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복귀 방송은 잘 마무리되었다. 아니, 이 정도면 잘 마무리된 축에 속하게 되었다. 적어도 라이브 방송 채팅의 절반이 욕으로 가득 차진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제법 순조로운 재시작일 터였다.
아무렴 해당 사건은 잘 모르고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다소 모호했다. 그리고 대중은, 하루에도 수십 개씩 터지는 사건 중 고작 하나 따위에 오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렇게라도 대중이 돌아선 게 다행일 지경이었다. 참으로 억울한 일이었지만.
하여 동생의 방송이 종료되는 것까지 전부 지켜본 후, 건우는 집 근처, 흡연 가능한 공원까지 가서 줄담배를 피웠다. 속이 갑갑해서 어쩔 수 없었다.
인터넷에서 쏟아지는 욕? 친구들 사이에서 ‘이 정도로 콩가루였던 거냐’ 하는 비난? 건너 건너 친하지 않은 이들이 은근슬쩍 보내 오는 시비?
그런 건 다 괜찮았다. 그는 정말 괜찮았다. 어차피 갚아야 하는 죗값. 대신 욕 받는 걸로 해결할 수 있다면 뭔들 못 듣겠는가.
그가 오롯이 감내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는 외려 반갑기까지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박 팀장이라고 하는 인간이 찾아왔을 때 하게 해 달라고 매달리지 않았을 거다.
그걸 은우에게 먼저 제안했다고 들었을 땐, 애한테 대체 뭔 소릴 한 거냐며 꽥 고함 질렀지만…….
하지만 그 인간이 질이 나빠 봐야 그 자신만 할까?
“후…….”
건우는 연기를 하얗게 내뱉었다.
동생은 왜 이 방법을 두고서도 그에게 물어보지 않았을까. 그가 미덥지 않은 인간인 건 알지만, 그래도 이런 건 해 줄 수 있는데.
그가 나서서 쓴소리 듣는 게 싫었나? 그렇지만 건우는 동생 혼자 듣게 하느니 같이 욕먹는 게 나았다. 그가 넷상에서 욕을 먹든 뭘 먹든 본업에 거의 지장 없기도 하고.
물론… 그건 그의 입장이지 동생의 입장에선 아니리라. 애당초 그도 은우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절대로 말하지 않았을 거다. 차라리 혼자 듣고 말지, 뭘 잘했다고 동생까지 듣게 하겠나.
더구나 해당 가정사가 밝혀진 지금, 사람들의 반응이 어떤가? 동정여론도 생겼지만, 그걸 비꼬고 놀리는 자들도 늘었다.
아무리 은우를 위해서였다지만, 그가 한 행동은 결과적으로 동생을 타인의 이야깃거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혹은 트집 잡을 빌미거리를 늘려 버렸거나.
막연히 여론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던 건우의 생각이나 바람과는 정반대가 돼 버렸다. 나아지긴 했지만, 부작용도 크다.
“푸우.”
숨인지 담배의 연기인지 모를 희고 검은 것이 희부옇게 길을 또 내었다. 겨울바람에 빨갛게 부르튼 손가락 사이에는 짧아진 담배꽁초가 까닥이고 있다.
…화났겠지? 가뜩이나 자존심 강해서 동정이라든가 가엽게 보는 시선이라든가, 전부 싫어할 텐데. 분명 화났을 거야.
건우는 담배를 툭툭 털며 생각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나서지 말 걸 그랬나. 이번만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나선 거였는데.
어쩌면 은우가 그에게 이번 일을 두고 말하지 않은 건 이렇게 될 줄을 예상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똑똑한 애니까 분명 알았을 거다.
그런데 형이 멋대로 저질러서, 놀림거리가 돼서, 그래서… 그래서 아무 연락도 없는 거겠지. 화가 났을 테니까.
건우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역시 그는 어떤 것에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한심한 사람이다.
“후우.”
그렇지만… 그렇지만 돌아가더라도 그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리라.
「아무도 와 주는 사람이 없어서, 저밖에 없어서, 혼자 죽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못 버텼던 것 같습니다.」
동생이 또다시 혼자 비난을 받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네가 혼자 당하는 거 보는 것보단 낫잖아…….”
건우는 짙은 숨과 함께 재를 툭툭 털었다. 한자리에서 얼마나 오래 피웠던 건지, 소담하게 담뱃재의 동산이 만들어져 있다.
