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212화 (212/233)

212화

진짜 오로스인가? 은우는 보스가 나오기 전에 짧게 진행되는 컷신 동안 의문을 품고 그것을 검토했다.

재질이 바뀌었음에도 신성이 흐르는 갑옷, 불꽃이 음각된 검 한 자루, 태양이 양각된 방패 하나.

그것으로 미루어 보아 일단 오로스는 맞는 것 같았다. 저 ‘태양의 세트’는 오로스를 죽이지 않는 이상 얻을 수 없는, 게임 세계관상 유일한 갑옷이기 때문이다.

전편에서도 오로스를 죽여야만 얻을 수 있는 장비인데, 오로스가 나오지 않은 이번 편에서 얻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걸 신시대 인류가 모시는 신─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이 입고 있을 이유는 더더욱 없다.

더구나 예수상이나 성모상처럼 제대 뒤에 우뚝 존재했다가 플레이어가 들어오고 나서 움직이는 꼴이란. 적어도 그 전까진 석조상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것 아닌가.

전작 오로스 엔딩이 석화였음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것이다. 보스가 움직이기 전 취하고 있던 동작이 오로스가 석화했을 때의 자세와 동일했음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심지어, 길 잃은 태양의 기사는 키가 작았다.

대체로 보스 몹을 플레이어보다 최소 반 배에서 최대 두 배, 짐승형이면 몇 배까지 불리는 카롬의 성향을 고려했을 때, 저 키는 도무지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정말 굳어 버렸던 오로스가 보스로 나온 게 아닌 이상.

“정말 오로스라면…….”

은우는 컷신이 풀리자 입술을 달싹였다.

“드디어 붙어 볼 수 있겠네요.”

그의 손에선 이 성당에서 루팅한 신자의 유경 촛대가 들려 있다.

▣ 212. 그래도 할 거면서

문이 닫혔기에 후퇴는 불가능. 앞에는 오로스로 추정되는 길 잃은 태양의 기사가 있다.

은우는 유경 촛대를 빙글 돌렸다. 길고 긴 촛대의 끄트머리에는 잔등이 달려있다. 잔등 위에는 또 날카로운 장식들이 있는데, 장식과 잔등 사이의 허공은 가는 철사들을 새장처럼 가닥가닥 세워 이었다.

참고로 저 잔등에 불을 켜면 횃불 역할도 가능하고, 화염 대미지도 추가된다. 은우는 지금껏 전자로만 써 왔지만.

“전작에서 못 붙어 봐서 다소 아쉬웠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아직도 아쉬워 하셨던 거?

─진짜 오로스면 ㄹㅈㄷ,,,,,

─??: 대련 기능은 없겠죠?

─찐 오로스면 그래도 해볼만 할듯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고 웃건 말건, 은우는 건너편의 기사를 직시했다.

기사가 입고 있는 태양의 갑옷은 하체 갑주 위로 체인 메일을 천처럼 늘어트리고 있어, 얼핏 보면 신실한 사제 같기도 하다.

상체가 워낙 기사형이라 헷갈릴 이유는 없지만.

웅!

그때 태양 기사의 손끝에서 빛이 일었다. 이윽고 발사되는 것은 세 개의 탄환이다.

“역시 성법도 쓰네요.”

─오로스 근데 자힐하지 않앗나?

─보스가 됐는데 자힐은 선넘었지

─성바퀴 등장!

─근데 켄 바퀴도 먹는 남자잖아

─ㅅㅂㅋㅋㅋㅋㅋ성바퀴 념념굿^^7

은우는 탄환들을 피하며 기사를 향해 달려갔다. 태양 기사가 자신의 머리 위로 또다시 빛의 구체를 여럿을 떠올리더니, 손에는 검과 방패를 들었다.

검이 일순 불에 휘감기며 그 사거리를 길게 만들었다.

“저건 못 막을 것 같습니다.”

튕겨 내기가 되는 공격이 있고 안 되는 공격이 있다. 소형 무기─즉 한 손 무기의 경우 대부분 패링이 되지만, 저렇게 리치를 상승시켜 대형 무기 수준으로 변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저건 가드해도 대미지를 입는다.

