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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극상한 은행원이 너무 유능함-7화 (7/50)

하극상한 은행원이 너무 유능함 07

“하 대리. 일진이 삼원이랑 계약했다는 게 정말이야?”

공현수 과장이다.

지점장실 밖에서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점장이나 한 차장 정도는 아니지만 공현수 과장까지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일이니 저렇게 울상을 하고 있다.

“저희 손실은 없을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거래은행 안 바꾼답니다. 은행이란 곳이야 손실만 없으면 다 좋게 좋게 넘어가는 곳 아닙니까?”

지점장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해주자 그제야 울상을 펴고는 안도한다.

“아, 그래? 휴우······ 다행이군. 다행이야. 이거 참······ 난 또 나까지 징계 먹는 건 아닌지 잔뜩 쫄았다니까. 가뜩이나 마누라가 애 학원 하나 더 넣니 마니 하고 있는 판국에······ 하 대리 덕분에 살았어. 하하.”

이렇게 또 한 가정을 지켰다.

내가 대체 몇 명의 목숨을 구한 건지······ 이러다 어벤져스에서 스카우트 제의라도 받을 판.

‘음······ 그러고 보면 나도 초능력자이긴 하네.’

어쨌든, 그렇게 일과를 마감하고 퇴근한 나는 가람필방으로 향했다.

가람필방은 내가 방문 영업을 하던 곳들 중 비교적 거리가 있는 편이어서 2년 전 그렇게 가람필방으로의 발길을 끊은 후 이 동네는 처음이었다.

별로 바뀐 것은 없다.

세련되진 않지만 정갈한 정취의 가게들, 따뜻함이 느껴지는 골목길, 길 옆에 세워진 자전거 하나마저 평온한 일상의 풍경화가 된다.

참 많이도 오갔던 거리.

난 가람필방에 가기 전 근처 김밥집부터 들렀다.

‘또 공방에서 작업하느라 끼니를 거르고 계실 게 뻔하니······.’

유별나게 김밥과 국물어묵을 좋아하신다.

‘이제 그만 좀 와’ 라고 말하면서도 김밥과 국물어묵만 내밀면 금방 입가가 빙그레가 되시곤 했다.

명절 때 전화 정도는 드렸지만, 2년 만에 뵙는 거라 마음이 약간 들뜬다.

그렇게 도착하게 된 가람필방.

낡은 간판 아래로 전통 우리 붓, 붓 장인 직접 제작, 4대 백 년 가게 등의 익숙한 문구들이 유리창을 채우고 있다.

그런데······ 문이 잠겨 있다.

‘어딜 가신 거지?’

이 시각이면 가게 안 작은 공방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붓을 만들고 계시던 분이다.

‘예전엔 가게를 비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셨는데······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당장 손에 들린 김밥과 국물어묵은 어쩌나 하는 마음보다 장한실 사장에 대한 걱정부터 든다.

그때였다.

“어? 하 대리?”

가게 안을 살피고 있던 그때, 옆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

돌아보니 장한실 사장이 의아한 얼굴을 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나이 예순넷에 반백의 머리, 늘 입고 다니던 낡고 해진 황토색의 개량 한복······ 마르셨다. 주름은 더 깊어졌고 금테 안경 속으로 보이는 눈은 움푹 들어가 퀭하다.

단지 2년의 세월 탓만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내색 않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아, 장 사장님. 난 또 오늘 가게 안 하시는 줄 알고 이것들을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내가 짐짓 밝게 인사하며 김밥과 국물어묵을 흔들어 보였다.

웃지 않으신다.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뭐······ 근데, 어떻게 왔어?”

“오늘 저희 지점에서 사장님 대출 서류를 봤거든요. 가게에 무슨 일 있으신가 해서······.”

내 물음에 장한실 사장이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일단 들어가지.”

열쇠 꾸러미에서 가게 열쇠를 찾아 문을 연다.

