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극상한 은행원이 너무 유능함 39
[2차전지 관련 소재 생산업체인 KMT, 내부자 거래 혐의로 검찰 수사]
비상장 주식 거래소에서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KMT가 내부자 거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검찰에 따르면 얼마 전 KMT가 인수한 자회사 가온RNC 대표 조정인 대표가 2천억 대 장비 수주 공시가 있기 전인 지난 5월 초, 차명으로 150억 상당에 이르는 KMT의 지분을 인수한 정황이 포착되어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KMT의 핵심 임원 다수의 내부자 거래 정황 또한 포착된 걸로 알려졌습니다.
한편, 상장 회사에 비해 비상장 회사의 미공개 자료를 이용한 내부자거래가 세 배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며······.
포탈 경제란에 실린 작은 기사 한 토막.
“저 인간이 결국 사고를······.”
지난번에 만났을 때부터 불안불안 하더니 결국 일을 저질러버렸다.
그 과정에서 KMT 임원들의 내부자 거래까지 고구마 넝쿨처럼 줄줄이 엮여 올라온 것이고.
“아니, 잠깐······ 5월 초라고?”
5월 초면 내가 지분을 처리했던 시기다.
금액은 150억.
저 시기에는 온오프 모두 매도 물량이 거의 씨가 말랐던 때였다.
내가 던진 물량을 제외하고는.
‘설마 저 인간도 앱을 사용한 거야?’
그래서 내가 던진 물량을 다 받아먹기라도 한 것일까?
150억이면 거의 80%에 가까운 물량이다.
‘어쩐지 빨리 팔리더라니······.’
아무리 핫하다고 해도 그래봤자 비상장 주식.
190억이나 되는 물량이 그렇게까지 빨리 팔려나간 게 이상하긴 했었다.
‘그런데 무슨 돈으로?’
당연히 조정인 대표의 자산 상태 정도는 확인했었다.
가온RNC의 지분을 넘기고 60억을 받아 챙겼다고 해도 150억은 어림도 없었다.
‘영혼까지 끌어모은 건가?’
그렇다면 정말 인생 끝장이다.
금융실명법 위반에 내부자 거래, 거액의 거래금액까지, 5년 정도는 감빵생활을 해야 할 텐데 그 많은 빚은 또 어떻게 감당할까?
심지어 우회 상장사 주식을 받기로 했다면 그마저도 물건너 갔다.
[KMT, 내부자 거래에 이어 70억 대출 과정에서의 회계 부정 의혹. 이정환 대표 오늘 검찰 소환]
내부자 거래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회계 부정까지 드러난 것이다.
가온RNC 인수 과정에서 진행한 대출이었다는 걸 보면, 돈줄이 초과된 120억을 다 내기가 부담스러웠는지 일부 금액을 무리하게 대출로 돌리는 과정에서 회계 부정까지 저지른 모양이었다.
그로 인해 비상장 거래소에는 이미 헐값에 내놓은 매물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내가 팔 때만 해도 4배 이상 치솟았던 가격이 그 절반으로 뚝 떨어졌는데도 사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상태로 우회 상장은 불가능이다.
이대로 진행했다가는 상장으로 주가가 뻥튀기가 되기는커녕 다 같이 몰락이다.
남은 돈이라도 지키려면 우회 상장 백지화가 불가피한 상황.
즉, 가온RNC의 지분을 잃고 거액의 빚까지 지게 된 조정인 대표에게 그나마 유일한 희망이었던 우회 상장사의 주식마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게 되는 것이다.
한순간 욕심에 눈이 멀어 신뢰를 배신한 것이 이렇게 조정인이란 사람을 철저한 몰락으로 밀어 넣고 있다.
‘120억······.’
나로 인해 비롯된 그 120억의 초과 예산이 불러온 나비 효과.
변동정보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판 자체가 틀어졌고 관련된 사람들의 미래도 달라졌다.
내 개입이 때로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걸 생각하니 희열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런 한편으로 부담도 된다.
그때, 조성환 상무로부터 연락이 왔다.
“술 한잔하지.”
그렇잖아도 조성환 상무가 어떤 얼굴일지 궁금했다.
KG브레이크에 이어 KMT까지, 대형 도박판 두 개가 연속으로 어그러졌다.
둘 다 내 개입으로 그렇게 된 것이었기에 더 궁금했다.
곧바로 조성환 상무를 찾았다.
상류층들이나 드나들 것 같은 고급 술집.
조성환 상무의 이름을 대니 웨이터가 날 룸으로 안내했다.
“어. 어서 와.”
내가 룸으로 들어가자 조성환 상무가 마시고 있던 온더락 잔을 들어 보이며 반갑게 맞는다.
표정, 나쁘지 않다.
어떻게 저렇게 태평할 수가 있지?
거액의 판돈이 깔린 도박판이 다 뒤집혔는데.
받기로 한 돈도 나가리 되었을 테고, 지난번 자기 입으로 투자를 했다고 했으니 손해도 입었을 텐데?
