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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극상한 은행원이 너무 유능함-22화 (22/50)

하극상한 은행원이 너무 유능함 22

‘근데······ 신라 쪽에선 몰랐을까?’

박성동이 우리 쪽으로 대출을 전환하려고 한 사실.

아무리 피해 규모를 줄이기 위해 쉬쉬하고 있는 중이라고 해도, 과장이란 작자가 끝내 범죄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해도, 정황을 포착한 상황에서 한 달이나 미적대고 있다.

말이 안 된다.

‘알고 있었던 거지.’

그럼에도 아무런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다.

기다린 것이다.

한성은행에서 돈이 들어오기를.

자신들의 관리 소홀로 인해 떠안게 된 손실금을 그렇게 간단히 한성에 죄다 떠넘기려고 한 것이다.

그 말은 곧, 그렇게까지 해야 할 만큼 손실금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쩌면······ 횡령한 돈으로 호화요트 같은 사치만 부린 게 아닐지도 모르겠는데?’

사치품이야 회수가 가능하다.

회수가 불가능한, 숨겨진 피해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

흔한 패턴이지만, 박성동 대표가 도박에까지 손댔다면?

그 피해 규모는 생각보다 훨씬 더 클 수도 있다.

‘진짜 옴팡 뒤집어 쓸 뻔했네.’

울컥 화가 치민다.

신라은행 측 입장이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그 바람에 한성은행이, 여기 장원 지점이 그 똥물을 죄다 뒤집어쓸 뻔했는데 화가 안 날 수가 있나.

‘우릴 완전 호구로 봤다는 건데······ 이걸 어떻게 갚아주지?’

물론 그 전에 보고가 먼저다.

이창동 대표와 전화를 끊은 나는 곧바로 지점장실로 향했다.

그런데 막 노크를 하려는데, 안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대체 왜 아직 지급이 안 되고 있는 겁니까? 이러다 박 대표님이 마음이라도 돌려먹으시면 그땐 지점장님이 책임지실 겁니까?”

지점장실 방음이 그리 나쁘지 않은데도 어찌나 소리를 꽥꽥 질러대는지 서후남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다 들린다.

‘지점장님한테 말하는 싸가지가······.’

노크는 생략한 채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서후남은 무시한 채 박 지점장에게 말했다.

“급히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렇잖아도 약속한 기한이 다 되어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던 박 지점장이 눈을 반짝인다.

“SC에 관한 거야?”

“예. SC종합건설에 대한 대환 대출, 전면 철회해야 합니다.”

순간, 지점장은 눈살을 찌푸렸고, 잠시 멍해 있던 서후남은 이내 버럭 소리쳤다.

“대체 그게 무슨 개똥 같은 소립니까!”

나한테 말하는 싸가지는 이제 그러려니 한다.

“대체 지금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거냐고요! 기어이 또 제 밥그릇에······.”

“서 대리는 좀 닥쳐!”

“하지만 지점장님······.”

“쫌 닥치라고!”

지점장의 일갈.

서 대리야 아무것도 모르니 저렇게 길길이 날뛰는 거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지점장은 지금 머리가 거의 터질 지경일 것이다.

가뜩이나 심란해 죽겠는데 옆에서 앵앵거리니 화가 날밖에.

그렇게 서후남을 닥치게 한 후 내게 묻는다.

“어떻게 된 거야? 전면 철회해야 한다니? 정말 SC에 문제가 있었던 거야?”

“수년에 걸쳐 공사대금 부풀리기를 해왔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불법행위도 자행해 왔구요. 그렇게 빼돌린 돈이 최소 300억 이상입니다.”

“무, 무슨! 말도 안 됩니다! 그럴 리 없어요! 제가 사전에 다 알아보고······.”

“서 대리는 닥치라니까!”

내가 이곳 장원 지점에서 근무를 시작한 이후로 지점장이 이렇게 화난 얼굴을 하는 건 처음 본다. 그 기세가 어찌나 사나운지 서후남이 움찔 놀라며 한 발을 뒤로 물러날 정도.

하지만 이내 화를 진정시키고는 내게 묻는다.

“확실한 거야?”

