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5화
밀리고 밀린 여행 약속을 드디어 이룬 날.
“비 오네.”
“그러게.”
형제는 캠핑장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를 망연히 보았다.
왕!
강아지들만이 해맑게 꼬리를 흔들었다.
▣ 외전. 그 스트리머가 여행을 즐기는 법
“사람도 별로 없고. 비 와서 그런가?”
“그럴지도.”
“애들, 젖으면 추울 텐데.”
“음…….”
은우는 울타리 안을 대차게 뛰어다니는 강아지들을 지그시 보았다. 반려견 동반 전용 캠프장이라 개별 울타리가 있어서 그나마 편하다.
거기에 강아지들이 모이는 공터─개별 울타리와는 별개로 크게 펜스가 쳐진─는 덤이요, 근처에 수위 낮은 강도 있다. 개별 울타리 밖으로 내보낼 땐 입마개를 해야겠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다.
“일단… 텐트부터 치자.”
“응.”
건우와 은우 형제는 일단 가는 빗줄기를 뚫고 타프와 텐트를 설치했다.
차를 가져오느라 무려 세 시간이나 걸려 온 길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돌아갈 순 없다. 하물며 바깥으로 놀러 왔다고 좋아 날뛰는 두 강아지까지 있는데.
“이거, 여기다 박으면 되는 거지?”
“한번 봐 봐.”
그들은 설명서를 보고 차근차근 움직였다. 아무리 자동형 시대가 왔단들, 못 박기, 폴대 세우기 등은 사람이 스스로 해야 했던 것이다.
종종 헤매고 실수도 잦았지만, 나름 노숙 경험이 많은 한 사람 덕에 결과물은 제법 그럴싸했다. 중간에 건우가 실수하는 바람에 은우가 줄에 걸려 낑낑대긴 했지만 어쨌든.
인간들이 생고생하는 동안 강아지들은 공터에서 신나게 뛰어다녔다. 팔자 좋아 보였다.
“…출출한데 뭐라도 먹을까?”
그렇게 기본적인 세팅을 일단 마쳤을 때, 건우는 떨어지는 체력에 슬쩍 타프 아래 의자에 앉았다. 그 손엔 변명거리용 모기향이 들려 있다.
“그래.”
은우는 끌고 온 가방을 열었다. 그사이 모기향을 피운 건우는 그것을 타프 가장자리 즈음에 설치했다. 강아지들에게 닿지 않도록 위쪽에 설치한 건 당연한 일이다.
이어 폴딩 테이블을 펼쳤다. 그 위에 얹어지는 건 그들이 가져온 음료수와 과자들이다.
“하, 좋다.”
비가 여전히 보슬보슬 내리고 있어서 타프 그늘 밖으로 나가긴 좀 애매하다. 그러나 여우비인지, 햇살이 희미하게 비쳐서 어둡단 느낌은 안 들었다.
더위도 마찬가지다. 봄이 끝나고 여름이 다가오고 있음을 고려하면 딱 좋은 선선함이었다. 강아지들처럼 비 맞으며 놀면 좀 춥겠지만.
경치는 또 어떤가? 울타리 때문에 살짝 가려져 보이긴 하지만, 뒤편엔 얕은 수위의 강이, 그 뒤엔 또 절벽이 있다. 느긋이 자연경관을 구경하기 정말 좋은 곳이었다.
“이래서 캠핑, 캠핑 하는 거구나.”
그들은 본격적인 상차림에 앞서 과자를 오독거렸다. 부산 시내 여행을 할까, 아니면 캠핑을 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던 듯하다.
할 게 특별히 있진 않지만, 이 평화로움이 나쁘지 않다.
“애들 온다.”
“아이고.”
그때, 실컷 뛰어다니던 녀석들이 열어 둔 문 사이로 우다다 달려왔다. 형제는 서둘러 수건을 들고 녀석들의 몸을 닦아 주었다.
좀 더 힘이 센 민식이를 은우가, 상대적으로 얌전한 로건이를 건우가 담당했다. 어찌나 신나게 놀았는지 숨소리가 엄청 거칠다.
“몸이 좀 차가운데.”
“난로 틀어 줘.”
“응.”
은우는 챙겨 온 난로를 틀었다. 곧 뜨끈뜨끈한 바람이 흘러나오자, 강아지들이 후다닥 그 주변을 차지했다. 슬슬 추위가 몰려오나 보다.
“아구, 귀여워.”
