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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10화 (10/120)

10화: 후계 양보 작전 (3)

“반드시 죄를 물어야 할 놈들입니다.”

“죄를 물어야 한다라. 왜 그렇게 생각하지?”

“형님께 독살을 시도한 놈들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접경에서 소란을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놈들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아무래도 오해의 골이 깊은 것 같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시몬이 천천히 말을 풀었다.

“동생아.”

“예.”

“그들이 나를 노리는 것은 소문일 뿐이다. 사실이 아니야.”

“형님…….”

“그리고 소란을 벌이는 일도 그렇다. 얼굴도 모르는 산적 놈들이 알데바란 가문의 휘장을 입고 설치는 거면 어떻게 할 거냐?”

“그럴 리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테니까 말입니다.”

아무래도 알데바란 후작가에 대한 적개심이 상당한 것 같다.

이러면 안 되는데.

“형님을 독살하려 했다는 것이 소문일 뿐이라고 해도, 우리 가문의 주적은 알데바란입니다. 놈들을 언젠간 응징해야 합니다. 마침 좋은 기회가 왔고요.”

“일단 진정하고 들어 봐. 일단 나는 알데바란 후작가를 칠 생각이 조금도 없다.”

“형님!”

아무리 시몬을 잘 따르는 동생이라고 해도, 이 순간만큼은 언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진정하고 들으라니까? 나는 아버지를 설득해 전쟁을 피할 생각이다. 내 뜻에 따라 줄 수 있느냐?”

“그건…….”

“내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준다고 방금 말하지 않았어?”

“형님…….”

결국 케나드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형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수하 기사들이 따라 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저보다 그들의 분노가 더 심합니다. 그건 형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건 걱정할 거 없다. 어차피 기사들은 명령에 따라야 하는 존재들이니.”

“생각해 두신 바가 있으십니까?”

시몬은 빙긋 웃었다.

“네가 좀 도와줘야겠구나.”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진짜지? 말만 하면 되는 거지?”

“……예.”

시몬의 묘한 표정을 목격한 케나드는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했던 다른 종류의 긴장감을 맛봐야 했다.

“그럼 따라와.”

“예? 아, 옙.”

케나드는 검을 갈무리하고 얌전히 시몬의 뒤를 따라갔다.

* * *

동생이 정말 후계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건 비교적 최근 일이었다.

시몬이 가문을 잇고 난 후, 케나드는 춥기로 소문난 북부 지방으로 쫓겨나다시피 했다.

당시 북부 이민족들의 침공으로 제국이 소란스러웠다는 전제가 있긴 했지만, 후계에서 밀린 핏줄을 멀리 보내는 자연스러운 절차이기도 했다.

북부의 이민족들은 정말 말 그대로 미쳐 날뛰었다.

제국에 큰 피해를 줄 정도로 말이다.

매일 격전이 이어졌고, 사상자는 셀 수도 없이 많이 나왔다.

그러면서도, 케나드는 매달 시몬에게 소식을 전해 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고 북부에서 동생의 마지막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러니까 동생의 수명이 다했을 때. 시몬은 동생이 정말 가문을 이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물 젖은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존경하는 형님께. 형님과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죽어 영혼이 되어서라도 형님과 가문을 수호하겠습니다…….

그 편지를 읽고 후회가 밀려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회귀한 지금까지 가슴이 절절해질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까.’

어느 순간 시몬은 동생의 어깨를 두른 팔에 힘을 꽉 주고 있었다.

그리고 동생은, 한껏 겁을 먹은 표정으로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동생아.”

“예.”

“그땐 미안했다.”

“……예?”

갑작스러운 말에 케나드가 화들짝 놀랐다. 그의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갔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 실수를 한 걸까.

“그냥 그렇게 생각해 줘. 설명하기 복잡한 일이 있었거든.”

“예…….”

“앞으로는 사이좋게 지내자고.”

그제야 케나드는 형님의 진심을 느끼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친해지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니.’

하긴, 지난 십 년 이상 쌓여 온 관계라는 게 있으니 쉽게 돌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아직까지는 형제라기보다는 주종 관계에 가까웠다.