가게로 들어서자 먹의 묵향과 붓의 목향, 한지의 종이 향이 한데 뒤섞여 은은하게 코끝을 살랑인다.

“앉지.”

짧은 두루마기 외투를 옷걸이에 걸며 그렇게 권했다.

응접용 소파에 앉은 나는 가져온 김밥과 어묵을 응접 테이블 위에 먹기 좋게 풀었다.

아무래도 드실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았지만.

“집사람이 좀 아파.”

뒤따라 소파에 앉으며 그렇게 말했다.

놀라지는 않았다.

이곳을 찾아오며 여러 가지 상황들을 가정해 보았고, 가족들의 병환도 그 가정들 중 하나였으니까.

“콩팥이 안 좋대.”

순간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신장······ 치료도 힘들 뿐더러 돈도 많이 드는 병 중 하나다.

사모님은 두 번 정도 뵌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건강해 보이셨지만, 대부분의 신장병이라는 게 전조없이 갑자기 찾아오는 침묵의 병이다.

“얼마나 안 좋으신 겁니까?”

“이식을 해야 한다더군.”

아마 내 미간의 주름이 조금 더 깊어졌을 것이다.

신장 이식은 기증의 경우 5년, 운이 나쁘면 10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지루한 기다림, 조일 틈도 없이 빠져나가는 돈, 가족들의 헌신과 고통······ 그 힘든 병치레를 어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혹시 가족 중에는 맞는 분이 없습니까?”

“우리 딸이 적합하긴 하다는데······ 근데 뭐, 집사람이 그건 한사코 반대를 하니까. 당장은 내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고.”

“따님이라면 로스쿨 다니신다는······?”

“응. 우리 딸이야 휴학하고 수술하면 된다지만, 이제 졸업까지 겨우 한 학기 남았는데 그럴 수는 없잖아. 적어도 졸업할 때까지만이라도 미루는 게 순리인데······.”

그렇게 중얼거리는 장한실 사장의 얼굴에는 다른 문제의 고민들이 중첩된다.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큰 수익을 기대하기 힘든 하향산업.

가계 지출을 단속함에 있어 가장 먼저 주머니를 조이는 것이 취미 항목인 만큼 팬데믹으로 인한 타격도 심각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 비싼 로스쿨 학비를 댄 것만으로도 빠듯한 상황일 텐데, 거기에 부인의 병환마저 겹쳤으니 그 사정이 어떠할지는 뻔한 일이다.

아마도 빚으로 버텼을 것이다.

그렇게 버티다 버티다 결국 우리 지점에까지 대출신청을 하게 된 것이리라.

하지만 그 결과마저도 부결.

“그런 사정이 계셨으면 저한테 먼저 연락을 주시지 그랬습니까?”

“그렇게 내쳐 놓고 자네에게 연락할 면목이 있어야 말이지.”

“다른 곳은 더 알아보셨습니까?”

“더 알아보긴 했는데 이게 참 쉽지가 않더구만. 지금은 딱 어디 하늘에서 돈벼락이라도 좀 떨어졌으면 하는 생각 뿐이야.”

그만큼 상황이 나쁘다.

이대로라면 자칫 사채까지 끌어 쓰게 될 수도 있다.

대강의 상황 파악을 마친 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장님. 혹시 로또 같은 건 안 하십니까?”

“로또? 그거 이제부터라도 한 번 해볼까?”

말씀은 저렇게 하셔도 아마 안 하실 것이다.

붓 쟁이가 요행이나 바라고 있으면 붓끝이 흐트러진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니까.

사실 내가 생각하는 장한실 사장의 이미지와도 안 맞다.

“그럼 주식은요? 채권이나······ 아니면 코인이라도······.”

“그런 건 할 줄도 모르지.”

“그럼 혹시 집안 어디에 굴러다니는 옛날 주식증서 같은 거라도 없습니까?”

“주식증서?”

“예. 선친께서 남기신 유품이라거나······.”

