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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26화 (26/120)

26화: 비공식 외출 (1)

“역시 형님은 대단하십니다. 가문의 새로운 비전을 개발하신 것 아닙니까?”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깐깐한 아버지께서 그리 쉽게 인정해 주실 리 없으니까. 심검 단계에 들어가는 거라면 또 모를까.”

“그래도 대단하십니다!”

시몬을 바라보는 케나드의 눈에서 우애와 존경심이 가득 흘러넘쳤다. 가만 보는 것만으로도 부담감이 느껴질 정도로.

시몬은 검을 검집으로 갈무리했다.

케나드도 검을 회수했다.

“그런데 형님.”

“응?”

“수련만으로 살검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요? 아무리 초식을 바꾼다고 해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서클이 부족하다면 경지에 도달하는 게 힘들 것 같습니다만…….”

합리적인 의문이었다.

케나드의 말 그대로 초식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은 오러다. 그래서 검법을 익힌 기사들은 오려 수련도 꾸준히 해 줘야 한다.

같은 양의 오러라고 해도, 어떻게 수련하고 어떻게 양을 늘렸는지에 따라 다른 성능을 내기 때문이다.

“서클 두 개로는 힘들 것 같습니다. 적어도 세 개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확히 봤구나. 나도 서클이 세 개다. 그제야 살검의 경지에 닿을 수 있었지.”

“제가 감히 형님의 경지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의문보다는 회의감이 앞섰다. 그만큼 시몬을 존경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네 심장엔 세 번째 서클이 들어설 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예? 정말이십니까?”

“정말이다. 정 못 믿겠으면 나중에 아버지에게 확인해 달라고 해 봐. 분명 서클이 태동하고 있다고 하실 테니까.”

케나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2서클을 달성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바로 서클이 하나 더 생기려고 하다니?

“아까 내가 한 말을 잊었느냐? 네 몸은 하늘이 내린 것과 다름이 없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지칭해서 이렇게 말하지. 검의 천재.”

“……!”

“너야말로 아크튜러스의 새로운 시대를 열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형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은 오로지 형님의 몫입니다!”

“꼭 가문을 이어야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건 아니지. 우리 형제가 협력한다면, 아니. 이올린과 곰 인형을 빼놓으면 서운해하겠군. 아무튼 우리 모두가 힘을 모은다면 아크튜러스 가문은 영원히 빛을 잃지 않을 것이다.”

“형님……!”

케나드는 거의 울 지경이 되었다. 더 이상 감정을 자극하면 곤란해질 것 같다.

“아무튼. 세 번째 서클을 만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내가 특별히 약초를 구해 비약을 만들어 주마. 그걸 먹으면 금방 서클을 만들 수 있을 거다.”

“감사합니다, 형님. 제가 도울 만한 일이 없을까요?”

“없어. 어서 가서 훈련이나 해.”

“옙!”

힘차게 기합을 넣은 케나드가 밖으로 달려 나갔다. 마치 선물이 도착한 것을 알게 된 아이처럼 해맑아 보였다.

그때 노크가 들렸다.

드비안느가 날카로운 눈매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 왜?”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들어와.”

안으로 들어온 드비안느가 문을 닫았다. 시몬은 깜짝 놀랐다.

“암살자냐?”

“안타깝게도 도련님 죽인다고 저한테 떨어지는 거 아무것도 없네요.”

“그럼 다행이고.”

“돈 주셨다면서요? 제니한테요.”

“아아, 그거?”

시몬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휘적거리며 침대에 누우려 했다. 그런데 이미 침대는 케나드가 묻혀 온 흙먼지로 엉망이 되었다.

“그냥 좀 신경이 쓰여서. 그런데 입이 생각보다 저렴했네. 여기저기 말하고 다닐 줄은 몰랐는데.”

“저에게만 말한 거예요. 너무 큰 돈이라 상의할 사람이 필요했대요.”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1억 실링이 큰돈이 아니라구요?”

시몬은 고개를 돌려 무슨 드비안느를 응시했다.

1억이라니?

“무슨 소리야? 내가 준 건 따로 빼둔 5백만 실링 주머니였는데.”

“1억 받았다고 하던데요.”

“……뭐?”

깜짝 놀란 시몬이 테이블로 달려가 서랍을 열었다. 오른쪽 서랍을 여니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는데, 왼쪽에는 돈주머니가 있었다.

