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223화 (223/233)

223화

아아아아─!

소프라노의 고음이 피아노 소리와 엮여 울려 퍼졌다. 그 속에서 전투는 아직 이어지고 있다. 50% 이하로 확고히 피가 떨어진 녀석이 숨소리와 함께 언어를 자아냈다.

“발버둥에는 아무 가치가 없으니.”

등부터 바닥과 충돌했음에도, 녀석은 석궁부터 발사하려 했다. 은우는 그것을 굳이 맞아 주지 않았다. 회피에 대해선 경험과 재능에 의거할 필요도 없었다.

널뛰기하는 감각 자체는 적응하지 못했을지언정 저 녀석이 언제 감각을 바꾸는지는 감이 잡혔으므로.

녀석은 석궁을 겨낭할 때 가속할 테고, 발사 직후 템포를 늦출 것이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옆으로 구른 은우의 몸이 새로 ‘묘지기의 가시 쌍검’을 꺼내 들었다.

“왜 싸우는가?”

마찬가지로 굴러 몸을 일으킨 추모자 역시 대낫과 석궁을 버리고 다른 무기를 집었다. 사냥꾼의 마검. 이 또한 쌍검이다.

“나는, 우리는 왜…….”

쩌엉!

묘지기의 가시 쌍검과 사냥꾼의 마검이 격돌했다. 비껴 찌르고, 돌려 베는 그 날붙이들은 허공에 은색과 금색의 궤적을 느리게, 또는 빠르게 남긴다.

근본적으로 한 사람에게서 파생된 까닭인가. 둘의 검로는 소름 끼치도록 닮은 면이 많다. 서로의 목을 노리고, 발재간을 이용해 마치 맹수처럼 약점을 뜯는다.

“아아…….”

쩡!

쌍검과 쌍검이 교차하며 힘겨루기를 했다. 시대의 추모자는 그 반동을 이용하고, 더욱 가속해 공중으로 떠올랐다.

은우의 손안에서 매끄럽게 돌아간 검이 공중에 뜬 추모자를 할퀴고자 했다. 혹은 착지한 것을.

챙!

허리를 뒤틀어 뒤를 노린 은우의 검이 추모자의 검신을 내려찍었다. 느릿해진 움직임은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그들을 느긋한 흐름 속에 묻었다가 칼날이 부딪침과 동시에 본래 속도로 돌아온다.

세상이 오롯이 찬란한 보석의 색깔로만 장식되어 간다.

은우는 그런 상황 속에서 결코 상대를 두고 눈을 떼지 않았다. 한 걸음만 삐끗해도, 조금만 실수해도, 한 번이라도 반응을 놓치면 사망하는 건 그일 것이므로.

하나 그렇기에… 그는 스스럼없이 그 금빛 궤적에 스스로를 엮어 넣었다. 몇 번이고 그가 우악스럽게 가드를 올린 탓에 무기의 내구도들은 뚝뚝 떨어졌으나, 큰 문제는 없었다.

그 무기들은 대신 그의 목숨을 살렸고, 그의 재능은 내구도를 제물 삼아 연명한 시간을 통해 분명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중이었다.

채챙!

부딪칠 때의 날카로운 소리가 점차 부드러워진다. 은우는 그의 감각을 현혹하는 빠름과 느림 사이에서 그의 특기를 발휘했다. 사실 특기랄 것도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 그는 무기에 도가 튼 사람답게 그것을 흘려 낼 뿐이었다.

동시에 진일보한다. 널뛰기하는 감각의 간극을 메우는 대신, 그것의 패턴을 익혀 예측된 시점에 나오도록 유도한다. 혹은 유도된다.

금빛, 은빛, 금빛, 금빛, 금빛.

은빛.

키잉!

공중에서 내려찍은 검과 은우의 검이 X를 두 번 교차한 형태로 맞부딪쳤다. 추모자가 밟은 것은 은우의 허벅지요, 검들이 매끄러진 이후 은우가 움직인 것은 짓밟히지 않은 다리다.

