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미쳤다기보단 마이 페이스 기질이 독보적으로 다분한 이안은 별 정보를 주지 않았다. ‘그’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안이 건네준 ‘그’의 정보는 신화적인 무력의 소유자란 것밖에 없었다.
때문에 은우는 다음을 기약하며 그곳을 나왔다. 그리곤 한참 헤맨 끝에 길을 찾았는데, 나무가 얽히고 얽힌 기괴한 길이었다.
“드디어 다음 지역이네요.”
─진짜 힘들었으뮤ㅠㅠ
─숲 숏컷만 새빠지게 열고...
─숏컷 왜 열었냐 진짜
─ㅇㅈ.....
은우는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는 길이나 보스를 찾아 헤맸지만, 그가 지난 시간 동안 해낸 건 침묵하는 숲을 양단하는 성벽을 뚫는 것이었다. 보스를 불러내는 행위인가 하여 늪지대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제단을 부쉈는데, 그게 성문을 열어젖혀 준 것이다.
숏컷을 뚫은 점에서 나쁠 건 없지만, 그때까지 고생한 것의 허탈함은 어찌할 수 없었다. 다행히 그 직후 보스도 한 마리 찾아 죽이고, 그다음으로 이 길을 발견했기에 탈력감까지는 들지 않았다.
“여기서부턴 늪지대가 없어 보입니다.”
독 상태 이상은 이제 걱정할 일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렇다 해서 골치가 안 아프진 않으리라.
허공에 《추락하는 협곡》이라는 글자가 아로새겨졌다.
“추락하는 협곡이라.”
어감이 좋지 않은 것은 둘째 치고, 저 이름을 통해 그는 몇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저게 직관적으로 말한 것이면 길은 아래로 경사가 져 있거나 벼랑이 있을 것이고, 추상적인 의미라면 ‘추락’에 어울리는 적들이 나올 것이다.
스르르륵-
물론 아직 나무가 다수 자란 것을 보아 식물형 몬스터는 계속 나올 것 같다.
은우의 검이 발목을 휘감으려던 넝쿨을 내려찍었다.
─촉수 극혐
─아 진짜 이번몹도 장난 아니네;;
─식물 몹 너무 구분하기가 힘들어ㅠ
─촉수플은 좀 당기는듯
─?
“그래도 이 녀석은 티가 잘 나잖습니까.”
촉수를 뻗대서 그렇지, 가장 발견하기 쉽다. 애초에 의태도 하지 않는 녀석이기 때문이다.
은우는 넝쿨이 그를 향해 쏟아지는 것에 맞춰 옆으로 피했다. 그러곤 녀석이 넝쿨을 회수하기 전에 접근, 그 몸통을 베어 냈다.
보통 여기 진입할 때쯤 레벨이면 2~3방에 끝날 녀석이나, 그의 뒤떨어지는 공격력은 녀석을 8대 이상 때려야 끝을 볼 수 있다.
“패턴도 쉬워서 죽이기도 쉽고.”
─ㅖ?
─아,,,,네,,,,,
─그러시겠죠
─나는 어버버 처맞을 듯
“제겐 다 쉬운 편이니 너무 실망하실 필요 없습니다.”
은우는 숨 쉬듯 시청자들을 기만하며 앞으로 전진했다. 길은 아래로 내려가는 듯 아닌 듯 어정쩡한 협곡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다.
양옆으로는 절벽보단 언덕에 가까운 높이의 땅이 단면을 자랑하고, 직진형 길은 자잘하게 굴곡지는 것이다.
다만 직선형 길이라고 해서 그 폭이 좁은 건 절대 아니었다.
나무 열 그루가 간격을 두고 자랄 만큼 추락하는 협곡은 넓었다. 심지어 가다 보면 길이 꼬이기도 했다. 늪지대처럼 넓어서 헤매게 되는 형식이 아니라, 길이 갑자기 여러 갈래로 갈라지며 미로를 형성하는 구조다.
─미로 ㅅㅂ
─걍 PC로 해야겠다
─저놈의 미로....
─역시 길찾기가 절반인 겜 답쥬?
“글쎄요. 카롬답지 않습니까?”
─길 찾기 반 유다희 반 겜
─이런 카롬다움,,,반갑지만 반갑지 않아....