추운데 슬슬 들어갈까. 건우는 빨갛게 변한 코를 킁, 하고 한 번 들이켰다.
담배를 계속 들고 있던 손도 시리다. 시리다를 넘어서 얼어붙은 듯 손가락 움직이기 힘들다. 수면 바지 아래 빼꼼 나온 발가락은 하필 슬리퍼를 신고 있어서 바람을 고스란히 맞고 있다.
“그 담배 피울 동안 공원을 돌았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
순간 귀를 파고든 목소리에 건우는 화들짝 놀랐다. 들고 있던 담배가 뚝 떨어지고, 쪼그려 앉았던 몸은 앞으로 기울어질 뻔했다. 겨울바람에 발갛게 변한 뺨이 한쪽으로 돌아간다.
“…너?”
“추운데 뭐 해.”
돌아본 곳엔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 서 있는 동생이 있었다. 진짜 동생이었다.
“너, 너…….”
건우는 순간 입만 뻐끔거렸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동생을 봐 버린 탓이다.
“네가 왜 여기 있어?”
“…나름 여기 살던 사람인데, 있으면 안 돼?”
은우가 넥 부분을 살짝 당기며 물었다. 넉넉한 쥐색 워머 폴라 티 위에는 특별한 외투가 없다. 춥지도 않은지 와인색 코트를 접어서 팔에 걸쳐 둔 탓이다.
“아니, 그건 맞는데…….”
건우는 그 태연함에 차라리 차분해졌다. 여기가 못 올 데도 아닌데 그걸 가지고 꼬투리를 잡을 순 없다. 왜 지금 이 시간에 여기에 있는지는 상당히 궁금하긴 하지만.
그는 일단 자리에서 일어섰다. 쪼그려 앉은 자세에 맞춰 펑퍼짐하게 접혔던 패딩이 본래 형태로 돌아왔다.
“그, 어쩌다 온 거야? 여기 올 일 없잖아.”
“…그냥, 항상 형이 먼저 집에 놀러 왔으니까.”
건우는 슬리퍼를 찍찍 끌며 다가갔다. 어디서 뭉근한 단내가 풍겼다.
“그, 집에 가면 안 좋은 꼴 볼 텐데.”
동생의 말이 기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그 기쁨과 별개로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
나선 건 그지만, 그가 욕먹는 원인은 은우다. 진짜 원인은 따로 있으나, 적어도 그렇게 생각할 사람이 둘은 있었다. 하여 은우를 반기지 않을, 싫어할 사람들.
“그, 주변 카페나…….”
건우는 집에 가자는 말이 나오기 전에 은우를 외따로 이끌려 했다. 가로등 불빛의 영역에 그들이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음.”
단내가, 짙은 단내가 났다.
“알아. 이미 보고 와서.”
가로등 불빛 아래 보이는 쥐색 티는 목과 가슴팍이 더 짙은 색으로 물들어 있다. 아찔할 정도의 단내가 계속 났다.
“…갔어?”
“집에 있을 줄 알았어.”
“…연락이라도 하지.”
“글쎄…….”
동생은 손으로 앞머리를 살짝 잡았다. 약간의 불빛이 비쳤을 뿐인데도, 그게 젖어서 얼어 버렸음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생각이 많아지면 무턱대고 찾아가는 게 버릇인가 보지.”
단내가, 너무 짙었다.
“…왜?”
건우의 고개가 떨어졌다. 후드득 떨어지는 건 아마 아롱진 참담함일 것이다. 분노조차 절망을 이기진 못했다. 심장이 쥐어짜진다.
“…왜 갔어?”
그는 제멋대로 움직이는 입을 막고 싶었다. 은우가 집에 갈 수도 있지, 그것에 이유가 필요한가?
“좋은 대우 받지 못할 거 알면서, 왜 갔어.”
이유는 필요 없다. 가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있을 뿐.
“왜 갔어…….”
건우는 눈가를 짚었다. 이러려고 나선 게 아니었다. 이런 걸 보자고 나선 게 아니었다. 그는, 부모란 작자들이 또 하나의 실수를 저지르게 만들려던 것이 아니었다.
은우가 상처받게 하려고 한 게 아니었다…….
“왜 형이 울어.”
“답답해서 그런다, 답답해서…….”
건우는 울음을 억지로 삼켰다. 그가 뭘 잘했다고 우나. 그가, 무슨 자격으로 울어.
