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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27화 (27/120)

27화: 비공식 외출 (2)

오늘은 비공식적인 외출이었다. 그래서 배웅을 나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눈에 띄는 것은 이올린과 그의 생모인 미온 정도.

마차에 오르려던 시몬은 몸을 돌려 미온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평민 출신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풍스러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다만 병색이 완연하여 안색이 좋지 않았다.

“어머님. 방에서 쉬고 계시지 왜 나오셨습니까?”

이번에도 시몬의 말투는 상냥했다.

열병을 앓은 이후 많이 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늘 차갑게 대하곤 했는데, 이제는 달라졌다.

특히 이올린과 잘 놀아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진심으로 기뻤다. 지금까지 시몬은 이올린을 동생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미온은 여러모로 시몬에게 고마웠다.

“오늘은 몸 상태가 좀 좋기도 해서 나왔단다. 이번에도 먼 길을 간다지?”

“그렇게 먼 곳은 아닙니다.”

“신경 써 줘서 고맙단다. 덕분에 건강이 많이 좋아졌어. 약이 잘 듣는 것 같구나.”

“시간이 지나면 더 좋아질 겁니다.”

시몬에겐 다 계획이 있었다.

드비안느가 입수한 약초 리스트엔 총 세 명 몫의 비약을 만들 수 있는 분량이 적혀 있었다.

한 명 몫은 케나드, 다른 한 명 몫은 시몬 자신.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의 몫은 미온 부인의 것이었다.

‘오러 서클을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건강을 회복하는 덴 비약만 한 게 없지.’

그 비약 조제법은 앞으로 20년은 더 지나야 우연히 발견되는 것이었다.

매우 귀중한 조제법이지만 선뜻 사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미온 부인이 딱한 것도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동생인 이올린의 행복을 위한 일이었으니까.

‘전생에서처럼 어머니가 단명하게 되면 이올린은 의지할 사람이 전혀 없어지게 된다.’

시몬이 덤덤히 말했다.

“돌아오는 대로 새로운 약을 준비할 겁니다. 그 약이라면 어머님의 병을 깨끗하게 낫게 해 주겠지요.”

“정말…… 그런 약이 있니?”

“있고 말고요. 아크튜러스의 핏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입니다.”

확신을 담아 말한 시몬은 미온의 손을 꼭 쥐었다.

“보중하십시오. 소자 다녀오겠습니다.”

“너도 몸조심하렴.”

“이올린. 내가 없는 동안 어머니를 잘 챙겨 드려야 한다. 알았지?”

“예. 오라버니.”

동생의 머리카락을 한번 쓰다듬어 준 시몬이 마차에 올랐다.

제2기사단장 한스는 본인이 직접 동행하지는 않았지만 정예 기병 네 명을 붙여 주었다.

가문의 마차가 아니라 상단 마차를 이용하기 때문에 호위 병사가 없다면 도적들에게 먹잇감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기병이 따라붙는다면 어설픈 도적들은 얼씬도 하지 않을 거다.

“정말이십니까? 작은 마님의 병을 낫게 해 줄 약이 있다는 것 말입니다.”

“있지.”

“공자님께서 약초학에도 관심이 있으신 줄은 몰랐군요.”

“회귀했으니까.”

라니에리는 이제 회귀했다는 말에는 아예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건 그거 나름대로 시몬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오, 이건.”

한쪽에 놓인 작은 곰 인형이 눈에 들어왔다.

손으로 만져 보니 매우 부드러운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다.

마감도 아주 꼼꼼하게 되어 있어 한눈에 봐도 실력 좋은 장인이 만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좋은 놈으로 잘 준비해 놨군.”

“좀 큰 것도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부담감을 느끼실 수도 있고 또 첫 거래의 상징적인 의미도 있고 해서 작은 사이즈로 준비했습니다.”

“잘했다.”

“그보다 괜찮으십니까?”

“뭐가?”

시몬이 수상하다는 표정으로 라니에리를 바라보았다.

“어제 큰돈을 잃으셨다고 들어서 말입니다.”

“……그새 드비안느가 소문내고 다녔냐?”

“소문은 아니고 저에게만 살짝 말해 주더군요. 아크튜러스의 첫째 공자님이 불우한 하녀를 위해 1억 실링을 쾌척하셨다고.”

