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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극상한 은행원이 너무 유능함-36화 (36/50)

하극상한 은행원이 너무 유능함 36

가온RNC 지분 인수의 최종 목적지는 분명 우회 상장이다.

하지만 조정인 부사장의 배신의 끝이 KMT의 우회 상장이라면 가온RNC로서도 나쁠 것이 없다.

오히려 회사 가치를 급격히 끌어올릴 수 있는 대형 호재다.

물론 경영권이야 잃게 될 테지만 애초에 김한철 대표는 회사를 경영할 능력이 떨어지는 데다,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것도 조정인 부사장이 어떻게든 실적을 만들어준 덕분이다. 이번 2천억 대 수주 건만 해도 부사장이 따온 거래가 아닌가.

게다가 주식을 양도하는 것 또한 어디까지나 본인의 결정.

내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

어느 쪽이 낫다 못하다를 판단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그들만의 사정을 내가 섣불리 예단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난 김한철 대표에 대해서도, 조정인 부사장에 대해서도, 그들이 쌓아온 시간에 대해서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심지어 일면식도 없는 생판 남.

그보다······ 어디일까?

우회상장을 목표로 KMT가, 아니, 그 뒤의 돈줄이 목표로 하고 있는 상장사.

주가가 낮고 매출과 영업이익이 적으며 미래 전망도 불투명한 곳.

한 마디로 잡아먹기 쉬운 회사.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아마도 5월 자회사의 장비 수주라는 변동정보가 완성이 되어야 다음의 우회 상장 관련 정보도 뜨지 않을까?

이 순간 고민이 된다.

이런 정보를 가지고도 마냥 손놓고 있기는 아깝다.

차후에 우회 상장사를 확인하게 되면 그때 주식에 투자를 할까? 아니면 지금부터라도 KMT의 지분을 매입하는 게 나을까?

짜여진 대로 KMT가 그 상장사의 모회사가 된다면 KMT야 말로 진정한 황금 덩어리이긴 하다.

내 자금 규모를 생각하면 어쩌면 우회 상장사에 투자하는 것보다 모회사가 될 KMT의 지분을 매입하는 게 훨씬 더 이득일 수도 있다.

‘주식이야 시장 자체가 워낙에 변수가 많기도 하니까.’

하지만······ KMT를 택하기에는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이번 일에 조성환 상무가 어느 정도까지 관여 되어 있냐는 것.

난 그걸 확인하기 위해 가온RNC의 김성주 재무회계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부장님. 저 한성은행 하성운 과장입니다.”

“어. 하 과장님. 그렇잖아도 나도 전화를 하려고 했었는데 잘 됐네요. 대출금 그거 어떻게 됐습니까?”

“오늘 결재 들어갔습니다. 곧 입금될 겁니다.”

“그래요? 하하.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아이고, 이제 좀 안심이 되네. 이게 다 하 과장님 덕분입니다. 하하.”

“아닙니다. 저야 문제가 없으니 문제가 없다고 보고를 올린 것뿐인데요 뭐. 그보다······ 하나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요. 조정인 부사장님 말입니다.”

“부사장님이요?”

“예. 혹시 저희 한성 조성환 상무이사님과 개인적으로 무슨 친분이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서요.”

“친분이요?”

“예. 두 분 성도 같고, 일전에 상무님께 부사장님 이름을 들었던 기억도 나고 해서요.”

조정인 부사장이 수주 정보를 돈줄에게 먼저 넘긴 건지 조성환 상무에게 먼저 넘긴 건지를 알면 이 판의 주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만일 두 사람이 친분이 있는 게 맞는다면 김성주 부장이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조정인 부사장이 가온RNC의 창립 멤버인 만큼 김성주 부장에겐 삼촌 같은 존재이고, 그런 관계라면 사사로운 정보도 어느 정도는 공유하고 있을 테니까.

“그게······.”

내 말에 혹시라도 대출에 문제가 생기는 거나 아닌지, 수화기 너머로 긴장하는 것이 느껴진다.

“이번 대출 건과는 상관없이 정말 그냥 궁금해서 여쭙는 겁니다. 저도 사회 생활하는 입장이다 보니 상급자에 대한 정보는 많이 알아두면 둘수록 좋은 거니까요.”