“이거라도 입어.”
그는 제 패딩을 벗어 주려 했다. 은우가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어. 별로 안 추워.”
“건강하면 다야? 한겨울에 젖은 옷 입고 뭐가 안 추워. 네가 철인도 아닌데.”
“형보단 철인이겠지.”
“제발 그냥 입어.”
“그냥 코트 입을게. 패딩은 형 입어. 어차피 작아서 팔도 안 들어가.”
한사코 입혀 주려 하는데도 거절만이 전해진다. 그건 은우가 그를 배려하기 때문이겠으나, 건우는 그것에 오히려 상처를 받았다.
그 자신이 추위에 내던져지는 한이 있더라도 동생을 위할 수 있다면, 속을 가득 메운 자괴감이 조금이라도 덜어지련만. 동생은 그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카페라도 가자.”
“그래.”
건우는 동생이 와인색 코트를 걸친 모습을 보았다. 코트의 앞면은 역시나 본래 색보다 더 짙다. 하얗게 묻어난 것은 크림으로 보인다.
단내와 크림. 건우의 눈에 핑글 눈물이 돌았다. 첫째를 위한다며 사 왔던 프라페가 둘째에게 끼얹어진 모양이다. 당신들이 정말 그를 위했다면 그래선 안 되는 거였는데.
“또 오셨네요.”
카페 종업원이 비척비척 들어오는 이들에게 눈길을 쓱 주곤 고개를 적당히 숙여 주었다. 그러곤 곧바로 몸을 돌렸는데, 마감 시간까지 30분 남은 터라 정리에 한창인 모양이다.
“아메리카노요.”
종업원을 위해 가장 만들기 쉬운 걸 주문했다. 은우도 별생각 없는지 아메리카노에 시럽만 추가했다.
카페 내부 훈풍에 뜨끈한 커피까지 더해지니 금세 몸이 뜨뜻해졌다.
“끈적일 텐데.”
건우는 눈가만 벌겋되 표정이 사라진 얼굴로 읊조렸다. 죄책감과 분노, 절망감과 슬픔 등 온갖 감정에 물드니 외려 표정이란 게 사라졌다. 마치 온갖 색을 섞었을 때 그 끝은 검정뿐인 것처럼.
“괜찮아. 가서 씻으면 돼.”
은우가 얕은 숨을 뱉으며 머리를 매만졌다. 얼음을 갈아 만든 음료는 설탕이 들어가 단내와 끈적임을 함께 선물한다.
건우의 얼굴이 더 상처받은 이의 것이 됐다.
“…….”
“…….”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달그락거리는 청소 음만이 귀를 채우는 유일한 소리였다.
“형의 선택이니까.”
그리고, 그 깊은 적막 끝에 약간의 난처함과 다수의 무던함을 담은 목소리가 담담히 울려 퍼졌다.
“형의 선택이니까 존중해. 가능하면 나서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형이 선택한 거니까.”
더운데 들어왔으니 끈적이는 코트를 다시 벗은 이는 주홍빛 무드 등 아래서 입술을 달싹였다. 젖은 상태에서 겨울바람에 방치돼, 얼어 버리고 만 머리카락이 하얗게 빛났다.
“그런데, 다음부턴 그러지 마. 그러지 않아도 돼.”
“…나서는 거?”
“어.”
건우의 목에 무언가가 메였다.
“난, 형이 이번처럼 나서지 않아도 괜찮아. 그거 말하러 온 거야.”
까만 눈동자가 너무 검어서, 그저 검기만 해서, 목이 메었다.
“내가, 이번에 방해였을까?”
“그런 의미가 아니라…….”
“나는, 도움이 안 돼?”
건우는 손으로 눈가를 짚었다. 온후한 공기가 미처 녹이지 못한 손가락은 여전히 차갑다.
“은우야, 나는. 형은…….”
그는 목이 막혀 말을 더듬더듬 이었다. 동생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게 정말 말을 안 하고 있어서인지, 혹은 투명한 이명이 귀를 막아 버려서인지 모르겠다.
“아직도 너한테 미안해. 해 준 게 없어서 미안하고,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항상 미안해.”
“형…….”
“그래서 뭐라도 해 주고 싶었는데…….”
그는 울컥 솟아오른 눈물을 삼켰다. 입술을 꽉 깨문 채 주먹을 세게 쥐면 간신히 그것을 본래 자리로 돌려보낼 수 있다.
