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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7화 (7/120)

7화: 메르세데스 황녀 (2)

‘당연한 일이지. 나와서는 안 되는 이름일 테니까.’

시몬은 확신했다. 메르세데스 황녀가 일로스테 남작과 불경스러운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타임라인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사실 엘 루나, 그리고 일로스테 남작에 대해서는 나중에 알게 된 일이다. 그때는 이미 부인이 된 후였고,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 흘리고 넘어가야 했다.

그때 치솟는 분노를 참느라 얼마나 가슴앓이를 해야 했는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새롭게 살아갈 기회를 얻었으니까.

물론 왕실이나 귀족 여인들의 마음에 봄바람이 드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결투가 벌어지기도 하고, 억울한 누군가는 크게 다치거나 죽어 갔다.

왕국 최고의 미모를 자랑하는 메르세데스 황녀가 시몬 외의 애인을 두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모닥불로 뛰어드는 부나방들은 늘 있는 법.

리겔 제국의 황궁에는 정말 많은 밀실이 존재한다.

그곳에서 사랑을 나눈들 아는 사람은 없겠지.

안다고 해도,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목이 달아날 것이다.

‘권력에 욕망이 더해지면 이렇게 추잡해지는 법이지.’

당연하게도 남자관계가 지저분한 것을 제외한다고 해도 그녀와 다시 혼인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만 말이다.

메르세데스 황녀는 원래의 표정을 되찾았다. 그러곤 애걸하듯 시몬을 올려다본다.

“오, 내 사랑. 뻔한 모함이라는 걸 정말 모르겠어요? 나를 질시하는 누군가가 낸 헛소문일 거예요. 내 아름다움을 질투하는 사람은 셀 수 없이 많답니다. 날 믿지 못하는 건가요?”

“믿고 말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이름까지 나왔다는 것 자체가 문제겠지요.”

평소 행실에 관한 이야기로 번져 갔다. 그러자 황녀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일로스테 남작을 찾아가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입니다.”

“대체, 도대체 누가 그런 소리를 한 건가요?”

내가 말해 줄 것 같나?

딱 그 표정으로 시몬은 메르세데스 황녀를 내려다보았다.

“죄송하지만 저는 황녀님이 생각하시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소문을 흘린 자를 잡아다 처형해야겠군요. 황실을 모독한 죄로.”

“가장 먼저 심문해야 할 사람은 일로스테 남작이 되겠지요.”

황녀의 눈이 꿈틀거렸다.

내연남을 잡아다 목을 베라는 말이 고깝게 들릴 수밖에 없었지.

하지만 학습 효과가 있었는지, 황녀는 여전히 억울함을 연기했다.

“그는 황실에 충성하는 모범적인 귀족이에요. 저와는 그 어떤 사이도 아니랍니다. 말을 섞어 본 건 연회장에서 몇 번뿐이에요.”

말이 왜 필요하겠어.

눈만 마주치면 몸을 섞는 게 먼저였겠지.

“어쨌든 소문의 근원은 찾지 못하실 겁니다.”

“어째서죠?”

시몬은 씁쓸히 웃을 뿐이다.

소문을 흘린 사람은 없다. 미래 지식을 이용한 추궁이었으니까. 굳이 처형해야 한다면 목이 매달릴 사람은 시몬이겠지.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군요. 이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황녀님께서 이곳에 오시기 전까지 말입니다.”

“오해는 풀어야지요. 잘하셨어요. 내 사랑.”

시몬은 다시금 황녀의 손을 떨쳐 냈다.

“저는 오히려 황녀께서 솔직하게 말씀해 주실 줄 알았습니다……. 용서를 구한다면 저는 깨끗이 잊고 황녀님의 마음을 받아들였겠죠.”

“나는, 정말 나는 결백해요! 난잡한 사교 모임이라니…… 그런 건 듣지도 못 했다구요?”

“마지막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모든 것을 인정하신다면, 저는 그 모든 것을 잊겠습니다.”

당연히 인정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부부로서 겪었던 오랜 세월을 통해 얻은 이치라고 할까. 메르세데스는 그런 여자였다.