“하긴, 우리가 뭐 청탁을 한 것도 아니고. 저도 재작년에 얼핏 들은 건데, 두 분 친인척이라고 하더라구요.”

“친인척이요?”

“예. 겹사돈이라나 뭐라나, 부친 쪽으로는 먼 친척뻘이지만 모친 쪽으로는 사촌자매 간이라던가······.”

“두 분 친분은 어느 정도인가요?”

“본인 말로는 자주 만나서 술도 한 잔씩 하는 사이라고 하더라구요. 사실 그래서 신라은행에서 추가 대출 안 받고 한성에다가 후순위로 넣었던 거였습니다. 근데 마침 부사장님은 해외 출장 중이시고, 한성에선 차일피일 지급을 미루고 있고······ 제가 정말 속이 아주 새까맣게 탔습니다.”

‘조성환 상무가 먼저였다.’

그렇다면 조성환 상무가 이 판을 설계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게 아니더라도 첫 삽을 푼 건 확실한 만큼 이 판에서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당연히 KMT도 그 시야 아래 두고 있을 것이다.

물론 조성환 상무의 관심은 몇십억짜리 모회사의 지분보다, 수백억, 아니, 수천억으로 뻥튀기 시킬 수도 있는 우회 상장 회사의 주식에 더 관심이 크겠지만.

만일 내가 KMT의 지분을 매입하고, 그 양이 상당해서 조성환 상무가 그 사실을 결국 알게 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긴, 좋은 반응일 리가 없나?’

생각지도 못했던 내 자산에 충격도 먹을 테고, 자신이 찜한 먹잇감에 똥파리가 앉은 느낌이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적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을 적으로 돌리게 되면 당연히 내 은행 생활도 피곤해질 것이고.

역시 엮이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냥 나중에 우회 상장사 주식이나 살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차후 변동정보에 우회 상장사에 대한 단서가 100% 뜰 거라는 장담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거 기다리다가 때를 놓쳐버릴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이 투자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이대로 놓치기엔 너무 아깝단 말이지.’

우회 상장이 이루어지면 KMT의 지분가치는 단숨에 열 배 이상 뛸 것이다.

그런 판이기에 욕심이 난다.

내가 무슨 무소유를 실천하는 성인군자도 아니고, 욕심이 안 날 수가 없다.

‘게다가 조 상무 무서워서 여기서 물러서면 너무 등신 같잖아?’

아무리 안락한 은행 생활이 중요하다고 해도, 조성환 상무 하나 때문에 눈앞에서 수백억을 포기하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게다가 믿는 구석도 있다.

‘행장님과 전무님이 내 편인데 지가 뭘 어쩌겠어?’

고심 끝에 결심했다.

이건 정면 돌파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이상, 미적거릴 때가 아니다.

나는 곧장 KMT의 등기 업무를 담당하는 법무사사무소를 찾아 주주명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상계 지점에 있는 대출 서류의 주주명부는 8개월 전 거라 최근의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별다른 변화는 없다.

그렇다면 서둘러야 한다.

가온RNC의 지분 인수부터 우회 상장까지가 돈줄의 노림수라면 당연히 KMT부터 먹으려할 것이다.

그 전에 최대한 지분을 매입해야 한다.

돈줄의 큰 걸음이 시작되면 분위기를 눈치 챈 주주들이 지분을 틀어쥐고 내놓지 않을 테니까.

‘매입할 수 있다고 해도 지금보다 훨씬 비싼 값을 요구하겠지.’

지금부터는 그야말로 시간과의 전쟁이다.

당장 내일이라도 그 돈줄이 본격적으로 계획을 실행에 옮기면 그만큼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좁아진다.

※※※

“요즘 얼굴 보기 너무 힘든 거 아니에요?”

장서연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서운한 기색을 한다.

할 말이 없다.

요즘 퇴근만 하면 KMT 주주들 만나러 다니느라 통 데이트할 시간을 못냈다.

오늘도 퇴근 후에는 주주들과 약속이 잡혀 있어서 이렇게 점심시간 잠깐 식사겸 데이트를 하고 있다.

“저 내일부터 기숙사 들어가요.”

“아······.”

