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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210화 (210/233)

210화

검은기사 2에도 멀티 플레이, 즉 침입이나 협력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렇지만 발매 초기다. 침입을 걱정하기엔 아직 이른 타이밍이었다.

때문에 은우는 게임을 파죽지세로 진행했다. 몬스터도 한 번 대치한 녀석들은 다시 볼 일이 없어서 쉽게 쏘다닐 수 있었다. 길 찾기를 단번에 해낸다기보다는 리젠을 안 해서 볼 일이 없는 쪽에 가깝다.

그도 그럴 게, 레벨 1로 다닐 것이니 넥타르 앵벌이를 할 필요가 없고, 넥타르 앵벌이를 할 필요가 없으니 몹 리젠을 할 필요가 없다.

맥의 지팡이에서 체력 회복을 하면 자동으로 리젠이 된다곤 하나, 은우는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활성화만 하고 떠나기 일쑤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 번 죽인 몬스터는 더 이상 볼 일이 없다. 길이나 숨겨진 보스를 찾고자 이 길, 저 길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입장에선 편리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잡몹의 다구리나 엘리트 몹, 보스 몹에 막혀 끙끙대는 동안 은우는 쑥쑥 나아가 온갖 보스를 때려잡고 게임을 진행했다.

▣ 210. 손바닥 뒤집듯

“최초의 오염된 자, 어째서 당신만이 이 저주에서 자유로운 걸까요? 백의 인간이 겨우 버틸 시간을 오롯이 홀로 버텼음에도 자아를 잃지 않은 건 대체 왜일까요?”

전작에선 마탑주가 레벨 업을 담당했던가. 이번 작에선 태양의 사제, 카일라니가 그의 레벨 업 담당이다.

“혹자는 모든 세계수가 잃어버린 태양의 가호가 당신에게만 남아 있노라 말하지만, 저는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카일라니는 꼭 전작의 로렌스를 보는 것 같았다. 로렌스는 마법사, 이 NPC는 신실한 사제라는 점에서 종교인인 오로스와 좀 더 공통점이 많지만 말이다.

“당신에게는 태양에게 버려진 자의 피가 흐르잖아요.”

다만 타인이 그 말에 할퀴어지든 말든, 제멋대로 생각의 근거를 늘어놓는 점이 로렌스와 비슷했다. 얼굴도 가만 보면 꽤 닮은 점이 많았고.

비유하자면 대충 로렌스가 자식을 낳았을 때 그 자식이 가질 것 같은 얼굴이다. 완전히 닮지도 않았고, 완전히 다르지도 않다.

골격이 단단해지고 선이 좀 더 굵어졌을 뿐, 눈매나 콧대가 정말 비슷했다.

“세계수.”

“세계수란 탄생과 죽음을 관장하는 태양의 은혜를 내려받아 우리 인간들에게 전해 주는 존재. 인간 중에서도 특별한 자들만이 태양의 선택을 받아 세계수가 될 수 있죠. 오염이 나타난 이래, 후보만이 무수히 나타났을 뿐, 세계수가 된 자는 아무도 없지만요. 당신처럼요.”

─쟤 말투 진짜 왜저러냐

─아 몰랑 주기죵

─검기사는 NPC 죽일 수 있지 않음?

─ㅋㅋㅋ그리고 부활 안 함

─앗....아앗....

─한 번만 봐주자 함만 봐주자

─근데 켄님은 레벨업 안 하잖아?

─어....?

은근히 비꼬는 어투로 보아 사제는 주인공이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시청자들이 불쾌해했지만, 은우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태양, 태양의 은혜.”

“태양은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시죠. 탄생도 죽음도. 한데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까지 내몰린 걸까요? 저는 태양이 우리를 버렸다고 믿고 싶지 않습니다만, 때때로 그런 불경한 사고를 범하고 맙니다. 하필이면 당신만이 오염에서 비껴 나간 것 역시.”

“태양에게 버려진 자.”

“무엇을 묻고 싶은 건가요? 태양에게 버려진 자에 대해서는 당신이 제일 잘 알고 있을 텐데요.”

그 이상의 키워드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투덜거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머리를 짜내어 추측하기 시작했다.

─로렌스랑 얼굴은 닮앗는데

─콱 그냥

─로렌스 자식인가? 근데 로렌스 죽었잖

─걘 전인류잖아

“글쎄요. 생각해 보면 전작 주인공에게 약을 준 게 로렌스였잖습니까.”

로렌스가 준 약이 신인류가 되는 종류인지는 모른다. 다들 그렇게 추측하고 있을 뿐.