느려졌다가, 빨라진다.

은우의 발이 기어코 추모자의 머리를 걷어찼다. 이후 발차기로 인해 졸지에 보인 등을 검으로 가로막아 이어지는 공격을 차단했다.

힘 싸움에선 지나, 본인 무기에는 본인이 당하지 않는다. 은우는 몸을 틀어 녀석의 무기를 흘렸다. 문득, 폐가 꼴깍꼴깍 숨을 넘기기 시작하는 듯하다.

휙!

은우의 검이 허공을 가르고, 그 위를 추모자의 검이 따른다. 느리고, 빠르다. 은우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다 말고 꺾이며 위로 다시 올려 쳐진다.

V자를 그리며 치고 올라온 검은 강렬한 소리와 함께 추모자의 검을 올려 치니.

160도까지 벌어지는 가위처럼 서로의 검이 어긋났다. 이대로 미끄러트리면 상대에게 닿을 수 있지만, 자신도 상대의 검에 닿는다.

은우의 검은 역수로 쥐어진 채 추모자의 검을 막고자 하고, 추모자는 그것을 짓누른다. 하여 은우의 손은 머리께까지 올라가 있고, 추모자의 검을 막는 검신은 아래를 향해 고개를 숙인 상태였다.

움직임은 부하가 걸려 느려지고, 힘 싸움은 점차 강렬해지니. 검이 서로의 육신 위를 훑기 시작했다. 불똥이 튀는지 혹은 흩날리는 은빛이 별 조각처럼 보이는지는 분간할 겨를이 없다.

다만─

채앵!

은우의 팔이 X자로 교차하여 오른손은 왼쪽 어깨에, 왼손은 오른 어깨에 닿았을 때 추모자의 검이 아래로 떨어졌다. 은우가 검을 움직인 대로 대각선으로 미끄러진 그 검날은 은우의 양옆을 지나쳐 내려꽂힌다.

그것으로 결판은 났다.

푸욱!

파도처럼 몰아치는 빛의 가루 속에서 은우의 쌍검이 녀석의 손목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제가.”

서걱!

그대로 전진하여 팔을 가르다가 종내에는 그 상체와 목덜미를 그었다.

“이겼나요.”

잊혀진 시대의 추모자의 피가 끝내 0에 도달했다.

▣ 223. 왜 그렇게 살아

쩡그랭!

잊혀진 시대의 추모자, 케네스의 양손에서 검이 떨어져 내렸다. 은우는 그것을 헐떡이는 숨으로 보았다. 스태미나가 아슬아슬하게 바닥을 치며 호흡이 가빠졌다.

목울대가 억지로 움직였다.

“…부디 우리를 안식으로 이끄소서. 삶을 증오케 하는 운명으로부터 의미를 찾게 해 주소서.”

그사이 추모자의 육신은 점차 바스러지기 시작하니.

“비록 멸몰만이 기다릴지어도…….”

『HEIR OF ERA DESTROYED』

추모자는 그 말을 남기고 흩어졌다. 오색 가루 사이에 섞인 검은빛이 고상하게, 그러나 덧없이 흩날린다.

또한 그것이 전부 흩날린 자리엔 거대한 넥타르와 쓰고 있던 투구가 홀로 남아, 퇴색된 명화처럼 굵직한 음영을 자아냈다.

그 광경을 목도한 순간, 은우의 몸이 순간 휘청였다. 가까스로 균형은 잡았으나, 긴장이 풀렸던 것은 숨길 도리가 없다.

─아ㅏ아ㅏ

─ㅊㅊㅊㅊㅊㅊㅊㅊㅊㅊㅊ

─ㅅㅅㅅㅅㅅㅅ

─크아아ㅏ아악

─죽엿다ㅠㅠㅠㅠ

─이걸 해냅니다

─ㅅㅂ 형 내가 절대 사랑해ㅠㅠㅠ

─캬ㅑ카ㅏㅠ

─진짜 레전드다ㅠㅠㅠ

─복귀 선물 너무 오지잖아ㅠㅠ

─켄은 전설이다ㅠㅠㅠ

그는 넘어가려는 숨을 천천히 몰아쉬며 채팅을 보았다. 직접 상대하기야 감각이 널뛰기하듯 하여 어렵다지만, 화면에선 티가 잘 안 났을 텐데.