“사실이 아닙니다. 아니라구요!”

“끝까지 변명하시는군요.”

한숨을 내쉰 시몬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시몬은 한 손으로 나가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황녀님께서는 아크튜러스 가문과 어울리지 않으십니다.”

“세상에! 결혼을 물리자는 말씀이에요?”

“그건 황녀님께서 판단하실 문제겠지요. 이 소문을 끌어안고도 혼인하고 싶으시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황녀의 눈에서 다시금 불꽃이 튀었다.

이제는 자존심의 문제로 번져 갔다.

그 순간, 싸움의 판도가 변했다. 시몬에게서 메르세데스에게로.

“뭔가 단단히 착각하는군요. 내가 단순히 그대가 걱정되어 내려온 줄 알아요?”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황제 폐하께서 명하셨어요. 아크튜러스 가문과의 혼인을 좀 더 확실하게 하고 오라고.”

“이제 상황이 좀 달라진 것 같습니다만.”

시몬은 직접 황제에게 고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살짝 비추었다.

하지만 메르세데스 황녀는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해 주는 말이에요. 다시 말할 테니 잘 들으세요. 황제 폐하의 명령입니다. 그대와 나의 결혼은 제국의 법과도 다를 바 없다는 말이죠.”

“상식과 보편성을 잃은 법은 악법일 뿐입니다. 하물며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에서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더니 더 영민해진 것 같은 느낌인데요?”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다음에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한번 두고 보죠.”

메르세데스 황녀가 문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시몬은 그녀의 뒤통수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먼 길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황녀님. 멀리 나가진 않겠습니다.”

잠시 멈춰 선 황녀는 돌아설 듯하다가 계속 걸음을 옮겼다.

‘이걸로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건가.’

일단 시간은 벌었다.

그렇다고 시몬은 여유를 부리지 않았다. 적어도 황녀와의 문제는 빠르고 깔끔하게 처리해야 했다.

* * *

복도에서 가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드뇌브 후작이 깜짝 놀랐다. 저편에서 메르세데스 황녀가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녀님?”

놀란 것은 후작만이 아니었다.

가신들을 비롯한 아크튜러스의 모든 구성원들의 표정이 굳어 갔다.

오랜만에 만난 연인이었다.

회포를 풀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터인데 들어간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 나오니 이상할 수밖에.

게다가 연회장에서는 성대한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걸어오는 메르세데스는 마치 이곳에서 볼일을 끝낸 사람처럼 보였다.

“황녀님. 어찌하여 이리 금방 나오십니까?”

“그이의 건강이 염려되어서요. 생각보다 후유증이 심각한 것 같네요…….”

슬픈 표정을 지은 메르세데스가 귀한 옷의 소매로 눈가를 슥 닦았다.

눈물이 나온 것도 아니었는데도 사람들은 그녀가 보석보다 귀한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착각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우리의 좋았던 기억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 것 같아요. 그이의 무심한 듯한 한마디 한마디는 마치 비수처럼 날아와 제 가슴에 꽂혔죠.”

“아아…….”

드뇌브 후작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메르세데스 황녀와 혼인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장남이었다. 일을 그르쳤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래도, 그이의 눈빛은 여전히 따뜻하더군요.”

황녀는 조금의 여지를 주었다.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내려온 것 같았다. 드뇌브 후작이 한숨 돌렸다.

“불충한 아들놈이 황녀님께 어떤 폐를 끼쳤는지 가늠할 수조차 없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아뇨. 아녜요. 아마도 완쾌되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요. 이해해요. 육신이 허약해지면 정신도 나약해지는 법이니…… 황제 폐하께 청을 드려 솜씨 좋은 의사를 보내겠어요. 귀공께서는 사절을 맞을 준비를 해 주세요.”

“영광입니다. 황녀님.”

“드뇌브 경. 우리를 맞이하느라 신경 많이 썼겠지만, 이만 돌아가야겠어요. 이곳에 계속 있다가는 눈물이 마르지 않을 것 같군요.”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 아무도 황녀를 붙잡을 수 없었다.

