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은우는 사람들이 해명을 요구하거나 안티들이 몰려와 욕설로 채팅을 도배하기 전에 방송을 종료할 수 있었다. 전부 다이아박스의 빠른 대처 덕이었다.
물론 그가 방송을 껐다 해서 해당 일이 마무리된 건 절대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방종에 영문을 모르던 사람들은 포털에 들어가 기사를 접할 수밖에 없었으니.
<켄 방송 왜 종료한 거임?>
히든보스 앞두고 왜 꺼ㅠㅠㅠ
나 족발도 시켜놧는데ㅠㅠ
─켄 학폭범이라는데?
└???
─쓴이 포기해라 켄 범죄자임
└뭐???
사건은 이제 시작이었다.
▣ 216. 공이랑 사가 섞이면 안 되는데
박기철은 자신이 방문할 때까지 인터넷을 보지 말 것을 권했지만, 은우는 그에게 들이닥친 일을 회피하지 않았다. 겁난다고 도망치면 대책을 세울 수 없는 법이다.
심지어 그에겐 해명을 해야 할 책무가 있지 않던가?
다이아박스가 있다고 해서 손 놓고 있다면 잡아먹히는 건 한순간이다. 자칫하면 그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했다.
그를 위해선 사건의 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했고.
다이아박스에서 전달해 준 정보로는 부족하다. 은우는 한 번 정제된 것보다 날것에서 얻는 정보가 좀 더 편했다.
<스트리머 켄, ‘학폭’ 논란… 사실일까?>
<켄, 과거 학교 폭력설 휘말려>
<인기 스트리머, 학폭 가해자?>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방해받았다는 짜증보단, 사건 파악을 위한 냉정으로 가슴을 채우며 기사 제목들을 확인했다.
고등학교 때라 한 순간부터 직감은 했지만, 역시나 그의 과거사가 터진 모양이다. 고등학교 때 선배들 사지를 아작 냈던 그 사건이.
은우는 조회 수와 추천도 높은 기사를 하나 집어서 읽어 보았다.
보통은 뜬소문으로 그쳤을 일이 왜 기사까지 갔나 했더니, 누군가가 증인으로 나선 모양이다.
[피해자는 도저히 그 학교를 다닐 수 없어 전학을……. 타인에게 고통과 트라우마를 만든 사람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어…….]
그에게 모든 죄를 떠넘기는 어투의 말은 참 교묘하다. 증인이 그리 말했는지, 기사가 그리 편집된 건지는 알 수 없어도.
다만, 증인의 정체는 명약관화였다. 반드시 그가 다녔던 학교의 일원 중 하나다.
피해자를 제삼자로 칭하는 걸 보면 당사자는 아닐 것 같고, 구경꾼이나 당시 소문을 들은 학생이 아닐까 싶다. 물론 당사자가 제삼자인 척 증언했거나 기자가 그렇게 썼을 확률도 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
[그는 도망치려던 사람마저 잡아 팔다리를 잔인하게 부쉈……. 심지어 눈을 파내려고까지 해…….]
특히 이 부분.
이건 당사자가 아니면 알기 어렵다. 눈을 파내는 행위는 얼굴 근처로 손을 가져다 대는 작업이 우선 되는데, 이게 남이 보기엔 얼굴을 할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탓이다.
당사자야 두 번 정도 시도를 당해 보면 알기 싫어도 알게 된다지만, 관객이 이걸 눈치채는 경우는…….
당사자에게 직접 들었거나 눈썰미가 정말 좋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다.
다만 후자는 가능성이 너무 적었다. 눈을 노린다를 떠올릴 수 있을 만큼 격렬한 싸움에 노출된 적이 있어야 하니까.
그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근데 그에게 덤볐던 인간들이 증인이 될 수 있나……? 범죄 이력이 있을 텐데?