내가 그런 혼란을 감추며 자리에 앉자 조 상무가 내 앞에 온더락 잔을 놓아주며 그 위에 얼음을 담는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병 자체가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술을 그 잔에 따른다.
“마시게.”
“감사합니다.”
가볍게 목을 축였다.
사실 양주 맛은 몰라서 평을 할 깜냥은 되지 못하지만, 그래도 향이 그윽하고 목 넘김이 부드럽긴 하다. 그리고 올라오는 알싸한 알콜향도 묘한 매력이 있다.
“내가 하 과장을 이렇게 부른 건,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야.”
“······.”
“확인해보니 자네, 지분을 다 팔았더구만. 그것도 이번 일이 터지기 직전에. 이런 일이 생길 줄 알고 판 건가? 내 생각에는 그 뒤의 일까지 예상하고 들어왔을 것 같은데, 처분한 시기가 너무 애매하잖아.”
그 뒤의 일이란 우회 상장을 말하는 것이다.
의아해할 법도 하다.
지금 이런 사고만 안 터졌어도 들고만 있으면 훨씬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때만 해도 다들 가지고 있는 지분 꽁꽁 싸매기에 여념이 없던 때였다.
난 솔직히 대답했다.
“그 무렵에 조정인 대표가 절 찾아왔었습니다.”
“조 대표가?”
“예. 제 지분을 팔라더군요.”
“······.”
“상태가 안 좋아 보였습니다.”
“나한테 왜 말 안 했나?”
“상무님과는 인척간이신데, 괜히 제가 고자질하는 게 될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아냐. 돈에 잡아 먹힌 인간한테 내 말인들 먹혔을 리가 없지.”
그럼 자신은 돈에 잡아먹히지 않았다는 건가?
돈 때문에 이런 도박판을 만든 사람이?
“그래서 지분을 정리한 거다?”
“예. 제가 좀 소심해서요. 위험 요소가 발견되었는데 그걸 감수하고 가기엔 제 배포가 그렇게 크질 못합니다.”
“소심함이 아니라 신중한 거지. 감도 좋고, 결단력도 좋고, 거기다 운도 좋아. 하 과장 자네는 참 보면 볼수록 물건이군.”
살짝 말아올리는 입꼬리에선 흡족함과 한층 짙어진 호감이 보인다.
'그 호감 참 부담스럽습니다만.'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게 살짝 거슬리긴 하지만 그래도 뭐 칭찬이니 그 칭찬에 힘입어 나도 궁금할 걸 물었다.
“근데 상무님은 괜찮으신 겁니까?”
“나?”
“예.”
“내가 안 괜찮을 게 뭐 있다고?”
물론 이번 도박판에도 자신의 흔적은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밖에서 무슨 난리가 났든 이렇게 태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에 상무님도 KMT에 투자하신 게 있으시다고······.”
도박판이야 남의 돈으로 운영했으니 그렇다고 쳐도, 직접 투자한 돈은? 손해가 불가피할 텐데 어떻게 저렇게 강 건너 불구경하듯 태연할 수가 있는 거지?
“아, 그거? 투자야 했지. 5천원.”
“예?”
“한 주 샀어. 한 주도 투자는 투자 아닌가? 크크크.”
“······.”
같이 웃자고 하는 말일까?
아니,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안 웃긴다.
덕분에 난 정말이지 뒤통수라도 한 대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주주명부에 조 상무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던 게 차명으로 거래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소액 주주라서 그런 거였다.
도대체가 종잡을 수가 없다,
“은행이란 게 뭐라고 생각하나?”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서 한참을 웃어 대던 조 상무가 돌연 웃음을 뚝 끊더니 그렇게 물었다.
“은행이란 건 말이야. 남의 돈 끌어다가 남의 돈으로 장사하는 곳이야. 그럼 은행원도 내 돈 쓰면 안 되지. 명심해. 그게 첫 번째 룰이야.”
무슨 게임 말하듯 말한다.
그러고 보면 KG브레이크도 한 차장이 셀프대출로 마련한 돈이지 조성환 상무의 돈이 들어간 건 아니었다.
그랬다.
조성환 상무에게는 이번 투자도 그저 흔한 머니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이기면 좋지만 져도 딱히 손해 볼 것이 없는, 자신만의 소신과 자기만의 룰에 따라 진행하는 머니게임.
그러니 KMT가 어떻게 되든 저렇게 태평할 수가 있는 것이다.
돈 귀신도 한 수 접고 들어갈 만큼 돈에 미친 인간인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건······ 그냥 미친 인간이었다.
※※※
조성환 상무의 실체를 알게 된 후, 웬만하면 마주치지 말자는 결심을 했다.
부르는 거야 피할 수 없겠지만 오다 가다 마주치는 일만이라도 줄이자는 게 내 계획이었다.
그래서 본점에 들를 때면 조 상무가 본점에 있는지 없는지부터 체크했고, 본점에 있다면 지하 주차장 엘리베이트를 이용해 최대한 마주칠 수 있는 경로를 피해다녔다.