애견인 건우가 그런 모습에 홀딱 빠지는 사이, 은우는 슬슬 저녁을 준비했다.
폴딩 테이블 위에 버너가 올라가고 버너 위엔 팬이 올라간다.
“파전부터 먹자.”
“어엉.”
비가 올 땐 파전이라던가. 편하게 구울 수 있는 부침개를 준비했더니 마침 비가 왔다. 전후가 바뀌었지만, 타이밍 자체는 좋았다.
은우는 능숙하게 전을 솔솔 지졌다. 싱싱한 쪽파를 기반으로 오징어와 새우, 잘게 채 썬 고추, 당근이 섞인 채 밀가루 옷을 입고 노릇하게 익어 갔다.
아무리 노력해도 얇게 구워질 수 없는 대신 두툼한 반죽 사이에 각종 재료가 뒤섞여 있는 해물파전이다.
그는 그것에 계란 물도 얇게 입히며 앞뒤로 바삭바삭 구웠다. 절묘한 태움 덕에 먹음직스럽게 지져진 전이 보기만 해도 크리스피한 식감을 주었다.
“으, 맛있겠다.”
옆에서 간장양념을 쪼물락거리던 건우가 밝은 얼굴을 했다. 병원에서 오래 살아 그런지 동생보다 편식이 심한 그였지만, 파전은 먹을 줄 알았다.
“막걸리 땡겨야지.”
정말 잘 먹었다.
“너흰 이거 못 먹어.”
술 먹을 때마다 주변에 폐 끼치는─그래도 그 덕에 형, 누나가 새로 생기긴 했지만─은우는 막걸리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대신 냄새 맡고 고개를 들이미는 두 강아지를 밀어냈다.
“자, 이거 먹자.”
오징어나 새우는 함부로 급여했다간 큰일 나므로, 은우는 그냥 준비해 온 간식을 주었다. 바싹 말린 오리 날개와 목뼈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둘 다 아주 좋아 죽는다.
“크.”
은우가 강아지를 달래고 오는 사이, 건우는 입가심으로 막걸리를 반 잔 쭉 들이켰다.
쿰쿰한 냄새와 함께 톡 쏘는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동시에 소주에선 느낄 수 없는 막걸리 특유의 묵직한… 그렇지만 부드러운 맛도 났다. 어떤 술을 먹어도 따라 할 수 없는 막걸리 고유의 맛이다.
물론 술을 벗어난다면 밀X스가 비슷한 맛을 낸다.
“술꾼이야? 전 먹어.”
“엉.”
동생의 채근에 건우는 서둘러 전도 먹었다. 바삭, 하고 소리가 퍼진 것은 입안일진대, 귀에서 그 소리가 내리꽂히듯 들려왔다.
이어 어쩔 수 없이 배어 나오는 기름과, 그런 기름을 묻어 버리고 들어오는 쪽파의 향이 들어찼다. 질긴 파 사이로 어쩌다 씹히는 것은 탱글탱글한 새우와 쫄깃한 오징어다.
정말 미친 듯이 기름진데, 정말 미친 듯이 맛있다. 건우는 입안에 깔깔하게 찬 기름을 간장양념 속 생양파를 건져 먹음으로써 지워 냈다. 그도 안 되면 막걸리 한 잔이다.
“천국이다…….”
텐트 치느라 개고생하긴 했지만, 그 대가로 이 자연 속에서 이 맛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건우는 행복해졌다. 이게 여행을 오는 맛이었다.
“아, 맞다.”
“……?”
“이거, 안 찍어도 돼?”
“어…….”
건우는 볼이 불룩해지도록 파전을 입에 밀어 넣은 동생을 보았다. 식탐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닌데, 햄스터처럼 입에 가득 채우고 먹는 걸 참 좋아한다 싶다.
“찍으면… 좋지?”
“…근데 왜 안 찍어.”
“까먹었어.”
은우는 파전 조각을 하나 더 입에 밀어 넣곤, 주섬주섬 드론 카메라를 꺼냈다. 적당한 높이로 띄워 두면 강아지들이 물어뜯으려 해서 아마 정수리가 더 많이 보일 각도로 찍힐 듯싶다.
“네… 안녕하십니까.”
브이로그VLOG. 라이브 방송과 별개로 일상을 영상으로 남겨 공개하는 걸 봄 초부터 시작한 은우다.
그 기간 동안 많진 않아도 몇 번이나 찍은 덕택일까. 그는 나름 익숙하게 카메라를 향해 인사했다.