“이창진 대표가 하도급 업체 사장들한테 직접 들은 얘깁니다. 그리고 이건, 이창진 대표가 업체 사장들에게서 받은 계좌거래명세서들입니다.”

이창진 대표가 폰으로 보내온 자료를 지점장에게 보여주자 지점장이 ‘끙’ 앓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이건 그쪽 동문회 인맥을 통해서 들어온 정보입니다만, 신라은행에서도 이미 한 달 전부터 사건을 인지하고 내사에 들어간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박성동 대표가 그렇게 빼돌려 사 모은 부동산과 사치품들을 급하게 처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해외로 튈 거라는 말이야?”

“예.”

“대체······ 한 달 전에 사건을 인지했다면서 신라 쪽에선 왜 아직까지 검찰에 안 넘기고······.”

“말로는 손실을 줄이기 위해 쉬쉬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제 생각에는 박성동 대표가 우리 쪽에서 대환 대출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까······ 지들이 싼 똥을 우리한테 떠넘기려고 했다는 말이야? 이 개새끼들이!”

지점장의 입에서 이렇게 원색적인 욕이 터지는 것도 처음이다.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십니까?”

“어떻게라고 할 게 뭐 있어! 하 과장 말대로라면 우리한테 준 자료가 죄다 조작되었다는 건데, 일단 박성동 그 자식부터 바로 형사 고소 들어가고, 신라은행도 금감원에 고발해서 우리를 일부러 엿 먹이려 한 건지, 둘 사이에 무슨 다른 공모는 없었는지 알아내야지.”

“박성동이야 일단 그렇게 시작하면 줄줄이 엮여 나오긴 할 테지만, 신라은행까지 잡는 건 어려울 겁니다. 그 정도 대비는 하고 벌인 일일 테니까요.”

“그렇겠지.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잖아? 그놈들 한 짓이 괘씸하긴 해도 달리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괘씸한 정도가 아니다.

만일 이대로 1200억이 지급 되었다면, 연줄이고 나발이고 지점장과 서후남은 물론, 장원 지점 자체가 아예 갈려 나갔을 것이다.

그러니 내게도 신라은행의 행태는 정말이지 뚜껑 열리게 하는 일이었다.

“혹시 뭐, 생각해둔 거라도 있어?”

내 표정에서 뭔가를 읽은 모양이다.

사실 하나 있긴 하다.

다만 아직은 굳이 내가 나서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것뿐.

“일개 은행원이 거대 시중은행을 상대로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그보다 본점부터 가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 하! 식은땀이 다 나네. 하 과장 아니었으면 이거 어쩔 뻔했어?”

생각만 해도 아찔한지, 본점에 가야 한다면서도 몸을 의자에 더 깊이 묻는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서후남에 다시 분노가 폭발해 서류철 하나를 주워들어 신경질적으로 집어던졌다.

퍽!

“너 이 자식 대체 그동안 뭘 한 거야! 하 과장이 3일 만에 알아낸 걸, 한 달 동안 옆에 붙어 있었으면서 이런 거 하나 체크 안 하고 뭘 하고 있었냔 말이야!”

어깨에 맞은 서류철이야 아플 것도 없지만, 애초에 아픔을 느낄 만한 정신 상태도 아니다.

내 보고가 이어지는 동안, 처음에는 불신이었다.

이 인간이 또 무슨 모략질을 하고 있는 거냐라는 눈빛으로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었다. 하지만 사리 분별도 못할 만큼 나쁜 머리는 아니다.

점차 상황 파악이 이루어지는 만큼 서후남의 낯빛은 점점 죽어갔다.

그리고 지금은 완전히 얼이 빠진 채 아득한 절망감에 휩싸여 있다.

자기도 아는 것이다.

이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책임 전가하기 좋아하는 윗대가리들에게 믿을 만한 연줄 하나 없는 자신이 얼마나 써먹기 좋은 희생양인지.

아니, 그런 게 아니라도 이번 대출 건의 담당자로서 애초에 책임을 피하기가 어렵다.

손실은 면했으니 해고까지는 아니겠지만, 운이 좋아봤자 지방 좌천, 운이 나쁘면 공현수 과장을 따라 공항 환전소 같은 데로 가서 환전이나 해주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한 차장 못지않게 출세욕이 강한 서후남에겐 그야말로 지옥.

