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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32화 (32/120)

32화: 뜻밖의 행운 (4)

순간 테이블에 찾아온 정적.

루아의 부모는 대답을 기다리는 표정으로 시몬을 바라보았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시몬은 사레가 들릴 뻔했지만, 스튜를 잘 삼키곤 냅킨으로 입가를 닦았다.

“아, 아버지!”

깜짝 놀란 루아가 존슨의 팔을 붙잡았다.

“그런 실례되는 걸 여쭤보면 어떻게 해요? 식사하시는 중인데요.”

오, 전혀 실례되는 질문이 아닙니다. 아가씨. 오히려 기다리고 있던 질문일걸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라니에리는 말없이 빵을 찢어 스튜에 찍었다. 역시 그는 시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뭐 그리 실례되는 질문이라고? 궁금하면 여쭤볼 수도 있지.”

“아버님 말씀이 맞습니다. 궁금한 건 해결해야지요. 전 아직 혼인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그럴 겨를이 없을 정도로 너무 바쁘게 살았죠.”

“그러시군요! 하긴 나으리께서 대륙 여기저기를 다니시려면 시간이 부족하시기도 하겠군요. 음음, 그렇지요.”

존슨과 그의 가족들은 시몬이 상단 직원이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존슨 씨. 나으리라는 표현은 좀 부담스럽군요. 편히 이름으로 불러 주시죠. 제가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앞으로 오래도록 봐야 하는 사이인데 불편함이 있으면 되겠습니까?”

“옳으신 말씀입니다만 그게 참 쉽지가 않아서…….”

“괜찮습니다.”

존슨은 감탄했다.

속으론 이렇게 생각했다. 외모도 외모지만 정말 성품까지 완벽한 사람이라고.

상단 사람이란 으레 그렇다.

돈만 밝히고 물건만 볼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그런 와중에 빵의 가치를 알아주고 투자까지 해 준 사람이 나타났다.

가만 보니 아크튜러스 상단에서도 꽤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딸이 곤란할 때 도움까지 줬다.

이 이상 완벽한 사람이 또 나올까?

‘루아와 짝을 지어 주면 참 좋겠는데 말이지!’

하지만 그 말을 섣불리 내뱉을 순 없었다.

투자 계약이 체결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다. 이대로 무리해서 혼담을 진행하면, 뭔가 딸을 빌미로 계약을 한 게 아니냐는 소문이 날 게 뻔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십니까?”

시몬이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존슨은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하. 실은 저희 딸도 아직 혼처가 정해지지 않아서 말이지요. 나이도 비슷한 것 같고, 이게 좀 인연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더군요.”

“인연, 좋은 말이죠. 그런데 의외인데요?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라면 임자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이고!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으리.”

“이름을 불러 주시라니까요.”

“아아. 사이먼 님! 하하하하!”

루아의 얼굴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시몬은 음식을 먹으며 은근히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딱히 거부감을 표하지 않는다는 건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다는 거겠군. 지금 만나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전생에도 그랬다.

아름다운 외모와 착한 성품에도 불구하고 애인은 없었다. 이번 생도 크게 다르지 않게 흘러가는 듯해서 마음이 놓였다.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지.’

이미 경험한 과거와 많이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방심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 상황.

“말씀은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나 루아 양은 저에게 너무 과분한 분이십니다. 더 좋은 분과 맺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들은 라니에리는 깜짝 놀랐다.

성격에 못 이겨 급발진을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잘 참아 냈으니까.

게다가 연애 중수부터 쓸 수 있는 고도의 스킬, ‘밀당’을 시전했다.

‘공자님이 이런 쪽에도 재능이 있으셨나?’

먼 옛날 드비안느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을 때 콧방귀도 뀌지 않았던 그의 성미를 생각한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과분하다니요! 사이먼 님이야말로 일등 신랑감일 겁니다!”

“그보다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싶군요. 루아 양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앗, 네? 저요?”

“예.”

“어…… 글쎄요…….”

루아는 작고 예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시몬은 라니에리를 바라보며 눈짓했다.

― 그린 라이트냐?

― 예.

― 확실해?

― 확실합니다.

시몬은 기분이 좋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전문가 라니에리의 평가라면 믿을 만했으니까.

