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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28화 (28/120)

28화: 비공식 외출 (3)

하지만 푸른빛을 내는 것은 시몬의 검만이 아니었다.

첩자의 쌍단검에도 그와 견줄 만한 빛을 내는 검기가 맺혔다.

“오러 유저? 그래. 그 정도는 해야 내 목을 딴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을 수 있는 거겠지.”

오러 유저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선천적으로 오러를 느낄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심장에 모아 서클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일견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그 과정 하나하나가 녹록지 않다.

그래서 키우는 것 자체에 비용이 많이 든다.

특히나 활용도가 제한적인 암살자 직군에는 오러 유저가 드물다.

대부분 양지에서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기사를 지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실과 알퐁스 백작가가 손을 잡았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지.’

바로 그때, 첩자의 선공이 펼쳐졌다.

역수로 쥔 푸른 검이 빠르게 쇄도했다. 검의 길이는 짧았지만, 오러가 펼쳐져 장검처럼 길쭉한 칼날이 시몬의 목을 노렸다.

무심한 표정으로 검세를 취하던 시몬이 한 발 앞으로 내디뎠다.

그리고 검을 휘둘렀다.

땅!

‘첫 타는 눈속임.’

시몬의 검이 첩자의 단검을 쳐 낸 순간, 다른 손에 쥐어진 단검이 시몬의 복부를 찔러 오고 있었다.

‘너희들의 눈엔 내가 소드 비기너 수준의 애송이로 보였겠지?’

시몬의 오러 서클은 총 3개로 ‘소드 비기너’ 단계에 해당한다.

또한 황녀와 제너릭 경이 파악하고 있는 시몬의 경지는 ‘격검’의 단계.

즉, 이제 막 하급 기사 딱지를 뗀 중급 기사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을 거라 평가한 것이다.

‘하지만 어쩌나? 나는 이미 심검의 묘리를 깨우쳤는데. 게다가 진보한 아크튜러스 검식까지 알고 있다고!’

미래 지식을 알고 있는 것은 엄청난 전력이 된다.

비록 예전의 서클을 완전히 되찾진 못했더라도 말이다.

바로 지금처럼.

휙!

드뇌브 후작 정도는 되어야 펼칠 수 있는 아크튜러스식 체술이 전개됐다.

마치 물이 흐르듯 시몬의 몸이 유연하게 돌아갔고, 첩자의 단검은 마치 방패로 흘려 낸 무기처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시몬은 대답 대신 회전력을 이용해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까아앙!

“크윽!”

첩자도 보통은 아니었다. 간신히 쌍단검을 교차시켜 시몬의 검을 막아 냈다.

두 팔이 파르르 떨리고, 그곳에 연결된 근육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대론 오래 버틸 순 없었다.

‘도, 도망뿐인가!’

살아남아야 했다.

삶의 미련이 남아서만이 아니었다.

‘놈의 수준은 들은 것과 완전히 달라! 이 정도면 소드 익스퍼트급…… 정보가 수정되어야 한다! 제너릭 님께 알려야 해!’

만약 이 자리에서 도망칠 수만 있다면 임무 실패에 대한 벌이 아니라 크게 칭찬을 받을 일이었다.

‘일단 연막탄을…….’

그런데 바로 그때.

서걱!

첩자는 싸한 느낌을 받았다.

평생 느껴 보지 못한 차갑고 날카로운 느낌이 목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뭐지?’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 기묘한 느낌과 함께 세상이 빙글 돌기 시작했다.

데구르르.

첩자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져 굴렀다.

“누가 싸우는 도중에 딴생각하래? 그러니까 제 명에 못 사는 거다.”

시몬은 첩자가 쓰고 있던 가면을 벗겼다.

“처음 보는 얼굴이네.”

전생의 기억을 뒤져 봐도 이런 얼굴과 만난 적은 없었다. 만났더라도 암살자의 특성상 주기적으로 성형을 했을 것이다.

검을 거둔 시몬은 첩자의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역시 쓸 만한 건 없군.’

