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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2화 (2/120)

2화: 일단, 삐뚤어진다 (2)

다음 날, 시몬은 늦게까지 잠을 잤다. 정말 말 그대로 꿀잠이었다.

‘이렇게 마음 놓고 쉬는 게 얼마 만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아크튜러스는 무를 숭상하는 가문답게 모든 것이 엄격했다.

정확히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오전 수련을 해야 했다.

오전 수련이라고 연무장 몇 바퀴 뛰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잠이 깨기도 전에 목숨이 오가는 대련이 펼쳐진다.

‘이젠 부지런히 수련할 필요는 없지. 오러 서클은 만들면 되고, 검법은 지금 시대에 쓰는 것보다 훨씬 좋은 걸 알고 있으니.’

과거 시몬은 아크튜러스 검술을 한 차원 더 성장시킨 인물로 추앙받았다.

젊은 몸으로 돌아와 소드 마스터 시절의 위력을 낼 수는 없지만, 몸은 만들면 그만이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오늘은 제대로 볼 수 있겠지?’

과거로 돌아오게 되면서 좋은 일도 많아졌다.

가장 좋은 것은 그리웠던 옛 인연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

어제 기사단을 소집한 건 나름 계산에 넣은 일이긴 했다.

그런 엄청난 일을 벌였다면 반드시 찾아와 직언할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도련님.”

하녀가 조심스레 들어와 고개를 조아렸다.

“라니에리가 찾아왔나?”

“어떻게 아셨어요?”

하녀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몬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며 손님을 들이라 명했다.

잠시 후 근사한 정복을 입은 청년이 안으로 들어왔다.

“공자님을 뵙습니다.”

라니에리 베텔게우스.

아크튜러스 후작가의 가신이자 책사로서 평생을 바친 인물.

하지만 말년은 그리 좋지 않았다.

갖은 모함을 받아 주류에서 밀려나고, 결국 낙향하여 쓸쓸히 여생을 마쳤기 때문이다.

그 사실 때문에 더욱 반가운 마음이 샘솟았다.

‘가장 먼저 바로잡아야 할 일이기도 하지. 너의 억울함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

가까이 다가온 라니에리가 시몬을 빤히 바라보았다.

“열병의 후유증이 정말 심하긴 심한 모양입니다. 오밤중에 기사단을 소집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똑 부러지는 지적인 목소리.

외모도 근사해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정작 평생 독신으로 살긴 했지만 말이다.

라니에리는 옳은 말을 아끼지 않은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젯밤에 기사단을 소집한 것에 대해 직언했다.

“오랜만에 보는데 고작 한다는 말이 그것뿐이야?”

“오랜만이라뇨?”

라니에리는 고개를 갸웃할 뿐이다. 뭔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아서.

“아직 편찮으신 겁니까? 주치의의 소견과는 조금 다른 것 같군요.”

“어떤 부분이?”

“뭔가 달라지신 것 같습니다. 들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예전보다 많이 밝아지셨습니다.”

시몬은 잠시 라니에리를 응시하다 이렇게 말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딱 한마디만 하게 해 줬으면 하는데.”

“편히 하십시오.”

“다시 만나게 돼서 정말 반갑다. 라니에리. 그때는 내가 미안했다.”

이상한 말이었으나 진심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질감 또한 느낄 수밖에 없었다. 모시던 주인은 이렇게 잔정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럴 수밖에.

살아온 타임라인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간의 회포를 어떻게 풀까?

“반갑다는 말씀은 대강 알 것 같은데, 그때 미안했던 일은 또 무엇입니까?”

“그냥, 그럴 일이 있다.”

가신들의 모함에서 지켜 주지 못한 것.

그것이 끝까지 마음에 남았었다.

책사이기를 떠나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였으니까.

“앞으로는 너에게 미안할 일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맹세하지.”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공자님의 방에 벨을 설치한 이유는 위급 상황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훈련 목적으로 쓰시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가끔은 긴장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 아닌가?”