“제가 괜히 자리를 불편하게 만든 것 같군요. 루아 양. 편하게 식사하시죠.”

“저보다…….”

“예?”

“오히려 과분한 건 저예요. 사이먼 님은 지적이고, 멋지고, 또 무예에도 출중하세요. 게다가 정의로운 분이시죠. 그러니 과분하다는 말씀은…… 말아 주세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루아는 얼굴이 벌게진 채 스튜를 먹었다. 너무 민망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예쁜 딸을 둔 두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누가 보더라도 서로 마음이 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보다 존슨 씨.”

“예에. 말씀하시지요.”

“아크튜러스 수도에 분점을 하나 더 내볼까 합니다. 여기에서 빵을 아크튜러스 저택으로 납품하는 건 좀 어렵지 않나 싶어서 말이지요.”

“수도에 말입니까?”

존슨도, 그의 부인도 깜짝 놀랐다.

아크튜러스의 수도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만큼 땅값이 비싸기도 하고 말이다.

“빵집에서 말씀드리면 뭔가 좀 진지해질 것 같아서, 이 자리를 빌려 편히 말씀드립니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천천히 준비해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만.”

“아, 물론 저야 좋지요! 욕심은 나긴 합니다. 알피나 마을에 낼 분점엔 동생을 보내면 되는데, 으음. 수도에는 누구를 보내야 할지…….”

“따님을 키워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루아를요?”

“아까 직접 만든 빵을 맛봤는데, 아주 괜찮더군요. 재능을 물려받은 게 분명합니다.”

존슨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는 다른 뜻이 있었다.

딸을 고생시키지 않고 좋은 혼처에 출가시키는 것. 그런데 막상 시집을 보낼 대상으로 생각한 시몬이 제안하니 싫다고 하기 어려웠다.

“이야, 이 녀석이 빵까지 만들어 드렸군요. 으음.”

“그냥 드리는 권유니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선택은 전적으로 존슨 씨와 루아 양의 몫입니다.”

“하하하. 쉽지 않네요. 제가 별것도 없는데 너무 까다롭게 구는 게 아닌가 걱정입니다.”

“천만에요. 존슨 씨의 빵은 아크튜러스 영지, 아니 대륙에서 제일 유명한 빵이 될 겁니다. 제가 그렇게 하도록 도울 거고요.”

확신에 찬 한마디에 존슨이 반색했다.

“흐하하하! 이거 정말 은인을 만난 것 같습니다. 너무 기분이 좋군요. 자자! 그 이야기는 천천히 나누시고 어서 드십시오!”

“예. 많이들 드시죠.”

공수표는 결코 아니었다.

시몬은 정말 존슨의 빵집을 영지의 명물로 만들 생각이었으니까.

* * *

꿈만 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빵집 일을 돕느라 루아가 집에 오래 있진 못했지만, 시몬은 그녀와 충분히 가까워질 수 있었다.

예전처럼 남을 대하는 태도는 거의 희석되었고, 이제는 서로 호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눈빛을 교환하게 되었다.

때로는 오솔길을 산책했고, 늦은 밤 뒤뜰에 나가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루아는 말했다.

별이 참 예쁜 밤이라고.

“하하하하!”

“그렇게 좋으십니까?”

보다 못한 라니에리가 한 소리 했다. 시몬은 온종일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지금도 침대 위에서 뒹굴며 미친 사람처럼 웃고 있다.

“당연한 걸 왜 물어. 부럽냐?”

“전혀요.”

“말이 좀 이상하네. 우리 루아 양이 너의 레이디들보다 못하다는 말처럼 들리는 건 내 착각인가?”

“어찌 그런 불충을.”

“부러우면 솔직하게 부럽다고 해도 돼.”

얄밉게도 라니에리에겐 전혀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그는 무심하게 안경을 슥 밀어 올렸다.

“그보다 좀 의외입니다. 루아 양의 부모님이 도련님을 지나치게 좋게 보는 것 같아서 말이죠.”

“좋은 사람 눈엔 좋은 사람만 보이는 법이지.”

“진도는 어디까지 빼셨습니까?”

“적당히.”

“아직 손도 잡기 전이군요.”