“정말로, 해 주고 싶었는데…….”
쿵, 쿵. 자괴감과 슬픔으로 가득 찬 심장을 그는 내려쳤다. 통증이 얕게 남았지만, 쥐어짜지듯 답답한 심장만 못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어.”
눈물이 기어코 손아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 224. 내가 앞으로를 생각하게 된 것처럼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어.”
은우는 떨리는 목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그가 쥐고 있는 커피 잔에선 따끈한 온기가 전해져 왔으나, 피는 그다지 돌지 않는 기분이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서…….”
우는 사람을 달래는 건 그의 특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에 처하는 이유는 뭘까. 그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걸까, 아니면 형이 그냥 눈물이 많은 걸까.
“혼자, 두지 말자고…….”
하지만 화가 나진 않는다. 오히려 가슴 안에 있던 불덩이를 쏟아 내고자 왔다가 되레 불만 꺼졌다.
“그냥, 그거라도 해 주려고…….”
그가 건우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은 건, 손해가 더 크다고 판단해서다.
건우가 나서지 않아도 은우는 이미 타격을 받은 상태고, 건우가 나섰을 때 얻는 건 결국 이미지 개선에 불과하다.
하물며 이미지 개선이란 건 먹히는 이들에게 먹히지, 먹히지 않을 이들에겐 영원히 안 먹힌다. 아무렴, 가정사가 불우하다고 폭력이 정당해지는 것도 아니잖는가.
반면 건우는 나설 경우 타격을 받는다. 넷상에서만이 문제가 아니라, 현실에도 영향이 미칠지 모른다. 건우가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알고 지내는 이 중, 건우가 그의 형임을 아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테니까.
그가 타격을 받아 흔들린 와중에 굳이 형까지 그 대열에 합류해야 할까? 은우는 아니라고 봤다.
더불어 담담히 사건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와 달리, 형은 상처받을 수도 있다. 결국 이 결정은 다각도에서 고심한 끝에 내린 판단인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이 나서기로 결정했다면 은우는 그것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었다. 형이 나섰을 때 그가 입는 손해는 고작해 봐야 그의 과거사가 밝혀지는 수준이 다이기 때문이다.
하나 그건 지금 밝히지 않아도 언젠간 알려질 일이다. 손해가 손해가 아니다.
반면 이미지 개선을 통해 지금 아니면 얻을 수 없는 이득은 확고히 존재했고.
은우로서 반대할 이유가 없다.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반대할 이유가 없었지만.
“형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했어.”
세상은 손익으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은우는 그걸 배웠다. 사람들이 그를 이유 없이 사랑하는 것을, 설명되지 않는 애정을 표하는 것을 보고 학습했다.
사실 학습이랄 것도 없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형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건우의 모든 걸 좋게 봐 주고 있었으므로.
“그래서 화가, 났던 것 같아.”
이유 없는 애정은 있다. 그러므로, 형이니까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형이 나서서 상처받을 필요 없는데, 나섰으니까.”
그것으로 말미암아 화가 날 수도 있을 거다. 아마도.
“잘못된 거야, 이건?”
“…아니.”
“그럼.”
은우는 그가 세웠던 가설에 아마도란 단어를 삭제하고, 방금 이어진 대화를 찰나간 곱씹었다.
“왜 방해라 생각했어?”
“나 때문에 안 들어도 될 비아냥까지 들었으니까…….”
“언젠가 밝혀질 부분이었어, 그건. 그리고 비아냥 들어도 별 신경 안 써.”
동정받는 건 기분 나쁘나,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언제나 말하지만, 은우는 남의 감정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얕보이거나 이용당할 때만 날카롭게 가시를 세우면 됐지, 그 이상은 귀찮았다.
“애초에 익숙하댔잖아.”
“…….”
무엇보다 가족을 두고 비웃는 말들은 너무 많이 들었다. 새삼스럽게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
“마지막으로,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 건 왜야.”
“그냥… 해 주는 게 없으니까…….”
은우는 형의 사고를 이해할 수 없어, 커피로 살짝 목을 축였다. 이걸 답답하다고 하는 걸까. 환장하겠다고 말해야 하는 건가.
“왜 해 주는 게 없어.”
그는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왜 화를 안 내냐던 것도 그렇고, 해 줄 거 다 해 줘 놓고 나는 도움 안 된다 말하는 것도 그렇고.