그래도 찬사만이 가득하다.

은우는 그것을 가만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보스전 때만 해도 잿빛 안개로 막혀 있던 길이 뻥 뚫린 채 그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시간 동안…….”

그렇지만 저곳은 지금 가지 않는다. 은우는 전진 대신 그저 꼿꼿이 선 채 투구 위에 손을 느릿하게 얹었다.

“많이 고민했습니다.”

커다란 손이 투구의 안면부를 정확히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멈췄다. 지금이어야 할까? 지금이 옳은가?

헤진 천이 미처 가리지 못한 손가락은 어두운 세계와 대비되어 유독 하얗다.

“방송을 계속할지, 말지.”

은우는 투구 속 눈꺼풀을 살금 내렸다. 얼굴이 강제로 공개된 상태지만, 벗지 않아도 좋다. 사람들은 아직도 그의 본 얼굴보다 헬멧을 쓴 이미지를 더 친숙해했다. 그러니 벗지 않아도 된다.

애초에 벗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었다. 나중에 써먹을 소재 하나가 일찍 줄어들 뿐, 여론이 달라지지도, 사람들이 그를 더 옹호하지도 않을 거다.

그러니 벗지 않아도 상관없다.

상관은 없다.

“그리고 결정했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기분 나쁘다고 생각한다. 타인으로 인해 공개된 얼굴이라니. 자존심 상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도, 그게 실제로 틀리지 않다는 것도 불쾌하다.

그러니까.

“오늘이 처음인 걸로 합시다.”

─?

─어?

─형??

─?

─설마?

투구가 살짝 들렸다. 그 아래로 하얀 목이 보이고, 근육이 도드라진 목선과 목울대가 이어 드러났다.

“떠밀려서 얼굴 공개 했다고 하면 자존심 상하니까.”

퇴색된 빛깔임에도 음영이 확고하게 진 턱과 매끄러운 턱, 얇은 입술이 투구 아래로 서서히 드러났다. 그가 지금껏 내보였던 얼굴은 뺨에 살을 덧붙인 편이었으나, 지금은 뺨과 광대 부분의 경계가 제법 짙을 정도로 말랐다.

“자의로, 오늘 처음 공개했다고 기억해 주세요.”

이어 서양인의 것을 훔쳐 온 것처럼 우뚝한 콧대가, 투구 뒤편의 까만 머리카락과 잘빠진 귀마저 나왔을 때.

“음, 이해하셨으면…….”

은우는 한 번에 투구를 벗었다. 눈썹 아래 움푹 팬 눈두덩이는 그림자와 함께 날 선 눈매를 더욱 짙게 만들고 있다. 그의 손은 머쓱한 듯 짧게 친 머리를 쓱 쓸어 넘긴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늘부터. 신입…은 아니고 경력직 스트리머, 켄입니다.”

채팅 창이 딜레이로 하얗게 물들었다.

* * *

<가족사 웅앵웅 ㅈㄹ..>

형이랑 친하게 지내는 거 비수들이 다 아는데 감성팔이?

살인미수범 취급 안 한다 ㄲㅈ

─너야말로 지랄 똥싸네 켄이 왜 살인미수임?

└사람 사지 작살내놓고 그게 살인미수 아님 뭐임?

└다섯이서 지들보다 어린 애 뺨때리고 하던 건 안 보임?

└뺨 맞는 거랑 그게 같음?

└그럼 하나가 발악하다 저지른 거랑 다섯이 지랄하다가 역으로 당한게 같음?

─부모랑 사이 안 좋댔지 형이랑 사이 안 좋다고는 안 했는데 왜 지랄임?

└쉴드범ㅉㅉ 대가리에 생각 좀 하고 살아라

└내가 쉴드면 너는 억까겠지 멍청아

.