훨씬 가볍고 돈이 덜 들어간 돈주머니가.

1억 실링 주머니는 마이너 마을로 가는 도중 만난 도적들에게 회수한 금품이었다. 거기에 알데바란 측에서도 여비를 지원해 주었고, 그것을 잘 모아 둔 것이었다.

잠시 착각해 다른 주머니를 준 모양.

“이런 젠장…….”

“어쩌실래요? 회수하시는 게 좋지 않아요? 도련님 용돈치고는 너무 많은 것 같은데.”

“그럴 순 없지. 줬다 뺏으면 모양 빠지잖아.”

“정말 의외네요.”

“또 뭐가.”

도도하게 팔짱을 낀 드비안느가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 도련님은 사용인들에게 돈 안 쓰셨잖아요. 오히려 봉급을 깎아야 한다고 소리치던 분이었는데.”

“내가 언제?”

“정확히 열병 앓기 전까진 그러셨죠.”

흑역사가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고개를 홰홰 저은 시몬이 부인했다.

“미담이 점점 쌓이는군요. 이 정도면 열병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아요. 기념일로 만드는 건 어떨까요? 주인님께 말씀드려 보면 좋을 것 같은데.”

“됐고. 또 내가 모르는 미담이 있어?”

“이번에 알데바란에서 한 건 하고 오셨잖아요. 도시에 안 나가 보셨죠? 도련님께서 전쟁을 막았다며 영지민들 사이에서 칭송이 자자하답니다.”

조만간 그쪽에서의 품평이 이쪽에 닿을 것이다. 본인을 낮출 줄 알면서도 가문의 품격을 잃지 않았던 가식적인 자신의 모습이.

“아크튜러스의 장남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

“그 당연한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상엔 무궁무진하게 많거든요. 잘하셨어요. 도련님.”

“네 칭찬은 정말 오랜만이네.”

“그랬나요?”

천연덕스럽게 웃는 드비안느에게 시몬이 명했다.

“놀리는 건 이제 그만두고 가서 제니에게 침구 좀 갈아 달라고 해. 지저분해졌으니.”

“네에, 알겠어요.”

“아, 그리고 하나 부탁할 게 있는데.”

“부탁이요? 와아. 도련님이 ‘부탁’이라는 단어를 쓰실 때도 있네요.”

“그렇게 비꼬진 말고. 약초를 좀 구해야 하는데, 도와줄 수 있나?”

“어디 편찮으세요?”

“전혀.”

드비안느는 특별한 부탁일 거라 생각했다. 웬만한 건 가문의 주치의에게 말하면 되니까.

로이드 가문은 약초학과 연금술에 조예가 깊은 가문이다.

‘비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드비안느의 도움이 필요하지.’

직접 구하는 것도 문제는 아니었지만, 마이너 마을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낼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맡겨 두려는 것이었다.

게다가 결정적인 이유가 따로 있다. 그녀가 ‘로이드’ 가문의 일원이라는 것.

시몬은 종이에 약초 리스트를 적어 드비안느에게 건넸다.

“약초 리스트는 기밀로 취급해야 한다. 너와 너희 아버지 외에는 누구도 보지 못하게 하도록.”

“음…… 우와. 확실히 쉽게 볼 수 없는 것들뿐이네요. 어떤 효과가 있는 약을 만들려고 하시는 건지 여쭤봐도 돼요?”

“알려 줄 거 같아?”

“별로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닌데, 막상 들으니 좀 상처네요.”

문득, 예전에 드비안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가문 사정은 준남작 가문이나 진배없다고 한 말이.

확실히 로이드 가문은 그리 넉넉하진 않았다.

드비안느의 아버지가 무리하게 연금술 실험을 하느라 가산을 거의 탕진했기 때문이다.

‘조금 도와줘도 괜찮겠지? 좋은 녀석이니까.’

시몬은 피식 웃었다.

“농담이고. 효능은 나중에 알려 주마. 로이드 가문에서 시간 내에 약초 확보에 성공한다면 말이지.”

“혹시 저희가 제조할 수 있게 해 주신다는 말씀일까요?”

“물론.”

오랜만에 드비안느가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가 들으시면 좋아하시겠는데요? 안 그래도 요즘 연구비 부족하다고 하셔서 걱정했었는데.”

“그렇다면 잘됐군. 나중에 같이 사업 좀 해 보자고.”

