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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12화 (12/120)

12화: 오히려 좋아 (2)

충격적인 한마디에 실내가 고요해졌다.

한참 후 먼저 말문을 연 것은 시몬도, 케나드도 아니었다. 이중 유일하게 충격을 받지 않은 라니에리였다.

“알데바란이라. 무슨 일로 말입니까? 경도 아시다시피 그곳은 적진입니다. 위험할 텐데요.”

“그들이 무고하다는 것을 입증해 오라는 명령입니다.”

“그렇군요. 옳으신 말씀입니다. 입증의 책임은 주장하는 쪽에 있으니까요. 간 김에 평화 조약이라도 체결하면 좋겠군요. 과연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라니에리가 안경을 슥 밀어 올렸다. 그러면서 넌지시 시몬을 바라보는 대담함을 보였다.

총명한 눈이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자기가 옳았다고.

그런데 의외로 시몬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건 분명 무언가 계획이 세워졌을 때 짓는 표정이었다.

“또 무슨 꿍꿍이십니까?”

“꿍꿍이라니. 서운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사자를 잡으려면 사자 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 몰라? 아버지의 명령은 지극히 당연한 거다.”

“뭔가 또 일을 꾸미시려는 것 같아서 말이죠.”

“아니라니까?”

피식 웃은 시몬은 한스 단장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힘내라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스 경! 임무를 꼭 완수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아버지께 전해 드리도록 해. 기운 내고!”

“공자님.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내 실력 봤잖아?”

확실히 시몬의 검술은 뛰어났다. 앞길을 막는 자들을 쓸어버리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백, 수천 명을 당해 낼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오러 유저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무한정 사용할 수는 없는 거니까.

“내일 당장 출발할 테니 여비나 좀 두둑이 챙겨 달라고 해. 호위 책임은 누구지?”

“접니다.”

“오! 잘됐네. 한스 경이라면 믿음직하지. 다른 호위는 필요 없으니 우리 셋이서 가자고.”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형님.”

“아니, 케나드 너 말고.”

“예?”

케나드는 당연히 자신도 가야 하는 줄 알았다. 연단에 올라 기사들 앞에서 멋지게 연설한 장본인이었으니까.

하지만 시몬은 혼자 고생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곧 그의 손가락이 움직이더니 라니에리를 가리켰다.

“라니에리. 너로 정했다.”

“……왜 접니까?”

“명색이 외교 사절로 가는 건데 책사가 옆에 있어야 하지 않겠어? 놈들이 무슨 책략을 들고나올지 모르는데 말이지. 여기서 꿀만 빨 생각이었나?”

“명을 받들겠습니다.”

“억울해?”

“전혀요.”

“흠흠, 그럼 전 각하께 보고드리고 오겠습니다.”

한스 경이 나가자 케나드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형님.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형님만 보내기엔 너무 위험합니다!”

“아니다.”

“형님!”

“원래 위험한 일은 장남이 해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차남이 본가를 지킨다. 그것이 명예로운 아크튜러스 가문의 전통이지.”

라니에리는 아무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 연민이 들었다. 고의적으로 가주 자리를 넘기려는 속내를 아직도 모르다니.

“혹시라도 일이 틀어지면 가문을 잘 부탁한다.”

“그런 불길한 말씀은 마십시오. 꼭 무사히 돌아오셔야 합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야. 내가 없는 동안 이올린이랑 잘 놀아 주고.”

“예.”

“다들 이만 돌아가 봐! 오늘 너무 많이 움직였더니 피곤하군.”

시몬은 손을 휘휘 저으며 침대로 들어가 버렸다. 내일 당장 먼 길을 떠날 생각을 하니 조금이라도 침대에 오래 눕고 싶었다.

케나드가 먼저 자리를 뜨고, 라니에리는 직접 방 안의 불을 껐다.

망나니 도련님이 또다시 비상벨을 울리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고맙다. 라니에리.”

“별말씀을.”

홀로 남은 시몬은 알데바란까지의 여정을 상상해 보았다.

쉽지 않은 길이다.

‘하지만 마냥 싫은 것도 아닌 것이.’

바로 알데바란의 수도로 바로 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기왕 나가는 거 한 바퀴 빙 돌고 가면 더 좋겠지? 영지민들 민심도 파악하고 말이야. 특히 시골. 산 좋고 물 좋고 빵 맛 좋은 곳의 민심은 어떨까?’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이불을 가슴께로 끌어 올렸다.