은우는 태양 기사의 어깨를 확인한 뒤 위로 크게 점프하며 창을 내지를 준비를 했다. 그가 허공으로 뛰자마자 기사의 불꽃 검이 대지를 훑듯 횡으로 베어 넘긴다.

다만, 이어 날아오는 것은 태양 기사가 머리 위에 띄워 두었던 빛의 구체들이라.

─상도덕 ㅁㅊ

─딜타임은 줘야지

─진짜 마법사랑 사제느은..!

─성법 플레이어 정석인데

여기서 창을 내지르면 회피 타이밍이 어긋난다. 은우는 공격을 포기하곤, 발이 대지에 닿자마자 옆으로 굴렀다. 간발의 차로 빛의 구체가 그를 피해 갔다. 땅에 닿은 것들은 그대로 터지며 비산했다.

은우는 구르느라 몸이 바닥에 납작 붙다시피 한 상황에서 촛대를 고쳐 잡았다. 그러곤 그대로 찔렀다. 기나긴 리치는 어떻게든 적에게 닿아 그 겨드랑이를 움푹 패 낸다.

그때 은우의 위에서 빛이 쏟아졌다. 마치 태양처럼 온화하고 따스하지만, 직시하긴 어려운 강렬한 빛이다.

그는 그것을 느끼자마자 다급히 뒤로 구르고 또 굴렀다. 웬만한 공격은 구르기 두 번이면 범위를 벗어날 수 있으므로 행한 판단이다. 정확한 거리를 재 가며 피하는 것은 공격의 형태를 파악하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

파바바박!

작은 태양 십여 개가 그가 움직인 자국을 따라 내리꽂혔다. 유도탄인 듯하다.

─ㄷㄷ

─브금 너무 좋다

─저건 무조건 구르기로 피해야 하나 본데

─이게 뭐여;;

─맵다 매워

“공격할 틈을 잘 안 주는 녀석이네요.”

틈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 육신과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잡기엔 상당히 불가능에 가깝다. 좀 더 파악한 뒤라면 모를까.

그리고, 태양 기사의 몸이 빛에 휘감기며 사라졌다. 기사를 휘감았던 빛이 허공으로 치솟았다가 향한 곳은 은우의 바로 뒤다.

“순간 이동도 하고.”

─와 ㅅㅂ 보스 선넘네

─순간이동?

─속도 개빠르다

─ㄷㄷㄷㄷㄷ

순간 이동을 이용해 은우의 뒤로 돌아온 녀석은 그대로 검을 내질렀다. 그나마 기본 공격─강 공격이라서 피하긴 쉬웠다. 은우는 몸을 틀어 내려찍는 검날을 피했다. 그러곤 창을 휘둘러 기사를 베었다.

태양의 기사가 뒤로 훌쩍 점프하며 창을 막아 내려 했지만, 창의 리치가 더 길고 빨랐다. 타격은 주었다.

물러난 기사가 검신을 손으로 쓸었다. 그 행위는 대개, 자신에게 버프를 거는 행위다.

─아니 버프 자비좀

─거리 벌리고 버프 거는 거 보소

─저거 공벞인가?

─방벞일수도 있음

─하여튼 성직자들은!

“검은기사에서 성법이 워낙 유용하잖습니까.”

마법이 공격에 치중되어 있다면, 성법은 방어나 버프에 치중되어 있다. 물론 공격도 있다.

─성법 싫어하시는 거 아니셨음?

─님 마법이랑 성법 싫어하잖아요

─이 보스도 별로임?

“싫어하는 것과 별개로 유용함은 인정합니다. 거기다 얜 성법으로만 공격하는 게 아니라, 빈틈을 찔러 사용하는 거니까 나름 흥미롭네요.”

이 정도면 싫지 않고 나름 귀여운 수준이다.

은우는 세 걸음 앞서 나가며 창을 내질렀다. 그러자 녀석이 방패를 왼손에 장비하며 그대로 휘둘렀다.

패링. 은우는 내질렀던 창을 회수하고, 방패가 지나가자마자 앞으로 내밀었다. 속도가 떨어져 위력이 떨어졌지만, 패링에 당하는 것보단 낫다.

까앙!

녀석의 오른손에 들린 검이 창을 쳐 냈다. 그쪽도 급하게 대체한 것이라 힘이 부족했지만, 어쨌거나 튕기긴 했다. 어깨 부분을 창이 스치고 갔을지언정 대미지가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 점에서, 녀석의 의도는 성공했다.