“그······ 럴리 없습니다!”

발악일까?

“그럴 리 없다구요! 하 과장이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여신협의회에서도 통과된 일이 아닙니까? 그깟 동문횐지 뭔지 따위가 대체 뭐라고······.”

“이거 안 보여? 이 자료 안 보이냐고! 이렇게까지 증거가 명백한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해!”

“하지만······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제가 직접 박성동 대표님을 찾아가서······.”

“닥쳐! 이젠 아예 머리도 안 돌아가는 거야? 지금 박성동 그 자식한테 범행 다 들통났으니까 도망치라고 언질이라도 주겠다는 거냐고! 너! 박성동한테 연락하지 마. 그 자식한테 연락 오더라도 아무 내색도 하지 마. 혹시 돈 지급 언제 되냐고 물으면 내일 중으로는 들어갈 거라고만 둘러대고. 애초에 신라 쪽으로 들어가는 돈 따윈 관심도 없을 테지만.”

아닌 게 아니라, 지난 3일 동안 박성동이 연락을 해온 건 서후남이 아니라 나였다.

그것도 1200억 지급 건이 아니라, 내가 변동정보 확인을 위해 미끼를 던졌던 그 가계 대출 건으로만.

당연히 나야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미루고 있었고.

지점장이 본점으로 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지점장실을 나가며 서후남에게 선고하듯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대부계 업무에선 손 떼. 맡고 있던 것들은 이은섭이한테 다 넘기고. 넌 당분간 창구 일이나 도와!”

한 차장을 들이받은 후 내게 했던 지시와 같다.

하지만 그때 내게 한 지시는 온전히 나에 대한 배려였지만, 이건 명백한 징계다.

그것도 앞으로 본점에서 정식으로 내려올 징계에 대비한, 사전 단계에서의 업무 배제.

그걸 알기에 이 순간 서후남의 얼굴은 불쌍할 정도로 처참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

다음날, 박성동은 경찰에 체포되었다.

금감원은 신라은행의 비리 사실 은폐와 공모 여부에 대해 조사에 들어갔고, 검찰도 움직였다.

그리고, 한 차장 사건 때와는 달리 이번 사건은 한성은행 언론 대응팀에 의해 각종 언론에 대대적으로 공표가 되었다.

[SC종합건설 박모 대표, 300억원 대 횡령 혐의로 긴급 체포. 해외 도피 시도 포착!]

[SC종합건설 박모 대표, 1200억원 대 신라은행 대출, 돌려막기 하다 한성은행에 덜미]

[한성은행, 정확한 판단과 빠른 대처로 2차 피해 막았다]

[신라은행, 공사대금 부풀리기 정말 몰랐나?]

[금융감독원, 신라은행 부실 대출 및 돌려막기 공모 혐의 조사 착수]

[SC종합건설 사태 일파만파. 이번 사태로 인한 공사대금 미지급 가능성 대두, 업계 연쇄 부도 우려!]

액수가 액수인데다 대표적인 시중은행까지 끼어 있어 연일 보도 되는 뉴스에 각종 포탈이며 SNS며 난리도 아니었다.

동종업계의 상도의를 깨트리고 한성에 똥물을 떠넘기려고 한, 신라은행에 대한 한성은행의 복수였다.

그게 한성은행이 은행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수였지만, 하루 아침에 직장이 날아갈 뻔한 나로서는 당연히 성이 안 찬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 흐지부지될 게 뻔하니까.

실추된 이미지마저 오래지 않아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져 버릴 테니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검찰이 조사한 발표에 따르면 이번 일로 신라은행이 입은 추정 손실액이 무려 420억이라는 것.

짐작대로 아주 제대로 도박에 미쳤었던 것이다.

그것도 거액의 골프 도박.

횡령의 시작도 바로 그 골프 도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럴 땐 한 마디 해주고 싶다.

‘사장님. 나이스샷!’

그렇게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가고, 본점으로부터 호출이 왔다.

나를 부른 건 김강철 전무가 아니었다.

한성은행 행장 유종원이었다.

< 사장님. 나이스샷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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