─길치는 웁니다ㅠ
1도 길치는 깨지 말라는 수준이었다. 2라고 해서 달라졌다고 할 건 없다.
은우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가 거기서 발을 멈췄다.
“몬스터가 있네요.”
─?
─어디요?
─왜 님만 봐요 우리도 보여줘요
─??
은우는 곡도로 나무 한 그루를 가리켰다. 얼핏 다른 나무와 다를 게 없어 보이는 나무는 은우가 지목한 부분을 자세히 뜯어봤을 때야 그 진면목이 보인다.
“뱀…처럼 보입니다, 일단.”
몸은 길쭉하고 주둥이는 뾰족하다. 초록색 비늘은 군데군데 일어나서 마치 잎사귀처럼 피어나 있다.
“꼬리는 여기까지네요. 지나가면 몸통을 휘감는 식일 것 같은데.”
─와 ㅅㅂ 저걸 봤어?
─켄도 놀라운데 저걸 만든 카롬의 악랄함은 어디까지냐 대체
─겜 좀 깰 수 있게 만들라고!!
몸통과 꼬리는 나무의 결까지 따라 해 가며 길게 늘어져 있다. 특히 꼬리의 끝은 땅에 살짝 묻혀 있는 꼴이 꼭 나무뿌리를 보는 것 같다.
한 번 자각하면 티가 좀 나지만, 그 한 번 발견하는 게 어렵다. 은우야 문제없지만, 일반 유저들은 곡소리 꽤 내게 만들 녀석이다.
─진짜 끔찍하다...
─이제부턴 뭐 하나하나 찔러가야할 판
─특) 1편도 그랬다
─의심병 환자 양산 게임
“대가리 부분이 티가 많이 나니,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은우는 나무로 살살 다가갔다. 가까이 근접해도 꼬리를 밟거나 꼬리에 휘감길 만한 위치가 아니면 반응을 안 하는 듯하다.
“일단 옆으로 접근하는 건 괜찮네요.”
그는 곧바로 검을 휘둘렀다. 촤악! 하는 소리와 함께 뱀이 꿈틀거리며 나무에서 떨어져 나왔다. 나무의 뿌리 부분부터 머리 위쪽 가지까지 닿은 시점에서 크기가 꽤 클 거라 생각은 했지만, 똬리를 튼 모습을 보니 정말 거대한 뱀이었다.
─그린아나콘다냐....
─그거 멸종 되지 않앗냐...?
─ㄴㄴ 최근에 복원됨
“그린 아나콘다?”
역사 공부할 때 본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은우는 샴쉬르를 휘둘렀다. 가는 검신의 끝이 완만하게 휜 검은 마치 망나니의 칼처럼 뱀의 목을 잘라 낸다.
그룽!
부위 파괴가 없는 탓에 목이 베이고도 뱀은 멀쩡히 덤벼들었다. 대롱처럼 생긴 입에선 기묘한 울음소리와 독으로 추정되는 액체가 쏟아진다.
은우는 그것을 고개만 옆으로 젖혀 피한 후, 다시 베었다.
“그렇지만 그린 아나콘다의 주둥이가 이렇게 생기진 않았겠죠.”
─그건 글치
─해마임?
─입이 뭐 빨댄데?
─귀엽당
나무인 척 먹잇감을 노리던 사냥꾼이 역으로 사냥감이 되어 그 몸을 눕히는 건 그리 머지않은 일이다.
▣ 211. 정말이지, 비수다운 선택
추락하는 협곡을 관통한 끝에 은우는 다음 지역, 《낮은 곳의 성당》에 다다랐다. 위치상 1에선 마탑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가 잘못 기억하는 것인지, 아니면 마탑이 무너지고 성당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
“성당이라. 벌써부터 성법 계열 적들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오오오오
─마법사들 진짜 싫다...
─카롬에서 나오는 것 중 좋은 게 있긴 함?
─ㅋㅋㅋㅋ아 뼈맞았다
─마법사는 플레이어가 해야 제맛이지
“재미없으면 안 되는데.”
몬스터들도, 보스들도 죄다 새로 디자인됐으니 이번 보스도 달라졌을 거라 믿는다. 원거리에서 마법 내지 성법을 뿅뿅 쏴 대는 녀석들은 까다로움과 별개로 재미는 없는 편이니까.