그렇지만 만일 그 추측이 맞다면, 주인공뿐 아니라 로렌스까지 신인류로 재탄생됐을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재탄생된 이가 일가를 이루고 후손을 남겼을지 또한 모르는 일이다.

─? 그럼 ㄹㅇ 자식인가?

─하,,,,씁 카롬 이새끼들 또 이런 걸로 장난질 하네

─카롬뇌들 벌써부터 흥분했겠다

─진짜 자식일 듯

“섣부르게 그렇다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확신할 수도 없지만.”

무지란 그렇다. 그것이 진실이 되고 진리가 되어 지식으로 쌓이기 전까지, 그것은 그저 확률 놀음이 된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라는 확률 놀음.

“초반이라 아직 단서가 거의 없군요. 애당초 이런 스토리텔링에 친절한 게임도 아니었던 것 같지만.”

─ㅋㅋㅋㅋㅋㅋㅋ

─솔찌키 비설은 죄다 카롬뇌가 짜낸 거잖아ㅋㅋ

─그래도 추측이 재밌긴 해?

─퍼즐을 너무 알차게 넣어놔서...ㅇㅇ....

“다음 지역으로 넘어갑시다.”

어쨌거나 은우가 신경 쓸 건 이런 게 아니었다. 그의 관심사는 여전히 그의 패턴을 받아 낸 히든 보스에게 집중된 상태였다.

“시계탑을 먼저 갈까요, 침묵하는 숲을 먼저 갈까요.”

─시계탑 먼저 정리하는게?

─침묵하는 숲이 다음 지역 같은디

─침숲이 나을 듯?

그는 무너진 성채, 오염된 도시, 침수된 하수도, 시체 구덩이 지역까지 어떻게 싸그리, 싹싹 토벌을 완수했다.

은우가 못 찾은 비밀 장소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가 보기엔 아이템 회수가 덜 되었을 뿐, 보스 몹은 다 족친 것 같았다.

─언제나 렙1이라서 난이도는 다 거기서 거긴듯...

─암거나 고르셔도 될듯요

─침습 갑시다

“뭐,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

전작이 그랬듯, 이번 작 역시 중앙도시를 기점 삼아 지역 여럿으로 빠질 수 있다.

순서는 플레이어 정하기 나름이지만, 밸런스 패치가 되어 있으므로 잡몹 한번 잡아 보면 가도 되는지 가면 안 되는지 대략 감이 온다.

침수된 하수도와 연결되어 있는 ‘산 제물의 골짜기’의 경우, 아이템을 요구하는 식으로 길을 막아 두기도 했다. 친절한 듯 아닌 듯 친절한 게임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침묵하는 숲, 파도의 시계탑 등으로 분기가 갈릴 때도 있다. 은우는 조금 고민하다가 숲을 택했다. 어차피 다 돌아다닐 건데 생각으로 너무 시간 끌 이유가 없다.

더구나 침묵하는 숲에 연결된 ‘검게 물든 정원’이 딱 봐도 후반 지역 같아서 미뤄 뒀던 것처럼, 시계탑 쪽도 살짝 후반 지역처럼 보였더랬다. 레벨 1로 진행할 거니 다 똑같지만, 그래도 진행이 꼬일 수 있으니 가능하면 권고 순대로 돌아다닐 생각이다.

“그럼 숲으로 갑시다. 마침 시체 구덩이에서 숲으로 넘어갈 길이 하나 생겼으니까요.”

─ㅇㅇ

─아 시계탑 궁금했는데...

─시계탑 가면 진행 꼬일 것 같음 침습ㄱㄱ

─ㄱㄱ!

본래 침묵하는 숲은 중앙 지점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중앙 지점에서 숲으로 넘어올 경우, 중간을 가로막고 있는 성벽을 발견하게 된다.

성벽의 성문은 당연히 닫혀 있으며, 그것을 처음 발견했을 때 은우와 시청자들은 숏컷이겠거니 했다.

다만 열 방도를 알지 못해 포기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그 문을 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열어서 뭐가 달라지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1의 안개 가득했던 숲이 2에선 어떻게 변했을지 봅시다.”

─ㅋㅋㅋㅋㅋ저번에 갔을 땐 비슷하지 않았음?

─그건 그런데 또 모르지

─몹도 달라져서 쌍욕 나왓지,,,,

“지금까지 맵 우려먹은 건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반쪽이 비슷했다 해서 저쪽까지 비슷할 것 같진 않습니다.”

검은기사 2의 지역은 검은기사 1의 지역에서 시간의 흐름만 적용했을 뿐, 본질적으로는 같은 장소이니.