희수는 그보고 멍청이라 말했지만, 은우가 보기에 진짜 멍청이는 여기 있었다.
“이번 일에 나선 게 누구야.”
“…팀장님?”
은우는 형을 잠시 직시했다. 어물어물, 단어가 달라졌다.
“나……? 근데… 나 때문에 비아냥 들었고…….”
“그건 괜찮댔잖아.”
“나 때문에 한겨울에 물벼락도 맞았고.”
“그건 부모님이 한 거지 형이 한 게 아니잖아. 말없이 찾아온 내 잘못도 있고.”
“말없이 찾아온 게 왜 네 잘못이야.”
“그럼 내가 맞은 건 왜 또 형 잘못인데.”
그는 형을 빤히 보다가 얕게 숨을 뱉었다.
“형이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내가 듣고 싶었는데 듣지 못했던 말을 해 준 것도 형이고, 가끔 놀러 와서 같이 밥 먹어 준 것도 형이고, 내가 잠도 못 자고 빌빌거릴 때 집까지 와서 부축해 준 것도 형이고, 나한테 직업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된다고 했던 형인데.”
“그건, 다 해 주는 거잖아.”
“그 다 해 주는 걸 난 못 받았잖아. 형이 처음으로 해 줬잖아.”
해 준 것에 의미를 두지 않고 못 해 줬던 것에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그것에 무슨 뜻이라도 있나? 그것에서 얻는 게 뭔데?
“복귀 방송 봤어?”
“봤지…….”
“그럼 들었을 텐데. 형, 난 나아지는 지금이 싫지가 않아.”
은우는 시계를 봤다.
“혼자 죽었던 전생보다 희수가 함께해 준 학생 때가 좋고. 희수만 함께해 줬던 학생 때보다 형이랑 화해한 날이 더 좋고. 형이랑 화해한 걸 넘어서 더 많은 사람이랑 사귀고, 더 많은 걸 배운 지금이 더 좋아. 방송도 즐겁고, 복귀했는데도 싫어하는 사람보다 반겨 주는 사람이 많아서 좋았어.”
시간이, 제법 흘렀다.
“더 많은 사람이랑 친해지고, 형이랑 여행도 갈 수 있게 될 다음은 더 좋겠지. 이제 걸림돌이 될 만한 일은 더 이상 없으니까. 그냥 나아가기만 하면 되니까.”
이제 가야 할 시간이다.
“그러니까, 형. 괜찮아.”
은우는 코트를 걸쳤다. 단내가 코를 찔렀지만, 싫지 않았다. 그는 단 걸 좋아하니까. 그것이 어떻게 나게 됐는지는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으니까.
“앞으론 더 괜찮아질 거야.”
가족도 아니면서 응원하는 이들이 있고, 친구가 되었나 싶은 지지자들이 있고, 그가 무너질 것 같으면 손을 뻗어 줄 친구가 있고, 그리고.
“형이 도와줄 거잖아.”
가족이기에 손발 걷어붙이고 도와줄 것 같은 사람이 하나 있으니까.
“그러니까, 형도 이왕이면 다음을 봐 줘. 내가 앞으로를 생각하게 된 것처럼.”
은우는 코트를 걸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곤 벌건 눈가를 한 형에게 눈짓을 했다. 형이 얼떨결에 일어나 그를 종종 따라왔다.
카페를 나가자 찬바람이 뺨과 몸을 때린다.
“형.”
“…어.”
“여행 말인데.”
은우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비단 위로 촘촘히 박힌 별 가루가 기분 좋게들 웃는다.
하아, 하고 호흡하면 별의 자녀가 몸에 머금고 있던 별 조각들이 제 별에게로 돌아가고자 하얀 길을 내는 걸 볼 수 있다.
“갈 거지?”
그 숨결을 눈에 담으며 은우는 나지막이 고개를 돌렸다. 형이 얼빠진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한때는 불편했고, 한때는 이상했고, 한때는 고마웠던. 그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이상한 데서 멍청한 사람이. 하나뿐인 가족이. 형제가.
“…춥지 않을까?”
은우는 그 대답을 들으며 희미하게 웃었다.
“글쎄, 별로 안 추울 것 같은데.”
달력을 머릿속으로 셈해 보면 어느새 겨울의 가장 추운 날이 지나갔음을 알 수 있으니.
“곧 봄이잖아.”
이제 따뜻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