하지만 시몬은 낙관했다.

‘시간문제일 뿐이지.’

달라지기로 한 이상 거칠 것은 없다.

잠시 후 두 형제가 도착한 것은 기사단 본부였다. 멀리서 알아본 기사들이 군례를 취했다.

들어가기 전에 잠시 걸음을 멈춘 시몬은 꼭 해야 할 말을 전했다.

라니에리에게 했던 말과 같은 것이었다.

“결국 우리가 알데바란 놈들과 싸우게 된다면 이익을 얻는 쪽은 우리가 아니라 알퐁스 백작가일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알퐁스 백작가는 우리와 알데바란 영지 바로 위에 위치해 있으니 군수 물자를 팔아 이득을 취하기에 적당할 겁니다.”

“그리고 알퐁스는 메르세데스 황녀의 외가이기도 하지.”

“형님.”

케나드도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 황녀가 예정에도 없이 빨리 돌아갔다는 사실을.

안 좋은 일이 있지 않고서야 그렇게 빨리 돌아갈 일은 없다.

그날엔 연회도 예정되어 있었으니까.

즉, 이미 케나드는 물론 가신들 모두가 시몬과 황녀 사이의 불협화음이 있다는 것을 인지한 상태.

그 상황에서 알퐁스 백작가가 언급되었다는 것은 가벼이 넘길 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저는 오로지 형님의 말씀만 따르겠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십시오.”

케나드는 현명했다.

이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게 아니라 실행하겠다고 말한 것.

고개를 끄덕인 시몬이 말했다.

“네가 기사들에게 연설을 좀 해 줘야 할 것 같구나.”

“연설 말씀입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전쟁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

“왜 그걸 제가…….”

“너도 나름 군단 부사령관이잖아. 그리고 내가 부탁한 건 다 들어준다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그건 형님께서 하시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제 말엔 수긍하지 않을 겁니다. 가장 좋은 건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이겠지만요.”

“내가 이 전쟁을 반대한다는 것은 기사들도 다 알고 있다. 이젠 네가 힘을 실어 주라는 이야기다.”

“형님.”

“그냥 좀 해 주면 안 되냐?”

“……알겠습니다.”

들어가기 전, 시몬은 어떤 식으로 연설을 해야 하는지 포인트를 짚어 주었다. 케나드는 단 한 글자라도 놓칠까 싶어 최대한 집중했다.

다행히 케나드는 머리가 나쁘지 않았다. 시몬에 가려져서 그렇지, 머리도 총명한 사람이었다.

“다 이해했습니다. 형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좋아. 가자.”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네요.”

“못해도 괜찮아!”

두 형제가 나란히 기사단 본부로 입장했다. 시몬이 근엄히 명했다.

“군단 사령관으로서 명한다. 모든 기사들을 소집해라. 지금 당장.”

“옛!”

뎅! 뎅! 뎅!

본부 꼭대기에 위치한 거대한 종이 울리며 모든 기사들에게 소집령을 알렸다.

* * *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군.”

연무장 한쪽에 걸터앉은 기사가 투덜거렸다. 그의 곁에는 다섯 명이나 되는 기사들이 더 있었다.

이곳은 제2기사단이 주로 사용하는 연무장.

오후 훈련을 마친 기사들은 잠시 무기를 내려놓고 잔뜩 흘린 땀을 식히고 있었다.

쉬는 시간만 되면 기사들은 알데바란 후작가와 황녀에 대해 잡담을 늘어놓곤 했다.

그중 대다수의 주제는 알데바란 후작가의 도발이었다.

황녀에 대한 것은 아무래도 말하기 조심스러운 면이 있으니까.

“시몬 공자님께서는 왜 알데바란 놈들을 두둔하시는 거지? 놈들이 국경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정녕 모르시는 건가?”

“이봐. 언성을 낮추게. 여기가 자네 안방인 줄 아는가?”

보다 못한 제2기사단장 한스가 꾸짖었다. 하지만 중년 기사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단장님. 조용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잖습니까?”

