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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3화 (3/120)

3화: 전생의 인연들 (1)

식당은 아주 넓고 화려했다. 마치 연회장을 방불케 하는 샹들리에와 장식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뿐이 아니라 식사 시중을 드는 집사와 하녀들의 수도 열 명이 넘었다. 정작 식사를 하러 앉은 사람은 시몬을 포함해 네 명뿐이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조금도 놀라울 것은 없었다.

전생에서도 이곳에서 늘 식사를 하곤 했으니 말이다.

‘아버지도 이때는 정정하셨구나.’

드뇌브 후작도 천수를 누리다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반가운 마음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주변을 둘러본 시몬이 물었다.

“어머니께서는요?”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오찬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시몬에겐 어머니가 두 명이었다.

친모인 헤라와 계모인 미온.

미온이 없는 것은 이해했으나 친모인 헤라가 자리하지 않았다는 것은 다소 의외였다.

“너와 단둘이 할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다.”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 한마디에 케나드와 이올린은 꾸벅 인사를 하고 식당을 나갔다.

시몬은 그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다.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하나둘 나오며 식탁이 채워졌다.

“오랜만입니다. 아버지.”

의아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으나 후작은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는 손을 물리쳐 사용인들을 모두 물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우우웅!

강력한 오러가 펼쳐지며, 주변에 방음을 위한 배리어를 형성시켰다.

“의사가 이야기한 것과는 달리 아직 병이 완전히 낫지 않은 모양이구나. 말은 들었다. 네가 과거로 회귀했다고?”

“라니에리 녀석이 그새 일러바친 겁니까?”

“다른 건 몰라도 네 건강에 관련한 일은 나에게 보고해야 옳겠지. 라니에리는 입이 무거운 녀석이지. 내가 들어야 할 이야기도 교묘하게 숨길 때가 많았다……. 그런데도 나에게 말했다는 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 아니겠느냐?”

그제야 시몬은 독대가 성사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주가 되지 않겠다는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았더라도, 회귀를 했다는 말을 들은 이상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을 거다.

정신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나름대로 가문의 큰일이 될 테니까.

“예. 맞습니다. 저는 과거로 회귀했습니다. 많은 일이 있었죠. 제국군의 선봉에 서서 대륙 통일에 앞장섰고, 우리 가문을 공작가로 승작시켰습니다. 또한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 아크튜러스 검식을 한층 더 강하게 만들었죠.”

드뇌브 후작은 이마를 짚었다.

그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이야기들뿐이었다.

“시몬.”

“예. 아버지.”

“과거로 회귀한다. 그것이 있을 수 없는 일임은 네가 더 잘 알지 않느냐? 너는 똑똑한 아이니까.”

“적어도 경험하기 전까진 그랬지요. 고대의 대마법사가 부리는 금단의 마법이 아닌 이상, 그런 일은 불가능하니까 말입니다.”

“으음.”

드뇌브 후작의 표정이 더욱 깊어졌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상 아들이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정말 회귀했다고 믿고 있는 거군.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긴 꿈을 꾼 모양이구나. 하긴, 인생은 일장춘몽이라는 말도 있긴 하지.”

“제가 절절하게 경험한 것을 꿈이라 치부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마음, 이해한다.”

강직하기로 소문난 드뇌브 후작은 처음으로 약한 모습을 보였다. 끄응, 하는 신음까지 들릴 정도로.

“아무래도 주치의를 바꿔야겠군. 열병의 후유증이 남은 게 분명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멀쩡하니까요. 이렇게 아버지와 같이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시몬은 큼지막한 고기를 썰어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었다. 드뇌브 후작이 피식 웃었다.

“아무튼, 네가 과거로 회귀했다느니 두 번째 인생을 살게 됐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어차피 아버지께만 말씀드릴 생각이었으니까요.”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가문을 잇지 않겠습니다.”

너무나도 평온하게 나온 한마디였다. 드뇌브 후작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라?”

“가문을 잇지 않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보다는 케나드가 잘 해낼 겁니다. 녀석은 검술에도 진심이니까. 우리 가문이 추구하는 바와 잘 어울릴 겁니다.”

