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24화 (24/120)

24화: 빅 딜(big deal) (2)

“오크족의 이야기는 들으셨습니까?”

“들었다.”

그럼 이야기가 빠르다. 이 모든 일은 오크족의 준동으로 인해 엮인 일이니까.

“알데바란 남부에서 오크족이 침공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소식을 접했더군요. 우리도 군대를 보내서 막아야 합니다.”

“심각하더냐?”

“심각한 문제라기보단, 알데바란 놈들로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겁니다. 오크들이 우리 영지로 침범하기 전에 격퇴하는 게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으음. 확실히 타 지역에서 전쟁을 하는 게 훨씬 낫긴 하지.”

“케나드를 보내십시오. 분명 멋진 활약을 펼쳐 줄 겁니다.”

하지만 그 말만큼은 드뇌브 후작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의 눈초리가 쏘아졌다.

“응당 네가 나서야 하는 일인데 왜 동생을 사지로 몰려고 하느냐?”

“크게 되려면 경험이 필요합니다. 제가 볼 때 케나드는 경험을 쌓아야 더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녀석은 아직 살검 단계에 들어서지도 못했다. 이대로 오크와 맞서게 하는 건 너무 위험하지.”

과거에서도 있었던 일이었다. 그래서 오크족을 물리치는 건 시몬이 맡아서 했다.

그 일로 인해 후계 자리에 쐐기가 박히게 된다.

‘어떻게서든 그것만큼은 피해야지.’

시몬은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제가 케나드를 살검의 단계에 오르게끔 하겠습니다.”

“너도 아직 살검에 진입하지 못했는데 무슨 말을 하는 게냐?”

“아닙니다.”

“아니라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미 살검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다만 숨기고 있었을 뿐이죠.”

“허어…….”

아크튜러스 가문의 장남이 성취를 보였다는 건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후작은 뭔가 아들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그래서 제가 깨달은 것을 바탕으로 케나드를 훈련시키겠습니다.”

“하지만 시일이 오래 걸릴 터. 그사이에 오크 놈들이 침입한다면?”

“한 달이면 충분합니다.”

“뭐라?”

또다시 충격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수년간 각고의 노력을 펼쳐야 겨우 달성할 수 있는 살검의 경지를 고작 한 달 만에 해치울 수 있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감히 나를 능멸하려는 것이냐?”

“그렇다면 직접 보십시오.”

스릉!

시몬은 검을 꺼냈다. 그리고 다섯 개의 서클을 일제히 발산시켰다.

척.

이번에는 드뇌브 후작이 직접 검을 꺼내 들었다. 그러곤 한순간에 시몬에게 도약했다.

시몬은 살짝 놀랐다.

‘진짜 죽일 셈인가?’

드뇌브 후작은 소드 익스퍼트 경지에 오른 기사였다. 또한 아크튜러스 검식을 심검까지 마스터했다.

비록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그에 근접하는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평을 듣는 남자.

돌진 공격은 실로 흉포했다.

콰가가가!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군.’

시몬은 다섯 개의 서클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을 한 점에 모았다. 그리고 검을 휘둘렀다.

까앙!

맑은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후작의 눈이 부릅떠졌다. 힘으로 막힌 게 아니다. 정확한 초식으로 막아 낸 것이었다.

“이걸 막는다고?”

후작이 끌어올린 오러는 그리 강하지 않았다. 굳이 표현하면 3서클 정도의 위력.

그러나 그가 내지른 일격은 아크튜러스 검식의 살검 단계의 초식을 알지 못하면 방어해 내기 어려운 공격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몬은 그것을 해내고 말았다.

“후우…… 제가 후계자가 되지 않겠다고 해서 정말로 죽일 작정이십니까? 위험했습니다.”

“그 정도의 위험은 늘 도사리고 있는 법이지.”

후작은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네가 살검의 단계에 들어갔다는 건 사실이구나. 침대에 처박혀 세월만 보내고 있는 줄 알았더니 나름 열심히 훈련한 모양이군.”

“저도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지 않았습니까? 그 정도의 성취는 당연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어린 시절 더 훌륭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장남이 해 주는 칭찬이 썩 마음에 들었던 후작이었다.