은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성당 안으로 진입했다. 전체적으로 식물에 뒤덮인 형태의 성당은 마치 수백, 수천 년간 방치된 유적지를 보는 것 같다.
─석화남ㅠ
─오로스 생각난다....
─우리 석화남
─켄보고 신앙컷 한 석화남...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니가 제일 나빠ㅋㅋㅋㅋㅋ
구조도, 장식도, 심지어 존재하는 것들마저 달라졌건만, 사람들은 오로스를 그리워했다. 시대가 달라져도 태양을 믿는 것만큼은 같아서 그런 것 같다.
물론 오로스에 대한 그리움 따위, 은우에겐 일말도 없었다. 그는 척척 진행했다.
아까 맥의 지팡이를 통해 중앙 거점으로 복귀, 무기 구매 하는 김에 상태 이상 회복 템들도 바리바리 사 놨다. 걱정은 없다.
참고로 상인과 함께 중앙 거점에 있는 카일라니는 여전히 퉁명스러운 태도였다. 성당을 발견했다 하니 그에 대한 정보를 좀 건네주긴 했지만.
─여긴 왜 이따구가 된 거임?
─ㅈㄴ 성당이 어둡다...
─거의 뭐 마계교단이죠?
“글쎄요. 그릇된 신앙심이 무슨 사건을 터트린 걸지도 모르죠. 성당의 이익을 위해 이단 척결이라는 명분을 대며 성전까지 벌인 그네들인데.”
카일라니는 낮은 곳의 성당을 두고 말했다. 그곳은 ‘망가진 성역’이라고.
일단 성역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모종의 이유로 한차례 멸망을 겪을 뻔했던 현시대 인간은 성당이 있던 자리를 기점으로 다시 번성하기 시작했고, 그때 태양교가 함께했다. 그래서 이 장소는 성역 취급이었다.
그러나 ‘성역’ 앞에 ‘망가진’이 붙는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성역에서 태양을 구가하던 그들은 타락했다. 신앙심이 너무 깊어져 광신이 된 것인지, 아니면 신앙심을 잃고 그릇된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마법과 마법사들을 이단으로 지목하며 척결하기까지 이르렀으니 말 다한 것이다. 괜히 이안이 마법 혐오를 하지 않는 걸 두고 놀란 게 아니다.
카일리니는 낮은 곳의 성당이 망가지기 시작할 무렵에 그곳을 나와 순례를 시작한 이였다. 본인 말로는 일단 그렇다.
─하여간 이래서 종교는~~!
─종교 때문에 나라 망가지는 거 한 순간이라니까
─그 세대들 급발진 하는 것 보소ㅋㅋㅋ
─근데 사이비가 역사책이 실릴 정도면 솔직히 욕할만 하지...
─그 쉬끼들 때문에 등원도 못했음
─씁 그때 마스크 벗으면 ㄹㅇ 뒤지는 줄 알았어;;
─아 그르네 30대도 빡칠만하네
적으면 30대, 많으면 50대 시청자들이 뜬금없이 종교 탓을 했다. 젊은 세대들은 그런 그들을 노인네 취급 하면서도, 본인들이 역사책에서 배운 것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적당히 주억여 주었다.
“그보다, 나옵니다.”
성당은 대문을 지나고 나서도 좁고 협소한 길이 길게 이어졌다.
가끔 계단이나 도로가 나오기도 했는데, 대부분 파손된 채였다. 정비를 안 한 지 오래된 게 분명하다.
덕분에 계속해서 달릴 것이 아니면 대체로 정면 승부를 봐야 했는데, 문제는 적이 그를 보고 도망칠 때였다.
은우는 그를 보자마자 도주하는 적을 보며 건틀렛을 꼈다. 2에서 새로 추가된 무기로, 장갑 위에 착용할 수 있는 무기다.
그의 팔이 좁은 길, 계단 끝에 존재하는 성벽 뒤로 향했다. 아치형 출입구 뒤, 코너를 휘감듯 손을 저으면 무언가가 잡힌다.
은우는 그것을 잡아끌었다. 멱살 잡혀 온 것은 오염된 자였다.