─와 진짜 미치겠다

─너무 강한데?

─숨쉴 타이밍도 안 주는 건 좀;

─패링시도를 자연스럽게 무산시키는 것도 대단한데 그걸 또 튕겨내는 건 뭐임...

─오로스 최소 100트 각

나온 대표적인 싸움 방식만 해도 여섯 개에, 공격에 대한 방어도 녹록지 않다. 언젠가 스스로 검은기사 2를 깨 볼 생각이던 사람들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러나 카롬이 이를 갈며 만든 보스는 아직 그 밑천을 다 드러내지 않은 상태다.

거리를 벌린 태양의 기사가 방패를 집어넣고 검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불안을 감지한 은우가 달려 나갔으나, 녀석이 검을 내지르는 게 더 빨랐다.

휘두른 검의 궤적을 따라 일직선으로 불꽃이 땅을 훑었다. 사거리는 그렇게까지 길지 않았으나, 속도가 빨라 근접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은우는 대각선으로 점프하며 피했다.

─바람의 참격은 에바지

─요즘은 바참이라 부름? 라떼는 거수참이엇는데

─진짜 인간형이라서 힛박도 작고 재빠른데;; 이런 것까지...

─저걸 어케 잡어....

“그래도 피통이 작지 않습니까?”

은우는 녀석에게 견제용 창을 내질렀다. 일종의 페이크였는데, 기사는 넘어가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한 손 검으로 되돌리며 다시 방패를 착장할 뿐이었다.

“NPC형 보스니까요.”

은우는 그것에 실망하지 않은 채, 하던 말이나 이었다.

아무렴 NPC형 보스가 없었을 뿐이지, 엘리트 몬스터 중에선 NPC형이 적잖게 있다. 게임 내에서 설정해 둔 침입자들이 대표적이다.

그런 그들의 공통점은 플레이어와 신장이 비슷하고 패턴도 더 까다로운 대신, 피통이 작다는 것이니. 태양의 기사도 마찬가지였다.

레벨 1이고 장비도 제대로 끼지 않은─못 한─은우가 녀석의 피를 벌써 20% 가까이 깎아 냈다는 게 그를 증명한다. 워낙 가드가 단단해 생채기만 내는 수준으로 긁고 있는데도 그 정도였다.

─그럼 뭐함....깎지를 못하는데...

─피통도 뭐 맞춰야 의미가 있지

─진짜 스토리 보스가 이러면 선 넘는디

“원래 이런 게임이잖습니까.”

은우는 태양 기사에게 근접해 창을 휘둘렀다. 기사가 방패를 들고 막아냈다. 패링이 아니라 일반 가드다.

직후 녀석의 머리엔 탄환이 떠올랐는데, 곧바로 발사되어 은우를 물러나게 만들었다. 그 틈을 비집고 태양 기사가 순간 이동을 했다.

이후 빛을 쫓으면 역시나 그의 뒤에 와 있다. 기사가 한 발 내디디며 검을 휘둘렀다.

“무조건 뒤로 순간 이동 하네요. 참고하세요.”

하나, 창이 돌아가며 그 검을 유려하게 튕겨 냈다.

덕분에 그 품이 훤히 열렸으니. 은우는 거기서 한 호흡 삼키고 창을 마구잡이로 찔렀다. 태양 기사가 반응하려 했지만, 은우의 다리는 기사의 간격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그의 반격과 방어를 방해한다.

“거기에 이런 식으로…….”

은우는 창대를 빙글 돌려 녀석을 때리지 않고 바닥만 긁었다. 그 타격엔 기사가 반응하지 않았으나, 2타엔 방패를 휘둘러 패링을 시도했다.

“아까 2타째 공격 넣는 걸 한 번 보여 줬을 뿐인데 그걸 바로 학습해서 상대합니다. 이걸 이용하면 품 열기 좋습니다.”

물론 2타도 페이크였다. 은우는 열린 품에 창을 내질렀다.

퍼억!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을 기반으로, 성가대의 장엄한 합창이 섞인 BGM 사이로 파육음 하나가 생생하게 울려 퍼졌다.