.

<이건 좀 에반대>

그럭저럭 아무런 심정 없었는데 복귀하자마자 아무런 설명 없이 냅다 추모자사냥? 이건 좀....위험한데....

─가오충이 다 그렇지 뭐ㅋㅋㅋ

└가오도 실력이 덧붙임되면 그때부턴 간지다

─맞음....이번 판단은 좀 섣불럿음....설명부터 해줘도 좋았을 텐데

└켄이니까 가능할 것 같다가도 카롬이라서...

└근데 켄이 못 잡는게 있긴 할까?

─내가 보기엔 성공여부에 관계없이 은퇴하려는 것 같음 홀가분하게 사냥함 해보고 은퇴각 세우려는듯

└나도 같은 의견임....

.

.

<카롬 시발롬들아 뭘만들어낸거냐>

[클립 영상]

참고로 이거 아무 것도 안 건드린 무편집 영상이다

캐릭터들이 지멋대로 느렷다 빨라졋다 하는 거임

─??? 뭐임 이거?

─체력바 2개???????

─무편집인데 왜 속도 지멋대로임?

└2페이즈 들가니까 저지랄임...

└???

─?? 이걸?? 깰 수 있음??

└모름....

.

.

<이게.....켄이다.....>

2페이즈 간 거 실화냐? 거기에 피 거의 다 깎은 거 실화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진짜ㅠㅠㅠ

ㅠㅠㅠ그간 힘들었을 텐데 돌아오자마자 이런 대박적 선물 너무 고맙다ㅠㅠㅠㅠ

사냥 실패해도 졋잘싸니까 기죽지 말구 앞으로도 좋은 방송 계속 해주라ㅠㅠㅠ

─폭력범 새끼가 좋은 방송?

└시발 재판결과도 있는데 폭력범폭력범, 가해자두고 왜 피해자한테 지랄임?

└ㄴㄴ 먹금 모름? 무시하셈

─진짜 돌아와줘서 너무 고맙기만...

─켄이 좀 성과 낼 것 같으니까 돌변하는 것 봐라...이러니까 한국인이 글러먹었지

─제발 은퇴 좀 하지 말라 그래 아니 왜 이야기를 미뤄서 나 심장 떨려

└은퇴의 ㅇ자만 나와도 분노할 준비 됐음 어딜 감히 우리 비수들을 두고?

.

.

<켄 얼공 시바아리드>

아머ㅏ더ㅓ차닫바다ㅡㅡ다비다ㅣ

아츠ㅏ다바ㅏ버다바다ㅏㄷ

─존버는 성공했다

─기우제가ㅠㅠㅠ드디어ㅠㅠㅠㅠ

─얼굴이랑 목소리랑 개존똑

└켄...얼굴만은 비수를 져버리지 않으리라 믿었는데...

└얼굴, 목소리, 실력 다 가진 남자....

─와 신입 남캠!

─경력직 스트리머 ㅇㅈㄹㅋㅋㅋ

─이와중에 잘생겨서 더 기분 나쁘다....

* * *

“음, 일단, 감사합니다.”

은우는 잠시 게임을 끄고, 대기실에서 말문을 텄다. 게임 내에서 투구를 벗었듯 대기실에 앉은 그 역시 헬멧을 벗고 있다.

날카로운 눈매 속 눈동자는 카메라 초점에 맞추지 못하고 계속 굴러간다.

“여러 가지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손가락을 단단히 얽은 채 숨을 뱉듯 고마움을 전했다. 무엇에 감사한지는 잘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저들은 가십을 두고 의견을 내는 것에 불과하니까.

그렇지만 전해진 응원의 한 마디가, 지지를 표하는 태도가, 성원이.

무시하기엔 뺨이 뜨끈해질 정도로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일에 대해 말이 많은 것, 알고 있습니다.”

은우는 기철이 당부했던 말들을 머리 한편에 박아 둔 채 조심조심 말을 이었다.