“기습은 별로 안 좋아해서.”
퍼억!
은우의 주먹이 녀석의 턱주가리를 올려쳤다. 근접 무기 중에서도 리치가 딱 팔 길이만큼 나오는 대신, 경직 시간을 조금 더 주는 건틀렛이 오염된 자의 움직임을 찰나간 앗아갔다.
은우는 녀석이 날아가기 전에 그 옷깃을 잡고 끌어당겼다. 그러곤 옷깃을 잡지 않은 쪽 손의 손바닥으로 녀석의 뺨을 밀었다. 왼손으로는 잡아당기고 오른손으로는 머리를 세게 밀면 목뼈가 거의 꺾이는 수준이 된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인식했을 때 도망치는 놈들은 높은 확률로 함정입니다. 나중에 하게 되시면 당하지 마세요.”
─크, 공략방송
─첫트에 공략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 루삥뽕
─문제는 따라할 수가 없음ㅋ
─???: 아 그건 님들 몫이고
그는 녀석의 멱살을 잡고 출입고 벽면─성벽이 두꺼워서 가능하다─에 패대기쳤다. 그의 다리가 유려하게 올라가 그 머리를 돌려 차면 두르고 있던 거적때기 망토가 팔락 피어났다가 접힌다.
「‘오염된자’ 님이 ‘1,000원’ 투척!
아, 일어날 틈 좀 주세요;;」
“누가 기습하랬습니까.”
은우는 오염된 자를 잘근잘근 밟아 준 후 호흡을 골랐다. 동시에 귀를 기울이면, 성벽 안쪽에 도망간 놈을 제하고도 둘이나 더 있음을 알 수 있다.
“안쪽에 셋. 잡습니다.”
─?
─사실 켄 성은 휴우가였던 거임
─그게 뭔데
─씹덕아... 그건 씹덕만 아는 드립이란다....
─할배요 틀니 괜찮수?
그의 몸이 출입구를 넘어 성벽 안으로 뛰어들었다. 설핏 정원과 여러 갈래로 나뉜 계단들이 보였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갈 장소 확인은 녀석들을 잡으며 틈틈이 해도 된다. 은우의 몸이 가장 먼저 칼을 든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오염된 자가 칼을 휘둘렀지만, 은우는 손등으로 가볍게 올려쳤다. 패링. 그가 감수한 리스크만큼 적의 몸이 제대로 경직에 걸렸다.
─커어....개깐지 난다
─저거 따라한다고 스트리머들 되게 나댓는데...
─성공시킨 사람이 있긴 있음?
─있는데 절케 원할 때마다 내진 못함ㅋㅋ
봐도 봐도 탄성만 나오는 맨손 패링에 사람들이 감탄했다. 그 틈을 타 은우는 오염된 자의 옷 소매를 잡고 당기며 그 손을 봉인했다. 그러곤 좀 더 힘을 주어 녀석의 균형을 무너트렸다.
은우를 노리려던 또 다른 오염된 자가 그것에 막혀 공격에 실패했다. 휘두른 검이야 아군을 통과한다지만, 공격을 행하는 몸뚱이 자체는 아니니. 그 무게 때문에 뒤로 넘어진 것이다.
하니 거리가 안 닿을 수밖에.
은우의 수도가 녀석의 정수리를 후려치고, 잡았던 소매를 놓으며 뒤로 점프했다.
휙!
그가 피한 자리에 검이 휘둘러졌다.
“안전하게 갑시다.”
은우는 검을 휘두른 녀석에게 붙어 그 옆구리를 주먹으로 때리고, 다른 손으론 머리채를 낚아챘다. 옆구리를 때렸던 주먹이 형태를 바꾸어 녀석의 살을 잡았다.
이후 하는 행동은 당연히 엎어치기다.
─안전하게 갑시다 = 내 안전만 챙기며 갑시다
─뭐예요 오염된 자들의 인권도 챙겨줘요
─어우,,,,척추 뿌러졌겟다
“이성을 잃은 것들인데 챙겨 줄 이유가 있습니까?”
그는 그런 뒤 녀석의 머리를 짓밟고, 옆으로 몸을 기우뚱했다. 검날이 허공을 찔렀다.
