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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자는 쉬고 싶다-1화 (1/120)

1화: 일단, 삐뚤어진다 (1)

늦은 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간간이 치는 천둥에 기사들이 손을 멈추고 창밖을 슬쩍 내다봤다. 지독한 어둠이 깔려 있었다.

마치 그곳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갑자기 비라니, 영 꺼림칙한데요.”

“뭐가?”

“요즘 세상이 좀 흉흉해야 말이죠.”

그 한마디에 모든 기사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제2기사단장 한스는 혀를 차며 말을 꺼낸 젊은 기사를 쏘아보았다.

평소에도 말이 많은 자였다.

만약 자신의 조카가 아니었다면 즉시 완전 군장으로 빗속에서 단독 행군을 시켰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모여 있는 것도 결국 그 이야기 때문 아닙니까?”

“그 이야기?”

“소문 말입니다.”

“소문? 흥, 웃기는군. 우리가 이곳에 모여 있는 이유는 영광스러운 아크튜러스의 기사들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지.”

선임 기사가 조용히 다그쳤다. 하지만 젊은 기사는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압니다. 아크튜러스. 가슴이 웅장해지는 이름이죠. 모든 기사들의 꿈이기도 하고. 하지만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소문이 정말이라면…….”

‘소문’은 마치 금기어처럼 들렸다.

선임 기사는 기사단장 한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하급 기사들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했다는 사죄의 의미였다.

결국 기사단장 한스가 다듬던 검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하루에 얼마나 많은 소문이 생겨나는지 알면서 하는 소리냐? 한심한 놈. 네 주둥이만큼 네가 쥔 그 검도 빨랐으면 좋았을 텐데.”

“어…… 그건 반성하고 있습니다.”

“반성의 기미가 전혀 안 보이는 대답이군.”

“죄송합니다. 하지만 알데바란 후작가 놈들이 움직인다면 큰일 아닙니까?”

알데바란.

결국 그 이름이 나오고 말았다.

“그럴 일은 없다.”

한스는 단호히 대답했다.

철없는 발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였다. 이곳에 머무는 여러 하급 기사의 마음을 대변한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쪽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장님. 정말 이렇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알데바란 놈들은 만만치 않습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이길 수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도 피해가 막심할 겁니다.”

알데바란 후작가가 아크튜러스 후작가를 공격하려 한다는 소문은 익히 듣던 이야기였다.

게다가 아크튜러스의 후계자인 시몬의 목을 노리고 있다는 소문도 퍼지기 시작했다.

그 상황에서, 시몬이 열병을 앓아 혼수상태에 빠지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간신히 회복하기는 했으나, 그 또한 알데바란 후작가의 독살 음모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알데바란 후작가에서 공식 성명을 내고 이번 일에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아크튜러스의 일원들은 조금도 믿지 않았다.

그랬기에 저택 내부에 비상대기조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동시에 시몬의 방에는 비상벨이 설치되었다. 유사시에 기사들을 호출할 수 있도록 말이다.

만약 벨이 울리게 된다면, 기사들은 즉시 공자의 방으로 달려가 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제군들.”

기사들이 정자세로 섰다. 뒷짐을 진 기사단장 한스가 근엄히 명했다.

“지금까지 우리의 경계망을 뚫은 쥐새끼들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아크튜러스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임무에 임하도록. 더 이상의 무의미한 추측은 용납하지 않겠다. 작전 중임을 잊지 마라. 알았나?”

“옛!”

그제야 잠잠해지는 듯싶었다.

쿠르릉!

강한 천둥이 울리더니, 오늘이 지나도록 끝까지 듣고 싶지 않았던 소리가 울리고 말았다.

“다, 단장님!”

“……!”

한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삐리리리리!

그는 반사적으로 검을 집어 들었다. 천둥에 가려질 뻔한 그 소리, 비상벨 소리가 분명했다.

“뭣들 하나! 어서 달려! 시몬 공자님의 방이다!”

“뛰어! 무기를 들어라!”

기사들이 우르르 밖으로 쏟아져 나갔다.

한스는 이를 꽉 깨물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게 방금 전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다.

지금은 체면이 문제가 아니었다. 첫째 공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

‘빌어먹을 놈들. 독살에 실패해서 무력을 동원한 건가! 당번 기사들이 잘 버텨 줘야 할 텐데!’

한스는 있는 힘껏 달렸다.

영원과도 같은 찰나의 시간이 흐르고, 기사들은 첫째 공자의 거처에 도착했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기사들은 보이지 않았고,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공자니이임!”

기세 좋게 달려들던 기사들의 걸음이 뚝 멈췄다. 그러곤 의아한 표정으로 침대를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평온했다.

딸깍.

잠옷을 입은 청년이 회중시계를 누르며 중얼거렸다. 나른한 목소리로.

“생각보다 늦었군.”

“고, 공자님……?”