벌써 그의 마음은 마이너 마을로 향해 있었다.

* * *

다음 날, 시몬은 떠날 채비를 끝냈다는 보고를 듣고서야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검소한 복장을 하고 나타난 라니에리가 커튼을 걷었다.

“밖에 가신들과 기사들이 잔뜩 모여 있습니다. 공자님을 환송한다고 말이죠.”

“하암…… 으음, 뭐 대단한 데 간다고 다들 모였대?”

“가신 중 일부는 이번 사절단 파견에 반대한 모양입니다. 물론 가주님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지만 말입니다.”

시몬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충신 중의 충신이로군. 이름 잘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케나드에게 전해 줘. 흐암, 좀 더 잤으면 좋겠는데.”

“서두르십시오. 마이너 마을까지는 아주 먼 길입니다.”

“알고 있었어?”

“솔직히 바로 알진 못했지만, 뭐 공자님 생각이야 뻔한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하!”

유쾌하게 웃은 시몬은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런데 갑옷이 아닌 근사한 의복을 입기 시작했다.

“그보다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황녀께서 미행을 붙일 거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아직일걸?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미행을 붙이는데 아무나 보낼 것 같아? 황도에 가서 사람을 골라야겠지. 그리고 걱정 마. 다 계획이 있으니까.”

시몬을 가만히 지켜보던 라니에리가 한 소리 했다.

“공자님. 갑옷을 입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거추장스러워. 싸우러 가는 것도 아닌데.”

“접경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곳은 무법 지대나 다름이 없습니다.”

“한스 경이 알아서 해 줄 거야. 아크튜러스의 기사단장을 무시하지 말라고.”

“안 됩니다.”

라니에리가 한쪽에 놓여 있던 경갑을 들었다. 이것을 입지 않으면 나가지 못한다는 결연한 눈빛으로 시몬을 노려보았다.

“입으십시오.”

“괜찮다니까.”

“입으십시오.”

“야.”

“입지 않으시면 따라가지 않을 겁니다.”

“하아.”

하지만 시몬은 조금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네가 무예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이러는 모양인데, 난 갑옷 같은 거 필요 없다고. 갑옷이 뭐에 쓰는 줄 알기나 해?”

“공격으로부터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입는 겁니다. 급소를 방어해 주는 물건이기도 하지요.”

“애초에 안 맞으면 돼. 갑옷은 싸움에 자신이 없는 놈들이나 입는 거다.”

“기사들이 들으면 눈이 뒤집히겠군요.”

“나랑 걔들이랑 같냐?”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라니에리다. 먼 길을 떠나는 것은 그렇다 쳐도, 갑작스러운 공격이나 돌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대응하기가 힘들다.

‘아무래도 창고를 터는 게 좋겠군.’

기가 막힌 방법을 떠올린 시몬이 옷깃을 정돈하곤 거울 앞에 섰다.

“잘생겼군.”

“…….”

시몬은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충분히 감상하고 라니에리에게 눈길을 돌렸다.

“오히려 방어구가 필요한 건 너야. 근육 하나 없이 빼빼 말라 가지곤 싸움이나 하겠냐? 한 대 얻어맞으면 쓰러질 것같이 생긴 녀석이. 잠시 기다리고 있어라.”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창고에.”

시몬이 말한 것은 보물 창고였다. 하지만 똑똑한 라니에리마저 그것이 가문의 보물을 모아 둔 곳을 의미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창고에 들어가려면 우선 아버지께 허락을 받아야지. 그냥 들어갔다간 정말 가문을 잇게 될지도 모른다.’

보물 창고는 약칭으로, 아크튜러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아티팩트를 모아 둔 곳이다. 가주들이 심혈을 기울여 모아 둔 온갖 진귀한 물건들이 가득한 곳이다.

마법이 깃든 물건, 아티팩트.

그것을 이야기할 땐 대륙의 역사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검과 마법의 시대가 저물고 기사들의 시대가 찾아온 지금.

먼 옛날, 기사와 마법사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곤 했으나 이제 마법사는 기사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마나 운용법보다 오러 운용법이 더욱 발전했기 때문이다.

또한 오래전 발생한 ‘마나의 황혼’ 현상으로 수많은 마법사들이 목숨을 잃은 탓도 컸다. 실전된 마법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마법사들은 은둔하거나 정체를 숨기고 다녔다.