하나 그의 균형도 무너진 상태. 은우는 허공을 찌르는 것으로 그친 검을 붙잡았다. 공격이 실패한 상태에서 검을 붙잡은 것이므로 피격 판정을 받지 않는다. 부위 손상도 없으니 손가락이 베이거나 잘릴 일도 없다.
은우는 회수되는 검을 이용해 기울었던 몸을 복구시켰다. 그러곤 연이어 공격하려는 세 번째 놈의 명치를 발로 찼다. 다리가 길어서 녀석이 검을 휘두르기 전에 찰 수 있었다.
“벌써부터 징글징글할 정도로 안 죽네요.”
─방금 다리 길이 뭐임;;
─진짜 덩치 클수록 싸움에 유리하단 게 켄 보면 구구절절 느껴짐
─괜히 역사에 명장들 보면 덩치 큰 사람이 많은 게 아니엇음
─근데 진짜 안 죽는다
─공격력이 너무 낮아서 그럼ㅠ
그가 자초한 일이지만, 가끔 질리는 느낌도 있다. 그래도 다른 게임보다 함정이랄지, 패턴이랄지, 여러모로 재밌어서 할 만하지만.
은우는 사소한 불만을 머금은 채 아직도 붙잡고 있는 검을 잡아당겼다. 그에게로 적이 당겨진 것인지, 적에게로 그가 당겨진 것인지 거리가 삽시간에 가까워졌다.
퍼억!
주먹이 녀석의 면상을 두들겨 팼다.
세 구의 시체가 곧 바닥을 굴러다니기 시작한다.
“성당 본관이 보입니다.”
적들을 해치우며 틈틈이 확인한 길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갈래가 많을 뿐, 전부 성당 본관으로 연결되었으니까.
그렇지만 별관이나 종탑으로 연결된 것도 있다.
“가장 가까운 별관부터 뒤지겠습니다.”
─종탑 궁금한디
─맥의 지팡이 슬슬 나올 때 되지 않았나?
─근-본
「‘J.제이’ 님이 ‘1,000원’ 투척!
쌍도 들어주세요」
“네. 무기 들겠습니다.”
은우는 쌍도를 들었다. 시체 구덩이에서 얻은, 오염된 자의 척추뼈를 갈아 만든 쌍도다.
약간 채찍처럼 쓸 수도 있고, 예리함도 나쁘지 않아 제법 요긴하게 써먹고 있다.
“갑시다.”
은우는 준비된 돌계단을 올랐다. 계단참마다 대기하고 있는 오염된 광신도들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별관 고해실에 있는 맥의 지팡이를 활성화하고, 은우는 본관─성전 탐방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안 것은, 성당이 정말 기습과 습격의 성지란 것이다.
“시간 차를 두고 뛰어내리네요.”
─진짜 개악랄하다....
─제작진 이번에 칼 갈았냐?
─뭔 지역들마다 욕나오는 구석이 하나쯤 있는 거임...
아이템을 미끼로 방에 끌어들인 후 위에서 거머리가 떨어지질 않나, 그것에 익숙해진 플레이어가 발 살짝 내밀었다가 떨어져 내려온 적 하나를 처치하고 룰루랄라 아이템을 먹으려 하면 두 번째 적이 떨어지는 시간 차 함정도 있었다.
다리 옆쪽에 붙어 있던 녀석들이 그가 지나가면 올라오는 경우도 있었다.
“소리로 알아챌 수도 있긴 한데…….”
처음부터 기척을 느끼고 시간차 공격을 기다려 역으로 습격한 은우는, 말하다 말고 시청자들의 평균 실력을 떠올렸다.
「‘다켄때문이야’ 님이 ‘1,000원’ 투척!
저 양반이 쉽게 돌파하니까 제작진이 ‘어? 이 정돈 괜찮나 보네?’ 하는 거잖아」
─킹능성 있다
─글타고 게임 수준을 상향시켜버림 어케요;;
─쌉에바
마침 시청자들도 그 부분을 두고 투덜거리고 있다.
