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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극상한 은행원이 너무 유능함-41화 (41/50)

하극상한 은행원이 너무 유능함 41

“축하합니다. 차장님!”

“와! 벌써 차장님이라니······ 이 정도면 최연소 차장 아닙니까?”

“축하해요! 근데 서운해요. 전근 가시면 이제 못 보게 되는 거잖아요.”

“못 보긴 왜 못 봐요. 어디 지방으로 전출 가는 것도 아니고. 차장님. 나중에 연락드리면 쌩까기 없깁니다.”

“그나저나 기업금융지점 RM이면······ 엄청 빡세겠는데요?”

“좀 빡세면 어때요? 차장님이 되셨는데.”

대부계는 물론이고 수신계 사람들까지 축하 인사를 해온다.

난 아직도 얼떨떨하기만 했다.

그런 한편으로 ‘내 잊지 않고 있다는 것만 알아두게’라고 했던 은행장의 말뜻이 이거였나 싶기도 하다.

하긴, 특별심사역이라는 직함까지 따로 만들 정도로 전부터 날 여신심사부로 보내고 싶어했던 행장이다.

행장 입장에선 내 능력으로 일반 영업점에서 쓰기는 낭비 같았을 테고, 그렇다고 책상머리 근무는 싫다고 했으니 본점은 안 되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기업금융지점이 아니었나 싶다.

‘아무리 그래도 RM이라니······.’

차장 진급이야 좋다만 이은섭 말대로 빡세다.

단순히 돈을 빌려주고 갚는 관계가 아니라, 경영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결방안을 찾아줘야 하는 솔루션 제공자로서의 역할까지 해야 하는 것이 RM이다.

그만큼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거래 기업의 재무 상태를 항시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사업성, 현금흐름, 경제 동향, 관련 신기술, 그리고 경영진의 경영능력과 도덕성까지.

그야말로 담당하는 거래 기업의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워라밸이 박살나는 느낌.

나는 지점장을 찾아갔다.

이번에 나와 함께 기업금융지점으로 같이 옮기게 되었다.

같은 지점장에서 지점장으로의 전근이라고 해도, 명백한 영전이다.

한성은행에서 서초동 기업금융지점의 지점장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임원으로 가는 프리패스권을 얻은 거라고 봐도 무방하니까.

사실 나보다 지점장이 더 축하를 받아야 하는 일이다.

내 진급이 좀 빠르긴 하지만, 아니, 최연소 차장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닐 만큼 말도 안 되게 빠르긴 하지만, 어쨌든 차장이야 열심히 근속을 채우고 그 과정에서 도태되지만 않으면 앉을 수 있는 자리지만 임원은 그야말로 별 중의 별이다.

선택된 극소수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

그런 자리를 약속받은 것이다.

박순호 지점장이.

그래서인지 지점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연신 싱글벙글이다.

그러고 보니 어제부터 저랬다.

“이번 인사 발령 알고 계셨던 겁니까?”

“어제 전무님께 들었지. 흐흐흐.”

“근데 왜 말씀을 안 하셨습니까?”

“미리 전해 듣는 것보다 발령문을 직접 보는 게 하 과장, 아니, 하 차장 기분이 더 좋을 것 같았으니까. 흐흐흐.”

“근데 그 웃음 좀 어떻게 안 됩니까?”

“응? 무슨 웃음? 흐흐흐.”

“그 웃음 말입니다. 그 웃음. 타이어 바람 빠지는 소리 같은 그 웃음, 사람이 너무 실없어 보이잖아요.”

“내가 그랬나?”

자기가 웃고 있는지조차 인식을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번 인사 혹시 또 전무님께서 힘을 쓰신 겁니까?”

나 혼자면 은행장이 신세를 갚은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지점장까지 같이 영전이 된 상황이라 혹시 김강철 전무가 이번 행장 선거 포기 조건으로 박순호 지점장에 대한 딜도 넣은 게 아닌가 생각한 것이다.

“아냐. 나도 그래서 전무님께 여쭤봤는데, 행장님이 먼저 말씀을 하신거더라고. 물론 그간의 공을 인정해주신 부분도 있긴 하겠지만, 내 생각에는 아마 하 차장이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는데 내가 필요하다 판단하신 게 아닐까 싶은데?”