은우는 곰곰이 기억을 더듬었다. 그들이 처벌받기는 했는지 잘 모르겠다. 일단 다중의 위력을 보였으므로 특수 폭행 처리됐던 것 같은데…….
기소유예 운운하던 것도 얼핏 떠오른다. 미성년자이고, 그들만 쥐어 터졌으니 제발 합의 보자던가. 애들에게 줄 그을 순 없다고.
확실한 건, 그 사건 후로 선배들을 학교에서 본 적이 없다. 전학인지 소년원에 간 건지, 아니면 단순히 그를 피해 다녔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음…….”
사실 그때 일에 관해선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본능이 먼저 반응해 버렸다는 것에 한 번. 상대를 정말 죽여 버릴 뻔했다는 것에서 두 번. 아버지가 한 말에 세 번. 경찰서에서 쏟아지던 시선에 네 번. 집으로 돌아갔을 때 쏟아지던 냉기에 다섯 번.
이렇게 총 다섯 가지 이유를 토대로 충격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상대가 무슨 판결을 받았는지는커녕, 그때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조차 기억이 불분명하다. 한동안 희수만 따라다니며 그녀에게 기댔던 것만 선명하다. 그다음엔 공부에 전념했고.
…희수에게 새삼 고마워졌다. 은우는 떠올린 김에 기프티콘을 결제했다. 이따 보내 줄 거다.
그는 다른 화면으론 기프티콘을 구매하며, 기사 쪽 스크롤을 아래로 더 내렸다.
댓글은 믿는 사람 반, 안 믿는 사람 반이다.
한창 이름 날리고 있는 스트리머의 일이니, 믿지 않더라도 재미 삼아 뛰어든 사람 또한 많을 거다. 사람은 으레 누군가의 추락에 열광하기 마련이니까.
다만, 이쪽은 약과다. 기사야 일반인의 접근이 더 크지만, 그의 팬덤이나 안티가 접근하기 좋은 커뮤니티는 흡사 불구경이었다.
ㅇㅇ│켄 인기 존나 높아졋네 보네ㅋㅋㅋ 이런 루머도 다 돌고
ㅇㅇ│ㅉㅉ 다박이 얼마나 까다로운데 이걸 알면서 들였겠냐?
ㅇㅇ│어쩐지 싸움 존나 잘하더라ㅉㅉ 폭력배 새끼 구독 안 한다
ㅇㅇㅇ│이런 일 하루이틀임? 볼 애들은 다 본다
00│ 헬멧쉑들 이제 들보이겟누
ㅇㅇ│하 시발 왜 하필 이 타이밍에 터져서;;
kulu│사람을 패? 인간임?
ㅇㅇ│형, 아니지?
ㅁㅁ│사실파악도 안하고 꿱꿱거리는거 봐라ㅋㅋ
ㅇㅇ│스포) 켄이 켄하면 또 꺅꺅 거릴 거다
ㅇㅇㅇ│눈깔 파내려고 했다는 것 보소 싸패아님?
은우는 멀뚱멀뚱한 얼굴로 그 글자들을 보았다. 박기철 말로는 일이 터져도 문제없을 거라더니. 그건 아닌 모양이지.
하긴, 폭력을 반가워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저들의 반응을 이해한다. 저기 누가 한 말처럼, 왜 하필 이 타이밍에 터져서 그가 기대한 싸움을 초 쳤는지는 좀 열받지만.
그는 뒷목과 복부를 긁적였다. 왜인지 조금 간지러웠다.
띠롱-
그사이 문자는 엄청나게 쌓였다. 은우는 그것들의 확인에 앞서 일단 소파에 앉았다. 푹신한 소파가 그의 몸을 휘감았다.
톳톳톳톳-
집 안 구석구석을 탐방하던 강아지들이 느긋하게 다가왔다. 그의 발치는 로건의 차지고, 민식이는 소파에 올라와 그에게 머리를 기댄다.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은 감히 중대형견답다 말할 수준이었다.