“오늘은 형이랑 캠핑 왔습니다.”
그렇다고 그게 말 잘한단 소리는 아니다. 은우는 여전히 단문장으로 구성된 소개를 이어 나가며 마지막으로 현재, 파전을 먹고 있음을 알렸다.
일반인인 형이 찍히지 않도록 노력했기에, 아마 형은 팔다리 정도만 출연했을 거다. 목소리는 뭐, 어쩔 수 없다.
컹!
민식이랑 로건이는 당연히 전체 출현이다. 일부만 출현시키면 댓글 창에서 전쟁 난다.
“아, 맛있어.”
“한 장 더 구울까?”
“아니. 이따 밥 먹어야지.”
브이로그라고 계속해서 시청자들을 향해 말할 필요는 없다. 시작 부분이야 인사가 필요할지 몰라도, 결국 일상 기록이었다.
그들은 카메라만 띄워 둔 채 평소처럼 도란도란 떠들었다. 중간중간 뺏어 먹으려는 강아지들을 마크한 건 덤이다.
“근데 간장 고추, 너무 맵다.”
“그래?”
“넌 안 매워?”
“별로.”
은우는 남은 파전에 양파랑 고추를 얹은 후 간장을 살짝 찍어 먹었다. 양파의 아삭함과 고추의 알싸한 향이 퍼지면 느끼함은 온데간데없다. 싸 온 김치를 한 조각 곁들여도 마찬가지다. 바삭함 위에 아삭함이 얹어지며 기분 좋은 시너지를 낸다.
“아, 비 그쳤다.”
파전을 싹 비운 후, 은우는 접시를 닦기 위해 일어났다. 개수대가 근처에 있어 그곳으로 갈 심산이었다.
“바로 고기 굽긴 좀 그렇고, 좀 놀까.”
“그래. 그럼 물가?”
비가 그쳐서 해가 나온 상태다. 개수대에서 그릇을 얼른 씻고 온 은우는 슬쩍 챙겨 온 튜브를 들었다.
“물가에서 놀기엔 좀 추…울 것 같지만, 잠깐은 괜찮겠다.”
표정은 평소랑 같은데, 묘하게 들뜬 기색이었기에 건우는 거부하려던 말을 황급히 돌렸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허락이 내려지자마자 은우는 바람 넣기 작업을 시작했다. 금방 튜브가 부풀어 올랐다. 링 형이 아닌 매트릭스 비슷하게 생긴 풀 플로트 튜브다.
“근데 튜브가 필요할까?”
“글쎄?”
은우의 시선이 건우에게로 향했다. 건우는 그 시선의 정체를 2초 후 깨달았다.
“수영할 줄 알거든?”
“그래.”
“너, 너무 날 약골 취급 하는 거 아니냐?”
이유는 알겠는데, 그래도 분하다. 병원에서 나온 뒤로 집 외에선 약체 취급 받아 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은우가 하도 형이 약하다 약하다 이러니까 시청자들도 덩달아 그가 유리 인형 수준인 줄 안다. 건우로선 발끈할 수밖에 없는 사태였다.
“약골 취급은 안 했어.”
“뻥치지 마.”
이번 영상에도 어김없이 유리 인형설 나오게 생겼다. 건우는 발끈해서 외쳤다.
“이거 편집해! 반드시 편집해!”
물론 편집은 은우가 아닌 편집자가 결정하므로, 어김없이 송출될 예정이다.
“추우니까 30분만 놀아.”
“응.”
그들은 입마개 한 강아지들과 근처 강가로 움직였다. 비가 오긴 했지만, 물이 크게 불진 않았다. 민식이와 로건이가 자갈 위를 살살 걷다가 강가에 슬쩍 물을 담갔다 뺐다.
“어.”
생각보다 물이 차가운데. 건우가 심각한 얼굴을 할 즈음, 은우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후 거침없이 물에 들어갔다.
옷가지도 챙겨 왔고, 근처에 샤워장도 있던지라 문제없다. 그래도 옷이 젖어서 달라붙으면 귀찮다 보니 상의는 벗었다. 동생과 비교당하며 멸치 소리 듣기 싫던 건우는 당연히 챙겨입었다.
“생각보다 얕네.”
주인이 들어가자 강아지들도 첨벙첨벙 물에 들어가 헤엄을 쳤다. 그래도 너무 깊은 곳은 위험할 것 같아서, 은우가 직접 얕은 쪽으로 몰아 주었다.