내가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조 상무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명심해. 그게 첫 번째 룰이야.’
‘명심해’ 라고 했다.
그건 자신은 손해볼 것이 전혀 없는 그런 도박판에, 날 끌어들이겠다는 뜻이다.
룰을 가르쳐 주는 것을 보면 한 차장 같은 장기 말로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그런 일에 엮으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소름이다.
“오빠. 지금 어디 가는 거야?”
내가 행선지를 밝히지 않고 계속 웃고만 있자 주은이 샐쭉 입술을 내밀고는 옆 자리의 민주를 본다.
주은의 대학 동기이자 회사 동기이며 룸메이트다.
단짝 친구.
대체 민주까지 데리고 어딜 가는 건지 궁금한 거야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주은의 얼굴은 살짝 상기되어 있다.
뭔지는 모르지만 또 뭔가 준비했겠구나 하는 기대감.
지난번 아버지에게 차를 선물한 이후 내가 조금만 의뭉을 떨면 뭔가 준비한 게 아닌가 의심부터 하고 본다.
하지만 이번엔 진짜 서프라이즈다.
서프라이즈인 걸 알아도 놀랄 수밖에 없을 거다. 흐흐흐.
아니나 다를까, 내가 두 사람을 데리고 서프라이즈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놀란 눈을 휘둥그레 뜨는 주은이다.
“오빠. 여긴 왜······.”
오피스텔이다.
그녀들의 직장 바로 옆, 최고급 오피스텔.
현재 내 계좌에 있는 돈은 총 220억이 조금 넘는다.
원래 계획대로 난 내 집을 알아보는 중이다.
넉넉해진 예산 덕에 가격 상관없이 이미 몇 군데 마음에 담아둔 상태.
그런데 막상 그렇게 내 집을 알아보다 보니 주은이가 걸렸다.
지금 주은이 민주랑 살고 있는 곳은 강북이었다.
살기 불편할 정도는 아니지만, 직장도 멀고 골목이 많아서 여자들이 살기에는 안전상으로도 다소 불안한 면이 있다.
그래서 내 집 마련하는 김에 주은이 지낼 곳도 같이 알아본 것이다.
띠띠띠띠띠띠―
철컥
도어락이 풀리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벽면을 가득 채운 세 개의 창으로 시리도록 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 넓지 않은 거실이지만 복층 구조의 높은 층고와 탁 트인 시야 때문인지 화사하면서도 웅장한 분위기도 나고, 세탁기와 건조기 등 최신 가전제품들과 최고급 가구들도 멋스럽게 빌트인 되어 있었다.
“여긴 뭐냐니까?”
뭐냐고 묻고 있지만 짐작은 하고 있다.
그래서 나를 보는 눈도 지금 엄청 떨리고 있다.
내가 요즘 잘나간다는 건 주은이도 대강 짐작은 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로 잘나가는지까지는 모른다.
그래서 자신의 짐작이 맞는 건지는 확신을 못하고 있다.
사이즈가 안 나오니까.
그래서 대답했다.
“뭐긴 뭐야. 오늘부터 니들 살 곳이지.”
설마 했던 것이 사실로 확인되자 더 놀라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할 말을 찾지 못한다.
역시 알고도 놀랄 수밖에 없는 서프라이즈 이벤트.
“여기 엄청 비싼 데잖아요?”
민주도 놀라서 나한테 묻는다.
“그래봤자 전센데 뭐. 이미 잔금도 다 치렀으니까 편하게 들어와서 살면 돼.”
“······.”
주은이도 민주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날 보고 있다.
물론 전세도 비싸다.
하지만 비싼 값을 한다.
둘의 회사와도 가깝고, 대로변이라 야밤에 다닐 때도 안전하다. 무엇보다 최고 등급의 보안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여자 둘이 살기에도 적합해 일단 내가 안심이다.
민주를 같이 데려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둘이 워낙 단짝이어서 따로 떼어 놓는 건 주은이가 바라지도 않을 것이고, 혼자 보다는 역시 둘인 것이 안심이 된다.
사실 그냥 집을 사줄까도 생각했지만, 1년 후면 주은이 원하는 경력 다 채우고 이직할 계획이라, 정리하기 편한 전세로 계약한 것이었다.
“부담 가질 것 없어. 나 동생한테 이 정도 해줄 정도는 돼. 누차 말하지만, 나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잘 나간다니까.”
동생 친구 앞이라 그런지 괜히 더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잘난 오빠 둔 덕에 민주를 보는 주은이의 어깨도 좀 올라간 것 같기도 하지만, 이어지는 것은 그래도 못 미더운 오빠를 향한 핀잔이다.
“아무리 그래도······ 오빠는 오빠한테는 안 쓰고 왜 자꾸 우리한테만 써?”
“나한테도 팍팍 쓰거든? 나중에 내 사치를 보고 놀라지나 마셔.”
< 놀라지나 마셔(월세-->전세로 수정)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