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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15화 (15/120)

15화: 루아 (2)

한스가 이렇게 감정에 솔직한 사람인 줄은 몰랐다. 그는 알피나 마을로 가는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물론 시몬은 마차에 타고 있고, 한스는 말을 타고 호위 중이라 이야기할 기회도 별로 없었지만 신경이 쓰였다.

전생엔 이러지 않았었는데.

“한스 경 삐진 것 같지 않냐?”

“휴가를 줬다가 뺏는 사람이라면 저라도 실망할 것 같습니다만.”

분위기를 보니 라니에리도 삐진 것 같다. 시몬은 뭔가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 것 같아 한숨이 나왔다.

제일 큰일은 루아를 보지 못했다는 것.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고 달려갔었다. 그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충격이 컸다.

“그래도 돈은 안 뺏었잖아?”

“돈까지 뺏으면 도둑놈 아닙니까?”

“그런가.”

“빨리 가야 할 겁니다. 곧 해가 저물면 곤란하니까요. 다행히 알피나 마을은 가까우니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전서구로 연락을 받은 한스가 빨리 움직여 준 덕에 시몬과 라니에리는 알피나 마을을 향해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시몬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를 만나면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서로를 기억하는 건 나뿐이야. 전생의 일은 알지 못해. 섣불리 다가갔다간 의심만 사게 될 수도 있다.’

이번 일이야말로 서두르면 일을 그르친다고 생각했다.

‘첫인상이 중요하지.’

시몬은 일단 제2의 신분을 준비하기로 했다.

아크튜러스의 후계자라는 타이틀을 내세웠다가는 진실로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크튜러스 후작가는 이 근방에서 제국보다도 더한 위상을 갖고 있다.

그 가문의 후계자가 와서 청혼한다면, 싫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진정으로 루아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가문을 내세우면 안 돼.’

회귀를 했다고 해서 평민들의 마음을 더 잘 헤아릴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힘든 일이다.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숨기고, 적당할 때에 드러내는 게 좋겠군.’

확실한 플랜을 세운 시몬이 씨익 웃었다.

“라니에리.”

“예.”

“이제부터 내 이름은 사이먼이다. 소속은 아크튜러스 상단 제3지부 서기관 보좌역. 실제로는 없는 직책이니 조사해도 다른 사람 이름은 안 나올 거고.”

“디테일하군요.”

그래도 별 잔소리는 하지 않았다. 시몬이 진심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오히려 평민 여자와 사랑에 빠진 것 같아 걱정이 들긴 했지만.

“아가씨의 거처는 알고 계십니까?”

“지점을 낼 준비를 하고 있으니 그쪽을 찾아보면 되지 않을까? 중개업자라든지.”

“음, 날이 저물고 있으니 숙소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더 쉽지. 한스에게 당직을 서라고 해야겠군. 대충 외모 알려 주고 밖으로 나오면 깨우라고 하면 되잖아.”

“한스 경이 왜 삐진 건지 알 것 같습니다.”

한참 후, 해가 저물 무렵 시몬은 알피나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에 들어서기 전 마차를 숨기고 일행과 함께 움직였다.

만약 그대로 마차가 마을에 진입했더라면 촌장 이하의 모든 마을 사람들이 나와 엎드려 절이라도 했을 것이다.

“이곳은 어떤 곳이냐?”

“마이너 마을보다는 훨씬 큰 마을입니다. 인구수 1만 남짓, 상업도 제법 발달해 있어서 유입이 많은 곳이죠. 분점을 만들려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잘만 하면 돈을 쓸어 담겠군.”

“그래 봐야 도련님의 하루 용돈도 되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저 멀리 상업 지구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사고팔고 있었다.

“한스.”

“예.”

“아직도 삐졌냐?”

“예? 설마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정말로 진심으로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솔직하지 못하네.”

“…….”

“이 일만 잘 끝나면 하루 정도는 실컷 놀게 해 줄 테니까 협조 좀 해라.”

“도련님의 명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분부만 내려 주십시오!”

