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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18화 (18/120)

18화: 알데바란으로 (1)

“아크튜러스에서 사신이 온다고?”

타이온 후작은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전령은 다시금 허리를 굽혀 자신의 보고를 다시 읊었다.

“예. 주군! 방금 접경을 통과해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이런 시기에 사신이라니…… 아니, 그보다 아크튜러스에서 왜 사신을 보내는 것인가?”

타이온 후작은 평범한 남자였다.

검술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도력이 출중한 것도 아니었다. 지혜가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그저 모든 것이 평범한 인물이었다.

평화의 시대에 잘 어울리는 인물.

하지만 다른 가문도 아니고 아크튜러스 후작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지금, 최악의 영주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귀가 가벼운 탓이었다.

전쟁을 해야 한다는 아크튜러스 후작가와는 다르게, 알데바란 후작가는 의견이 딱 반으로 갈린 상황이었다.

이도 저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병력을 접경으로 보내고만 있으니 상황이 좋아질 리가 없었다.

“누가 온다더냐?”

“검문을 통과한 것은 시몬 아크튜러스와 라니에리 베텔게우스, 그리고 아크튜러스 제2기사단장 한스입니다.”

“시몬 아크튜러스? 시몬이라는 이름은 분명 장남이 아니더냐? 장남이 직접 여기까지 온다는 말이냐?”

“옛!”

“허어!”

일이 심각하게 돌아감을 느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문의 후계자가 오고 있다. 필시 중요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함일 터.

옆에 늘어서 있던 가신들도 저마다 웅성거리며 의견을 교환했다.

그 와중에 한 노인이 목청을 돋웠다.

“정말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설마 우리에게 항복을 권고하러 오는 것은 아니겠지요!”

“항복?”

“그게 무슨 말이오! 항복이라니?”

“감히 주군 앞에서 무슨 소리요!”

가신들이 기가 찬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객관적인 전력으로만 놓고 봤을 때 알데바란이 밀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싸워 보지도 못할 정도는 아니다.

몇몇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둔다면 전세를 역전시킬 정도는 되고도 남았다.

“그만. 그만하시오. 설령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나는 조금도 항복할 생각은 없으니까.”

타이온 후작이 선을 딱 그었다. 그러자 가신들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후작의 시선이 좌측을 향했다.

그곳엔 검은 망사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회의에 참여한 가신 중 유일한 여자였다.

그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진.”

“예. 주군.”

청아한 목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여인이 고개를 조아렸다.

“가만히 있지만 말고 이야기 좀 해 보게. 그대의 생각은 어떤가? 지금 이 시기에 아크튜러스 가문의 장남이 온다는 건 분명 의미심장한 일일 터.”

“의외로 별일 아닐 거예요.”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있나?”

그녀는 세레스 가문의 가주이자 알데바란 후작가를 대표하는 책략가였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알데바란 후작가는 사분오열되어 다른 가문에 흡수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똑똑하고 냉철한 사람이었다. 거기에 미인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아크튜러스의 장남을 이쪽으로 사절로 보내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죠. 제가 아는 드뇌브 후작은 그렇게 대담한 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신중한 편에 가깝지요.”

“그렇다는 것은…… 오히려 반대의 일일 수도 있다는 건가?”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화친을 제안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어요. 실제로 첩보에 의하면, 시몬 공자가 전쟁을 반대하고 있다고 하니까 말이죠.”

“흐음, 그렇다고 쉽게 물러날 드뇌브 후작이 아닌데…….”

“마음 편히 기다리시면 됩니다. 군대가 몰려오는 것도 아니고 사신이 오는 건데 뭐 그리 걱정이실까요? 용건을 직접 듣고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알겠네.”

진의 말에 그 누구도 대꾸하지 못했다. 그만큼 많은 정보와 논리로 무장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는데 진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수세에 몰린 것은 우리라는 점을 확실히 하고 싶군요.”

“그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기사단을 우습게 보는 거요?”

“접경의 상황만 따진다면 경들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나 오늘 남부에서 좋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지요.”

“그게 무엇이오?”

진은 타이온 후작을 슬쩍 바라보았다. 잠시 고민한 후작은 이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야기해도 좋다는 허락이었다.

“오크들이 남부에서 대규모 움직임을 일으킬 조짐을 보이고 있어요.”

“뭐, 뭐라!”

“오크들이?”

“만약이긴 하지만 그들이 부족을 규합하고 하나의 국가를 내세운다면…… 우리의 후방이 결코 안전하지 못하겠지요?”

오크는 대륙에 서식하는 대표적인 이종족 중 하나다.

생김새만 보고서 몬스터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실제로는 지능도 뛰어나고 사냥에 대한 감각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부족 생활을 할 정도로 공동체 의식 또한 존재한다.

그런 상황에서 부족을 규합하고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어 나갈 능력을 가진 영웅이 출현했다는 소식은 결코 반갑지 않은 이야기였다.

타이온 후작이 물었다.

“그 확률이 얼마나 되나?”

“지금으로선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주군.”

“으음.”

타이온 후작이 장고에 들어갔다. 그건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중요한 것은 사절을 극진히 예우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입장에서는 아크튜러스 후작가와 사이가 좋아지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수는 없는 것 아니겠소!”

“그걸 잘 조율하는 게 경들의 몫입니다. 너무 자존심만 내세우진 말라는 말씀입니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못하는 자리가 되겠지요.”

“크흠.”