─시발.....

─아니 그건 님만 가능한 거잖아요;;

─이쯤되면 카롬이 무서운 거임 켄이 무서운 거임?

─몰라,,,,둘다 인간 아님

─한쪽은 사탄이고 한쪽은 -빛-

욕 나오는 건 그저 시청자들뿐이다. 태양의 기사 체력이 70% 이하로 떨어졌다.

체력이 떨어지자 태양 기사의 몸이 빛에 휘감기며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그와 함께 제대 위에서 또 다른 빛이 생겨났다. 소환된 건 천 옷과 로브를 뒤집어쓴 사제였다.

─?

─쫄 실화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젠 웃음만 나온다

─와.....와...........

보스 한 개체만으로도 강력하건만, 부하까지 소환하는 이 악랄함에 사람들은 이제 감탄만 토한다.

은우로서도 나쁘지 않았다. 본체가 약한 상태로 졸을 부르는 게 싫은 거지, 이런 식의 강력한 개체 여럿이 합공하는 건 좋아한다.

긴장감이 조금 더 짙어지자 어쩐지 즐거움마저 든다.

“흥미롭네요.”

─저거에 님 패턴 들어간 거 같음?

─켄님보단 거 뭐냐 랭커 중 하나랑 닮은 것 같은데

─빼박 켄 데이터 넣어서 만들었다 안 그럼 저렇게 잘 싸울리 없음

“아뇨… 제가 싸우는 방식은 아닙니다.”

은우는 연속 순간 이동으로 똑같이 뒤에서 기습해 오는 적의 검을 창으로 쳐 냈다.

“애초에 제 기록을 어떤 식으로 써먹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전 이렇게 훤히 보이도록 공격 안 합니다.”

─결론: 자기 자랑

─아니ㅠㅠ 진짜 저걸 어떻게 잡냐고ㅠ

─죽창으로 한 타 한 타 찔러야할듯

─검 싸움 가면 대미지 못 주겠는데?

자랑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게 진실인 것을.

은우는 녀석의 공격을 튕긴 후 가볍게 한 타 먹이고 빠졌다. 새롭게 참전한 이가 성법으로 탄환을 날린 탓이다.

은우는 그것을 피한 뒤, 무기를 스위칭해 활로 바꾸었다.

“그보다… 흥미로운 것과 별개로 성법이 거슬리긴 거슬리네요.”

두 발의 화살이 허공을 유영하며 나아갔다.

은우는 그것이 명중됐는지 아닌지의 여부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몸을 날래게 움직였다. 그가 있던 자리를 불꽃의 검이 휩쓸고 갔다. 빛이 이어진다는 느낌이 들면 태양의 기사는 멀리 서 있고, 은우의 머리 위에서 소태양들이 쏟아진다.

은우는 빠르게 몸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러곤 활시위를 튕겼다.

푸욱!

태양의 기사 안면에 기다란 화살이 꽂혔다. 은우의 손에 잡힌 무기가 유경 촛대로 되돌아가며 회전하는 몸을 따라 크게 한 바퀴를 돈다.

퍼억!

성법을 날리려던 이가 창대에 얻어맞았다. 그의 몸통에는 역시나 화살 두 개가 곱게 꽂혀 있다.

그때, 멀리에 있던 태양의 기사가 갑자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깍지를 끼며 모인 두 손은 마치 기도를 올리는 것 같으니.

─자힐 ㅅㅂㅋㅋㅋㅋ

─선 넘었다 진짜

─카롬 본사 태우러 감

─성바퀴 나왔죠?

“여러분 싫어하는 것들을 골고루 때려 박았군요.”

은우는 활을 들고 녀석의 머리를 다시 한번 맞췄다. 그러곤 달려가며 창을 그대로 내려찍듯 했다.

활에 맞음으로써 주문이 캔슬된 녀석이 공격과 패링을 동시에 준비했다. 0과 1로 이루어진 데이터 쪼가리가 감히 그에게 수 싸움을 건 것이다.

은우의 창은 녀석을 내려찍는 척하며 그의 발치를 찍고, 예상했다는 듯 검을 휘두르는 녀석을 향해 창을 올려 쳤다.

동시에 그의 발은 방패를 걷어차 품을 열어 버리니. 은우의 창이 열린 기사의 품을 마구 유린했다.