아무리 실력이 출중해서 그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마음 맞는 윗선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것까지 고려한 인사인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번 발령은 어디까지나 하 차장 덕분이라는 거지. 아마 앞으로도 하 차장 덕 볼 일이 많겠지? 그러니까 하 차장, 앞으로도 우리 잘해보자고. 흐흐흐흐.”

이번 웃음은 상당히 정치적인 웃음이다.

정치 정치 하더니 이 양반이 이제 나한테까지 정치를 한다.

어쨌든 내겐 나쁠 것이 없다.

가뜩이나 쉽지 않은 기업금융지점으로의 이동.

박순호 지점장이 뒤를 받쳐준다면 나로서도 든든하다.

새삼 업계 최고의 수완가라는 유종원 행장의 인사답다는 생각이 든다.

지점장실을 나온 나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들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발령 날짜를 생각하면 당장 인수인계부터 시작해야 했다.

물론 거래처를 돌며 인사도 해야 했고.

“벌써 또 승진한 거야? 대단하구만 대단해. 근데······ 하 차장이 진급을 해서 가는 건 좋지만, 이제 누구한테 돈을 믿고 맡기지? 그냥 이참에 나도 서초동으로 옮겨?”

“멀어요. 게다가 옮기신다고 해도 일이 달라져서 아마 제가 담당하긴 어려울 거예요. 은섭씨도 있고 창주씨도 있고, 후임도 저보다 일 잘하는 분이 오실 거라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렇게 내 영전을 축하하는 한편으로 담당이 바뀌게 되어 못내 섭섭해하기도 하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그런 마음들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바쁜 날을 보내며 인수인계를 대강 마무리를 한 나는, 그제야 장서연을 찾아갔다.

이미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변호사 시험을 준비 중에 있었다.

변호사 시험까지는 이제 5일 남았다.

그래서 웬만하면 방해를 안 하려고 했었는데, 오늘 본점에 잠깐 들렀다가 차규완 본부장을 만났다.

차규완 본부장도 한때 RM이었다.

그것도 서초동 기업금융지점의 에이스.

당시 그의 발언권이 어느 정도였냐면, 그가 한 번 고집을 부리면 지점장은 물론이고 여신심사부의 결정마저 뒤집어 엎어버릴 정도였다고 한다.

‘근데 그렇게 대단했던 양반이 왜 나한테 목을 매는 건지······.’

RM때는 호랑이 같았다던 사람이 본부장이 되고는 고양이가 되었다.

역시 한창 현역 때랑은 같을 수가 없는 것일까?

아무튼 그런 차규완 본부장이 기업금융지점으로 가게 된 내게 진지하게 조언을 했다.

“하 차장, 애인 있어?”

애인이란 단어 요즘 참 듣기 힘든데, 역시 나이는 어쩔 수 없다.

“예. 있긴 있는데, 왜요?”

“그럼 당장 결혼해.”

“예?”

“아니면 백퍼 헤어지게 될 테니까.”

“······.”

“내가 서초동 기업금융지점에서 RM만 8년을 했거든. 당연히 많은 젊은 RM들이 내 밑을 거쳐 갔지. 개중에는 하 차장처럼 애인 있는 친구들도 많았고. 그런데 단 한 명도 끝이 좋은 친구를 본 적이 없어.”

“······.”

“다 헤어지더라고. 1년을 못 버텨. 왜? 만나지를 못하니까. 애인 군대 보낸 느낌이라나 뭐라나. 만난다고 해도 업무 스트레스에 찌들어 있으니 겨우 시간 내서 하는 데이트도 늘 싸움으로 끝나고. 그러니까 결혼할 마음이 있는 여자면 일단 날짜부터 잡아.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왠지 뒷말이 쓸쓸하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가 아니라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처럼 들린다.

혹시 첫사랑이라도 놓친 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눈시울까지 붉힐 건 없잖냐고!

그 모습을 보니 새삼 장서연이 보고 싶어졌다.

일이 힘든 건 둘째치고, 당분간 새 업무에 적응하려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질 테니까.

그렇게 장서연의 집으로 달려가니, 집 앞으로 장서연이 나와 있었다.

학기 마치고 딱 한 번 본 게 다였다.

그 후로 두 달 만이다.

꾸민다고 꾸몄지만 그사이 많이 수척해 있었다.

건강한 남자들도 변호사 시험 한 번 치르고 나면 귀에서 이명이 들릴 정도로 힘들다는데 수술 이력까지 있는 그녀야 오죽할까.

“많이 피로해 보이는데, 괜찮아요?”