누군가는 맵 우려먹기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말이 같은 장소지, 천 년이 흘렀다는 걸 강조하기라도 하듯 대부분이 갈아엎어진 채였다.

같은 장소라 추측하는 것도 남아 있는 유적이나 아슬아슬하게 보존된 특정 지역을 통해서 유추하는 것이지, 그때 그 시절과 똑같아서가 아니었다.

아무렴, 대지가 솟아 새로 생겨난 산이 있거나 절벽이 있는 등 색다른 지역도 생성된 채다. 이걸 우려먹기라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솔직히 이쯤 되면 그냥 변태들의 모임이 아닐까? 은우는 새로 디자인된 숲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침묵하는 숲》

안개는 사라지고 독을 품은 늪이 그들을 반겼다.

* * *

끼이이익!

오염된 자뿐 아니라, 본래 늪지대에 거주하던 생물들이 그를 습격해 왔다. 사람만 한 독거머리도 있고, 두꺼비와 파리지옥(식물)을 섞어 둔 것 같은 녀석들도 있다.

퍼억!

은우의 메이스가 녀석들의 머리통을 후려치고 그 창자를 뭉갰다. 피 대신 나온 고름들이 메이스에 끈적하게 묻어났다.

“불붙이면 잘 탈 것 같은데.”

─딱 봐도 화염 상성 같긴 함

─진짜 개징그러워ㅠㅠ

─불태우면 가스 나오는 거 아니냐

“유독성 가스가 과연 풍길까요?”

현실이었다면 모를까, 검은기사에선 독을 품은 적을 태워도 독가스 같은 건 만들어 내지 않는다. 적어도 1편에선 그랬다.

“2편이라고 딱히 달라졌을 것 같진 않습니다. 이따가 기름 발라 보고 때리죠.”

─실험 정신 on

─하기 전에 뿌리 함 써보자

─독엔 불이 최고지

─켄님 독게이지!

『 ■■■■■■■□』

때마침 시야 한구석에 떠올라 있는 게이지가 슬슬 끄트머리에 다다르려 했다. 그걸 발견하자마자 은우는 냉큼 잎사귀 하나를 입에 넣었다.

“상태 이상 정말 싫네요.”

─ㅇㅈ....

─진짜 독 극혐....

─독댐 개짜증나

─이번작 사람 피말리는 지역은 무조건 여기다

─ㄹㅇ 냄새도 글쿠 몹도 글쿠,,,

─낙사 없는 게 다행일 지경

나오는 몬스터의 수준으로 보아 침묵하는 숲은 초반보단 중반부 지역으로 보였다. 늪에 흐르는 독이 도트 대미지를 주는 것도 문제였다.

밟자마자 중독 상태가 되는 건 아니나, 오래 밟고 있으면 방금처럼 상태 이상 게이지가 찬다.

늪이 아닌 맨땅을 밟으면 축적 게이지가 내려간다지만, 침묵하는 숲의 절반이 늪지대였다. 천천히, 깔짝깔짝 플레이할 게 아닌 이상, 중독은 걸릴 수밖에 없다.

“독 때문에 해독제 다 쓰겠습니다.”

─넥타르 다 털어서 사온 게 다행

─켄님은 레벨업에 안 쓰니까 남아돌기라도 하지;; 아 벌써부터 까마득하다

─불에 약하면 기름도 사와야할 거 아녀

─속성 부여라도 해야할듯;;

그나마 다행인 게, 늪지대가 독인 걸 알자마자 마을로 돌아가 회복 물품을 넉넉히 사 왔다는 것이다. 단, 1편과 달리 2편의 회복 아이템은 암브로시아뿐이므로 구매한 소비 템은 해독제다.

─회복템ㅠㅠㅠ

─암브로시아만 회복시켜주는 거 실화냐,,,?

─암브로시아 숫자 좀 늘려줘ㅠ

─1편도 악랄했는데 2편 난이도 실화임?

사람들이 그 사실을 두고 운 건 당연한 사실이다.

“이것도 씹다 보니 나름 맛있네요.”

─ㅋㅋㅋㅋ맛 없었음 클나지,,,

─이왕이면 딸기맛 해주지

─아, 딸기 쳐내

─딸기보단 민트지

─??

은우는 해독제 역할의 잎사귀를 질겅질겅 씹었다. 나름 단맛을 희미하게 넣어 줘서 우물거릴 때 기분 나쁘진 않다.

입에 넣는 시점에서 효과가 발효되는지라 바로 뱉어도 되지만, 굳이 씹는 건 다 그런 이유에서다.

