되기 시작했다.

시몬을 미래를 알고 있다.

이대로 방치하다간 미온의 심장이 멈추고 말 거라는 것을.

“안 그래도 걱정이 되더군요. 그래서 어머니께 드릴 좋은 약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직접……?”

시몬은 나무 상자 뚜껑을 열었다.

어제까지 흙색이었던 단약은 이제 달빛을 머금어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한눈에 보더라도 신비한 약이었다.

헤라의 아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약을 선뜻 내민다는 것은 의심할 만한 일이었다.

만약 측근이 옆에 있었더라면 복용을 말렸을 터.

하지만 미온은 평민 출신이었고, 곁에서 보좌할 만한 사람을 보낼 친가도 없었다.

“이올린이 새로운 곰 인형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하더구나. 한시도 품에서 떨어트리지 않아. 네가 준 거라면서. 신경 써 줘서 고맙단다.”

“제 동생입니다. 신경 써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이제는 내가 선물을 받을 차례인가 보구나.”

시몬이 긍정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그녀는 기꺼이 약을 집었다.

“천천히 씹어 드십시오. 조금 독하겠지만 곧 편해질 겁니다.”

미온이 약을 입에 넣었다.

그녀가 먹은 비약은 서클과 심폐 지구력을 영구적으로 강화시켜 주는 약이었다.

‘원래라면 혈맥을 짚어줘야 하지만, 단순히 치료 목적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지.’

시몬은 그저 미온이 단약을 쉽게 삼킬 수 있도록 물을 챙겨 줄 뿐이었다.

단약이 녹으며 씁쓸한 맛이 입 안으로 퍼졌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이었다.

“아……?”

놀라울 정도로 상쾌한 느낌이 목으로부터 가슴까지 퍼져 나갔다. 미온은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감각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불안해서가 아니었다. 심장이 멈추기 직전이어서도 아니었다.

여느 때보다도 힘찬 움직임이었다.

“그런데 어머니. 어떤 효과가 있는 약인지 묻지도 않고 드시는군요. 독이라도 들었으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사랑하는 아들이 구해다 준 건데 독이라도 고맙게 먹어야지 않겠니?”

“……심장과 폐를 강화시켜 주는 약입니다. 이제 어머니의 심장은 누구보다도 건강하게 뛸 겁니다. 앞으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미온은 손으로 가슴을 짚었다. 이제는 손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심장이 선명하게 뛰기 시작했다.

혈색도 좋아졌다.

방금까지 병환 중이었다는 걸 누구도 믿지 못할 정도로.

“정말, 다 나은 것 같구나. 시몬. 어지럼증도 없어지고 숨도 편안해졌어…… 너에게 큰 빚을 졌구나.”

“빚이라니요. 그런 말씀 마십시오. 어머니. 대신 부탁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말해 보렴.”

“드신 약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아버지께는 말씀드려도 상관없지만 말입니다.”

미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한번 마이너 마을에 있는 별장으로 모시고 가겠습니다. 이올린이 좋아할 만한 호수가 있더군요. 그곳에서 며칠 보내시면 지쳤던 마음도 차차 나아질 겁니다.”

“…….”

미온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 냈다.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오늘은 날씨가 좋습니다. 이올린과 함께 산책을 나가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어머니.”

정중히 예를 취한 시몬은 조용히 방을 나섰다.

이제는 케나드에게 약을 먹일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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