나쁜 마음을 품는 자에게 붙잡히게 되면 평생 노예처럼 부려 먹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법은 소수의 은둔자 혹은 이종족의 전유물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장비에 마법을 부여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게 되었다.

따라서 마법이 부여된 아티팩트는 매우 고가에 거래되거나 심지어는 돈으로도 사기 어려운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너무 귀한 건 말고 적당한 거 하나만 달라고 해야겠군.’

시몬이 문 앞에 서자 시종이 문을 열어 주었다.

드뇌브 후작은 홀로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이제 출발하는 게냐?”

“아직 아닙니다.”

드뇌브 후작은 나이가 들었음을 깨달았다. 냉정해야 하는데 표정이 약해져만 갔다.

“사절단을 꾸리라고 했는데 한스 경만 데리고 간다고 하더구나.”

위험하지 않겠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애초에 명령을 내린 것은 자신이었으니까.

“괜찮습니다. 너무 많으면 걸리적거릴 뿐입니다.”

“아무리 실력이 출중해도 방심하면 패하는 법이다. 목숨은 하나라는 것을 잊지 말도록. 아, 너는 죽어서 회귀했으니 상관없겠다만.”

여전히 아버지는 회귀 이야기를 농담거리로 삼았다. 시몬은 피식 웃었다.

“그렇죠. 이번에도 죽으면 또 회귀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

후작은 괜히 농담을 꺼냈다 손해 본 기분을 맛봤다.

“청할 것이 있습니다. 보물 창고에서 아티팩트 하나만 가져가고 싶습니다만.”

“마치 맡겨 둔 것처럼 쉽게 이야기하는구나.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하는 소리냐?”

“라니에리가 걱정됩니다. 쓰고 돌려드릴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으음.”

시몬이 라니에리를 끔찍이 아낀다는 것은 후작도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장남이 가문을 이었을 때 받쳐 줄 사람은 라니에리밖에 없었다.

“좋다. 열어 주지. 기왕에 빌려 가는 거라면 네가 쓸 만한 것도 하나 가져가거라. 목숨이 걸린 일이니.”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드뇌브 후작은 보물 창고의 문을 열 수 있는 마법 열쇠를 시몬에게 건넸다.

“그럼 저는 물건을 챙겨 바로 떠나겠습니다. 생각보다 시일이 걸릴 것 같습니다. 나간 김에 영지를 좀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웬일이더냐? 식사도 침대에서 하던 녀석이.”

“장남이 해야 할 일이니까요.”

적당히 비위를 맞춰 주자 후작은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집무실에서 나온 시몬은 바로 보물 창고의 문을 열었다.

‘언제 봐도 대단한 곳이란 말이지.’

가문을 잇고 나서는 이곳에 있는 모든 물건을 살펴볼 기회가 많았다. 놓아 둔 위치를 쉽게 바꾸지 않기 때문에 물건은 거의 그대로 있었다.

시몬은 기억을 더듬어 상자에서 새끼손가락만 한 브로치를 꺼냈다.

‘백룡의 브로치.’

백룡의 비늘로 만들었다고 알려진 매우 근사한 브로치였다.

‘딱 한 번 치명적인 공격을 막아 주는 마법이 깃들어 있지.’

아주 강력한 공격을 막을 수는 없지만, 라니에리가 위기를 피할 정도로 사용하기엔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지 않아서 좋다.

그것을 품에 넣은 시몬은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았다.

온갖 무기와 방어구, 그리고 액세서리들이 사방에 놓여 있었다.

‘내가 쓸 만한 건 뭐가 있을까.’

시몬은 문득 방에 있던 자신의 검이 매우 낡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지금은 검술에 비해 내 오러 수준이 낮으니, 그쪽으로 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녀석을 가지고 가 볼까?’

시몬의 걸음이 거침없이 움직였고, 곧 얌전히 놓인 검 앞에서 멈췄다.

검은색 검집에 잠들어 있는 장검.

생김새는 평범했다.

하지만 시몬은 그 속에 담긴 진가를 알아보았다. 심지어는 이름까지도.

‘환영의 검. 이것만큼 오러를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주는 검은 없지.’

전생에서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검이었다. 가주가 되고 나서는 오러가 부족할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회귀한 지금 사용하기 좋은 검이었다.

‘오러 서클을 더 만들 때까지만 써 보자. 어차피 언제 돌려드린다는 말씀은 안 드렸으니까.’

씨익 웃은 시몬은 검을 허리춤에 착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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