“하.”

“존경스럽습니다. 공자님.”

시몬은 탄식하며 창문을 열었다. 마차가 달리기 시작하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그의 머리카락을 살랑거리게 했다.

그 바람이 라니에리에게까지 닿자 미소가 지어졌다.

“마음 같아서는 기자들을 불러 그 미담을 신문에 싣고 싶지만, 아무래도 공자님께서 부담스러워하실 것 같아서 그만두었습니다.”

“야. 니네 둘 사귀냐?”

“설마요.”

검지로 슥, 안경을 밀어 올린 라니에리가 나지막이 경고했다.

“그런 말씀을 드비안느 양에게 했다가는 목숨을 건지기 어려우실 겁니다.”

“걔가 뭐 소드 마스터라도 돼? 내가 죽게?”

“상성이라고 할까요. 공자님은 어려서부터 드비안느 양에게 약하지 않았습니까?”

생각해 보면 그렇다.

어린 시절, 서로 반말을 하며 편히 놀 때는 드비안느가 대장이었다. 전쟁놀이를 할 때도, 소꿉놀이를 할 때도 맞는 것은 늘 시몬 쪽이었다.

“뭐, 그런 시절이 있긴 했지…….”

아련한 추억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다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그런데 나한테는 공자님이라고 하는 건 그렇다 쳐도, 너희들은 왜 내외하냐? 서로 친하게 지내도 될 텐데.”

“공자님이 계시지 않을 때는 편히 이야기합니다.”

“내 욕도 하면서?”

“예.”

“나 따돌림당하는 거야?”

“굳이 표현하자면 일종의 거리 두기라고 할까요.”

“가끔은 좀 아니라고 해 주면 안 돼?”

“공자님께 거짓을 고하는 건 신하의 도리가 아니죠.”

“신하이기 전에 친구잖아.”

그 말에 라니에리가 살짝 놀랐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말하면 신하보다는 친구 쪽이 좋지.”

“…….”

“설마 열병 앓기 전에 내가 막 너한테 선 긋고 예법 갖추라고 그랬냐?”

“예.”

새록새록 떠오른다.

열병을 앓기 전, 아주 먼 옛날 어렸을 때의 자신의 모습이. 장남이라는 위치와 수준 높은 검술 때문에 뵈는 게 없었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단둘이 있을 땐 예전처럼 편하게 해.”

“그건 나중으로 미루겠습니다. 공자님께서 진짜 후계위를 포기하고 낙향하게 된다면요.”

“시간문제일 텐데.”

“쉽지 않을 겁니다. 이미 영지의 민심은 이번 일로 공자님 쪽으로 많이 기울었으니 말이죠.”

언제 한번 날 잡아서 도시에 나가 봐야겠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같아선 루머라도 퍼트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엇보다도, 저 자신만만한 라니에리의 표정을 깨부수고 싶었다.

“그래도 공자님의 말씀이 맞았습니다. 전쟁보다는 평화가 더 나은 결과를 만들었으니까요.”

“어차피 곧 오크족과 전쟁이 벌어질 거다. 그때는 피해가 좀 있을 거야.”

“명분이 있는 전쟁이니 영지민들도 납득할 겁니다.”

“그래도 잘 보듬어 줘야지. 칼림 경께서 잘하시겠지만 너도 잘 살펴라. 가족을 잃는다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거든.”

“알겠습니다.”

라니에리는 그것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라는 것을 알아채지는 못했다.

마차가 도시를 떠나 들판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 * *

눈을 뜬 시몬은 아까부터 미세하게 심기를 건드리는 기운을 감지했다.

‘드디어 미행이 붙었군.’

그 기운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 마차를 따라오고 있었다.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으나 전생의 경험과 아크튜러스 검법의 묘리를 체득한 시몬은 그 불안정한 기운을 잡아낼 수 있었다.

“라니에리. 아무래도 미행이 붙은 것 같다. 아마 황녀가 보낸 사람일 거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시몬은 여러 가능성을 생각했다. 자신에게 기척을 들킬 정도라면 실력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오히려 기척을 들키지 않을 사람은 몇 없다.

전직 소드마스터를 상대해야 하니까.

“제거하는 게 좋겠군.”