메르세데스 황녀가 밖으로 나왔다. 드뇌브 후작을 비롯한 아크튜러스의 일원들도 모두 전송을 나섰다.

마차에 오르기 전 드뇌브 후작이 조심히 물었다.

“황녀님. 이렇게 떠나가시면 언제 또 방문하실 예정이십니까?”

“잘 모르겠어요. 아직은.”

“심려 크시겠습니다. 다음에는 시몬에게 직접 황도로 찾아가 황녀님을 기쁘게 하라고 엄명을 내려놓겠습니다.”

“그래요.”

“모쪼록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접경까지 저희 기사들이 호위하겠습니다.”

“마음만 받지요. 그이를 잘 부탁해요.”

메르세데스가 마차에 올랐다. 그 안에는 검은 갑옷을 입은 호위기사가 앉아 있었다.

제너릭.

황실근위대 소속으로 메르세데스 황녀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남자.

그의 실력은 소드 익스퍼트급에 다다랐다고 알려져 있다.

진짜 실력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실전에서 만난 사람은 모조리 그의 검은 칼에 죽임을 당했으니까.

곧 문이 닫히고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아, 일이 귀찮게 됐어.”

“생각보다 일찍 나오셨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공자가 알고 있더군. 엘 루나에 대해.”

그러자 호위기사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이내 차가운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재미있군요. 그걸 아는 자는 제국에서도 아주 극소수입니다만…….”

“더 놀라운 게 뭔 줄 알아? 일로스테 경의 일까지도 알고 있었어. 황궁의 누군가가 정보를 누설하는 게 분명해.”

그럼에도 메르세데스는 눈앞의 호위기사를 의심하진 않았다. 마치 그자는 완전한 예외라는 듯이.

실제로도 그랬다.

제너릭은 황녀의 그림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바로 색출해 내겠습니다. 그리고 참혹한 종말을 선사해 주지요.”

“당연히 그래야지.”

“달리 하명하실 일이 또 있으십니까?”

제너릭은 늘 이런 식이었다. 가려운 곳이 있으면 바로 긁어 주었다.

그리고 메르세데스 황녀는 그 충심에 보답했다.

“시몬 놈을 조사해. 무슨 꿍꿍이로 나와의 혼인을 깨려는 것인지. 엘 루나는 핑곗거리인 것 같은 느낌이었어. 뒤에 뭔가가 있다.”

“설마 황녀님의 계획을 눈치챈 것입니까?”

“그럴 일은 없는데.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 아크튜러스 가문에서 유일하게 알데바란 후작가를 의심하지 않는 인물이 하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설마.”

“그래, 시몬 바로 그놈이지.”

제너릭의 두 눈이 깊어졌다.

제3의 세력을 은밀히 지원해 아크튜러스, 알데바란 두 가문의 힘을 약화시키려 하는 치밀한 계획에 균열이 가고 있는 것 같아서.

“아, 그리고 누구였더라, 시몬을 쫓아다니는 남자가 하나 더 있었는데…….”

“베텔게우스 가문의 라니에리.”

“맞아. 그놈도 조사해. 놈은 시몬의 오른팔이니 뭔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거야.”

“여차하면 목숨을 거두는 것은 어떠십니까? 후환은 남기지 않는 편이 좋지요.”

“그건 천천히 해도 돼. 어차피 놈들은 내 손바닥 위에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너무 서두르지는 마. 황궁으로 돌아가서 이번 일에 적합한 사람을 신중히 뽑아 보도록.”

“예.”

황녀의 입가에 표독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이제는 결혼이 문제가 아니었다. 시몬에게 받은 망신을 어떻게 돌려줄지에 대해 고민할 때였다.

무엇보다도 시몬의 냉랭한 태도는 황녀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지금까지 그녀는 갖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넌 곧 내 앞에 무릎을 꿇을 거다. 시몬. 너뿐만 아니라 그 잘난 아크튜러스 가문까지 말이다.’

욕망으로 가득 찬 메르세데스의 눈빛이 저택에 닿았다.

하지만 황녀는 알지 못했다.

자신을 비롯한 모두가 시몬의 손바닥 위에서 아등바등하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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