간혹 그런 경우가 있다.

집안에 굴러다니는 옛날 주식증서를 발견하고는 SNS에 자랑하는 경우.

물론 그 대부분은 용돈벌이 정도.

하지만 내가 주식증서를 생각한 것은 그저 그런 우연과 행운을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장한실 사장의 선친은 가람필방의 3대째 주인이기도 했지만, 상당히 명망 있는 서예가셨다. 특히 대형 붓글씨로는 대한민국에서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의 실력이었고, 기업 행사에도 자주 초대되곤 했다.

그렇다면 행사비로, 아니면 행사비와는 별개의 선물로 기업으로부터 주식증서 같을 걸 받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예전에는 기업 행사 선물로 주식증서를 주는 경우가 꽤 있었다고도 하던데······.'

등급변동 정보에 나와 있던 유동 자산 증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거기에 부합될 만한 건, 그나마라도 가능성이 있는 건 그것밖에 없다.

내 질문에 장한실 사장이 그런 걸 왜 묻냐는 표정을 하면서도, 내 목소리와 내 눈빛에 동조되어 본능적으로 어떤 기대감을 드러낸다.

“그게 어떻게 생긴 건데?”

난 미리 폰으로 캡쳐 해 두었던 옛날 주식증서를 보여주었다.

순간,

“어?”

장한실 사장이 흠칫 놀란 얼굴을 한다.

그 모습에 나도 쭈뼛 머리털이 곤두선다.

“있습니까?”

“색깔은 다르지만 아버지 유품함에 넣어둔 거랑 비슷한 것 같기도······.”

“그거 어딨습니까? 그 유품함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까?”

“당연히 있지. 그걸 어떻게 버려?”

그렇게 말하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공방으로 달려들어 간다.

선친의 유품함을 공방에 보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장 사장님처럼 선친께도 저 공방이 가장 뜻깊은 곳일 테니.’

그리고 부자간 가장 깊게 연결된 곳이기도 할 것이다.

“이게 맞나 모르겠는데······ 근데 이거 뭐 얼마 되지도 않는 것 같은데?”

공방에서 한 다발의 종이뭉치를 들고나오며 중얼거리는 장한실 사장의 얼굴에는 실망이 가득하다.

“다 합쳐야 3만원 정도?”

그렇게 말하며 내미는 주식증서에는 한자로 금일천일백원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모두 30장.

“이건 3만원이 아닙니다.”

“3만원이 아냐?”

“여기 모퉁이에 100이라고 적혀 있는 거 보이시죠?”

“어. 보이긴 하는 데, 이게 왜?”

“한 장당 100주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단지 30장이 아니라 3천 주의 주식이고, 모두 합하면 330만원입니다.”

“오! 그래?”

3만원인 줄 알았던 종이뭉치가 330만원이 되자 대번에 희색이 된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는 걸 참았다.

진짜는 지금부터다.

“게다가 330만원도 이 증서가 발행된 1993년도의 가격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더 올랐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

“예. 여기 고려제당이라는 곳이 아직 존재하거나, 하다못해 합병이라도 한 상태라면 아마도 이 증서의 가치는 330만원이 훨씬 넘을 겁니다. 자그마치 30년이나 된 주식이니까요. 물론 반대로 그 사이 회사가 망했다면 그저 휴지 조각에 불과할 테고요.”

“지금 확인이 가능한가?”

“예.”

확인하는 거야 어렵지 않다.

폰을 켰다.

조마조마하며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장한실 사장의 시선을 느끼며 검색창에 고려제당이란 단어를 찍었다.

괜히 나까지 긴장이 되는 기분에 길게 숨을 한 번 내쉰 후 엔터를 쳤다.

[고려제당]

18900 ▼ 200 (-1.05%)

떴다. 아직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천백원이었던 주식은 무려 열일곱 배가 뛴 18900원.

“그럼 이게 얼마야? 오천······ 육백······ 칠십만 원?”

