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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31화 (31/120)

31화: 뜻밖의 행운 (3)

“소식이 끊겨?”

앙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소파에 반쯤 누워 와인을 홀짝거리던 메르세데스 황녀의 목소리였다.

이곳은 리겔 제국의 황궁.

화려하게 치장된 황녀의 방엔 오로지 두 사람뿐이었다. 시중을 드는 하녀도 없었다.

그 주인공은 메르세데스 황녀와 그녀의 수호기사인 제너릭 경.

제너릭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보고를 계속했다.

“예. 매일 소식을 전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연락이 끊긴 지 이틀이 지났습니다.”

“이틀이라.”

잔을 내려놓은 메르세데스가 고혹적인 표정으로 제너릭을 응시했다.

그녀의 매력적인 시선은 누구든 유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정도면 이렇게 호들갑을 떨 필요 없는 거 아냐? 무슨 일이 생긴 걸 수도 있고.”

“제가 보낸 자는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틀이나 연락이 끊길 리는 없습니다.”

“오러 유저라도 돼?”

“예.”

오러 유저가 연락이 끊겼다.

그건 그것 나름대로 의미심장한 일이기도 했다.

메르세데스 황녀의 예쁘장한 미간에 두어 줄 주름이 잡혔다.

“그이보다 실력이 좋나?”

“객관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열병의 후유증까지 고려한다면 월등히 앞선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또 나름 흥미로운 이야긴데? 설마 눈치챈 건가?”

“지금 상황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일단 소식이 끊긴 곳은 아크튜러스의 남부 지방이니 그 근처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후 계획은?”

“좀 더 강한 자를 투입할 생각입니다.”

오래도록 비밀리에 요인을 죽여 온 제너릭 경이었다. 이번 일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신중해서 나쁠 것 없다.

그것이 평소 그가 내세우던 지론이었다.

“그이의 마지막 소식은?”

“저택을 떠날 때 아크튜러스 상단의 마차를 탔다고 합니다.”

“상단의 마차를?”

“귀족가에서 신분을 위장할 때 쓰는 전형적인 방법입니다. 산하의 상단이나 공방의 마차로 위장하는 경우가 많지요. 가끔은 평기사로 위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흐응.”

왜 신분을 숨겼을까?

메르세데스 황녀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크게 관심도 없었고.

“그 뭐냐, 계속 따라다니던 그놈도 같이 움직인 거야?”

“맞습니다. 라니에리 그자도 함께 움직였습니다.”

“호오, 그렇다면 공적인 일에 가까울 것 같은데.”

“제가 조사해 본 바로는 시몬 공자가 아크튜러스 상단의 일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적은 없습니다.”

“이제부터 하려는 거겠지.”

잠시 뜸을 들인 메르세데스 황녀가 와인잔을 들었다. 그리고 살짝 흔들었다. 아름다운 보랏빛의 와인이 찰랑 물결을 만들었다.

“가문을 잇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해. 기사단을 장악하는 것, 그리고 가문의 돈줄을 장악하는 것. 기사단은 그이가 장악하고 있으니 나머지 남은 건 상단이겠지. 드뇌브 후작이 실적을 쌓으라고 명령했을 수도 있고.”

“옳으신 말씀입니다. 아크튜러스 상단 내부에도 첩자를 심어 놓도록 하겠습니다.”

“상단은 됐고. 경의 능력으로 본가에 심는 건 어려우려나?”

에둘러 하는 질책이었다. 제너릭의 고개가 더욱 기울어졌다.

“송구합니다. 이번에는 확실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황녀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잊지 말아야지. 아무튼 신경 좀 써. 안 그래도 알데바란 놈들이 이상한 짓을 하는 바람에 우리 계획이 조금 어그러졌으니까.”

당초 황녀가 계획했던 것은 아크튜러스 가문과 알데바란 가문 사이에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그 배후엔 시몬이 예상한 대로 알퐁스 백작가가 있었다.

전쟁을 통해 막대한 부를 챙김과 동시에 아크튜러스 후작가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보기 좋게 실패하는 중이다.

시몬이 과거로 회귀했다는 정보는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을 테니까.