그렇게 두 대 정도 적중하자, 태양의 기사가 순간 이동으로 회피하며 또 한 번 거리를 벌렸다.

쫓아가려 하면 이번엔 일직선상의 것을 휩쓰는 검격을 날린다. 뒤에 내버려 두고 온 졸이 탄환을 날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은우의 몸이 서커스 하는 이처럼 탄력 있게 휘어지며 바닥을 짚고 텀블링을 했다. 레벨과 스탯 부족으로 갑옷이 아닌 경갑옷을 입은 게 다행이었다. 풀 플레이트를 입었다고 해서 못 할 묘기는 아니나, 그래픽이 겹쳤을 거다.

아무리 발달해도 해당 옷으로 할 수 없는 묘기를 부리면 그래픽 겹침 현상은 발생했다.

푸욱!

어쨌거나 창은 다시금 여러 과정을 거쳐 태양 기사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피가 50% 이하로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다만 피가 일정 부분 이상 깎이면 부하가 소환되는 형식인지, 제단 위에서 새로운 적이 소환됐다. 두 번째 졸은 광역 힐까지 들고 있었다.

태양의 기사와 첫 번째 졸의 피가 70% 이상 차올랐다.

─이게 게임이냐!!

차후 해당 게임을 플레이할 시청자들이 분노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할 거면서.

* * *

“드디어 끝이네요.”

푸욱!

부하들을 전부 죽인 상태에서, 태양의 기사에게 마지막 타격을 넣었다. 죽이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는데, 졸이랑 본인이 번갈아 가며 회복하는 바람에 상당히 늘어졌다. 여러모로 괜찮은 보스여서 불만은 없지만.

은우는 기사가 몸을 멈췄다가 힘없이 쓰러지는 장면을 전부 눈에 담았다.

털썩.

가장 먼저 무릎이 닿고, 다음으론 상체가 기우뚱하더니 손으로 바닥을 짚는다. 손끝과 발끝이 바스라지며 돌가루들을 풀풀 흩날리던 것은 이내 그 전신으로 전염된다.

“…#[email protected]#.”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속삭임을 내뱉은 후, 완전히 흩어져 버렸다. 그의 존재가 한때 있었음을 증명하는 돌가루들은, 마치 화장한 후 남은 잿가루가 바람에 휘날리는 것 같다.

─하....이걸 1트에 잡네

─후원 터지는 것 봐라

─이걸 공략방송이라 봐야함? 스피드런 방송이라 봐야함?

─그냥 켄 방송이지 뭐

─싸움은 욕나와도 정작 죽으니까 좀 씁쓸하당....

“글쎄요…….”

보스 몹들은 시체를 안 남기는 것이 검은기사의 특징이라지만, 이번엔 유독 쓸쓸한 느낌이 크다. 시청자들의 말마따나 아는 사이─아닐 수도 있지만─라서 그렇게 느껴질 확률이 크다.

『HEIR OF ERA DESTROYED』

기사의 육신인 온전히 바스러졌을 때, 승리를 알리는 알림과 획득한 아이템이 출력되었다.

『태양의 탈리스만 1』

『서고 열쇠 1』

『부서진 태양의 방패 1』

서양식 부적인 탈리스만Talisman과 어디에다 쓰는지 모를 서고 열쇠, 부서진 태양의 방패가 드롭되었다.

전자는 장신구, 가운데는 진행이나 템 먹을 때 쓰일 아이템이라 치자. 은우는 마지막 아이템을 보며 약간의… 묘한 감정을 느꼈다. 태양의 세트 전부를 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으나, 그나마 준 하나마저 불완전할 줄은 몰랐다.

“태양의 탈리스만은… 요구 스탯이 안 돼서 껴 봤자 페널티만 느니 제치고, 태양의 방패는 어떤지 봅시다.”

─ㅋㅋㅋㅋㅋㅋ아 이번에도 신앙컷이죠?

─신앙 스텟 안 되면 가라 이거야

─1편에 이어 2편에서도ㅋㅋㅋㅋㅋㅋ

은우는 시청자들의 놀림을 무시하며 그것의 설명을 보았다.

『부서진 태양의 방패

태양의 심볼이 조각된 태양 기사의 방패.