“사람을 하나 찾을 거야. 검은색 긴 머리에 동글동글한 눈동자가 아주 매력적인 여인이지. 나이는 17세. 좀 더 어려 보이지만 그쯤이라 생각해라. 라니에리. 너도 들었지? 잘 찾아라.”

“알겠습니다.”

세 사람이 조금 떨어진 채로 움직였다. 그 길로 상업 지구를 한 바퀴 싹 훑었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허탕인가.”

“저는 한스 경과 중개인을 만나고 오겠습니다. 오는 길에 상인에게 물어봤는데, 크게 사업을 하는 사람이 있다더군요.”

“그럼 난 숙소로 가마. 방 잡아 놓을 테니까 그쪽으로 와.”

“예.”

다시 세 사람이 흩어졌다.

시몬은 묵기로 약속한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큰 건물이었는데, 1층은 술집 겸 식당으로 사용하고 2층, 3층은 숙박 시설로 사용하는 건물이었다.

“얘기 들었나? 이번에 황녀님이 오셨는데 말이지. 오자마자 영지를 떠나셨다고 하더군.”

“그게 정말이야?”

“내가 거짓말을 할 사람처럼 보이나?”

들어가기가 무섭게 황녀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시몬은 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청력을 돋웠다.

“아무래도 시몬 도련님의 건강이 나빠진 게 분명해. 그러지 않고서야 황녀께서 그렇게 일찍 떠나시겠나?”

“허허…… 이거 큰일이로군. 용맹하신 분이었는데 말이지.”

“그러게 말이야. 가뜩이나 알데바란 놈들이 접경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 상황인데. 이러다 부고라도 들리면 큰일일세.”

“쾌유를 빌어 드리자고.”

가슴이 웅장해진다.

시몬이 지나가던 종업원을 불렀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저쪽 테이블에 계신 선생님들께 고기와 술 좀 가져다주게. 비용은 내 이름으로 달아 놓고. 여기에서 숙박할 거다. 이름은 사이먼.”

“네. 손님. 고기 요리라면 어떤 걸로 준비할까요?”

“여기에서 제일 비싼 걸로. 술도 마찬가지.”

“감사합니다!”

고기와 술이 준비될 거라는 소식이 들리자,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던 네 명의 남자들이 휘파람을 불며 술잔을 시몬 쪽으로 들었다.

후드로 얼굴을 가린 시몬은 슬쩍 엄지를 들어 주고 방값을 지불했다.

일단 여관을 나섰다. 그리고 그 앞에서 일행이 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한스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모습이 시야에 잡혔다.

“찾았습니다!”

“어디에 있어?”

“중개사무소에 있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시몬은 한스의 뒤를 따랐다.

* * *

“어허, 그걸로는 안 된다니까.”

중년의 남자가 난색을 표했다. 테이블 위엔 알피나 마을의 상업 지구 전도가 펼쳐 있었다.

“아가씨가 고른 곳은 아주 비싼 곳이야. 목도 좋고 건물도 널찍하고. 고작 5백만 실링으로 어떻게 비벼 볼 수 있는 데가 아니라고.”

“월세로도 어려울까요?”

“당연하지! 여기 월세가 100만 실링인데, 고작 500만으로 얼마나 버티려고 그러는 거야? 게다가 보증금은 따로라고. 1억은 줘야지.”

“1억…….”

루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1억이라는 큰돈은 어디서 빌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무리해서 분점을 낼 계획은 없었다. 적당한 곳에 가게를 낼 수만 있다면 딱이었는데.

사실 분점을 내는 것을 반대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소원이기도 해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나선 것이다.

“흠흠.”

루아를 힐끔힐끔 보던 중개사가 입맛을 슬쩍 다셨다. 그의 눈이 루아의 가슴과 허벅지를 오가더니 반짝 빛났다.

“그보다 다른 곳을 좀 알아보는 건 어떤가?”

“볼만한 데가 또 있을까요?”

“조금 떨어져 있는 곳이긴 한데, 빵집 하나 내는 건 그리 나쁘진 않을 거야. 가서 한번 볼 텐가?”

“음, 일단 시간이 좀 늦었으니 내일 삼촌하고 다시 와도 괜찮을까요?”