“화장발로 숨긴다고 숨겼는데, 티 많이 나요?”

“다크서클이 조금만 더 내려오면 가오나시가 친구하자고 하겠는데요? 시험준비 많이 힘들죠?”

“힘들긴 했는데 그래도 성운 씨 보니까 힘이 나요.”

싱긋 웃어 보이는 미소가 귀여운 한편으로 마음이 쓰인다.

회복이야 다 되었다지만, 두 개의 신장이 하던 일을 하나의 신장이 하고 있다.

어려운 시험을 앞두고 건강이 상하지나 않을지,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하다.

“근데 어쩐 일이세요? 변호사 시험 끝나고 보자고 해놓고선.”

“그게······ 이번에 서초동으로 전근을 가게 됐어요. 거기 일이 만만치가 않은 일이라 당분간 시간 내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요.”

“전근요? 무슨 일 있으세요? 서초동이면 좌천은 아닌 거 같은데······.”

“승진했습니다. 차장으로.”

“예?”

장서연이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어떻게요? 과장 된 지 이제 1년 밖에 안 됐잖아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도 아직 얼떨떨해요.”

“아니,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우리 파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다음에요. 지금은 그냥 이렇게 서연 씨 얼굴 본 걸로 충분해요. 중요한 시기잖아요.”

괜히 오래 붙들었다가 시험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 미안함을 어떻게 감당하랴.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그녀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

“그럼 오늘은 우리 같이 산책해요.”

장서연이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잡는다.

“요즘 마음만 급해서 통 운동을 못했거든요.”

내 손 안에 들어오는 작은 손.

그 손을 힘주어 꼭 잡았다.

내 기운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

비록 3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는 장서연의 얼굴은 한결 밝아져 있었다.

덕분에 돌아서는 내 걸음도 한결 가볍다.

그리고 나는 그 악명 자자한 서초동 기업금융지점으로 출근했다.

※※※

“하성운 차장입니다. 장원 지점에서 근무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간단한 인사.

차장으로 발령을 받고 왔다지만 RM 경력이 전무한 나로서는 딱히 포부를 말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차장이나 되어서 지도편달을 부탁하는 것도 좀 아닌 것 같아서 그렇게 간단히 인사를 마친 것이었다.

짝짝짝짝짝짝

내 간단한 인사에 박수가 이어졌다.

박수는 건조했고 나를 보는 눈빛들은 다양했다.

‘저 사람이 소문의 그 하성운 과장인가?’

‘작년에 과장 달았다던데, 벌써 차장인 게 말이 돼?’

‘이제 서른두 살이라던데, 나보다 어려. 어린 상관은 모셔본 적도 없는데······ 이거 꽤 피곤해질 거 같은 예감이······.’

‘행장님이 직접 꽂은 인사라던데, 괜히 어리다고 만만하게 굴었다간 바로 골로 가겠지?’

‘근데 RM에 대해 뭘 알긴 알고 온 거야?’

대강 그런 눈빛들이다.

하나도 틀린 게 없다.

내가 생각해도 이 나이에 차장은 오버다.

나보다 나이 많은 부하는 나도 처음이라 꽤 불편할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차장이 대리보다 나이가 적은 건 좀 아니잖아?

그렇다고 해도 무시를 당할 생각은 없다. 어리다고 무례하게 굴면 골로 가는 거다. 나이가 어린 만큼 그래서 더 확실하게 눌러줘야 할 할 필요가 있다. 수 틀리면 직급이 깡패라는 말이 어떤 건지 제대로 보여줄 작정이다.

한 차장에게 직급으로 사람을 어디까지 괴롭힐 수 있는지 확실히 배웠기에 그 분야에서는 내가 전문가다.

그리고 RM.

그동안 공부는 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지만, 생각해보면 규모가 더 커지고 그런 만큼 살펴야 하는 것도 더 많아졌다 뿐, 그동안 내가 해온 일들의 연장선일 뿐이었다. 게다가 내 변동정보는 여기서도 여전히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아니, 단순히 대출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기업의 미래를 진단하고 컨설팅하는 것도 RM의 역할인 만큼, 기업금융지점이야 말로 변동정보가 가진 힘을 가장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일 수 있다.

그래서 사실 지금 나 RM으로서, 그리고 기업금융지점의 차장으로서 그 첫 시작에 꽤 설레고 있었다.

< 사실 지금 나 꽤 설렌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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