그는 그런 민식이의 목과 등을 손아귀로 쓸어내리며, 대화 창으로 들어갔다. 여러 사람을 동시에 응대할 자신은 없으므로, 하나씩 차근차근 해치울 요량이다.
『희수> 야, 괜찮냐.』
가장 먼저 확인한 건 희수의 메시지였다.
첫 번째로 연락한 레드바나 다른 스트리머들은 한차례 미뤄 두었다. 최초로 연락한 사람이지만, 대화가 길어질 것 같았다.
박 팀장님 쪽이야 ‘알겠습니다.’ 하나만 보내면 됐지만, 저들에겐 아마 해명이 필요할 테니까.
“어, 어. 괜찮아.”
그보다, 이 시간에 잘도 사건 터진 걸 알았다. 형은 아직 모르는 것 같은데.
은우는 여상스럽게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게, 이 사건의 절반쯤은 그의 어리석음이 불러온 결과였다. 그의 신원이 알려질 수 있다는 걸 간과한 그의 실책이란 거다.
다행히 탄산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자각시켜 준 뒤라 당혹스러움은 없다. 비록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가 바뀌었다곤 하나, 수위가 높은 폭력을 저지른 것도 맞는 말이니 억울할 것도 없고.
그러니 태도도 평소와 같을 수밖에 없다.
『희수> 아, 감정똘추 새끼라서 믿음이 안 가는데.』
“…가차 없네.”
그는 두 강아지를 슬슬 쓰다듬었다. 그 무게와 온기가 묘한 위안을 가져다주었다. 아, 슬픈 건 아니니까 위안보단 안정이 더 정확한 말일까?
혼자 있었으면 조금 상념이 길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민식이의 배를 문질거렸다. 따끈따끈하니 귀엽다.
『희수> ㅅㅂ 진짜 괜찮은 거 맞음?』
“진짜 괜찮은데……. 아, 기대하던 보스랑 못 싸워 본 건 좀 아쉽긴 하다.”
기회가 영영 사라진 건 아니라지만, 본래 사건과 기분의 흐름이란 게 있다. 한 번 끊고 하는 것과 이어서 터트리는 건 전혀 다르고.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희수> …어, 그래…….』
반응이 이상한 느낌인데.
은우는 고민하다가 노트를 들어 민식이와 로건이 사진을 찍었다. 그러곤 기프티콘과 함께 보내 버렸다.
“귀엽지 않냐.”
『희수> 귀엽네』
“반응이 좀 이상한데. 큰 개 싫어하던가?”
『희수> 아니 ㅅㅂ 깊티는 왜.』
『희수> 인간보단 멈머를 더 좋아하거든?』
은우는 희수의 답에 눈매를 좁혔다. 희수가 인간보다 안 좋아하는 건 별로 없다. 그런고로 이건 좋아한다는 의미보단 싫어하지 않는단 쪽에 가까울 거다.
고양이파라서 그런가? 그치만 애들, 진짜 귀여운데.
『희수> 어휴, 모르겠다. 개들이랑 노는 게 훨씬 낫긴 하지. 깊티는 ㄳ』
『희수> 아니, 근데 ㅅㅂ 다박 그 새끼들은 일을 어케 하길래 사건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지금까지 안 터진 게 다박 덕일 수도 있지.”
『희수> 염병, 부처 나셨네.』
『희수> 됐다. 이참에 좀 쉰다고 생각해라.』
“어.”
『희수> 괜찮은 것 같다고 기사 막 보지 말고. 무통증이라고 병 안 걸리는 거 아니다』
“…어.”
역시나, 희수는 이야기를 너무 길게 끌고 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걱정을 툭 던지고 가는 건 참 그녀다웠고.
『희수> 근데 저번에 그, 그… 고양이 가족은 안 놀러 오냐?』
그사이, 고양이파 희수가 슬쩍 물었다. 담 위를 거닐던 고양이 가족을 찍는 데 성공했던 날, 사진을 보내 줬더니 그 뒤로 이렇게 몇 번 찔러보고 있다.