춥지도 않나 보다. 건우가 떨리는 눈을 할 때, 은우는 본인만 좀 더 깊은 쪽으로 갔다. 은우 기점으로 골반까지 잠기는 지점이었다.
“뭐 해. 안 들어와?”
“아니…….”
추운데. 진짜 추운데. 건우는 미적미적하다가 결국 눈 질끈 감고 강가로 들어갔다.
“으아아.”
“…….”
건우는 시작부터 몰려드는 차가움에 비명을 질렀고, 은우의 눈은 약골 그 무언가를 보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몰랐지만, 편집자의 손에 거쳐 옆에 자막까지 달릴 짤방 하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 *
해가 떨어지고, 그들은 캠핑장으로 돌아와 저녁 준비를 했다. 캠프 이곳저곳에 설치한 랜턴이 은은한 주홍빛으로 주변을 밝혔다.
은우와 건우 사이에는 삼겹살이 자글자글 구워지고 있다. 삼겹살을 굽는 데 쓰이는 장비는 다소 가마솥 뚜껑처럼 생긴 그리들Griddle이다.
“으와, 기름 나오는 거 봐라.”
“거기에 김치 구워.”
그들은 노릇노릇 적당히 구워진 삼겹살을 가장자리로 밀고, 가운데 자리에 김치와 슬라이스한 감자를 올렸다. 진득하게 모인 돼지기름이 그것들을 튀기듯 익혔다.
컹!
“그래, 그래.”
온종일 인간들 식사를 탐내는 강아지들을 보며 은우는 미리 준비해 온 소고기를 꺼내 들었다. 지방이 적은 홍두깨살이다.
“인간은 돼지 먹는데, 개들이 소를 먹네…….”
애견인임과 별개로 이 상황이 웃긴지 건우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돼지고기는 안 좋다니까 어쩔 수 없지.”
은우는 고기를 양념 없이 구워 그릇에 담아 주었다. 한 그릇에 주면 싸우므로, 당연히 둘로 나눠 주었다.
“아구, 잘 먹어.”
“…배고팠나?”
평소에도 나름 줄 만큼 준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허겁지겁 먹는다. 오늘 너무 놀아서 허기가 진 거라고 보기엔 간식도 줄 만큼 줬다.
그냥 고기를 좋아하는 건가. 은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들이 먹을 삼겹살이나 구웠다. 잠깐 안 뒤집었다고 그새 살짝 탔다.
“나중에 볶음밥도 해 먹자.”
“응.”
너무 당연한 소리를 하는 형이었다.
“맞아. 너, 연애는 안 해?”
“연애?”
식사 자리가 거의 끝물에 다다랐을 무렵, 맥주 캔 3개를 비운 건우가 물었다.
그로선 형제 사이에서, 그리고 성인으로서 충분히 대화가 될 법한 주제를 꺼내 든 것이었지만, 문제는 은우였다.
은우는 형의 물음에 눈가를 살짝 좁혔다. 연애, 연애라…….
“음…….”
연애 하면 몇 달 전 했던 미연시밖에 생각 안 난다.
너무 충격적인 까닭에 밤새워 엔딩을 보았던가. 그렇게 본 엔딩도 하루에 한 명씩 희생되어 결국 등장인물이 죄다 몰살되는 것이었다.
진엔딩 조건을 아는 시청자 덕에 다들 부활시키긴 했지만, 그 충격이 가시진 않는다. 더구나 밝혀진 흑막을 보면 또 주인공을 너무너무 사랑했던 나머지 이런 일을 벌인 거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충격적이다.
그 게임을 무심코 떠올려 버린 은우의 표정이 떫은 무언가를 먹은 사람처럼 변했다.
“대체 뭘 생각하는 거야.”
“아니… 몇 달 전에 한 게임이 생각나서.”
“…아.”
건우도 해당 방송을 시청함으로써 간접 피해자가 됐었으니. 그는 단박에 이해했다.
“보통 연애는 안 그런 거 알지?”
“어.”
“…진짜 알아?”
“어.”
그는 담담한 동생의 반응에 갑자기 불안해졌다. 애가 허우대는 멀쩡해도 알맹이는 썩 덜 자란 상태다. 성숙하긴 한데, 감정적으론 여전히 미숙하다 이거다.
