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극상한 은행원이 너무 유능함 27
“신 과장님. 여깁니다.”
내가 손을 흔들자 신학규 과장이 ‘어’ 하며 손을 든 후 내가 앉은 테이블로 와 착석했다.
여긴 신 과장의 단골 가게인, 단술이라는 바였다.
경쟁 관계이기도 하고, 실제로 기업 하나를 두고 고객 유치를 위해 치열하게 붙어본 적도 있다. 그래서 오히려 서로의 애환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이이기에 이런 술자리가 아주 드문 편은 아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서글서글한 인상. 은행에 늦게 입사해 올해 나이는 43세.
나이 차가 있어서 그런지 오히려 고민거리를 털어놓기도 편한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야? 늘 내가 먼저 불러냈지, 하 과장이 이렇게 부른 적은 없었잖아?”
신 과장이 테이블 위에 놓인 물로 입을 축이며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딱히 궁금해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내가 왜 그를 보자고 했는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굳이 말을 돌릴 필요도 없다.
“어떻게 된 겁니까?”
“뭐가?”
습관적인 반문에 난 대꾸 없이 가만히 신 과장을 주시했다.
그러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찡긋하며 대답했다.
“윗선에서 내려온 지시야. 어느 정도 윗선인지는 나도 모르고. 우리야 까라면 까는 수밖에 없잖아.”
“아무리 윗선의 지시라고 해도 그렇지, 고객의 돈으로 손해까지 감수하면서 이런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게다가 기존 고객들 동요는 또 어쩌구요?”
“우리 고객들이 동요하는 만큼 그 못지않게 그쪽 고객들도 동요를 하겠지. 그리고······ 설마하니 아무렴 우리가 그런 대비도 없이 일을 진행했을까.”
엿보이는 자신감은 결코 허세가 아니다.
다 그만한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 윗선에선 어디까지 하길 원하는 겁니까?”
“충분히 만족할 때까지겠지. 근데······ 돌아가는 분위기로 보면 이게 그렇게 간단히 끝날 것 같지가 않아. 지금이야 우리 쪽 부담도 있어서 그나마 만기가 가까운 대출 건들만 쑤시고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라고는 나도 장담을 할 수가 없어. 그러게······ 좀 적당히 하지 그랬어?”
“예?”
“인터뷰 기사 말이야. 지점장한테 들으니까 그 기사 때문이라더구만. 윗선에서 제대로 빡이 돈 게. 솔직히 너무 자극적이었잖아. 나도 그 기사 보고는 하 과장한테 전화해서 욕이라도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 뭐, 나야 평소 하 과장을 잘 아니까, 하 과장이 그런 말들을 다 하진 않았을 거라 생각하고 말았던 거지만······.”
그래.
좀 자극적이긴 했다.
신 과장 말대로 내 의지와도 무관한 일이었고, 그 내용 또한 내 의도와는 상당 부분 다른 것들이었지만, 신라 쪽 입장에선 충분히 화가 날 만한 인터뷰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나 하나 밟자고 무려 시중은행이 제3금융권에서도 하지 않을 이런 치졸한 보복이라니? 아니, 치졸이 아니라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대체 그 윗선이란 게 누군지 얼굴 한번 보고 싶다.
“그러니까 결론은······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어느 정도 선이 될지도 모른다는 거네요?”
“뭐, 그렇지.”
“그러다 우리쪽 윗대가리들이 진짜 한 판 뜨자고 나오면 어쩌려고 그런답니까?”
“나야 모르지. 내 알 바도 아니고. 그래도······ 그런 걸 겁낼 신라는 아니잖아?”
간혹 이렇게 업계 1위 신라은행원으로서의 자부심이 드러날 때가 있다.
딱히 애사심이 깊은 것도 아닌데도 이럴 때마다 매번 재수 없다.
꾹 눌러참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 쪽에서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어든 공격이든 해야겠네요. 힘들게 발품 팔아가며 어렵게 잡은 거래처들 그냥 손 놓고 다 뺏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날 너무 원망은 마. 나도 은행원으로서 이게 잘하는 짓이 아니란 것쯤은 알지. 하지만, 알잖아? 우리야 까라면 깔 수밖에 없는 처지인 거.”
“아뇨. 원망 안 합니다. 그러니 신 과장님도 저 너무 원망 안 하셨으면 좋겠네요. 저도 일단 제 직장은 살리고 봐야 하니까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간 고민하던 것이 있었다.