“아, 있어. 민식이랑 로건이가 용케 안 물었더라.”
『희수> !!!』
담 위만 거닐던 녀석들이 어느 날 마당까지 내려왔던가. 민식이랑 로건이가 가만히 있으니 덜 자란 새끼들이 솜방망이로 톡톡 치고 다니는 게, 사람 심장에 참 안 좋았다.
귀엽긴 귀여운데, 물릴까 봐 얼마나 심장 졸였는지. 민식이와 로건이 훈련 담당 조련사께 찾아가서 괜찮은 거냐 질문도 드렸다. 결과적으로 괜찮을 것 같다는 판단이 내려지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몇 번 마당을 침범해 온 녀석들은 이제 밥까지 몇 번 얻어먹고─정확힌 강아지 사료를 뺏어 먹고─가는 중이다. 정말 뻔뻔스러웠다.
『희수> 줘.』
『희수> 주세요.』
“잠깐만. 찾고 있어.”
은우는 강아지 사료나 간식을 뺏어 먹는 고양이들 사진과 고양이들이 강아지들 위에 얹어져 자는 사진을 보냈다.
『희수> 허억.』
심장 부여잡는 이모티콘이 돌아왔다.
『희수> 근데 개 사료 먹어도 되나……?』
“찾아봤는데, 소량은 괜찮대. 그래도 좋은 건 아니래서 따로 고양이 사료도 샀어.”
강아지들이 애들 거 뺏어 먹을까, 캣 타워도 사서 그 위에 고양이 사료를 얹어 놨다. 매일 사료 그릇을 확인해 본 결과, 이틀에 한 번 간격으로 놀러 와서 그릇을 비우고 갔다.
『희수> 귀여워.』
맞다, 귀엽다.
컹!
“…그래. 너희가 더 귀여워.”
그렇지만 고양이 가족보다 민식이랑 로건이가 좀 더 귀엽다. 은우는 강아지들의 이마에 얼굴을 비볐다. 따끈따끈하다.
『희수> 됐고, 푹 쉬어라.』
그사이 고양이 사진을 뜯어 간 희수는 그 문자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은우는 목덜미를 쓸다가 대화 창을 전환했다. 레리나 레드바, 슬리퍼, 산호, 심지어 빌리까지.
더불어 얕게나마 친분이 쌓인 이들이라면 하나씩 문자를 보내 온 상태다. 다른 채널 소속인 검은양이나 세모도 등마저도.
그게 그들의 믿음 때문인지, 다박의 재빠른 대처 때문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렇지만 문자 창을 꽉 채운 메시지 목록을 보고 있자면, 가슴 한구석이 간질간질해진다. 목을 건드리던 때와는 또 다른 간지러움이다.
나쁘지 않다. 좋다.
어쨌거나 형에게 문자가 안 왔으니, 나머진 온 순대로 응대하면 될 것 같다.
은우는 고민하다가, 일단 남매 두 사람을 초대해서 창을 띄웠다. 솔직히 말하면 따로 상대하기 힘들었다. 아무리 나아졌다 한들, 아직 사람 대하기 서투른 자의 한계였다.
『나> 걱정 감사합니다.』
『레리 님> 우ㅜㅜ 정말 심란하실 텐데 오히려 저희 문자가 힘들게 하는 건 아닌가 걱정되네요ㅠ 켄 님, 힘내세요! (파이팅하는 이모티콘)』
둘 중 답장을 먼저 보낸 건 레리였다. 그녀는 팔짝 뛰며 그를 비호했는데, 말투를 보아 이번 일이 100% 루머일 거라 믿는 것 같았다.