그런 녀석이 혹시라도 그 게임 때문에 연애라던가 그런 것에 편견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건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세상사 꼭 연애하고 살란 법은 없지만, 그것도 스스로 생각한 끝에 내린 결정이어야 한다. 해 볼 거 다 해 보고 ‘아, 난 이거랑 안 맞는다!’ 하는 것과 ‘그거 위험한 거 아니야?’ 하고 뭣 모른 채 못 해 보는 건 다르지 않은가.
“은우야, 연애란 건…….”
그는 혹시라도 동생이 그놈의 게임 때문에 연애란 행위에 공포를 머금었을까 봐 구구절절 설명했다.
미연시 장르에 편견을 가졌을지언정 연애에 대해선 별생각 없던 은우의 얼굴이 또다시 떨떠름해졌다.
결과적으로 그 걱정은 6년 뒤에 풀리게 되지만 말이다.
“불멍 할까?”
“그래.”
바베큐, 라면, 볶음밥까지. 그들은 제대로 저녁을 즐긴 후, 아직 8시밖에 안 된 시계를 보며 캠프의 밤을 장식할 마지막 단계를 짚었다.
로건이는 슬슬 졸린지 난로 옆을 꿰차고 있다. 로건이보다 좀 더 체력이 좋은 민식이만 울타리 내부를 뱅글뱅글 돌며 은우를 졸졸 쫓아다닌다.
“안 돼, 위험해.”
“자, 민식아 옆에 가 있자.”
비 때문에 연장해 놨던 타프를 걷어 내고, 그들은 밤하늘이 드러난 자리에 불멍 화롯대를 설치했다. 첫 캠핑이라고 너무 이것저것 가져온 거 아닌가 싶었는데, 그래도 다 한 번씩은 쓰고 가는 것 같다.
“오! 붙었다, 붙었다.”
곧 장작에 불이 붙었다. 앞쪽 랜턴을 끄고 뒤쪽 랜턴만 켜면 불멍 화롯대가 좀 더 선명하게 보인다.
“느낌 난다.”
다른 캠핑 사이트에서 켠 불이 은은하게 밤을 밝혀서 너무 어둡지도 않고, 그렇다고 도시처럼 밝지도 않다. 하여 어둠에 대한 본능적 공포 대신 자연이 주는 정적을 편히 누릴 수 있다.
민식이가 의자 발치에 자리 잡고 그 몸을 눕혔다. 강아지들 짖는 소리가 점점 잦아들어 갔다.
“형, 커피.”
“어.”
건우와 은우는 각각 커피와 코코아를 손에 쥔 채 의자에 앉아 화로를 멍하니 보았다.
삼각형대로 쌓인 장작 사이로 춤을 추는 불꽃은 위험한 듯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오묘한 아름다움이 있다. 시상식 한가운데 선 연예인의 옷자락처럼 화려하고, 깔깔대며 웃는 아이들처럼 천진난만하다.
가끔 불티 탁탁 티는 소리만 무도회장 속 정갈한 구두 굽 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좋다.”
건우는 뜨끈뜨끈한 커피를 한 모금 삼키며 무의식적으로 감탄했다. 불꽃을 응시하는 그들의 눈동자에선 또 다른 불꽃이 뛰놀고 있으니. 붉은 열기는 그들의 뺨을 부드럽게 간질인다.
“그러게.”
은우도 그 옆에서 조용히 대답했다. 호록 삼킨 코코아는 달콤함과 속을 데우는 따뜻함을 함께 선사한다.
평화롭고 안온하다. 집에서 느끼는 편안함과는 또 다른 감상이었다.
그들은 벌레 우는 소리를 들으며 몸의 긴장을 늦췄다. 의자에 기댄 몸이 나른했다.
“은우야.”
그 속에서 건우는 조용히 동생을 불렀다. 의자에 기대며 자동적으로 젖혀진 시선은 하늘을 담는다.
올려다본 하늘은 검고, 좀 더 검고, 그리고 빛났다. 겨울의 끝자락처럼.
“어.”
동생의 대답이 들려오니 이유 없이 목이 멘다. 아마도,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취해서 그런 것일 테다.
“다음에…….”
그렇지만 건우는 막힌 목으로 조용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잠긴 목은 평소보다 낯간지러운 목소리를 내니.
“다음에 또 오자.”
별이 빛났다. 하늘에서, 그리고 하늘을 담은 눈에서.
“그래.”
여름밤의 조금은 선선한, 그러나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아무것도 아닌데 도저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