『 ■□□□□□□□』

효과도 나쁘지 않다. 게이지를 낮춰 주거나 걸린 중독을 풀어 주는 해독제는 HP 회복 효과가 없을지언정 그런대로 쓸 만하다. 1레벨 체력에 독 걸리면 20초도 안 가 사망이니 당연하다.

“옵니다.”

그는 늪지대 바닥에 숨어 있는 몬스터를 발견, 접근했다가 바로 뒷걸음질 쳤다. 그러면 독 섞인 진흙을 이리저리 튀기며 무언가가 솟구쳐 오른다. 독거머리다.

은우는 몸을 회전하며 메이스를 휘둘렀다. 첫 방은 사거리로 인해 거머리에게 닿지 않았다. 그러나 한 걸음 내디디며 메이스의 회전을 유지하면, 그땐 거머리의 몸을 후려칠 수 있다.

철퍽!

질퍽이는 소리와 함께 거머리가 머리로 추측되는 부분을 뒤로 휘청였다. 게임의 물리 엔진 특성상, 반동이나 가속 없이 멈춘 은우의 메이스가 이번엔 종으로 그것을 내려찍었다.

─진짜 꿀렁꿀렁 거리는 거 극혐....

─크기라도 좀 작았으면

─아 왤케 큰 건데ㅠㅠㅠ

─이와중에 보이긴 드럽게 안 보임;;

─이걸 어케 찾으시는 거야

“음. 찾는 거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큰 게 작은 것보단 덜 무섭지 않습니까? 작으면 이 늪지대에서 찾기도, 구분하기도 어렵고, 심지어 옷 틈을 타고 들어올 확률도 높아질 텐데요.”

─으아악!!!

─ㅅㅂ상상함

─옷 스으브ㅏ드ㅏ드ㅏㅂ

“또, 작으면 개체 수로 상대하게 되니까요. 작은 거머리 수백 마리가 발밑에 드글드글하다가 한순간 잡아먹겠다고 달려드는 것보다는…….”

─으아아아악!

─바퀴벌레 먹는 분이라 그런가 혐오스러운 것도 쉽게 말하시네...

─아니 진짜 개끔찍해ㅠㅠㅠ

─공포영화 당했다;;

“제가 뭘요.”

직접 당해 본 바, 큰 거 하나가 낫다고 생각할 뿐이다. 작은 건 성가시다. 온몸에 불을 지르고 나서야 겨우 다 떨어트렸을 정도라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키히히히힛!”

그렇게 늪지대를 한참 전진하니, 어디선가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웃음소리 하나 가지고 평가한다면 그것은 편견일 것이나, 그것 이상으로 섬뜩한 소리였다.

미치광이라는 단어를 적고 그것에 목소리를 입히면 아마 저것과 비슷할 테다.

─?

─누구임?

─아 씁....1편의 악몽이

─뒤통수 후리는 NPC 아니겠지?

─아냐 '빛'일 수도 있음

여기까지 진행한 건 은우가 최초라, 사람들은 물음표만 띄웠다. 저 웃음의 정체를 조금도 짐작할 수 없어서다.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찾아가 보겠습니다.”

그런 시청자들과 동일한 입장에서, 은우는 무시하기보단 근원을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별로 어렵지도 않았다.

기괴한 웃음소리는 그 특이함만큼이나 들려오는 방향이 선명했다.

“여긴 정말 끔찍하군! 이런 곳까지 기어 들어와야 하는 내가 너무 불쌍해!”

가까이 다가가니 새로운 대사가 추가됐다. 덕분에 위치 특정은 더욱 쉬웠다. 축축한 진흙이 아닌, 무언가를 지으려 했던 흔적 위에 웃음소리의 주인이 있었다.

“얼굴을 가리고 있네요.”

은우가 투구로 얼굴을 싸맨 것만큼이나 상대도 가면으로 안면을 꽁꽁 가렸다. 심지어 몸이 경갑옷과 망토 따위로 감겨 있어 체형 확인이 불가능했다.

덕분이랄지, 대략적인 성별도, 직업도 모호했다. 기사라면 갑옷을, 사제라면 천 옷을 입는 편인데, 그는 이도 저도 아닌 것이다.

다만 전작의 마법사들과 비슷한 구성의 무기─책과 레이피어, 지팡이─을 착용한 것으로 보아 마법사가 아닌가 싶다.

─??

─마법사는 좀

─돚거보단 낫지

─아 도둑 혐오를 멈춰주세요

“다가가 보겠습니다.”

성벽이라고 하기엔 죄다 무너져서 흔적뿐인 담벼락 아래로 다가가니 대화하기 마크가 떠올랐다. 일단 몬스터는 아닌 셈이다. NPC라고 해서 적이 아니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플레이어로선 눌러 볼 수밖에 없는 버튼이다. 은우는 대화하기를 택했다.

