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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23화 (23/120)

23화: 빅 딜(big deal) (1)

타이온 후작은 주어진 일주일을 모두 사용했다. 그 와중에 시몬은 라니에리와 도시를 구경하거나 침대에 콕 틀어박히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이 데드라인 아니냐?”

“맞습니다. 그런데 바로 아크튜러스 가문으로 돌아갈 생각이십니까? 아니면 마이너 마을에서 계약을 체결하실 겁니까?”

“아무래도 가문으로 바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으려나?”

“시간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만.”

“부족하지 않게 하는 게 책사의 임무지.”

시몬의 요구는 부당한 게 아니었다. 가문을 잇지 않겠다는 것보단 훨씬 나은 일이었다.

라니에리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경유지를 두어 군데 줄이고 빠르게 달린다면 얼추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의외로군요. 마이너 마을로 먼저 가서 루아 아가씨를 뵐 줄 알았습니다만.”

“그렇게 발정 난 사람은 아니야.”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만.”

“빨리 좋은 소식을 전해 드려야 아버지도 기뻐하지 않으시겠어? 그 이후에 좀 쉬겠다고 해야 말이 먹히겠지.”

“역시, 생각해 놓으신 바가 있었군요.”

“장남 자리가 쉬운 게 아니야.”

그때 밖에서 노크가 들렸다. 나타난 사람은 진이었다.

“주군. 각하께서 뵙기를 청하셔요.”

“오. 드디어 결론이 나왔나. 가신들 분위기는 어때?”

“예상대로 파가 갈렸습니다. 기사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선택이 어렵겠는데.”

“그래도 결론은 나온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말씀해 주시지 않긴 했지만 말이죠.”

“기대되는군.”

그 길로 시몬은 타이온 후작을 찾았다. 진과 라니에리도 뒤따라 안으로 들어왔다.

잠시 못 본 사이에 타이온 후작은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

그만큼 고민이 많았다는 증거다.

“각하를 뵙습니다.”

“어서 오게. 내가 너무 시간을 많이 끈 것은 아니겠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만큼 쉽지 않은 안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답이 나오든, 저는 받아들일 생각이니 편히 말씀하십시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을 해 주니 마음이 편하군. 그렇다면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지. 남부 주둔권을 아크튜러스 가문에게 부여하겠네.”

시몬은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고개를 조아리며 정중히 예를 표했다.

“평화를 위한 각하의 결단은 제국에 모범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 말해 주니 고맙네.”

“아크튜러스의 병력이 통과할 수 있는 지역은 어디입니까?”

“킬스톤 지역이라네. 남부 중의 남부라고 할 수 있지.”

시몬은 지도를 떠올렸다. 남부에서도 아주 좁은 곳으로, 병력이 지나가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주둔해서 요새를 만드는 것까지는 어려운 지형이었다.

‘영악한 너구리 같으니. 그 와중에도 머리를 썼군.’

하긴, 그 이상으로 지역을 넓히는 것은 기사들이 결사반대했을 것이다.

“킬스톤이라면 마침 오크족의 지역과도 인접해 있는 곳이군요. 아주 좋습니다.”

“아크튜러스에서는 언제 병력을 파견할 수 있겠나?”

후작이 조심스레 물었다. 시몬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돌아가는 즉시 파병 명령을 내려 달라 요청드릴 것입니다.”

“그게 정말인가?”

후작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주둔권을 주고 나서 병력이 움직이지 않는 것 또한 위협적인 일이었다. 딴마음을 품고 있다고 해석될 수도 있으니까.

“어찌 각하 앞에서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제 이름을 걸고 약속드립니다.”

“허허, 아주 기쁜 일이군. 이렇게 된다면 오크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방어선을 짤 수 있겠어!”

“물론입니다. 저희 가문의 기사들도 영광스러운 알데바란 기사들과 함께할 수 있음을 기뻐할 것입니다.”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타이온 후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시몬의 두 어깨를 다독였다.

“정말 고맙네! 자네가 보여 준 배포와 지혜는 알데바란은 물론 전 대륙에 알리도록 하겠네!”

그러면 안 되는데.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좋은 분위기를 계속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영광입니다. 각하.”