“전혀 아닙니다.”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벨을 누른 진짜 이유를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불 끄기 귀찮으시면 하녀들을 시키십시오.”

“불러도 안 오더라고.”

그 말에 라니에리가 예리한 눈으로 하녀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하녀가 움찔 놀라더니 고개를 숙였다.

“걔는 죄 없어. 내가 잠깐 나가 있으라고 했으니까.”

“기사들은 영지의 핵심 전력입니다. 그런 일에 동원할 사람들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 소문이 퍼져 나가기라도 한다면 가문의 명예가 땅을 뚫고 내려가 지옥에 다다를 것입니다.”

“무슨 지옥까지 거론해? 그냥 욕을 해. 그렇게 빙빙 둘러 말하지 말고.”

“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과거로 회귀했으니까.”

말문이 멈췄다. 설마 그런 이야기를 할 줄은 생각지도 못한 모양이다.

“표정 봐라? 하하하. 진짜야. 내가 죽으니까 과거로 돌아와 있더라고. 열병을 앓고 난 직후로. 그걸 자각한 건 이틀이 지났고.”

“후유증이 심각하군요. 바로 주치의를 부르겠습니다.”

“진짜라니까?”

애초에 믿어 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뱉은 말이었다.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

약간은 정신이 나간 것 같은 행동도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라니에리. 갑작스러운 말처럼 들리겠지만,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때가 있었지.”

라니에리는 안경을 고쳐 쓰곤 빤히 이쪽을 바라보았다. 분위기가 진지해졌다.

“내 행복과 가문의 명예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짓밟아야 했으니까. 전생을 거쳐 오며 그런 일이 무수히 많았어. 그런데 그게 틀렸던 것 같아.”

“그러십니까.”

“오, 드디어 내가 회귀했다는 걸 믿어 주는 거야?”

“아닙니다.”

라니에리가 정색하자 시몬이 김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왠지 웃음이 나온다.

“확실한 건, 공자님께서 열병을 계기로 뭔가 마음가짐이 변하신 것 같다는 것 정도겠군요. 하지만 어제 일은 잘못하신 게 맞습니다. 한스 경이 많이 낙담했습니다. 그는 기사단의 중요한 전력입니다.”

“무릇 기사라면 강하게 커야지.”

“공자님께서는 앞으로 아크튜러스 가문을 이끌고 나가셔야 합니다. 가끔은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시몬은 손을 휘저어 하녀를 밖으로 내보냈다. 라니에리와 단둘이 남자, 이렇게 말했다.

“그럴 생각 없다.”

“애초에 기대하고 드린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공자님께서 제일 못하시는 게 사과와 칭찬이니까 말이죠.”

“아니, 그거 말고. 후계자 말이다. 후계자 안 할 거라고.”

논리적이고 냉철한 라니에리마저 입을 다물게 하는 충격적인 선언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열병 때문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

“아니. 그보다 하나만 묻자. 너, 내가 가주 안 하면 같이 안 어울릴 생각이야?”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됐어.”

그것은 시몬의 진심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후계자 자리를 포기해야 했다.

‘조용한 곳으로 내려가 여생을 보낸다. 내가 아꼈던 사람들과 함께.’

시몬은 잘 먹고 잘살 자신이 있었다.

미래에 대한 모든 지식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으니까.

“혹시 그 이야기, 가주님께도 하셨습니까?”

“곧 하려고. 오늘 오찬 같이 하기로 했거든. 헛소리하지 말고 검이나 휘두르라고 하시겠지만 잘 설득해 봐야지.”

잠시 생각에 잠긴 라니에리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둘째 공자님은 딱히 후계위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렇다고 공녀님이 가문을 이을 상황은 아니지요. 이 상황에서 가문을 잇지 않겠다는 건 무리수일 겁니다.”