“하지만 한 달 만에 케나드를 살검의 경지에 오르게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무슨 마법을 부리려고 하는 거냐?”

“미리 말씀드리면 재미없지요. 한 달 후에 직접 확인해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만약 실패한다면?”

“군말 없이 가문을 잇겠습니다.”

그것만큼 매력적인 조건은 또 없었다. 후작은 씨익 웃으며 흔쾌히 허락했다.

“좋다. 그 내기, 받아들이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군. 너였다면 성공했을 때의 조건을 걸었을 텐데, 오늘은 이만하는 게냐?”

“제 조건은 달리 없습니다. 케나드를 킬스톤으로 보내기만 한다면야.”

“시몬.”

나직이 울려 오는 목소리. 검을 한쪽으로 던져 놓은 후작이 다시금 권좌에 앉았다.

“네가 좋은 조건으로 협정을 이끌어 낸 것은 마땅히 칭찬받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또 다른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황녀님 일 말씀입니까?”

“그렇다. 나는 분명 그곳에서 증거를 찾아오라고 명했었다. 결과는?”

“아직 찾고 있습니다.”

후작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애초에 너는 뜬소문에 너무 집착했었지. 헛소문으로 치부하고 조용히 황녀님과 다시 잘해 보는 것은 어떠냐?”

“알데바란 가문에서도 알퐁스 가문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레스 가문을 아십니까?”

“알지. 그곳의 가주가 젊은 여인이라고 들었다. 이름이 진이라고 했던가.”

“그자를 포섭했습니다.”

“포섭이라면?”

“제 부하로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저에게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죠.”

세레스 가문은 알데바란 후작가를 모시는 전통 있는 가문이었다. 드뇌브 후작도 그 점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어안이 벙벙했다.

“그자를 어떻게 가신으로 만들었단 말이냐?”

“저를 중독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역으로 그자에게 독을 먹였지요. 마침 라니에리가 좋은 독을 가지고 있어서 말이죠.”

“뭐라? 이놈들이 감히!”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어쨌든 일은 잘 풀렸으니까요. 앞으로 그자를 잘 이용한다면 알데바란의 고급 정보를 취할 수 있을 겁니다.”

“으음.”

장남을 중독시키려고 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급 정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일단 알퐁스 백작가 배후에 어떤 놈들이 있는지 찾아볼 생각입니다. 세레스 가문도 협력하기로 했으니 정보가 모이는 대로 아버지께 보고드리겠습니다.”

“진짜 황녀님이 배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게냐?”

“예. 확실합니다.”

“그건 그것 나름대로 골치 아프겠군.”

시몬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골치 아프겠다는 말 자체가 후작도 황녀를 경계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일이 이렇게 잘 풀렸는데 당연히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겠지.’

한숨을 내쉰 후작이 엄중히 말했다.

“그 외에도 취해야 할 것들이 많을 게다. 알고 있겠지?”

“물론이죠. 영지 빼고 다 뺏어 먹을 생각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아버지. 잠시 일주일 정도 외출하려고 합니다. 허락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마음대로 하거라.”

“생각보다 쉽게 허락해 주시는군요.”

“허구한 날 침대에 처박혀 있는 것보다야 낫겠지.”

꾸벅 인사한 시몬은 즉시 방으로 돌아와 라니에리를 불렀다. 방으로 들어온 라니에리가 작은 쪽지를 건넸다.

“진 경에게 온 전갈입니다.”

“벌써?”

호기심이 들었다.

쪽지를 펼치니 딱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오가느라 고생 많았고 편히 쉬라는.

잘 보이기 위해 애를 쓰는 진이었다.

“유능한데? 내 동선 정도는 손바닥에 놓고 있다는 건가. 야, 네 자리 위험하겠어.”

“마음 같아서는 진 경과 자리를 바꾸고 싶습니다.”

“왜?”

“하루하루가 칼날 위를 걷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평화로운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위험한 일을 많이 하시고 계십니다.”

“걱정하지 마라. 무슨 일이든 잘될 거니까.”