“너……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예. 똑같은 짓을 두 번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시몬은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냅킨으로 입술을 슥슥 닦았다.

“이번 생은 조용히 살다 가고 싶습니다. 시골로 내려가서 농사를 짓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라니에리 녀석은 따라와 주겠다고 하더군요. 녀석은 모르는 게 없으니 물어보면서 하면 되겠지요.”

“허허!”

아들의 후유증이 걱정되어 불렀는데, 더 심각한 이야기가 나오고 말았다.

드뇌브 후작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지금 눈앞에 있는 장남은 허투루 이야기하고 있지 않았다. 진심이었다.

“가문을 잇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하는 말이냐? 그것도 장남이? 너에게 딸린 가신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고 하는 말이더냐?”

“문제 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력이 있는 사람이 가문을 잇는 건 당연한 것 아닙니까?”

“케나드가 너보다 출중하다는 말이냐?”

“곧 그리될 겁니다.”

당연히 그렇게 될 일은 없다. 하지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힘이야 숨기면 그만이니까.

“이상한 일이군…….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그리고 아버지. 제가 쓰러진 건 알데바란 후작가의 음모가 아닙니다. 또한, 그들은 전쟁을 획책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오해를 풀어야 합니다.”

“증거가 있느냐?”

“증거는 없습니다. 제가 경험한 미래를 토대로 말씀드린 겁니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증거를 가져와라. 그럼 네 말을 믿어 주지.”

“전쟁엔 승자가 없는 법입니다. 이기더라도 피해가 막심할 겁니다.”

드뇌브 후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용맹하고 냉철한 자랑스러운 장남의 모습은 사라지고, 여우 같은 아들의 모습만 남았기 때문에.

“듣기 거북하구나. 이만 물러가거라! 음식을 도통 넘기지 못하겠군.”

“죄송합니다. 아버지.”

“아 참.”

일어나려던 시몬이 멈췄다. 한숨을 내쉰 후작은 엄중히 경고하듯 말했다.

“황실에서 사절이 찾아왔다. 조만간 황녀께서 오신다는 전갈이다.”

“황녀요?”

“왜 모르는 척을 하는 게냐? 네가 경험했다는 그 잘난 미래에는 황녀님이 없었던 모양이지?”

후작은 비웃듯 말했다.

시몬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얼얼한 느낌이 들었다. 잠시 잊고 있었다. 떠올리지 않고 싶은 이름 한마디가.

“메르세데스 황녀?”

“그래. 네가 회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문병을 온다고 하는구나. 정중히 맞이하도록 해라. 가문의 큰일임을 명심하고.”

“…….”

“그리고 가문을 잇지 않겠다는 말, 그 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다. 농사는 아무나 짓는 줄 아느냐?”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대신 시몬은 이마에서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

식은땀.

빠르게 식당에서 나오며 생각을 정리했다.

‘가장 피해야 할 사람이 오는군.’

메르세데스 리겔.

리겔 제국의 황녀이자 미래의 정실이 되는 여인.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지만 날카로운 비수를 가슴에 숨겼던 철혈의 여인.

전생에서는 무늬만 부부로만 남았었다. 강한 집착과 질투는 한때 가문을 어지럽힐 정도로 극심했다.

그뿐이 아니라 정치적인 욕망도 커서 여러 차례 아크튜러스 가문을 궁지로 몰아넣은 장본인이기도 했다.

‘이번 생엔 반드시 피한다.’

그렇게 다짐한 시몬이 방으로 돌아왔다. 마침 라니에리가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비상이다.”

“기사단을 부를까요?”

“그렇게 느려 터진 놈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

“각하께 심하게 꾸중을 들으신 모양이군요.”

“황녀께서 오신다고 하는군.”

라니에리는 덤덤한 표정으로 시몬을 바라볼 뿐이다.

“비상이라는 단어를 쓰실 정도로 좋으신 모양이군요. 하긴, 두 분은 사이가 매우 좋으셨죠.”