평소와 달리 약자인 척하기, 가해자들을 두고 절대 약하다고 말하지 않기, 마치 당시 사건이 순수하게 실수였던 것처럼.

어쩔 수 없는 게, 이 사건은 조금만 실수해도 애매해졌다. 켄의 팬이라면 모를까, 그를 모르는 이들이 봤을 때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도보다 ‘저 체격’, ‘무력’에 더 집중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요행과 노력이 겹쳐 여론이 바뀌긴 했지만, 사람은 본디 사건 터진 것만 보고 해명은 잘 안 본다. 여기서 더 구실을 내줘선 안 된다.

이미 추모자를 잡은 시점에서 구실이란 구실은 다 내준 듯하지만 뭐, 그건 박기철도 말리지 않았다. 그러니 괜찮을 거라고, 그냥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제 피지컬이 그 사건을 두고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준다는 것도 압니다.”

은우는 말을 꺼내며 생각했다. 차라리 대본을 만들어 오는 게 나았을까. 그렇지만 그가 말주변 없는 사람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대본 만들면 티가 날 거다.

참고로, 당연하게도 기만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대본마저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전…….”

은우는 그의 사기적인 무력이 어디서 왔음을 피력해야 할지 잠깐 생각한 끝에, 문장을 끝맺었다.

“저라고 어렸을 때부터 강했던 건 아닙니다.”

그것은 해명할 수 없다. 영원히.

“공개한 사진을 보셨을진 모르겠습니다만, 그땐 작았습니다. 약했고.”

그러고 보니 유도부에 든 건 대체 왜였지? 은우는 그가 유도부에 들었던 일을 생각했다.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동아리에 들어가야 한다는 걸 듣고 희수랑 같은 동아리를 지원했다가… 인원수 과다로 떨어졌던 것 같은데.

남은 게 얼마 없어서 그냥 몸 쓰는 일이라도 하려 유도부를 택했던 것 같다. 그때의 그는… 다소 그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한 채였으니까.

“아무도 와 주는 사람이 없어서, 저밖에 없어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누군지 모를 사람을 기다렸다. 희수를, 혹은 다른 누군가를. 말려 줄 사람을.

그렇지만 없었으니까. 그밖에 없었으니까. 저것들도 믿는 구석이 있겠거니 했으니까.

“혼자 죽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못 버텼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만 더 견디면 됐는데.

“형이랑은… 안 친했습니다. 그때는, 형이 몸이 약해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거든요. 저는 병원에 잘 가지 않았고. 그래서 볼 일도, 친해질 일도 없었습니다. 형이 퇴원하고 나서야… 좀 기회가 생겼고요.”

은우는 가볍게 숨을 들이켰다.

“그러니까, 형에 대한 비난은 가급적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전… 점차 나아지는 지금이 싫지가 않아서.”

이번 발언에 채팅 창에서 그가 방치된 채 보내진 어린 시절을 의심하는 말들이 튀어나왔다. 형과 친하게 보인 게 그렇게 이상했던 걸까? 지금이라도 친해진 게 이상한 걸까.

“글쎄요.”

그는 눈을 가늘게 접었다.

“형은 크게 미워한 적 없습니다. 애초에 병원에서 살다시피 한 사람이라 미워할 이유도 거의 없었고.”

처음 가지는 가족을 끝까지 쥐어 보려 하는 게 그렇게도 이상한 일일까. 증오하는 것에도 힘이 들어 미워하기를 포기하는 게 이상한 일인가.

“그마저도 미안하다 말하는 사람이라서, 괜찮습니다.”

은우는 차분히 채팅에 대해 대답을 주었다.

나쁘네, 안 나쁘네, 참작의 여지가 있네. 당사자도 아니면서 제멋대로 평가하는 건 기분 나쁘나, 피해자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과도하게 욕하는 이들은 점차 줄어든다. 싸잡아 욕하는 이들은 있어도.

─유도부는?

─거긴 대체 왜 들어감?