이 땅에 헌신해 태양을 퍼트린 기사가 애용한 방패라고 전해진다.

단, 오래되어 부서진 탓에 방어 효과가 떨어진다.

방패에 깃든 성스러운 힘은 사특한 힘에 저항하며 사용자의 스태미나 회복 속도를 증가시킨다.』

…꽤 좋았다. 물론 사특한 힘(특정 상태 이상)에 저항한다고 해서 그 내성을 엄청나게 올려 주는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후자의 옵션, 스태미나 회복 속도 증가는 은우에게 꽤 큰 메리트였다.

하물며 해당 방패는 요구 스탯이 높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올리지 않은 은우가 페널티 없이 낄 수 있을 정도였다. 무게로 인해 장비 하나를 벗긴 해야겠지만.

─어째 부서진게 멀쩡한 것보다 좋냐

─석화됐는데 더 센 거랑 비슷한 이치지 않을까?

─세월이 흘러서 골동품이 된 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ㅅㅂ골동품ㅋㅋㅋ

─마치 묵은지의 맛

“…이걸로 장비하겠습니다.”

은우는 신발을 아예 벗은 후, 태양의 방패를 장비했다. 모서리 한쪽이 박살 난 방패는 그럼에도 그럭저럭 쓸 만하다.

“길이 하나 있네요.”

그는 태양의 기사가 사라지고 남은 방을 샅샅이 훑었다. 문이 하나 있었지만, 그건 잠겨서 열리지 않았다.

“맥의 지팡이가 여기 생긴 걸 보면 아무래도 귀환 배려 겸 다음 지역 숏컷 같은데.”

─킹능성 있다

─또 어딜 가야하누....

─다시 길찾기on!

은우는 조금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인 걸로 하겠습니다.”

─안이 왜!!

─족발 지금 왔는데ㅠ

─아 조금만 더하자

─형 벌써 가?

“제가 제일 빠르니까요. 의혹 받긴 싫어서.”

─아니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

─뻥치지 마욬ㅋㅋㅋㅋㅋ

뻔뻔스러운 방종 이유였다.

* * *

<켄 사인 벌써 추천수 수백인 거 실화냐?>

벌써 1보스 잡은 놈들이 수백이나 나온 거 실화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나 추천함ㅋㅋㅋ

└입추천 안 받음

─튜토보스라서 뭐....

─외국에선 켄 사인 뜬 놈들 벌써부터 인증샷 후려갈기고 있잖아ㅋㅋㅋ

<켄 세계 침입하고 싶다....>

침입하게 해주세요

─다음 1초컷

└켄한테 죽을 수 있다니 영광이다...!

└ㅋㅋㅋㅋㅋㅋㅋ

<태양의 기사가 마지막에 중얼거린 말>

외국 애들 벌써부터 분석했더라ㅇㅇ...

1편에 혈시들 내지르는 소리를 이용해서 분석하든데

대충 ‘태양’이란 뜻인듯

─ㅅㅂ 어케 분석했누;;

└카롬뇌는 이런 것도 다 해

─그래서 진짜 오로스임?

└모름 아직 켄밖에 안 잡아서

└PC판이 나와야 더미데이터 뜯어보든 말든 할듯

└걔네들 벌써부터 영상에 나온 성당구조 분석하고 난리났던데

<태양의 기사 ㅅㅂ...>

그 새끼 진짜 협력자 안 데려가면 ㅈ될듯;;

─협력자 데려가면 근데 HP 상승하지 않나?

└전작에선 그랬는데.....이번에도 그러려나?

└아 분석 마렵다;;

<켄이 협력룬 남겨줬다....>

켄이 남긴 협력룬 발견하는 놈은 ㄹㅇ 승자....

─근데 레벨,,,,안 되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

─매칭이 안 될듯

─ㄴㄴ 아직 대기 순번이 없잖아 일찍 간 놈은 무조건 볼듯

└이거다

.

.

.

“시발, 이런 새끼를 왜 빨아 준다고.”

그는 빛바랜 금메달을 움켜쥔 채 욕설을 내뱉었다.

“그래도 곧이다, 개자식아. 넌 끝이야, 끝.”

어두운 방을 밝히는 건 홀로그램 모니터의 불빛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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