『레드바 님> 행님이 그럴 분 아닌데, 뭐 저딴 루머가.』
『레드바 님> 신경 쓰지 마세여. 다박이 이런 건 일을 되게 잘해서 금방 잠잠해질 검니다.』
『레드바 님> 그래도 당분간 관련 글은 보지 마세엽. 기레기들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님니다.』
그건 레드바도 마찬가지였다.
은우는 그들의 문자를 보며 팔걸이에 팔을 대고, 턱을 괴었다.
논조가 다를 뿐, 사건 자체는 진짜 있었던 건데. 안타깝게도 그들의 믿음을 저버리게 생겼다.
컹!
“…그래.”
그때 로건이 얕게 짖었다.
은우는 그의 무릎을 짚고 고개를 들이민 로건이를 쓰다듬었다. 그의 머릿속은 남매에게 실제 있던 일임을 밝힐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
『나>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결국 그가 택한 건 후자였다. 그들을 기만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박기철을 비롯한 다이아박스 사원들이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중이었다. 섣부른 발언으로 그들의 노고에 초를 치고 싶진 않다.
『나> 그런데… 그, 무섭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건 좀 궁금했다. 그가 얼마나 위협적인 신체와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사람 여럿 잡을 실력이 실제로 있다는 것마저 저들은 알고 있을 테니까.
한곳에서 솟아오른 루머─실제로 있던 일이지만─가 괜히 신뢰를 얻으며 급속도로 퍼지는 게 아니란 말이다.
『레드바 님> 누가요? 행님이요?』
『레리 님> 켄 님, 은근… 자존감 낮으신 것 같애요…….』
『레리 님> 켄 님, 하나도 안 무서워요.』
『레드바 님> ㅇㅇ 켄 님, 하나도 안 무섭게 생겼는데.』
『나> 얼굴을 말하는 게 아니라…….』
『레리 님> 그러니까요』
은우는 눈을 껌뻑였다.
『레리 님> 켄 님, 본인이 얼마나 매너 좋은 사람인지 모르죠?』
『레리 님> 어휴, 저희가 켄 님을 지금 몇 달째 봐 왔는데! 사람 대할 때 조금이라도 위해 끼칠까 봐 움찔거리시는 분이 뭐가 무섭겠어요.』
『레드바 님> 행님처럼 순진한 분이 뭐가 무서워용. 솔직하게 말하면 켄 넴, 좀 어리숙한 면이 잇ㅅ으ㅏㄷ』
『레리 님> 쟤가 가끔 헛소리를 좀 해요. 제가 심판했으니 걱정 마세요^^7』
이 문자를 보낸 게 희수라면, 형이라면, 박기철이라면. 그는 그럭저럭 납득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보낸 게 전혀 다른 사람이라서. 거래도 뭣도 아닌, 순수하게 맺은 인연이 긍정해 준 것이라서.
『레드바 님> 행님, 행님. 개 키우는 사람 중에서 나쁜 사람은 없어요. 알아요? 아니, 나쁜 사람이 없는 건 아닌데, 형님처럼 신경 쓰고 글케 해 주는 사람은 절대 안 나쁘거든요? 그니까 저는 켄 님 믿습니다』
『레리 님> 이번 일 끝나면 꼭 같이 놀아요. 저희 또 어몽시티즌 할까요? 새로운 맵도 나왔는데. 아님 네뷸라라도 한판 해요. 저, 이제 자신 있어요.』
『슬리퍼 님> 아~ 켄 님. 지금 바깥 되게 시끄러운데,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좀 겪어 봐서 아는데, 저런 건 신경 쓰면 안 됩니다. 그냥 뚝심 있게 자리를 지키세요. 채널이 알아서 해 줄 겁니다.』
『산호 님>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힘내세요. 전 켄 님을 믿어요. 응원할게요.』
『빌리 님> 켄 님이 그럴 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사건이 진짜 있었더라도 많이 다를 거라 생각하고요. 저는 켄 님을 믿습니다.』
은우는 입가를 짚었다. 그들의 확신 어린 믿음이 어리석어 보이다가도, 차마 그 신뢰가 기쁘지 않다고 할 순 없었다.