1,200억 대출 사건 때도 보복 차원에서 한 번 생각했었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접었던 것.
그걸 해버리기로 했다.
내 그 위협조의 말이 허세라 생각했는지 곤란한 듯 멋쩍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한다.
“그래. 뭐······ 서로 하는 데까지 해보고, 그런 다음에는 결말이 어떻게 나든 그때는 여기서 다시 한잔하자고.”
※※※
신 과장과의 이야기를 끝낸 다음 날, 난 출근하자마자 보관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만기가 도래한 기업 대출 중에 변동정보가 뜨는 것들을 찾았다.
타닥 타닥 타닥 타닥······.
[판정보류]
[등급하락요건 발생]
[등급하락요건: 차입금 의존도 상승, 부채 비율 증가, 유동비율 감소.]
[기업신용평가등급 B→D 확정날짜: 202X년 9월 14일]
요즘은 경기가 경기다 보니 갑작스럽게 부도가 발생하는 일이 많다. 특히 건설 쪽은 SC종합건설의 경우처럼 살펴도 살펴도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렇게 변동 정보가 뜨는 것들 중에 내가 골라내는 것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
첫 번째, 대출 금액이 클 것. 신라에서 눈이 벌개서 달려들만한 수준으로.
두 번째, 내가 개입할 여지가 없을 것. 변수도 최소화 할 수 있을 뿐더러 양심적으로도 거리낄 일은 없어야 하니까.
세 번째, 하락 요건이 서서히가 아니라 확정 날짜에 급격히 이루어지는 것일 것. 그래야 신라에서도 당장은 하락 조짐을 알 수가 없을 테니까.
그렇게 만기가 가까워진 대출들을 골라낸 후 발품을 팔았다.
그 대출들이 서류상이 아니라 실제로도 내가 원하는 조건에 부합하는지 한번 더 확인을 한 것이다.
그렇게 걸러내고 걸러낸 것이 총 여섯 건.
대출 규모는 총 230억.
나는 그렇게 골라낸 그 여섯 건의 대출 서류들을 들고 지점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지점장 앞에 그 대출 서류들을 내밀었다.
“이게 뭐야?”
“곧 만기가 도래하는 대출들입니다.”
“어쩌라고?”
“만기 연장 거절하고 대출 종료하겠습니다.”
“뭐? 이걸 다?”
“예.”
내 말에 그제야 서류들을 살펴본다.
그러다 눈살을 찌푸린다.
“죄다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예. 아직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똥입니다. 심지어 이중에서 세 건 정도는 고의부도 가능성도 있습니다.”
고의부도는 은행원에게 있어 정말이지 똥 중에서도 설사였다.
작정하고 속이는 거라 파악을 하기도 힘들뿐더러, 손해를 피하기 어렵고, 또 그나마라도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압류한 시설이나 기계가 잘 있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하고, 그걸 또 직접 구매자를 찾아서 팔아야 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채무자를 잡기 위해 잠복까지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어디 그뿐이랴, 적반하장으로 협박도 당하고 배 째라 어깃장까지······ 아주 인간의 밑바닥을 보게 될 수도 있다. 더불어 은행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회의감까지.
“근거는?”
내가 조사한 것들을 설명했다.
하지만 빈약하다.
대부분 부도라는 결과를 중심으로 도출한 부도 징조들이기에, 그 중심인 부도라는 결과 없이 과정만으로 그 징조들을 설명하기엔 논거가 부족하다.
상관없다.
그간 논거는 좀 부족해도 한 번도 내 예상이 틀린 적이 없다는 걸 지점장도 잘 아니까. 게다가 1,200억 대출 사건을 막은 이후로 지점장에게 내 말은 이제 신앙이다.
“하 과장이 그렇게 판단했다면 다 맞기야 하겠지만······ 이거 정말 다 빼야 돼? 230억인데?”
음, 아직 신앙까지는 아닌 모양이다.
“운이 좋았습니다. 230억이나 뽑힌 게. 이번 분기에 아주 굵직한 똥들이 다 모여 있더군요.”
“운이 좋았다는 건 또 무슨 말이야?”
“며칠 전에 신 과장을 만났습니다.”
“신라 이화지점의 신학규?”
“예. 신 과장에게 듣자니 우리를 향한 공격이 간단히 끝나지는 않을 거라고 하더군요.”