시몬은 라니에리의 팔을 툭 쳤다. 호리호리했던 라니에리는 휘청했다.

“하, 운동 좀 해라. 진짜 비실비실하네.”

“공자님의 힘이 센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보셨습니까?”

“됐고. 마이너 마을로 갈 채비를 하도록. 상단에서 마차 하나 빌려 와. 그거 타고 가게.”

“알겠습니다.”

“곰 인형도 하나 준비해 놓고.”

“마음을 정하셨군요. 아가씨의 마음에 들도록 근사한 것으로 준비해 놓겠습니다.”

“그래.”

시몬은 다시 푹신한 침대로 들어갔다. 역시 집이 최고였다.

* * *

다음 날, 시몬은 늦잠을 자지 못했다.

“아 정말 어떤 자식이 이른 아침부터 사람 깨우고 난리야?”

“이른 아침이요? 웃기는 소리를 하시네요.”

“어?”

전담 하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하녀가 ‘웃기는 소리’라는 표현을 쓸 리가 없다. 시몬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자신을 흔들어 깨운 사람을 확인했다.

“드비안느?”

허리에 손을 올린 드비안느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휴, 진짜. 도련님? 제발 부탁인데 좀 일찍 일어나시면 안 될까요?”

“하암…… 네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 않냐?”

“일단 눈 떠요.”

“아 왜.”

“오늘도 늦잠을 잤다면 전담 하녀가 일자리를 잃었을 거라고요!”

아무래도 하녀장이 압박을 넣은 모양이다.

불규칙한 생활은 아크튜러스 가문에서 금기에 가까운 행동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시몬은 병상에서 일어난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었어?”

“얼마나 가여워요? 제니는 병든 부모님까지 모시고 산단 말이에요. 식사도 좀 식당 가서 드세요! 여기에서 드시지 말고! 침대는 잠자는 곳이라고요!”

“퇴직금 두둑이 챙겨 내보내면 되지. 한 5억 실링 정도.”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아, 진짜 짜증 나게 하네.”

참다못한 시몬이 이불을 확 걷고 일어났다.

“어머니의 시녀가 왜 여기까지 와서 난리를 치는지 모르겠네. 너는 하녀가 아니라 시녀 아니냐? 나 없는 사이 평민으로 강등됐어?”

“다 도련님이 잘되라고 드리는 말씀인 걸 모르시네요.”

“뻔뻔하긴. 가만 보면 넌 라니에리와 무척 닮았어. 잔소리의 구조와 패턴이 너무나 똑같아. 생긴 것도 똑같네.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

“……뭐라구요?”

“둘이 닮았다고.”

“그 말씀, 취소하세요.”

“왜.”

“빨리요.”

진짜 화가 난 것 같다. 벼락이 내리치기 직전 같은 느낌.

“……취소.”

“아주 잘하셨어요. 자, 멋진 도련님? 어서 씻고 아침 드세요. 또 눕거나 하면 진짜 명치 졸라 세게 때릴 거예요.”

“알았다.”

혀를 찬 시몬은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테이블에 놓여 있던 물을 한잔 마셨다. 그제야 전담 하녀 제니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도, 도련님. 죄송해요. 제가 드비안느 님께 괜찮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 있냐? 너 마법사야?”

“…….”

“근데 부모님이 아프다고?”

“아, 예.”

“어쩌냐. 아직 정정하실 나인데.”

시몬은 서랍에서 돈주머니를 꺼냈다. 얼마나 들었는지도 확인하지 않고 제니에게 주었다.

“내가 의학은 모르는데 돈은 많아. 이걸로 치료해 드리도록 해라.”

“도, 도련님! 이건 받을 수 없어요!”

“하녀가…… 말대꾸?”

하얗게 겁에 질린 제니가 돈주머니를 받았다. 굉장히 무거웠다.

“가, 감사합니다. 도련님.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감사하면 가서 케나드 좀 불러와라. 훈련 중이라 빼기 힘들 건데, 중요한 일이라고 전하면 바로 올 거야.”

“예!”

잠시 후, 흙투성이가 된 케나드가 찾아왔다. 땀으로 흠뻑 젖은 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