다들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으나, 남부의 소란은 그 불만을 잠재우기엔 충분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 다 알고 있다.

전선이 두 개로 나뉘면 얼마나 위험해지는지를.

“진. 그대에게 사절 접대에 관한 모든 일을 맡기겠다. 영민하게 처리하도록.”

“걱정 마세요. 주군.”

진은 예를 취한 뒤 그곳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자신의 심복을 불렀다.

“이번에야말로 놈을 인질로 사로잡을 때다. 그 약을 준비하도록.”

“예. 주인님.”

믿을 수 없게도 잔혹한 미소가 진의 입가에 피어올랐다.

* * *

시몬과 라니에리를 태운 마차는 거침없이 달려 나갔다. 접경을 통과한 이후로 시몬은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접경에서 별다른 소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기사와 병사들은 오히려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호위기사 달랑 하나를 데리고 접경을 넘으려 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찬사가 쏟아지기도 했다.

아크튜러스 후작가의 후계자다운 배포가 있다고 말이다. 특히 기사들이 감명을 많이 받았다.

‘앞으론 조심해야겠어.’

남들에게 감명을 준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그것들이 모이고 쌓이면 정말 후계자 자리를 피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이번 사절 건도 피해야 하는 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드뇌브 후작의 지엄한 명령이 있기도 했고, 어차피 한 번은 움직여야 하기에 나온 것이었다.

겸사겸사 루아도 보고 말이다.

‘오히려 안 나왔으면 큰일 날 뻔했지.’

시몬은 계속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루아와의 첫 만남이 너무나도 완벽했기 때문에.

상단 투자 건이 좀 복잡하긴 하지만 그건 라니에리가 알아서 잘 처리해 줄 것이다.

‘장남이라는 게 그렇게 나쁘기만 한 건 아니라니까.’

시몬은 알데바란 기사들의 배려 덕에 빠르게 관문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진 들판을 달렸다.

들판에 피어난 꽃들을 보니 문득 루아의 모습이 생생히 떠올랐다.

“여자들은 뭘 좋아하지?”

“루아 양 말입니까?”

“빈손으로 돌아가긴 좀 뭐해서 말이야.”

루아는 들판에 핀 꽃을 좋아했다. 그 외에는 잘 모른다. 만난 시간 자체가 그리 길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욕심도 전혀 없었다. 만날 때 무엇이 갖고 싶다는 식의 이야기를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여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해 주는 것이 가장 좋겠지요. 선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바라본다면 필요한 물건이 나오겠지요.”

“이야. 한마디 한마디가 주옥같네 그냥. 받아 적어야 할 느낌인데.”

“어떤 것들이 보이십니까?”

“흐음…….”

선뜻 떠오르는 것은 제빵 도구들이다. 빵을 만들어 달라고 하기도 했고, 앞으로도 만들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건 집에 넘쳐나겠지. 가보처럼 전해지는 것도 있을지 모르고.’

생각이 길어지자 라니에리가 의외의 대답을 내놨다.

“곰 인형 어떻습니까?”

“언젠 여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라며?”

“아크튜러스 가문의 상징이 곰 아닙니까? 이번 투자 사업 성공을 기원하는 의미로 하나 선물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만.”

“동시에 여심까지 잡고?”

“앞으로 저택에 종종 올 일이 있다는 것을 함축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그럴듯하다는 생각에 시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물에 의미를 담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일단 후보군에 넣지.”

“결정하시면 바로 준비해 놓겠습니다.”

“그래.”

그때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 마차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라니에리가 창문을 열자 비둘기가 안으로 휙 들어왔다.

평소 전서구로 쓰던 비둘기였다.

“간식이냐?”

“설마요.”

라니에리는 비둘기 다리에 묶여 있는 통을 열고 안에 들어 있는 쪽지를 확인했다.

그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재미있는 일이 생겼군요.”

“뭔데?”

시몬은 눈을 감고 있는 채로 대꾸했다. 별 관심 없다는 듯이.

“공자님의 말씀이 맞았습니다. 남부 오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내가 뭐랬어. 이제 좀 의심이 없어졌냐? 내가 회귀했다는 거 말이다.”

“그것과 이것은 다른 일입니다. 우연의 일치에 가깝겠지요.”

라니에리는 품에서 모이를 꺼내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러자 비둘기가 부리를 쪼며 열심히 주워 먹었다.

비둘기가 다시 밖으로 날아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라니에리는 웃었다. 책사의 입장에서 너무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가 협상의 우위를 잡게 되었습니다. 평화 협정은 전혀 어렵지 않게 되겠군요.”

“아닐지도 모르지. 알데바란도 만만한 놈들이 아니야. 기회가 보이는 대로 요구 사항을 지껄일 거다.”

“어느 수준까지 받아 주실 겁니까? 그러고 보니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논의까지 필요해? 만찬 테이블에 어떤 술과 요리가 올라오는지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아.”

“과연 그렇군요.”

일견 무심한 말이라고 들릴 수도 있겠지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대응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접대 수준을 보겠다는 거니까.

“그럼 마음 좀 놓고 이번 여정을 즐기겠습니다.”

“뭔 소리야. 넌 일해야지? 그쪽에도 머리 좀 쓰는 애 있다며?”

“예. 저도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이번 기회에 만나게 되겠군요.”

“여자였지?”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꼬실 거냐?”

라니에리가 작게 헛기침하며 딴청을 피우자 시몬은 낄낄 웃었다.

역시 라니에리는 놀려야 제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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