결론부터 말해 아크튜러스 후작가의 첫째 공자, 시몬은 무사했다. 무사한 정도가 아니라 침대에 턱을 괴고 누워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 1분 27초나 걸리다니. 한심하잖아? 그러고도 영광스러운 아크튜러스의 기사들이라고 할 수 있나?”

시몬이 나태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기사들은 얼이 빠졌다. 첫째 공자가 무사한 것은 다행이었으나, 시간을 거론하며 훈련 태도를 지적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어찌 된 영문입니까? 공자님. 저희는 비상벨 소리를 듣고…….”

“시험해 본 거야.”

“예에?”

시몬은 보란 듯이 침대 위에 놓인 벨을 다시금 눌렀다. 저 멀리서 비상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2기사단 놈들은 얼마나 빨리 오는지 시험해 본 거라고. 1기사단 놈들은 그래도 20초대로 끊던데. 너희들은 7초씩이나 느리군.”

뒤에서 쇳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모여든 1기사단의 비상대기조원들이 뒤쪽에서 씨익, 비웃기 시작했다.

“난 왜 비상벨이 너희들이 있는 대기실에만 들리게 해 놨는지 처음엔 이해를 못 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단 말이지. 아버지께서 가끔 훈련을 시키라는 의미 아니었을까?”

“…….”

“흥, 기세 좋던 놈들이 다들 벙어리가 됐군. 7초가 얼마나 긴 시간인지는 알지? 검을 뽑아 오러를 발출하고 검기를 날리고도 남을 시간이라고. 실제 상황이었다면 네 발치에 내 머리가 굴러다니고 있었을 거다.”

“소, 송구합니다!”

기사들이 무릎을 꿇었다. 시몬은 한심하다는 듯 그들을 내려보았다.

“잘 좀 하자. 어? 훌륭한 기사들은 잔소리를 듣지 않는 법이지.”

“예!”

“오늘은 처음이니 봐준다. 하지만 다음은 없다는 걸 명심하도록. 돌아가라.”

기사들이 서로 눈치를 보더니 하나둘 일어났다. 그때 시몬이 다시금 그들을 불러세웠다.

“기사단장.”

“공자님. 정말 송구합니다. 내일부터 특별 훈련에 들어가겠습니다. 1기사단에 뒤처지지 않도록…….”

“아니, 됐고. 온 김에 불 좀 끄고 가라고. 잠이나 자게.”

한스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혹시, 이 공자는 불을 끄기 위해 우리들을 부른 것이 아닐까?

“아…… 예.”

군례를 취한 한스는 직접 손으로 방 안에 있는 불을 전부 껐다.

방 안이 어두워졌고, 홀로 남은 시몬은 눈을 감았으나 쉽게 잠들지 못했다.

‘하,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눈을 뜬 시몬은 손을 뻗어 뒤집어 보았다. 늙고 쭈그러든 피부는 온데간데없고 새하얗고 부드러운 손이 시야에 잡혔다.

‘나는 분명 죽었는데.’

숨이 넘어갈 때의 느낌이 아직 생생히 남아 있었다. 영원과도 같은 잠에 빠져들 줄 알았는데, 눈을 떠 보니 과거로 돌아와 있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의 몸이 아닌, 정확히 자신의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그것을 인지한 것은 바로 어제였다.

시몬은, 과거로 회귀한 후 두 번째 밤을 맞는 중이다.

‘망할.’

단지 쉬고 싶었을 뿐이다.

후작가를 공작가로 승작시킨 것도, 대륙 통일 전쟁에서 무수한 공을 세운 것도 자신이었다. 말년에는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 만인의 존경을 받았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후계자라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순간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하고 싶은 일도, 꿈도,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그래도 시몬은 해냈다.

살려야 할 사람은 살리고, 죽여야 할 사람은 미련 없이 죽였다.

그렇게 가문을 반석 위에 올려놓고 천수를 누렸다.

시간이 흘러 임종을 맞아 편히 눈을 감을 줄 알았는데, 과거로 돌아와 버린 것.

‘전에 했던 그 미친 짓을 그대로 또 하라고?’

꿈이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뺨을 아무리 꼬집어 봐도, 느껴지는 통증이 너무나 선명했다.

‘하아…….’

피할 길이 없다.

한숨을 내쉰 시몬은 이불을 뒤집어썼다. 하지만 그는 현실 도피만 하기에는 너무나도 총명한 사람이었다.

‘아니지. 아니야. 오히려 좋은 기회가 아닐까? 젊어진 건 육신만이 아니야. 정신까지도 젊어졌지.’

불현듯 마음이 들떴다.

무슨 일 때문에 과거로 회귀하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신의 장난일지도, 아니면 어떤 운명 때문인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전생에 후회가 남았던 것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손에 넣은 것.

그런 생각에 미치자 전생의 여러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원 없이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좋은 기회지.’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필요했다.

‘일단, 삐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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