─사람 죽이려고 들어간 거겠지

─욕할 거면 꺼지라고 좀ㅡㅡ

“…유도부에 들어간 건 별다른 의도가 없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제게 그런 재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이것은 거짓이 아니다. 중3 졸업 직전까지의 그에겐 싸움 재능이 달리 없었다.

희수에게 듣기로 체육 시간에 상위 점수를 놓친 적이 없다곤 하는데… 보통 체육 잘한다고 싸움까지 잘할 거라 생각은 안 한다. 그러니 그도, 주변인들도 그가 그런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곤 상상 못 했다.

“단지… 공부에 자신이 없어서 골랐던 것 같습니다. 그 이전에 스트레스 때문에 시험지를 전부 백지로 낸 적도 있었거든요.”

은우는 없는 말주변을 겨우겨우 짜내 있는 진실들을 엮어 냈다. 그러면 그럭저럭 괜찮은 변명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목을 긁적였다.

“이후엔… 그냥 공부만 했습니다. 동아리에 들 자신은 없고, 게임 같은 거 하기도 무서워서.”

─경험의 산물이라매

─ㄹㅇ 게임 안했던 거냐...

─조금은 했지 않을가..?

─나같음 무서워서 못할 듯...

─아니 잘 싸우는 거 다 경험의 산물이라며

─여기서 말 불일치 나오죠?

은우는 그가 미처 흘리고 만 파편 하나를 날카롭게 찌르는 시청자를 보며 손깍지를 더 단단히 쥐었다. 무릎과 손 사이에 낀 헬멧이 매끄러운 서늘함을 전했다.

“그걸 믿으셨습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킹직히 시간상 그렇긴 하지...

─아 흐발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3년만에 숙달할 거면 그냥 재능이라 해

그는 교묘히 그것의 진위 여부에 대해 말문을 흐렸다. 긍정하면 설명할 길이 없고, 부정하자니 그의 삶이었다. 좋은 삶은 아니었으나, 부정하고 싶진 않다.

─그렇다고 사람 팔다리를 부러트려? 이쯤되면 솔직히 피해자 아니지 않음?

─저런 말들에 속상해하지 마세요ㅠㅠㅠ

─켄님 힘내세요

─나 같음 잘 싸우는 거 자랑질도 안할 듯

─네 다음 자랑질할 거 없는 놈들

“글쎄요…….”

은우는 채팅 창에 나타난 분탕 종자─얼핏 타당한 의견처럼 보이기도 하는─를 보며 손가락으로 손등에 도드라진 굴곡을 쓸었다.

─채팅창 차라리 얼려두는 게 낫지 않나?

─피해자가 해명해야하는 상황 실화임?

─사람이 보스 하나 잡았다고 쉴드 쳐주는 니들이 레전드다

─진짜 증거 다 있는데 저러는 게 제일 웃김

─하여간 남 잘나가는 거 못보지ㅋㅋ

그동안은 그를 옹호하는 자들이 분개하여 그 대신 화를 내 준다. 예상했지만 정말 엉망진창인 채팅 창이다. 정말로 엉망진창이야.

정말 엉망진창이지만…….

─자기 잘못도 아니고 개새끼들이 먼저 잘못했는데 그 분야에 두각 좀 드러내면 안 됨?

─능력없는 찐따들 질투심에 지랄하는 거지 뭐

─그렇게라도 해야만 살 수 있는 거야..? 추하다....

─켄님 화이팅!

그게 싫지는 않다. 그들의 본의를 끊임없이 재는 그 자신이 가끔 답답할 뿐.

“저도 후회합니다. 좀 더 견딜 걸 그랬다고. 사람이 그렇게 쉽게 부러질 줄 알았다면, 좀 더 견뎠어야 했다고.”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그는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 사람들은 왜 그를 좋아할까. 피해자라곤 하나, 사람 하나쯤 쉽게 죽일 수 있음을 입증한 인간을 왜 좋아해 줄까.

무엇을 믿고 그를 사랑하나.

내 가족도 아닌데.

은우는 생각을 이으며 무의식적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가족도 아닌데?