“제 탓은 아닌 것 같고, 그냥 위랑 아래, 좌우 잘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위아래좌우 잘 보라는 게 공략이냐고ㅋㅋ
─이 와중에 자기 책임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 보소ㅋㅋ
─템이나 먹어주세요 공략집님
─좋은 템이면 와서 먹어야지
『탐욕의 반지 1』
은우는 함정 방에서 아이템을 회수한 뒤, 사인을 했다. 뭐 그리 날로 먹고 싶은지, 사람들이 함정 있을 때마다 사인으로 알려 달래서다. 워낙 그런 일이 많다 보니 이젠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고 있다.
그렇게 사인까지 한 은우는 마저 길을 걸었다. 성당의 윗부분은 거목에 휩싸여 무너진 상태이기에 그가 향하는 길은 지하다.
“저기요, 저기요?”
그렇게 한참 걷다 보니 성당 내부에 마련된 지하 감옥에도 다다랐다. 어째서 성당에 감옥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시대 배경이 배경인 만큼 그럴 수 있겠다 싶다.
“역시, 귀공은 멀쩡한 인간이셨군요. 이런 기쁜 우연이 다 있을까. 태양께서는 저를 버리지 않으신 게 분명합니다.”
다가가서 말을 거니 감옥 안 인물은 굉장히 기뻐했다.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천 옷 위에 경갑옷을 받쳐 입고 있는 이상한 여자였다.
“저는 자아를 잃고 태양을 버린 자들에 의해 이곳에 갇힌 참입니다. 오… 물론 제가 갇힌 건 저들이 자아를 잃은 것보다 좀 더 오래되긴 했죠. 어리석은 자들이 태양께서 제게만 사명을 내리신 것을 질투했거든요.”
그녀는 서글서글한 말투로 능청스럽게 제 처지를 설명했다. 오래 갇혀 있었다는 것치곤 넉살이 좋다. 타고나길 밝은 성격인 듯하다.
“귀공, 부디 저를 가엽게 여겨 이곳에서 꺼내 주시지 않겠습니까? 보다시피 저는 귀공이 아니면 이곳을 나갈 수 없는 처지라서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선택지가 떠올랐다. 연다, 열지 않는다. 정말 놀랍게도 그에겐 감옥 열쇠가 있던 참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열쇠를 사 두길 잘했네요.”
─혜안 인정합니다
─진짜 넥타르부자;;
─나도 저렇게 플-렉스 해보고 싶다
넥타르가 넘쳐나다 보니 열쇠같이 진행에 쓸 수 있을 것 같은 아이템은 죄다 구매해 두는 편이다. 열쇠가 어디에 쓰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음. 풀어 줄까요?”
─ㅇㅇ
─이쁘다
─누님은 못 참지
─풀어줍시다
참고로 그녀는 투구를 쓰지 않았는데, 덕분에 고운 얼굴이 드러난 상태였다.
정말이지, 비수다운 선택이었다.
“오, 그대는 진정 태양의 법도를 따르는 신실한 분이시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 지긋지긋한 지하에서 나갈 수 있겠어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탁탁 털었다.
“참, 저는 아뤼라의 안드레스. 태양에게 맹세코,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은우는 그녀에게 말을 두 번 더 걸어 보았다. 그렇지만 안드레스가 내놓은 답은 하나였다. 태양을 보고 싶다며, 미안하지만 그 후에 은혜를 갚겠노라 하는 것이다.
─?
─아 후불은 에반데
─발음 개좋다 아뤼라
─하, 손님 저희가 외상은 안 받아서...
─누님 그렇게 안 봤는데
잠시 외모에 넘어갔던 비수들이 돌아왔다. 게이머란 족속은 역시 보상이 더 중요한 듯하다.
“나중에 준다잖습니까.”
은우는 그런 비수들을 흘겨보며 본궤도에 다시 올랐다. 본관을 헤맨 지 오래니 슬슬 보스가 나올 때가 됐다.
보스가 나올 때가 됐는데…….
─ㅅㅂ 저거 오로스 아님?
─? 오로스??
─ㄴㅇㄱ
─형이 왜 거기서 나와...?
─형?
─오로스?????
보스를 찾아 성전의 중심, 제대가 있는 방까지 들어가 본 순간, 시청자들의 경악이 터져 나왔다.
《길 잃은 태양의 기사》
제가 보스라는 듯 벽에서 뚜둑뚜둑 뛰쳐 내려온 것은 1편에서 돌이 됐던 오로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