벌써 그렇게 되었다.

마지막 학기 시즌.

“당분간은 공부만 할 거예요. 고3 때처럼 죽은 듯이 공부만 해도 공백 메우기 힘들거든요. 거기다 변호사 시험도 봐야 하고, 로펌 입사 시험도 있고······.”

“미안합니다. 하필 이럴 때 일이 너무 바빠져서······.”

“아니에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요. 그래도······ 많이 아쉽긴 해요. 복학 전에 성운 씨랑 정말 실컷 놀고 싶었거든요. 계획도 다 짜놨는데······.”

그녀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제가 나중에 두고두고 갚겠습니다. 이 빚 평생 갚을 테니까 이번만 이해해 주세요.”

“그거 프로포즌가요?”

“예? 아······.”

“농담이에요. 뭘 그렇게까지 당황하세요?”

내 표정이 재밌다는 듯 킥 웃는다.

그녀는 재밌다고 웃었지만 농담처럼 던진 말에 나는 순간 심장이 쿵 하는 느낌이었다.

요즘 밤늦게까지 주주들을 만나고 집에 들어올 때면, 유난히 집안이 삭막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고 있었다.

그래서 더 큰 집으로의 이사도 계속해서 망설이고 있었다.

더 삭막한 느낌이 들까 봐.

그럴 때면 장서연이 몸서리치게 보고 싶어지기도 했지만, 달려갈 수 없었다.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대부분 새벽 1시, 2시니까.

그런 상황에서 프로포즈냐는 그녀의 말을 들으니 순간, 그 삭막한 공간에 그녀와 둘이 있는 게 상상이 되고, 괜히 마음도 급해진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녀나 나나 아직은 때가 아닌데, 그걸 아는데도 왜 이렇게 마음이 살랑살랑거리는 건지······.

내가 결혼할 때가 되긴 되었나 보다.

어쨌든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장서연은 로스쿨 기숙사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지분 매입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들이 쉽게 먹을 수 있는 회사를 고른 만큼 KMT의 미래 가치는 긍정적이지 못했고, 그래서 조금만 웃돈을 얹어줘도 지분 매입은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그렇게 들어간 돈이 총 40억.

확보한 지분은 20%.

제3자 배정의 유상증자에 대한 동의사항 통지가 날아온 것은 그 무렵이었다.

증자대금은 90억.

증자 규모는 KMT 전체 지분의 100%.

3자배정 대상자는 투자자문사 대표 이정환.

즉, 이정환이란 사람이 KMT의 지분 50%를 획득해 최대주주가 된다는 것이었다.

이미 대표가 발 벗고 나서 사전 작업을 다 마친 후 진행한 일이기에 의결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대표를 통해 이번 증자가 이득이 되면 되었지 손해가 날 일은 아니란 것쯤은 다들 눈치채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그다음부터는 정해진 수순대로 흘러갔다.

투자자문사 대표 이정환, 그러니까 조성환 상무가 내세운 바지이거나, 그 뒤에 있는 돈줄의 대리인이거나 한 그 최대주주가 KMT의 재무담당 이사로 취임해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내 투자용 계좌에 20억이 남았다는 것.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남은 지분을 더 매입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유상증자 공고가 난 이후부터 지분을 팔겠다는 사람이 씨가 마른 것은 물론이고, 팔기로 약속한 사람들까지도 완전히 문을 닫아버렸다.

‘20억은 그럼 우회 상장사에 넣어야 하나?’

그러자면 적어도 가온RNC의 2천억 수주 공고가 나는 5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때가 되어야 KMT의 변동정보가 바뀔 테니까. 물론 그것도 그 변동정보에 우회 상장사에 대한 정보가 떠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만.

‘아니, 잠깐······ 그때가 되면 신용등급이 이미 최고등급인 A로 상승한 상태일 텐데, 상승 요건이라는 게 새로 뜨긴 하는 거야?’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그 예상이 빗나가기만을 바랐던 일이 결국 일어났다.

조성환 상무로부터 식사를 같이하자는 부름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전날 로비에서 했던 그 약속 때문일 리는 없다.

분명 대주주 명부에서 내 이름을 발견한 것이다.

< 식사를 같이하자는 부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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