시몬은 흠칫 놀랐다. 라니에리는 가끔 신들린 면모를 보일 때가 있었다. 적어도 여자관계에 한해서는.

“루아 양도 공자님께 분명 호감이 있는 것 같지만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가끔 공자님은 분위기를 주체하지 못하시니까요. 혈기 왕성한 시절엔 조심해야 합니다.”

“잠깐. 그거 내가 해야 할 소리 아냐?”

“공자님이 왜요?”

라니에리가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너무나도 뻔뻔했다.

“그나저나 걱정입니다. 이 일을 주인님과 마님께서 알게 되시면…….”

“아버지와의 약속, 내가 얘기 안 했던가?”

“못 들었습니다.”

“만약 황녀가 혼담을 깨면 내가 선택한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말씀드렸지.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허락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그걸 주군께서 받아들이셨다는 겁니까?”

“어.”

“하지만 마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실 겁니다.”

헤라의 성격상 엄청난 반대가 있을 거다. 특히나 평민 출신인 미온 부인까지 있는 상황이니 더더욱 눈엣가시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시몬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수도에 머무를 것도 아니고, 조용한 곳에 내려가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살 것이기 때문에.

“설마 아크튜러스의 가주께서 한 입으로 두말하시겠어? 약속은 약속이야. 어렵게 잡은 기회다. 이번 생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 거야.”

“또 그 말씀이십니까.”

“그쪽이 너한테도 좋은 일이 될 거고.”

문득, 열병에서 깨어난 시몬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 다시 만나게 돼서 정말 반갑다. 라니에리. 그때는 내가 미안했다.

이상하게 계속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때라는 표현이.

푸드드득!

그때 창문을 통해 비둘기가 날아 들어왔다. 라니에리가 우아하게 손을 뻗었다.

다리에서 쪽지를 꺼낸 라니에리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서부에서 전갈이 왔습니다.”

“읊어 봐.”

“좋은 소식 하나, 나쁜 소식 하나가 있습니다. 어느 쪽부터 들으시겠습니까?”

“나쁜 소식부터 들어야 기분이 덜 나쁘겠지?”

“로빈이라는 자의 포섭에 실패했다고 합니다. 완강히 저항한다고 하는군요.”

“뭐? 그럼 좋은 소식은 뭔데?”

“로빈이라는 자의 거처를 찾았다고 합니다.”

시몬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좋은 소식이야? 그냥 당연히 전해야 하는 사실이 아니고?”

“너무 나쁜 소식만 전해 드리면 곤란하니까요.”

“정말 지멋대로구만.”

저항이 있을 거라곤 생각했었다. 전생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로빈의 아버지는 굉장히 완고한 사람이었으니까.

아니, 어쩌면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직접 가 보는 수밖엔 없겠군.”

“으음. 또 긴 여정이 펼쳐지겠군요.”

“걱정하지 마라. 넌 수도에 내려 두고 나 혼자 갈 거니까.”

“서부는 위험합니다. 몬스터도 제법 많이 나오고 말이죠. 아무리 공자님이 강하시다고 하더라도 기사들을 좀 데려가시는 건 어떠실지.”

“그럼 너도 같이 가야 할 텐데?”

“부디 몸 조심히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손절 속도 봐라.”

조금 아쉽긴 했다. 오랜만에 얻은 휴가처럼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일어날 때였다.

루아의 마음을 얻는 것만큼 라니에리의 안전도 중요했다.

“떠나기 전에 루아 양 얼굴이나 좀 보고 가야겠군.”

“그러지 않으시는 편이 좋습니다.”

“왜?”

“갑작스럽게 찾아온 그리움은 그보다 더 큰 애정으로 바뀌는 법이지요. 제 말을 믿으십시오.”

흔들림 없는 라니에리의 눈을 보고 있자니 시몬의 자신감이 점점 옅어져 갔다.

“……그럼 편지 하나 남기면 돼?”

“아뇨. 딱 메모 정도가 좋습니다.”

“수틀리면 해고야.”

시몬은 작은 종이에 메시지를 남기곤 집을 나섰다. 이 쪽지를 확인한 루아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하면서.

하지만 그 헤픈 표정은 곧 날카롭게 변했다.

‘기다려라, 로빈. 꼭 너를 내 사람으로 만들고 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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