“하하하하! 이렇게 일이 잘 풀렸으니 마땅히 연회를 열어야겠지? 오늘 저녁 연회를 준비하라고 일러 두겠네.”

“각하. 지금은 놀고 마실 때가 아닌 줄로 압니다. 오크족을 정벌하고 난 이후 더욱더 성대하게 연회를 여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곁에서 보던 라니에리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렇게 노련한 말을 할 줄이야.

“으음. 듣고 보니 그대의 말도 일리가 있다. 남부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데 성에서 연회를 열 수는 없겠지. 좋네! 그 제안 받아들이지.”

“현명하신 결정에 감사드립니다. 각하.”

“자네는 그럼 바로 떠날 생각인가?”

“예. 이 소식을 빠르게 본가에 전해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어서 조약을 체결하지.”

근사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서류가 두 장 준비되었다. 타이온 후작과 시몬은 옆쪽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 가문의 인장을 찍었다.

정해진 절차가 모두 끝나고 서류를 한 장씩 나눠 가진 시몬은 씨익 웃었다.

‘동생아. 조금만 기다려라. 형이 금방 소드 마스터로 만들어 줄 테니 말이다.’

떠나기 전 시몬은 은밀히 진을 불렀다.

진은 이제 완전히 시몬의 사람이 되었다. 누가 봐도 중독되었다는 것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일단 이거 받아라.”

“이게 무엇인가요?”

“해약.”

투명한 병에 담긴 두 개의 해약이 진의 손에 들어갔다. 진의 눈이 반짝였다.

“아직 보름이 지나지 않았습니다만.”

“일종의 포상이야. 네가 후작을 열심히 구워삶은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풀렸으니까.”

“노력을 알아주시니 기쁘네요.”

“앞으로도 열심히 하도록.”

“말씀드렸잖아요. 최대한 빨리 중독에서 벗어날 거라고. 기대하셔도 좋아요.”

“좋네. 그런 자신감.”

전생에서는 세레스 가문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었다.

무력이 강한 사람들은 짧고 굵게 힘들게 하지만,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가늘고 길게 힘들게 하는 법이니까.

세레스 가문은 후자였다. 진은 불의의 사고로 단명한 탓에 직접 만난 적은 없으나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다.

‘이제 나를 섬기게 되어 미래가 바뀌었을 테니 단명하지 않겠지?’

어떻게 사고를 당하게 되는지는 모른다.

‘죽으면 어쩔 수 없지만, 죽지 않고 나를 계속 따른다면 그게 더 좋은 일이지.’

이번 일을 통해 진의 가치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가까이 두기는 좀 그렇지만 적당히 이용하기는 아주 좋은 인재라고.

‘라니에리도 비슷한 생각을 하겠지.’

시몬이 말했다.

“나는 내일 바로 이곳을 떠날 거다. 매주 한 번씩은 나에게 소식을 전하도록.”

“알겠습니다. 주인님.”

“그리고 전에 말했던 뇌물 장부, 그거 천천히 작업 좀 해 놔. 언젠가 써먹을 날이 올 테니.”

“예.”

마지막으로 시몬은 알퐁스 백작가를 언급했다.

“놈들을 좀 더 정밀히 추적해. 황실에 어떤 사람들과 연관되었는지 최대한 빨리 파악해야 한다.”

“명을 받듭니다.”

“믿는다.”

믿는다는 그 짧은 한마디가 진의 가슴을 울렸다. 진은 고개를 숙였다.

* * *

그로부터 며칠 후, 시몬과 라니에리를 태운 마차가 아크튜러스 가문의 저택에 도착했다.

시몬이 온다는 소식을 먼저 접한 가신들과 기사들이 저택 앞에 모여 있었다. 협상 결과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게 없었다.

“시몬 도련님께서 과연 잘 해내셨을까?”

“협정을 하신다 들었는데 이상한 조약만 없었으면 좋겠네요.”

“전선에 있는 병사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대로 수세를 취하기만 하는 건 여러모로 손실이 큽니다.”

“하지만 싸우지 않아서 병력 피해가 없는 건 한편으로는 다행이지요.”

“공자님도 다 생각이 있으실 겁니다. 누구보다도 냉철한 분 아니십니까?”