“믿어 주십시오. 황녀님. 실망하시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좋아. 기대하겠어. 참, 가는 길에 일로스테 남작 좀 입궁하라고 해. 요즘 안 보이는 것 같더라.”

“이런 말씀 드리기 황송하오나…… 당분간은 조금 멀리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왜?”

“시몬 공자가 알게 되었다면 역으로 사람을 붙일 수도 있습니다.”

“감히 나를 감시한다는 거야? 그것도 황궁에서?”

메르세데스 황녀는 콧방귀를 뀌었다. 이윽고 웃음을 터트렸다.

“웃긴 일이지. 드뇌브 후작은 신중한 사람이야. 그 아들들도 마찬가지고. 뒤를 캐고 싶어도 황궁 안에 사람을 넣는 짓은 못할걸?”

“음, 알겠습니다. 황녀님. 즉시 입궁하라 전하겠습니다.”

“전에 입었던 감색 옷 입고 들어오라고 해. 잘 어울리더라고.”

“예. 황녀님.”

* * *

“정말 감사합니다. 나으리! 딸을 지켜 주셔서.”

“저희 가문의 은인이셔요!”

루아의 부모가 연신 감사의 인사를 표해 왔다. 루아가 있었던 일을 가족들에게 모두 알린 결과였다.

그녀는 외동딸이라 누구보다도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말 그대로 금지옥엽.

그래서 부모는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잘 풀려서 안도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번 일을 통해 루아는 앞으로의 안전도 보장받았다.

빵집 사람을 건드는 사람이 있다면 아크튜러스 상단에서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다소 엉뚱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던 것.

거기에 라니에리는 풍문 한 스푼을 더했다. 아크튜러스 상단에서 제과제빵 사업에 아주 관심이 많다고. 황실과 대중의 이목을 분산시키려는 술책이었다.

시몬은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진정시켰다.

“별일 아니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까요.”

“어떻게 감사의 인사를 표해야 할지…….”

“며칠 신세 지기로 했으니 그걸로 됐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루아 가족의 은인이 되었다.

‘아주 호재 중의 호재로군.’

솔직히 라니에리에게 부탁해 루아를 위험에서 구해 주는 인스턴트한 시나리오를 떠올려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작위적인 건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시몬이 원하는 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그녀의 사랑.

그런 인위적인 계획으로 얻을 만한 보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음 같아서는 제이크인지 그놈에게 금화라도 좀 쥐여 주고 싶군.’

제이크와 일당들이 마이너 마을에서 쌓은 부정적인 평판도 이번 일에 한몫했다.

존슨의 빵집은 물론이고, 다른 가게에서도 행패를 부리곤 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놈들에게 잘 이야기해 두었으니 앞으론 이 마을에 얼씬도 하지 못할 겁니다. 만약 나타나면 저에게 바로 알려 주시면 됩니다.”

“으하하하! 정말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군요! 상인들도 많이 좋아할 겁니다.”

“너무 소문내진 마시고요. 저도 직장이 있으니.”

“아아, 그렇지요. 너무 내진 않고 적당히는 내겠습니다. 하하하하!”

루아의 아버지 존슨은 유쾌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크튜러스의 후계자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는 돌변한다.

자신의 딸을 가지고 놀았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모든 사실을 시몬이 알고 있다는 것.

‘언젠가는 내 정체를 알려야 해.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놔야 거부 반응이 적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상황은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나으리들. 시장하시죠? 어서 저녁을 준비할게요.”

“나도 좋은 술을 하나 가져오지!”

“저도 어머니 좀 도울게요. 쉬고 계셔요. 사이먼 님. 라니 님.”

루아와 그녀의 부모가 방을 나갔다. 시몬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침대에 누웠다.

“기분 좋으시겠습니다.”

“환상적이지. 너 하늘 안 날아 봤지? 구름을 걷는 기분이 딱 이런 기분이라고.”

“그래도 방심하시면 안 됩니다. 사람 이미지라는 건 한순간에 망가지는 법이니까요.”

“알고 있어. 반면교사가 바로 옆에 있으니까.”