“알아. 그 사이 또 한 건 더 빼갔잖아. 얼마나 들쑤시고 다녔는지 우리 거래처들 분위기도 죄다 뒤숭숭하고. 당하고만 있으니 이것들이 더 설치고 있어!”
본점 높으신 분들도 신라은행이랑 대놓고 맞불을 놓기는 부담스러운지 아직 이렇다 할 지시가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이대로 마냥 당하고만 있으면 피해만 커질 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건데?”
“제가 이 230억짜리 똥, 신라은행에 죄다 투척하고 오겠습니다!”
※※※
사실 투척이라는 단어는 좀 오바다.
“그러니까 하 과장. 대출 만기도 다가오고 있고, 우리 그동안 쌓은 신뢰도 있고 말이지. 그러니 금리 조정도 좀 하고, 한도도 좀 늘리고 하자는 거지.”
골조공사 하도급 업체인 일해개발 사장 조강진이다.
표정은 오만하고 말투는 거만하다.
사정이 아니라 요구의 뉘앙스.
하도급 업체 사장에게서는 좀처럼 잘 볼 수 없는 태도다.
얼마 전 명신 코퍼레이션의 김명신 대표도 딱 이랬었다.
‘먹고 튈 놈 주제에.’
나쁜 놈인 걸 알고 있으니 저 면상을 마주하고 있는 것조차 고역이다.
“신라은행으로부터 꽤 좋은 조건을 제시받았나 보네요.”
김명신 대표는 당황한 기색이라도 보였지만 조강진은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다.
“맞아. 신라은행으로부터 아주 좋은 조건을 제시받았지. 하지만 한성은행이랑은 그간의 의리도 있으니까, 나야 이왕이면 한성이랑 계속하고 싶지. 하 과장이 신라은행에서 제시한 것보다 조금만 더 우리 사정을 봐준다면 말이야. 신라은행에서 제시한 금리와 한도가 어떻게 되냐면······.”
“됐습니다.”
“응?”
“신라은행이 어떤 조건을 제시했는지는 이제 들을 필요가 없어서요.”
“······?”
전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주 쉽게 말해줬다.
“일해개발의 대출 만기 연장은 없습니다. 그동안 저희 한성은행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통보에 이 상황을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조강진 사장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용건을 다 마친 나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곧이어 조강진 사장의 성난 목소리가 사장실을 나서는 내 뒷머리를 때렸다.
“흥! 은행이 어디 한성 뿐인 줄 아나······ 나도 됐다 그래! 이래서 한성이 만년 2위인 거지. 통이 이렇게 작다니까. 신라가 왜 업계 1위겠어?”
믿는 구석이 있으니 당연히 붙들 생각도 없다.
나 또한 아는 것이 있으니 미련 따윈 없다.
나는 가방에서 일해개발의 서류 봉투를 꺼냈다.
내가 신라은행에 투척하기로 한 여섯 건의 대출 중 하나.
[등급하락 요건; 횡령 및 하도급 계약 불이행]
간단히 말해 공사를 하다 말고 먹고 튄다는 뜻이다.
그런 이유로 내가 고의부도를 의심했던 세 건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 그런 마음을 먹고 있는 건지, 아니면 차후에 그런 마음을 먹게 되는 건지, 또한 하도급 계약이 어떤 공사를 말하는 건지도 아직 파악이 되지 않았다.
결과를 알고 조사를 했는데도 파악이 안 될 정도니 신라에서야 당연히 짐작도 못할 것이다.
이렇게 간단히 한 건이 처리되었다.
다른 곳도 이은섭과 이창주가 같은 방식으로 대출 해지 통보를 하고 있을 것이다.
독대를 통한 조용한 통보.
신라은행이 우리가 대출 해지를 통보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도록.
당연히 우리에게 버려진 각 회사의 대표들도 굳이 그 사실을 신라에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미끼는 던졌으니 신라에서 덥석 물어주기만 기다리면 된다.
230억짜리 똥을.
설사까지 포함된 제대로 된 똥을.
그래. 투척까지는 아니다.
그저 조용히 떠넘기기다.
그편이 오물도 튀지 않고 안전하니까.
아니나 다를까, 신라은행은 마치 피맛을 본 상어처럼, 아니, 먹이를 발견한 피라냐 떼처럼 우리가 던진 똥을 향해 무섭게 달려들었다.
그래! 업계 1위 신라은행이여!
지금부터 let's 똥 파티다!
< 지금부터 let's 똥 파티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