“아직 열병의 후유증이 남았다는 이야기가 있잖나. 천천히 시간을 갖고 기다려야지. 작은 상처도 아무는 데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그래도 해야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알데바란을 치는 건 가주님의 뜻이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단장 한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나로 뭉쳐도 어려운 판에 의견이 둘로 나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얼마 전 봤던 첫째 도련님의 검술은 정말 비범했었지. 후유증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단 일 합에 목에 상처를 입고 제압당했다.

동시에 불경한 생각도 들었다.

‘만약 내가 주군과 겨룬다고 해도…… 똑같은 결과가 나왔을까?’

그건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드뇌브 후작은 아크튜러스 검식을 대성한 사람이다. 하지만 자신의 눈으로 본 시몬의 검술은, 그 검식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었다.

‘누구보다도 실력을 갈고닦으시는 분이다. 그런 분이 말씀하신 거라면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법.’

기사들 사이에서는 강한 게 전부다. 시몬은 그 강함의 조건을 모두 충족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한스는 시몬의 사상에 조금씩 감화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뎅! 뎅! 뎅!

본부 쪽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소집령이다. 어서 가자!”

“예!”

저택 내외부에 있던 기사들이 하나둘 모였다.

‘아주 빠릿빠릿하군.’

시몬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연단에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반면, 옆에 있는 동생은 다소 긴장한 표정이다.

전쟁을 피해야 한다고 말하면 과연 기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들 중에는 과격파도 다수 존재한다.

항명까지는 아니더라도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서둘러 인원 파악하고 보고하라!”

“옛! 1기사단 1분대 집합 완료!”

“1기사단 2분대 집합 완료!”

“1기사단 3분대 집합 완료!”

“1기사단 4분대 작전 인원 제외 모두 집합 완료!”

“2기사단 1분대 집합 완료!”

“2기사단…….”

그 이후로도 보고가 계속 이어졌다.

아크튜러스 후작가에 서임된 기사들의 수만 해도 오백 명이 넘는다. 하지만 아크튜러스의 기사들은 정예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 주었다.

1기사단장 파월과 2기사단 한스가 시몬에게 보고했다.

“모두 모였습니다, 단장님.”

“좋아.”

이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거대한 연병장에 기사들이 질서정연하게 대오를 갖추고 정렬한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 그림을 묘한 표정을 보는 한 사내가 있었으니.

“대체 무슨 일이냐?”

집무실에서 서류를 검토하던 드뇌브 후작도 종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서기관이 다가와 조용히 고했다.

“시몬 공자님께서 기사단을 소집한 모양입니다.”

“시몬이? 왜?”

“케나드 공자와 같이 있는 것을 보니 중요한 발표를 하려는 것 같군요.”

“도대체 가문에 소란이 끊이질 않는군.”

처음 시몬이 열병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맬 때 후작은 오로지 건강만이라도 되찾기를 바랐다. 그 외에는 바라는 게 없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건강을 회복한 시몬이 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자 조금씩 불안감이 싹트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냥 다른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반대로 가고 있었으니까.

“알데바란 가문과 관련된 일이 아닐까요?”

“알데바란?”

“그 외에는 공자께서 연단에 오를 일이 없어 보여서 말입니다. 공자께서는 전쟁을 원치 않으신다고 들었습니다만. 그 의지를 표현하려는 것이겠지요.”

서기관 칼림은 예전부터 지혜로운 자로 칭송이 자자했다. 그는 서기관으로서 아크튜러스 가문의 대소사를 처리하고 있었다.

또한 아크튜러스의 가주인 드뇌브와는 어려서부터 우정을 나누었고, 책사로서 절묘한 조언을 아끼지 않은 인물이기도 했다.

과연 그의 눈은 정확했다.

하지만 현자 칼림의 눈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음?”

한 발자국 앞서 나선 건 시몬이 아니라 케나드였다.

보이지 않는 사각에서 시몬이 동생의 등을 툭 밀었던 것.

“잘 부탁한다. 동생아.”

‘후계 양보 작전’의 서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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