* * *
박기철은 목을 죄던 넥타이를 고쳐 맸다. 혹시라도 마주칠 기자들에게 성의를 보이기 위함이다.
물론 현대에 이르러 많은 상황에서 격식이란 게 의미를 잃은 상태다. 위계질서가 없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양복이란 옷 자체의 쓰임새가 줄어든 것에 가깝다.
파티나 정말 어지간한 자리가 아닌 이상 잘 입지 않는 추세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박기철, 그는 예부터 ‘예절’이란 고리타분한 단어가 참 마음에 들었다. 항상 정장을 챙겨 입는 것도, 눈 수술 한 번이면 해결될 시야─애초에 그는 시력이 나쁜 것도 아니지만─에 안경을 챙기는 것도 그 이유였다.
그는 그의 인상이 언제나 철저하고 가식적이길 바랐다. 그래야 일이 재밌게 돌아갔으므로.
“스트리머 켄을 엄청 좋아하시네요. 이렇게까지 해 주시고.”
그때, 옆에 서 있던 직원이 투덜거리듯 물었다. 박기철이 듣기엔 그다지 좋은 질문은 아니었다.
“자료도 이미 다 있는데 못 할 거 없죠.”
자료는 은우를 영입할 때부터 미리 준비해 놨다. 고등학교 때 사고를 빌미로 아득바득 달려들 자가 분명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알고서 받아들인 건, 한때 은우에게 말했듯 명분도 이쪽이 가지고 있고 수습도 가능해서다. 다만 그 수습이란 게, 은우에겐 꽤 불편한 것이라 가능하면 터지지 않길 바랐지만.
“그건 그런데…….”
직원이 말을 흐렸다. 박기철에겐 그런 직원이 머릿속에서 떠올릴 생각 따위가 훤히 보였다.
대충… 팀장급 되는 사람이 편애할 정도는 아니다, 정도려나?
아무렴 켄이 돈을 많이 벌어다 주는 건 맞지만, 따라잡히던 순위권을 다시 따돌려 준 것도 맞지만, 달리 말하면 그 정도일 뿐이니까.
거기에 이번 일로 광고주들한테 걸려온 손해배상까지 생각하면, 차라리 버리는 게 빠를 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건이 너무 애매하지 않나요? 이렇게까지 공들일 필요가 있을까요?”
직원의 물음에 박기철은 잠시 고민했다.
이 또한 옳은 의문이었다. ‘켄이 스트리머로서 특별한가?’라고 물으면 솔직히 그건 아니니까. 놀라운 피지컬을 가진 거나 인기 요소를 갖추고 있다는 건 스트리머로서 당연한 거다.
물론 은우의 경우 세계에서 유일하단 특징이 있긴 하지만, 폭력 건과 얽히면 빛바래는 것도 사실이다. 피지컬이 좋으면 좋을수록 폭력은 더욱 무겁게 다가오므로.
그럼에도 그가 은우를 놓지 않는 건…….
“사람이 누구 때문에 회사 지분을 대거 확보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 잘해 주게 되는 건 당연한 일 아닐까요?”
그냥, 서은우를 영업해 낸 실적이 아버지와 한 내기에서 승부를 결정지어 줘서다. 이 회사가 그의 손에 들어온 결정적인 이유라고 할까.
거기에, 상대가 허락만 한다면 반대급부로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게 되는 패도 꽤 있고.
“네?”
“아닙니다. 하하하하. 그냥 팬이어서 잘해 주게 되네요. 공이랑 사가 섞이면 안 되는데.”
그러나 그런 걸 말해서 좋을 건 없다.
“아, 킨슨 쪽은 걱정 말아요. 그쪽이랑 연이 있어서, 제가. 하하하하.”
박기철은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마침 그가 해야 할 일은 아직도 산더미였다.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