“뭐?”

내 말에 장한실 사장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오천육백칠십만 원이라고?”

“예.”

나는 혹시 몰라 여의도의 증권대행부로 전화를 걸어 이 증서가 전자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증서인지부터 확인했다.

“된답니다. 유효한 증서라네요. 내일 저랑 같이 가서 전자 주식으로 바꾸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오천만 원이 넘는 돈이 생기자 얼굴에 화색이 만연하다.

놀랍고 믿기지 않는 중에도 어느새 입가에는 웃음이 걸렸다.

왜 아니 그럴까.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 같은 돈이다.

5천만 원이면 당장 급한 불들을 다 끌 수 있다.

부인의 치료비도, 한 학기에 천만 원이나 되는 딸 아이의 로스쿨 학비도 이걸로 해결이 된다.

하지만 난 그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내일 전자주식으로 바꾸게 되더라도 당분간은 처분하지 마십시오.”

“왜?”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일단 주식은 팔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당장 급한 돈은 이 주식을 담보로 제가 최대한 대출을 받아보겠습니다.”

내 말이 잘 납득이 안 되는지 잠시 의아한 눈으로 날 보던 장한실 사장이 이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하대리한테 다 생각이 있겠지. 어차피 하 대리 아니었다면 이렇게 큰 돈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고. 대출만 받을 수 있어도 나야 한 숨 돌리지.”

5천만 원······ 그래. 큰 돈이다.

하지만 그게 다일 리가 없다.

가계 부채 규모를 생각하면 5천으로 등급이 D에서 A로 급등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5천이 끝이 아니다.

유동 자산 증가는 어쩌면······.

'고려제당 주가의 폭등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부터 확인해봐야 한다.

난 급한 마음에 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사장님. 급히 확인할 게 있어서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아, 그리고······ 제대로 식사도 못 하신 것 같은데 여기 김밥이랑 어묵, 꼭 드세요. 이제 겨우 숨통이 트였는데 건강 해치면 안 되잖아요. 사모님 간병까지 하시려면 사장님부터 더 건강을 챙기셔야죠.”

김밥과 어묵으로 건강 운운하는 게 좀 그렇긴 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순대 간이라도 좀 챙겨오는 건데······.’

어쨌든 그렇게 가람필방을 나온 나는 곧바로 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이 시간에 하 대리가 무슨 일이야?”

그러고 보면 퇴근 후 지점장에게 전화하는 일은 처음인 것 같다.

“지점장님. 혹시 기업금융지점 기업금융팀에 아는 사람 있습니까?”

기업금융지점은 일정 규모 이상의 중소기업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곳이다.

조금 전 확인해보니 고려제당은 곡물 가공이나 사료 등을 제조하는 회사로 재정 상태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아직 한성이 주거래은행일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아니라고 해도 한성 정도라면 분명 대출 하나 쯤은 끼고 있을 것이고, 그 대출진행 서류는 기업금융지점이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기업금융지점? 기업금융팀은 아니고, 거기 부지점장이 내 동기긴 한데, 왜?”

“대출 서류를 하나 확인하고 싶어서요. 다리 좀 놔 주실 수 있겠습니까?”

“대출 서류? 왜? 무슨 일인데?”

“그건 차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음······ 알았어. 내가 내일 그쪽에 한 번 연락해 볼게.”

일진기업 일로 좌천을 막아준 덕분인지 크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흔쾌히 수락을 한다.

가슴이 떨린다.

이건 비단 장한실 사장만의 행운이 아니다.

호재에도 떡락할 수 있고 악재에도 떡상할 수 있는 게 주식이라지만, 고려제당의 대출서류를 확인할 수 있다면, 그래서 두 개의 변동 정보를 크로스 체크해서 내 짐작대로 폭등이 확실해진다면, 나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폭등이 100% 확실한 주식을 그냥 보고만 있을 만큼 바보는 아니니까.

< 5천만 원이 끝이 아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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