이 상황에서 어딘가의 문양이나 비밀 지령을 적은 쪽지가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시몬은 허리춤에 있던 주머니를 열었다.

탁한 액체가 든 작은 병 하나와 연막탄 세 개가 들어 있었다.

시몬은 병을 열어 살짝 냄새를 맡아 보았다.

‘헬파이어 물약이군.’

헬파이어 물약은 시체를 흔적도 남기지 않고 태워 버리는 비약 중 하나였다.

말 그대로 지옥불의 물약인 셈이다.

‘이렇게 귀한 걸 들고 다닌다는 건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놈이라는 건데.’

하지만 그 외의 단서는 찾을 수 없었다.

시몬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헬파이어 물약을 첩자의 시체 위에 뿌렸다.

치이이이익!

엄청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흔적도 없이 시체가 사라져 버렸다.

‘이걸로 시간을 좀 벌었군.’

제너릭 경에게 역정을 내며 테이블을 박살 낼 황녀의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시몬은 다시금 기감을 열었다.

라니에리가 타고 있는 마차는 한참을 앞서 나가고 있었다.

‘슬슬 가 볼까?’

시몬은 다리에 오러를 주입했고, 한층 진보된 체술을 발휘했다. 그러자 일 분도 채 되지 않아 마차를 따라잡았다.

스슥!

“다녀왔다.”

“……유령인 줄 알았습니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차를 세우고 탄 것도 아니고, 열린 창문으로 뛰어든 거니까.

그 속도가 워낙 빨라 평범한 라니에리의 눈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었다.

처음부터 거기에 앉은 사람처럼, 시몬은 태연했다.

“놀란 얼굴도 볼만하군.”

헛기침을 한 라니에리가 조용히 물었다.

“다친 곳은 없으시고요?”

“당연히.”

시몬은 등을 돌렸다. 거기에 붙어 있는 백룡의 브로치를 떼어 가라는 의미였다.

라니에리는 브로치를 다시 옮겨 달며 물었다.

“성과는 좀 있으셨습니까?”

“전혀.”

“수준은 어땠습니까?”

“오러 유저였다. 제대로 뒤를 밟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지.”

“오러 유저를 죽였다면 그쪽에서도 큰 피해를 입은 것일 텐데, 다음 자객은 좀 더 강한 자가 붙겠군요.”

당연한 순서다.

시몬은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제너릭 경의 수하들은 하나같이 강한 자들뿐이었지.’

이제는 암살자만 걱정해야 할 것이 아니다. 비밀리에 활동하는 자들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시간을 번 것도 잠시.

첩자로부터 연락이 끊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놈들은 다시금 사람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시몬은 조금도 초조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얼마든지 와라. 방해하는 놈은 모조리 저세상 구경 시켜줄 테니.’

처음부터 꿀만 빨 생각은 없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황녀 일이 그랬다. 가문과 자신을 좀먹을 마녀를 물리치려면 어느 정도 손이 더럽혀질 각오는 해야 했다.

시몬은 잠시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겼다.

“쓸 만한 인재가 필요한데…….”

“무슨 인재 말씀입니까?”

“솔직히 나는 별로 걱정은 안 드는데, 네가 걱정이라서.”

“사람을 붙여 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걸론 안 돼. 우리 가문의 기사는 영지의 전력이니 자유롭게 활용할 수 없다.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얼굴이 필요해.”

“흐음.”

진지하게 고민하던 라니에리가 답을 찾은 듯, 반짝 눈을 빛내며 안경을 밀어 올렸다.

“투기장에 가 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투기장?”

“많은 무투가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곳 아닙니까. 그곳에서 괜찮은 자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황도를 비롯한 거대 도시엔 투기장이 마련되어 있다.

지금은 노예 제도가 폐지되어 노예들이 참전하진 않지만, 예전에는 수많은 노예 검투사들이 자유를 위해 피를 흘린 곳이기도 했다.

현재는 무술을 연마한 사람들이 부와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거는 무대로 바뀌어 있었다.

그곳에서 인재를 찾는 것은, 라니에리의 말대로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한데, 좀 땡기진 않네. 워낙 거친 자들이 모인 곳이라.”