“사업이요?”

가주가 되지 못하면 금전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성공적인 낙향 생활에 있어서 금전은 필수다.

“성능 좋은 물약과 비약 조제법을 좀 알고 있거든. 그걸로 특허를 내서 좀 팔아 보자는 거지.”

“도련님, 검술 바보 아니었어요?”

“그 정도로 푹 빠진 바보는 아냐.”

“알겠어요. 일단, 이 약초부터 빨리 구해 볼게요.”

“침구부터 서둘러.”

“예예.”

드비안느가 나가자 바로 제니와 하녀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프로페셔널하게 침구를 바로 갈아 주었다.

“더 필요하신 거 없으실까요?”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신호가 왔다. 벌써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배가 고프군. 간단히 먹을 것 좀 가져와.”

“저, 외람된 말씀이지만 식당에서 식사를 하시는 것은 어떠실까요?”

제니가 정말 조심스럽게 청했다.

“또 하녀장이 뭐라고 했어?”

“아, 아녜요! 그런 게 아니고, 정말 도련님 건강이 걱정되어서 드린 말씀이에요.”

“걱정하지 마라.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여기서 먹겠다는 거니까.”

“알겠습니다. 공자님.”

시몬이 해야 할 일은 딱 하나였다.

‘아침부터 너무 부지런히 움직였어. 점심 먹고 한숨 자야지.’

시몬은 침대 안으로 쏙 들어갔다.

* * *

다음 날, 시몬은 마이너 마을로 갈 준비를 했다.

전날 밤을 지새울 정도로 기대되었다.

‘루아가 만든 빵을 맛보는 게 얼마나 오랜만인지.’

수십 년을 전쟁터에서 보냈다.

‘철혈의 영주’라는 칭호도 얻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슴이 녹을 정도로 설렘을 느꼈다.

‘이쪽으로 세 번째 분점을 내는 걸 한번 이야기해 봐야겠어. 매번 마이너 마을로 내려가서 볼 수는 없으니.’

시몬이 낙점한 낙향 장소는 마이너 마을.

하지만 당장 내려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와 한 내기가 있기 때문이다.

‘빨리 알퐁스 백작가를 털어야 돼. 그리고 조만간 황도로 가서 파혼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황실과의 관계가 아예 끊겨야 낙향이 성사된다. 그리고 가문도 잇지 않게 된다.

당연히 가문 전체에서 큰 반발이 있겠지만, 시몬은 자신이 있었다.

‘그때쯤이면 케나드가 북극성처럼 아주 찬란하게 빛나겠지.’

모든 일이 척척 진행되고 있었다.

시몬은 거울 앞에 섰다.

잘빠진 외모를 감상하던 와중에 제2기사단장 한스가 찾아왔다.

“공자님. 오늘 마이너 마을로 떠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여정에도 제가 호위를 맡겠습니다.”

“호위?”

심드렁하게 반응한 시몬은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대 아크튜러스 가문의 기사단장께서 나서실 정도로 위험한 길은 아닌 것 같은데. 접경에서도 병사들이 철수하고 있잖아?”

“하오나, 전처럼 도적 떼가 나타날 수도 있고…….”

“요즘 제2기사단 훈련이 좀 느슨한가 봐? 단장이 자리를 비울 생각을 다 하고. 비상벨을 안 눌러서 풀어진 건가?”

그러자 의외의 말이 한스에게서 흘러나왔다.

그는 진지했다.

“말이 나와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조만간 벨 한번 눌러 주시기를 청합니다. 도련님.”

“왜?”

“제1기사단에서 매번 우리 기사들을 조롱합니다. 느려 터진 거북이라고.”

“조롱이 아니라 사실이잖아.”

“…….”

“알았어. 조만간 명예 회복할 기회를 주지. 그전까지 잘 훈련하고 있으라고.”

“옙.”

그래도 본전은 찾은 한스가 방에서 나갔다. 때마침 라니에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준비 모두 끝났습니다.”

“듣자 하니 도시에서 나를 칭송하는 영지민들이 많아졌다고 하던데.”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도련님의 낙향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 같습니다만.”

“후후후.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군.”

“…….”

“왜 뭐냐고 안 물어봐?”

“어차피 안 알려 주실 것 같아서 말이죠.”

“너도 참 독종이다.”

질린 표정을 지은 시몬이 검을 허리춤에 걸었다. 그리고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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