“오?”

그제야 정체불명의 NPC가 반응을 했다.

“넌 뭐지?”

그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무너진 돌담 위에 양반다리를 한 이가 고개까지 비스듬히 하니 분위기가 더욱 야리꾸리하다.

“멀쩡한 인간이라면 여기까지 기어 들어올 이유가 없어. 누가 이 고약한 독의 땅에 오겠어? 목숨이 아깝지 않고서야.”

그 말에 타격을 받을 사람이 타인만은 아니건만, 그는 뭐가 좋은지 낄낄거리며 웃었다.

“오, 오. 알겠어. 너도 그를 찾는 거지? 그를 찾기 위해서 온 거지? 유감이네! 이곳에 그는 없어. 내가 찾아봤는데도 없었으니까 없는 거야!”

─??

─ㅋㅋㅋ텐션 머임ㅋㅋㅋ

─오, 오 ㅇㅈㄹㅋㅋㅋㅋㅋㅋ

─와중에 자기디스 너무 잘하는 거 아님?

─귀여운데?ㅋㅋㅋ

“상당히 명랑한 NPC이네요.”

은우는 다시 한번 뜬 대화하기를 눌렀다.

“키히힛! 아직 내게 볼일이 남았어? 내가 무섭지도 않나 보지? 난 얼마 남지 않은 마법사인데! 간이 크거나 굉장히 개념 있는 녀석이구나! 마법 혐오자가 아니라니! 암암, 신전 빡대가리들의 말은 믿는 게 아니지!”

그는 가면을 톡톡 두드리더니 이내 전구를 띄울 것 같은 자세를 했다.

“좋아,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너도 그를 찾고, 나도 그를 찾잖아? 그러니까 다음에 만나면 서로를 돕는 게 어때? 우리 둘의 목적이 일치하니까, 손해는 아닐 거야!”

은우는 ‘그’라는 인물이 누군지도 모르건만, 상대는 멋대로 오해하며 제안을 했다. 대충 어려운 구간이나 보스전을 치를 때 도우미로 부를 수 있게 해 주는 제안 같다.

“협력 룬… 말하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그런듯?

─오?

─ㄹㅇ ‘빛-’인가?

─ㄴㄴ통수일 수도 있음...

─이 게임은 진짜 당해보기 전까진 몰라...

워낙 뒤통수를 잘 때리는 게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긴가민가했다. 와중에도 선택지로는 ‘받아들인다’와 ‘거절한다’가 떠오른다.

─받아들이실?

─함 믿어보죠

─이벤트 가즈아!

─ㄱㄱㄱ

“일단 받아들이죠.”

사람들도 바라거니와, 이것으로 어떤 이벤트가 벌어지든 간에 그는 전부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다.

은우는 잠시 숙고하다가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정체불명의 이가 키히힛 웃었다.

“좋아, 좋아. 편견과 아집에서 벗어나 눈을 뜨면 세상을 효율적으로, 아주 편하게 살 수 있지. 그렇지? 우린 아주 좋은 인연이 될 수 있을 거야. 키히히힛!”

─키!히!히!힛!

─찐 흑막 웃음소리 아님?ㅋㅋㅋㅋ

─텐션 개 높은디

─나쁜 놈 아니냐?

─왠지 잘못 걸린 각인데

“웃음소리 가지고 차별하시면 안 됩니다. 좋은 사람일지 어떻게 압니까.”

은우는 사람들에게 쓴소리를 했다. 그런 그의 말을 설득력 있게 해 준 것은 NPC가 화들짝 놀라며 덧붙인 말이다.

“오, 오! 생각해 보니 내 소개를 완전 잊고 있었잖아? 난 탐구자 이안이야. 이건 내 사과 겸 성의 표시.”

『작은 행운의 반지 1』

그는 아이템을 주었다. 기능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으나, 다른 NPC에겐 이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아 착한 놈이네

─템을 줘? 좀 친하게 지내자 우리

─ㅋㅋㅋㅋ반지는 못참지

─옵션은 좀 구리다

─저게 어디냐 반지 구하기 개힘든디

“손바닥 뒤집듯 태도 바꾸시는 모습, 잘 보았습니다.”

─^^7

─ㅋㅋㅋㅋㅋㅋㅋ^^>

─^^7

─^^7

은우는 혹시 모를 추가 대사를 위해 몇 번 더 대화했다.

“응? 아직도 용건이 남았어?”

아쉽게도 그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이제 해야 할 건 키워드 노가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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