기사들의 의견이 쏟아졌다.

그러나 제1기사단장 파월은 침묵을 지켰다. 결과를 보고 나서 대응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자님께서 오십니다!”

병사의 외침과 함께 저택의 문이 열렸다. 곧 아크튜러스 가문의 마차가 빠른 속도로 진입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시몬과 라니에리가 마차에서 내렸다.

시몬은 욱신거리는 엉덩이를 토닥였다.

“아, 젠장할. 엉덩이에 굳은살 박이겠는데. 승차감 좀 어떻게 안 되냐? 명색이 아크튜러스 가문의 전용 마차인데.”

“저는 기술자가 아닙니다. 그런 건 기술자에게 부탁하셔야지요.”

“좋은 머리 뒀다 뭐 하냐니까. 노력을 좀 하라고.”

“참고는 하겠습니다.”

“안 하겠다는 이야기네.”

“저희 가문에 추가 지출이 생겨서 말입니다. 봉급을 올려 주시면 고려해 보지요.”

라니에리는 아직도 해독약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문제없을 거라는 시몬의 말에 상처를 받은 것이다.

“뒤끝 상당하네. 그럼 여자들이 싫어할 텐데.”

“공자님은 여자가 아니니 괜찮습니다.”

“소름 돋는 소리 좀 그만해라.”

투닥거리던 두 사람은 입을 꾹 다물었다. 너무나도 많은 가신들이 자신 쪽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리고 저편으로, 뒷짐을 진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드뇌브 후작의 모습도 보였다. 옆에는 칼림도 함께였다.

“형님!”

“오라버니!”

케나드와 이올린이 제일 먼저 달려왔다. 시몬은 환하게 웃으며 둘을 안아 주었다.

“별일 없었냐?”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무사히 돌아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형님!”

“아무 일 없을 거라고 했잖아. 수련은?”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했습니다.”

“잘했다.”

시몬은 케나드와 이올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가슴을 폈다. 이제는 가신들과 기사들을 상대해야 할 때였다.

“다들 이렇게 마중 나와 주셔서 고맙군요. 일단 안으로 들어갑시다. 이곳은 이야기를 나누기 적당한 곳이 아닌 것 같으니까.”

가신들과 선임급 이상의 기사들이 드뇌브 후작의 집무실에 모였다. 양쪽으로 갈라선 가운데에 시몬이 섰다.

그리고 맞은편에 있는 권좌엔 아크튜러스의 주인인 드뇌브 후작이 앉아 있었다.

“먼 길 다녀오느라 수고 많았구나. 시몬. 그래, 성과는 좀 있었더냐?”

“알데바란 가문과 정식으로 평화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오오!”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설마 이렇게 쉽게 조약이 체결될 줄은 몰랐던 것.

하지만 드뇌브 후작의 깐깐한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설마 그걸 업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누가 갔더라도 평화 조약은 체결되었을 것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옵션을 하나 더 붙였습니다.”

“옵션이라면?”

“알데바란의 남부 지역, 정확히는 킬스톤 지역에 우리 군대를 주둔할 수 있는 주둔권을 확보했습니다.”

촤락!

시몬이 들고 있던 서류를 펼쳤다. 그곳엔 아크튜러스 가문 군대의 통행과 주둔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알데바란 가문의 인장과 함께.

“허허! 주둔권이라니! 엄청난 대가를 쟁취하셨군! 놈들의 땅에 아무런 피도 흘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과연 시몬 도련님! 계획이 있으셨군요!”

“믿고 있었습니다! 도련님!”

시몬은 그 환호가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

‘주목받는 건 좀 곤란한데.’

시몬은 서류를 드뇌브에게 건넸다. 그것을 직접 확인한 드뇌브는 더 이상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 없었다.

이건 대단한 업적이었다.

“믿을 수 없군…… 제국의 후작가에서 내릴 만한 결정은 아니었을 터. 우리 쪽에서는 무엇을 내주었더냐?”

“아무것도 내주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드뇌브 후작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또한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보다 각하. 독대를 청합니다. 매우 중요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만.”

“……모두 물러가라.”

이윽고 단둘이 남자, 시몬이 본론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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