그는 제가 떠올린 것에 대해 곱씹었다. 그사이 그가 모르고 내뱉은 말에 사람들이 반응했다.

─본인도 몰랐던 최강자;;;

─아니퓨ㅠㅠㅠㅠㅠ

─생각해보니까 켄 비수들 완전 약체취급인게?

─악플러들도 고소해서 돈 좀 벌자 형 합의금 달달함

─다박에서 지금쯤 고소시작했을걸?

─괜히 사람들 유리몸 취급하던 게 아녔음;;

─이쯤되면 건들지마자 톡 부러진다설 ㅇㅈ합니다

─쬐그맸을 때 그랫는데,,,몸까지 좋아졋으니,,,

…그런가? 은우는 상념을 잇다 말고, 그들이 한 말에 그가 외려 설득됐다. 사람들을 대면했을 때 유독 더 연약한 존재로 치부했던 건 그 때문이었나?

어쨌든 은우는 서둘러 말을 돌렸다.

“이제 와 그 사건을 두고 크게 하고 싶은 말은 없습니다. 그들이 옳지 않았다 해서 제가 잘했던 것도 아니고… 제가 그때 과했다 해서 이번 일이 옳게 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잊고 싶었습니다. 그때 일은.”

사람을 죽일 뻔했다는 사실도 잊고 싶었지만, 그 직후 들었던 아버지의 말만이 아직 선명해서. 그냥 그 일은 잊고 살았다.

불안감은 있을지언정 그게 이런 식으로 거두될 거라곤 역시 생각하지 않았고.

“설마 그쪽에서 일을 터트릴 거라곤 생각 못 했지만…….”

들킨다면 그냥 그의 유명세가 커져서, 사람들이 그를 알고자 일을 파내다가 알게 될 거라 여겼다.

─잊고 싶었대ㅠㅠㅠ

─주제는 잘 아네ㅋㅋㅋ왜 분수는 모름?

─진짜 이번 일 터트린 새끼들 인간도 아니다

─과했다는 거 알면서 방송 왜 함?

─시발 켄이 니들보다 국어수학 잘한다

─앗....켄 공부 못한댔는데

─쉿 조용히 해

─얼굴은 왜 가렷어요 그럼?

“얼굴……. 얼굴 가린 건 정말 별거 없습니다. 사람들이 무서워할까 봐… 그래서 가렸던 겁니다. 제 얼굴 가지고 말이 나오는 것도 싫었고.”

은우는 뺨을 긁적였다.

“객관적으로, 무섭게 생겼으니까.”

─?

─???

─?

─ㅖ?

“스트리머분 중에 제 맨얼굴 보고 도망친 분도 계신걸요.”

─????

─왜...?

─난 좀 무서울 것 같긴 해

─스트리머? 누구?

─2m면 뭐....

─얼굴이 아니라 체격 때문 아닐까..?

─대체 누가?

은우는 이번 사건이 있었음에도 레드바처럼 나름 편들어 준 세모도를 위해 입을 꾹 다물어 주었다. 그가 그때 일로 얼마나 미안해했는지 알기에 더욱 입에 담을 수 없었다.

그때, 후원 알림음이 띠링 울렸다. 아까부터 꾸준히 울렸던 소리긴 하지만, 이번 후원에 유독 시선이 가는 건 그 내용 때문일 테다.

「‘핥-쨕!’ 님이 ‘1,000원’ 투척!

형 주먹 양 뺨에 대고 위아래로 까닥거려봐」

은우는 격려나 험담만이 이어지던 후원 사이로 뜬금없이 끼어든 지시에 눈을 멀뚱거렸다. 그렇지만 욕도 아니고, 특별히 악의적인 지시 같지도 않았다.

그는 후원대로 주먹을 들어 양 뺨 근처에 댔다.

“이렇게… 하면 됩니까? 근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발 방금 후원 누구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전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존나 맹해ㅠㅠㅠㅠㅠㅠㅠ

─그 얼굴로 왜 그렇게 살아ㅠㅠ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유는 모르겠지만, 채팅 창이 좀 더 우호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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