“드비안느 양은 아닐 테고…… 설마 저입니까?”

“그래.”

라니에리는 은은히 웃으며 안경을 쓱 밀어 올렸다.

“저는 지금까지 제 이미지를 망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또 미래 이야기입니까?”

대자로 뻗은 시몬은 눈을 감으며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했다.

“굳이 미래까지 언급할 필요도 없지. 네 결혼식에 칼 들고 찾아올 레이디들이 많지 않을까? 그중엔 오러 유저도 있을 수도 있고.”

“억측이십니다.”

“조심해라.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여인의 마음일지니.”

그때 하얀 비둘기가 창문을 통해 안쪽으로 날아들었다. 라니에리는 자연스럽게 팔을 들었고, 비둘기가 그 위에 착지했다.

“서부에서 연락이 온 것 같군요.”

“뭐래?”

라니에리는 비둘기 다리에 묶인 통에서 쪽지를 꺼냈다.

“임무를 시작한다고 하는군요. 사냥꾼들이 모여 있는 지역을 알고 있다고 합니다.”

“잘됐네.”

“그런데 점찍은 자를 데려올 수 있을까요?”

“못 데려올 건 또 뭐야? 아크튜러스 가문에서 일할 기회를 주겠다는데.”

라니에리는 품에서 모이 한 줌을 꺼내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었다.

“사냥꾼들은 떠돌이 생활을 많이 합니다. 세율이 높다며 영주에게 반감을 갖는 자들도 많지요.”

“우리 세율은 낮은 편 아냐?”

“영지민들 입장에서는 다 높습니다. 열심히 번 돈을 빼앗기는 기분이 들 테니까요.”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요.”

라니에리는 여인들을 통해 오랜 기간 축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명을 이어 갔다.

“부름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도 생각해 보셔야 한다는 이야깁니다. 강제로 잡아 오라고 하시지 않으셨으니.”

“그때는 내가 직접 가야지.”

“……진심이십니까?”

시몬은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믿을 수 없군요.”

“믿을 수 없는 건 또 뭔데.”

“움직이는 거 별로 안 좋아하시잖습니까? 그래서 식사도 침대에서 하시는 거고. 그런데 직접 서부까지 가신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요.”

“놀란 척하면서 비꼬는 거 좀 그만두면 안 되냐?”

“비꼬는 거 아닙니다.”

“하아, 메르세데스 황녀만 아니었더라도 이런 일은 하지 않았겠지. 아마 지금쯤 다른 첩자를 보냈을 거야. 좀 더 강한 놈으로. 나야 문제없지만 너는 검 하나 제대로 못 들잖냐.”

“그 정도는 아닙니다.”

“검은 휘두르지 못하면 의미가 없는 거다. 사람의 목숨을 취할 줄 알아야 사람의 마음도 취할 수 있는 거지.”

철학적인 한마디에 라니에리가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시몬이 평생에 걸쳐 얻은 깨달음을 단시간에 깨우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잠시 후, 밖에서 루아의 외침이 들려왔다.

“식사 준비 끝났어요! 두 분 어서 내려오세요!”

시몬은 벌떡 일어나 누구보다도 빠르게 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잠들어 있던 기억도 얼핏 떠올랐다. 그만큼 맛있으면서도 그리운 냄새였다.

스튜와 빵, 그리고 푹 쪄 낸 닭고기가 메인으로 놓여 있었다. 얼핏 듣기로 마이너 마을엔 귀한 손님이 오면 닭을 잡는다는 풍습이 있다고 했다.

루아가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

“어서 드셔 보세요. 저희 어머니 요리는 마을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답니다.”

“정말 먹음직스럽군요. 잘 먹겠습니다.”

시몬이 먼저 스튜를 한 숟갈 떠먹었다. 부드러우면서도 고소한 맛이 혀를 타고 입 안으로 퍼져 나갔다.

“입맛에 맞으세요?”

“아주 맛있습니다.”

“그런데 나으리. 전부터 좀 궁금하던 게 있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존슨이 커흠, 하며 헛기침을 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물었다.

“혹시 혼인은 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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