“그 반대라고 이 자식아!”

“무엇이 말입니까?”

“그 여자는 악마야!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고! 결혼은 더더욱 안 돼!”

“크흠.”

헛기침을 한 라니에리는 들끓는 속도 모르고 근엄하게 지적했다.

“진지하게 충고드립니다만, 그건 황실에 대한 모독입니다. 어디 가서 그러시면 안 됩니다. 공자님.”

“지금 장난하는 게 아니라니까!”

“일단 진정하십시오.”

라니에리는 우아하게 박수를 두 번 쳤다. 그러자 밖에 있던 하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공자님께 드릴 약을 준비하도록. 상태가 안 좋아지신 것 같구나.”

“뭐? 무슨 약?”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되는 약입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특별히 준비해 주셨지요.”

“하아…….”

시몬은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곧 약이 준비되자, 라니에리가 그것을 쟁반에 받쳐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드십시오. 마음이 좀 편안해질 것입니다.”

“지금 약이 넘어가게 생겼냐?”

“준비한 사람의 정성을 생각하라는 충고를 드리고 싶군요.”

치우라고 하려다 시몬은 억지로 약을 삼켰다. 그러곤 다시 누웠다.

“아, 젠장. 어째 일이 잘 풀린다 싶더라니…….”

“황녀님과 맺어지는 것은 오히려 공자님께서 원하시던 일 아닙니까? 그래야 권력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입니다.”

“며칠 전까지는 그랬겠지.”

황실과 인척 관계를 맺는 것은 모든 귀족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아크튜러스 가문은 제국 성립에 공을 세운 가문이기도 했고, 세력도 막강해 혼담을 나누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과거에 있었던 일을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도 황녀를 피해야 할 결정적인 이유가 따로 있지.’

아직도 이름이 잊히지 않는 사람.

들판에 핀 꽃처럼 수수하면서도 아름다웠던 여인이었다. 눈빛에서까지 아름다운 향기가 느껴지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루아.’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신분의 격차를 이기지 못하고 헤어져야 했던 비운의 연인.

그것은 시몬이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중 하나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폭탄 발언으로 좀 앞당겨지긴 했지만.

“머리를 써 봐. 어떻게 방법이 없나?”

“회귀하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럼 미래 지식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십시오.”

“그렇게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려도 되는 거야? 명색이 후계자의 책사라는 사람이?”

“진심으로 드린 말씀입니다만.”

시몬이 빤히 노려보자 헛기침을 한 라니에리가 조용히 다른 말을 꺼냈다.

“피하는 건 아크튜러스 가문의 방식이 아닙니다. 당당히 만나십시오. 그리고 공자님의 솔직한 마음을 전하시면 되는 겁니다.”

“면전에 대고 파혼하자는 말이라도 하라는 거야?”

“그 외의 좋은 방법이 있으십니까?”

정론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시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상대하면 된다. 오히려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겠지.’

미래를 알고 있는 이상, 메르세데스 황녀가 쓰고 있는 두꺼운 가면을 벗겨낼 수 있을 것이다.

시몬은 다소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차분해짐을 느꼈다.

“그보다 공자님.”

“왜?”

“회귀했다고 주장하셔서 드리는 질문인데, 저는 미래에 어떤 여인과 혼인하게 됩니까?”

“결혼엔 관심 없다며?”

“미래엔 관심이 있습니다.”

“회귀했다는 걸 믿지도 않는 놈이 잘도 물어보는군.”

라니에리는 태연히 웃었다. 그 웃음을 이길 수 없어, 시몬이 말했다.

“너는 평생 혼자 살다가 외롭게 죽는다.”

“그건 저주 아닙니까?”

“모시는 사람을 골탕 먹이는 네 업보라고 생각해라.”

“변하셨습니다. 제가 모시던 아크튜러스의 장자께서는 뒤끝이 없는 정갈한 분이셨는데.”

“그 또한 네 업보겠지.”

“영광이군요.”

라니에리의 미소를 보고 있자니 왠지 진 것 같은 분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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