“뭐가 늦었다고 그래? 아저씨가 잘 지켜 줄 테니 같이 가 보자고.”

루아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지켜 준다는 말에 닭살이 돋은 것.

본능이 소리쳤다.

빨리 피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아니에요.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어허. 그러지 말고……!”

거친 손이 루아의 팔을 잡았다. 깜짝 놀란 그녀가 벌떡 일어났다.

“무, 무슨 짓이세요!”

“이 아가씨가 세상 물정 모르는구만? 그냥 가면 재미 없지. 좋은 가게 알아봐 준다니까 그러네?”

“괜찮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루아의 팔을 억지로 잡아끌고 나가려던 중개인이 움직임을 딱 멈췄다.

사무실 밖 유리창으로 어떤 남자가 빤히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남자는 가던 길을 멈추고 문 앞에 섰다.

‘젠장. 봤나?’

커튼이 좀 덜 처져 있었다. 입을 씰룩인 중개인이 손을 털고 문을 열었다.

“이보쇼. 가게에 볼일 있소? 있으면 내일 오시오. 급한 일이 있으니까.”

“아가씨 데리고 어딜 갈 생각이었나? 이 늦은 시간에 말이야.”

“뭐, 뭐야?”

“강제로 끌고 가려던 것 같은데?”

시몬은 로브의 한쪽을 걷었다. 그러자 ‘환영의 검’이 슬쩍 드러났다. 동시에 중개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고급스러운 검이었다. 일개 모험가가 가지고 다닐 수 없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기, 기사……? 아, 아무것도 아니오. 가격 때문에 잠시 오해가 생겨서.”

“이자의 말이 맞습니까, 아가씨?”

시몬은 처음으로 루아에게 말을 걸었다.

운명적인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루아는 깜짝 놀라 가슴에 두 손을 얹었다.

순간 시몬이 과감히 후드를 벗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분이야.’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마이너 마을의 빵집에서 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만 들었다.

루아는 한참이나 시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어서.

“아가씨.”

“아? 네…… 그분 말씀이 맞아요. 제가 알아본 가게가 좀 비싸서 다른 곳을 보러 가자고 하셔서 그랬던 거예요.”

“솔직히 말씀해 주셔도 괜찮습니다. 이자의 표정이 수상하던데요.”

“괜찮아요.”

역시 천성이 착한 사람이다.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시몬은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를 모두 들었다. 오러를 이용하면 간단한 일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목을 잘라 버리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어차피 오늘만 날인 건 아니니.

“그럼 이만 가 볼게요. 수고하세요.”

루아가 꾸벅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시몬은 그녀가 편히 나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었고, 문이 닫히자 루아가 생긋 웃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마음씨가 따뜻하신 분이네요.”

“우연히 지나가다가 난처하신 것 같아서 끼어들었습니다. 실례였다면 사과하지요.”

“천만에요. 그런데 우리…… 어디선가 만난 적 있지 않았어요?”

전생에서 연인이었습니다.

그 한마디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첫 만남에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는 건 곤란했다.

“마이너 빵집의 따님 아니십니까?”

“아, 맞아요.”

“그곳에서 종종 사 먹곤 했습니다. 그때 만난 것 같습니다만.”

“아! 그러셨구나. 그런데 종종 오셨으면 제가 얼굴을 확실히 기억할 텐데, 뭔가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서요…….”

“평소에는 후드를 쓰고 다닙니다.”

시몬이 후드를 다시 쓰자 머리카락이 가려졌다. 루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몰라뵀던 거네요.”

“그런데 혼자 오신 겁니까? 위험할 텐데요.”

“아뇨. 숙부님과 같이 왔는데 지금 잠시 다른 곳 보러 가셨어요.”

“분점 말씀이군요.”

“예.”

루아는 이제 슬슬 가야겠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할 말도 떨어지고 말이다. 하지만 시몬은 이대로 그녀를 보낼 수 없었다.

“마침 잘됐군요. 그것에 대해 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만.”

“어떤 말씀인데요?”

“투자를 하고 싶습니다.”

이제 승부수를 띄울 때였다.

시몬은 품에서 아크튜러스 상단의 표식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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