가문에 소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라니에리의 말처럼 둘째 공자인 케나드는 후계에 조금도 관심이 없는 동생이었다. 오히려 가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평생 검술을 연마한 사람이었다.

‘그 진심을 늦게 알긴 했지만…….’

동생과도 쌓였던 회한이 있다. 그것을 잘 풀어내는,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것도 시몬이 해야 할 일 중 하나였다.

“모든 일은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갈 거다. 넌 내 옆에서 잘 맞춰 주기만 하면 돼. 걱정할 거 없다.”

“어찌 그리 장담하시는 겁니까? 다른 일도 아닌 후계자 문제입니다.”

“회귀했으니까.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다 알고 있다고.”

“공자님!”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시몬이 워낙 확신에 차 있어 라니에리는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일단 좀 쉬십시오. 나중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 전에 해 줘야 할 일이 하나 있는데. 곰 인형, 예쁜 걸로 하나 준비해 와. 이올린이 좋아할 만한 것으로.”

라니에리는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 * *

라니에리가 다녀간 이후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시몬이 면회를 허가했기 때문이다.

그중 기다리고 있었던 또 다른 인연은 바로 가족들이었다.

제일 먼저 달려온 것은 동생들이었다.

“형님! 이제 좀 괜찮아지신 겁니까? 걱정 많이 했습니다.”

“저도요. 오라버니.”

케나드의 얼굴엔 자잘한 상처가 가득했다. 아직 덜 아문 걸 보니, 방금까지 연무장에서 구르다 온 것 같았다.

시몬은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곰 인형을 껴안고 있는 귀여운 아이가 걱정 반, 두려움 반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이제 괜찮다. 케나드, 이올린. 걱정해 줘서 고맙구나.”

“정말 다행입니다. 진심으로 걱정 많이 했습니다. 형님!”

울먹이기까지 하는 케나드.

시몬은 케나드의 어깨를 다독여 줬고, 이올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이렇게 정을 주는 모습은 처음이었기에.

특히나 이올린은 어른이 될 때까지도 자신을 무서워했다. 심약한 것도 있지만, 이복 남매였기 때문이다.

‘그때는 진심을 알아주지 못했지. 너무 내가 정 없이 굴기도 했고.’

좋은 형, 오라버니가 되어 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다시금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까.

“인형이 너무 낡았구나. 이올린. 이젠 이걸 가지고 놀아라.”

“앗…….”

시몬은 라니에리가 가져다준 인형을 이올린에게 건넸다. 동생의 표정에서 두려움과 걱정이 조금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고, 고맙습니다. 오라버니. 정말 기뻐요.”

“표정은 별로 기뻐 보이지 않는데?”

“아녜요!”

너무 목소리를 크게 냈다고 자각했는지, 이올린은 황급히 입을 가렸다. 시몬은 웃으며 동생의 머리를 헝클었다.

“앞으로는 편하게 해도 된다. 남매인데 남처럼 굴어선 안 되겠지. 그리고 케나드.”

“예!”

마치 상급자의 명령을 받는 것처럼 케나드는 각을 잡았다. 하긴, 동생은 전생에서도 모범적인 기사였으며 수련밖에 모르는 검술 바보였다.

“조만간 같이 한번 칼춤 좀 춰 보자. 컨디션이 좀 좋아지면.”

“형님께서 직접 말씀입니까?”

“그래.”

케나드는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동경하던 형님과 겨룰 수 있다니, 끝없는 고양감이 샘솟았다.

물론 시몬에겐 다른 계획이 있었다.

‘너를 빨리 키워야 내가 후계자 자리를 넘겨줄 수 있거든.’

그것도 모른 채 케나드는 두 손을 꽉 쥐었다. 형님에게 잘 보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배가 고프군. 슬슬 밥 먹으러 가 볼까?”

“가시죠. 형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모신다는 말도 하지 마라. 같이 가는 거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시몬과 두 동생은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엔 아크튜러스 후작가의 가주, 드뇌브가 시몬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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