“그건 좀 지나치지 않습니까? 평소대로 하면 별다른 보고 사항이 없을 텐데요. 가문의 후계자가 상단을 챙기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미 손을 다 써두었습니다.”

“없애고 없애다 보면 제일 마지막에 누가 나올지 궁금해서 말이야.”

다분히 원초적인 궁금증.

시몬이 칼자루를 쥐고 차창을 열었다. 라니에리가 깜짝 놀랐다.

“공자님. 이대로 뛰어내리시게요?”

“그래야 뒤를 잡을 수 있어. 별일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한 놈만 따라붙은 것 같으니.”

“이걸 가져가십시오.”

라니에리는 안쪽에 차고 있던 백룡의 브로치를 떼어 내어 시몬에게 달아 주었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공자님께서 주신 거니까요.”

“기왕 달아 줄 거면 앞쪽에 달아 주지, 왜 등 뒤에 달아?”

“어차피 성능엔 문제없잖습니까?”

“……다녀오마.”

파팟!

순식간에 시몬의 신형이 사라졌다.

너무나도 빨라 호위 기병들도 시몬의 움직임을 미처 감지하지 못했다.

마차와 한참 떨어진 곳에 사뿐히 착지한 시몬이 기감을 끌어올렸다.

구우우우!

다섯 개의 서클이 모두 열리자 강력한 오러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빠르게 접근하던 불안정한 기운이 흠칫 멈췄다.

‘늦었다. 이 자식아.’

스릉!

검을 꺼낸 시몬이 옆으로 크게 도약했다.

바로 그 순간.

처음으로 살기가 느껴졌다.

작고 날카로운 살기가 빠르게 이쪽으로 쇄도하기 시작한 것.

하지만 시몬은 차분하게 검을 휘둘렀다.

챙!

투척용 단검이 튕겨 나갔다. 그와 동시에 적의 기감이 한층 더 멀어졌다.

‘어디 한번 도망가 보시겠다?’

이제는 위치가 서로 바뀌었다. 추적자는 도망자에서, 도망자는 추적자로.

‘쉽진 않을걸?’

시몬은 다리에 오러를 집중시켰다.

쐐액!

쇄애액!

주변의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시몬은 말을 타고 달리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첩자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상대의 기감이 흐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당황했겠지. 하지만 어쩌나? 이건 시작에 불과한데.’

시몬은 체술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더욱 높이 도약했다.

팟!

마치 텔레포트 마법을 쓴 것처럼 신형이 사라지더니, 미친 듯이 도망가던 남자의 앞길을 턱 막아 버렸다.

“이, 이런!”

당황한 남자가 손을 빠르게 휘둘렀다. 쏘아져 나온 세 개의 단검이 시몬의 목과 심장을 노렸다.

땅! 따당!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몸에 닿지 않았다. 단검을 튕겨 낸 시몬의 검 끝이 첩자를 가리켰다.

“어디서 기어 나온 놈이냐? 감히 아크튜러스 가문의 장남을 미행하다니. 생긴 건 딱 암살자처럼 생겨 가지고는.”

상대의 복장은 온통 까만색이었다. 만약 어두운 지역이었다면 눈에 잘 보이지 않았을 터.

“제너릭 경이 보냈나?”

“……!”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첩자는 조금의 흐트러짐을 보였다. 시몬은 자신의 예상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뭐, 어차피 네 입으로 사실을 말하진 않을 것 같고. 그렇다고 계속 따라다니게 할 순 없으니 이만 죽어 줘야겠다.”

“크큭…… 이제 막 병상에서 일어난 놈이 나를 죽이겠다고?”

“어.”

“대단한 자신감이군.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구나. 대 알데바란의 이름으로 널 처단하겠다! 시몬 아크튜러스!”

“미친놈.”

너무 뻔히 보이는 속셈에 비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남의 뒤 밟는 놈들이 이렇게 창의력이 없어서야. 차라리 다른 가문의 이름을 들먹였다면 고민이라도 좀 했을 텐데. 이를테면 알퐁스라든지.”

“죽어라아아앗!”

첩자가 쌍단검을 들고 돌격 자세를 취했다.

“죽는 건 너다.”

우우웅!

시몬의 검이 파르르 떨리더니 푸른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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