“아니면 공자님의 지식을 이용하십시오.”

“무슨 지식?”

“회귀하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럼 미래에 혜성처럼 나타날 신예의 이름도 알고 계실 텐데요. 그 말씀이 맞다면 말이죠.”

약간 비꼬는 듯한 어조였으나, 시몬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생각을 하는 건 제 몫이니까요.”

“좋아. 라니에리. 아주 멋진 생각이었어. 저택으로 돌아가게 되면 베텔게우스 가문에 친히 포상을 내리겠다.”

“전에 말씀하신 포상도 아직 집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기다려 봐. 좋은 날이 오겠지.”

그때 시몬은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렸다.

‘서부의 신궁’이라고 불렸던 전설적인 영웅의 이름을.

* * *

마차는 무사히 마이너 마을에 도착했다.

여전히 모험가로 북적였다.

아크튜러스 영지에서 상단의 마차가 지나다니는 것은 평범한 일이라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좋아할까?”

시몬이 곰 인형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공자님답지 않게 자신감이 없으시군요.”

“이쪽으로는 네가 소드 마스터잖아.”

“자연스럽게 하십시오. 상대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은 금방 갑니다. 밤이 짧다고 느낄 정도로.”

“잘났네 정말.”

시몬과 라니에리가 빵집 안으로 들어갔다.

“계십니까?”

“앗, 사이먼 님!”

마침 루아가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시몬은 웃으며 그녀에게 인사했다.

“루아 양.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덕분에요! 울 아버지가 사이먼 님 뵙고 싶다고 얼마나 재촉하셨는지 아세요?”

“하하하. 늦지 않게 와서 다행이군요. 자, 일단 이거 받으십시오.”

시몬이 곰 인형을 내밀었다. 루아가 살짝 놀라며 그것을 받았다.

“아크튜러스 가문을 상징하는 곰 인형입니다. 우리 사업이 번창했으면 하는 의미로 루아 양께 드리는 특별한 선물이지요.”

“어머…… 감사해요. 이런 건 생각지도 못했는데…… 아, 이럴 게 아니지.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빵집 내부는 좁았다. 그래도 간단히 앉아 이야기할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잠시 후 손에 밀가루를 잔뜩 묻힌 장년의 남자가 서둘러 들어왔다.

“아이고, 나으리들! 이거 처음으로 인사드립니다. 존슨입니다. 딸에겐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아주 좋으신 분들이라고요!”

“과찬이십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이먼입니다.”

“라니입니다.”

각각 별명을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시몬과 존슨이 환담을 나누는 사이 라니에리는 재빨리 계약서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계약 조건에 대해서는 폴렌 씨에게 전해 들으셨을 걸로 압니다.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으시다든지, 아니면 궁금한 것을 여쭤보셔도 됩니다.”

“오, 전혀 없습니다! 사기를 당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조건이 너무 좋았지요. 바로 서명하겠습니다!”

“라니. 펜을 준비해 드리도록.”

“예.”

펜을 받아 든 존슨이 계약서에 모두 서명을 마쳤다. 라니에리는 고급스런 봉투에 계약서를 담아 존슨에게 돌려주었다.

시몬이 말했다.

“이로써 우리의 사업이 처음으로 발을 내딛게 되었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지요! 그런데 나으리들. 혹시 이곳에서 얼마나 묵으실 예정이신지……?”

“오래 머물진 않을 겁니다. 며칠 정도.”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희 집에서 묵으시는 건 어떠십니까? 누추한 곳이긴 해도, 이곳에 있는 여관보다는 나을 겁니다. 예에.”

시몬의 눈이 번뜩였다.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였다.

“이거 괜히 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모르겠군요.”

“전혀요!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가 영광이지요.”

“하지만 따님도 계시고…….”

“전 괜찮아요! 두 분 모시려고 방 청소도 다 해 놨는걸요?”

모든 조건이 성립되었다.

시몬은 못 이기는 척, 조심스레 말했다.

“그럼 당분간 폐 좀 끼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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