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어, 저 보셨어요? 전 못 봤는데…….]
[시야가 아슬아슬하게 걸쳐서 그런 것 같습니다. 손만 살짝 보였거든요.]
[와, 진짜 눈 좋으시다.]
─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 하시네
─뻥치지 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짓말쟁이ㅋㅋㅋㅋㅋㅋ
─목소리 태연하신 것 보소.....
실제론 본 적도 없다. 은우는 태연히 거짓을 늘어놓았다. 억지를 부린다면 그가 범인으로 몰릴 수 있으나, 헤쳐 나갈 방도가 없진 않다.
[어, 그럼 켄 님이 저지른 거 아니에요?]
“글쎄요. 전 옷 가게 길목을 안 거쳐서. 외려 레리 님이 죽이고 신고하셨을 확률이 더 높아 보입니다만. 전 체육관 갔다가 서점 갔다가 광장으로 간 겁니다. 처음에 저, 체육관 가는 거 다들 보셨던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말이다. 어차피 명확한 증거는 없었다. 밀어붙이면 이긴다.
[전 진짜 아니에요.]
“그런 말은 저도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진짜 아닙니다.”
[와, 이거 빡세다.]
[전 레리 님이 좀 더 의심스러운데. 켄 님이 정말 마녀 님 봤으면 경로상 레드바 님 죽이긴 어려울 것 같거든요.]
─와 이걸ㅋㅋㅋㅋㅋㅋㅋ넘기네ㅋㅋㅋㅋ
─ㄹㅈㄷ....
─ㅋㅋㅋㅋㅋㅋㅋ와 이걸 넘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얔ㅋㅋㅋㅋㅋㅋㅋ
은우는 김대롱에게 관심이 몰리지 않도록 그가 의심을 떠안는 길을 택했다. 어차피 쏠릴 의심이라면 은우와 대롱 둘이 같이 떠안느니, 하나가 강렬하게 묻히고 가는 게 낫다.
킬 쿨타임을 공유하는 이상 마피아 둘만 살아 있느니, 마피아 하나 정보상 하나 살아 있는 게 낫기도 하고.
[근데 이번에 맢퍄 한 명 안 보내면 저희 져여. 3:4라서 다음 낮에 사람 둘 죽으면 끝임.]
[건달 없어, 건달?]
[레리 님 아니면 켄 님인데.]
사람들은 고민이 많아 보였다.
“전 레리 님 투표하겠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을 때, 정보상이 살아 있고 건달이 마피아가 아닌 시민을 협박했다면 시민이 불리하니까요.”
[섣불리 선택하긴 좀 그렇지 않나?]
“어차피 지금은 뭘 해도 섣부른 선택입니다.”
[와. 저, 진짜 아니에요.]
은우는 이때를 노려 레리를 좀 더 파고들었다.
어차피 마피아 인원들은 전원이 레리에게 투표할 거다. 건달에게 얻어맞는 이가 마피아에 없다면, 그리고 시민에 있다면, 혹은 시민 한 명이 까먹고 투표를 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이 밤을 넘길 수 있다. 그러면 그들 승리가 유력했다.
─와 이거 진짜 이기는 거 아님?
─솔직히 이기는 각이지
─레리님 안 죽어도 이길 각임
─마피아 아무도 의심 안 받는 거 봐
사람들이 슬슬 승리를 점치려 할 때, 레리가 정말 억울한지 최후의 수를 두었다.
[저, 군인이에요. 진짜예요.]
은우의 눈이 번뜩였다. 군인을 사칭하고 다닐 만한 마피아가 아닌, 시민이 직접 토로한 직업이다. 높은 확률로 맞다.
“마피아에게 맞지 않는 이상 입증할 수 없는 직업군이군요.”
[아, 저 진짜 군인이라니까요?]
“네. 그렇지만 그걸 밝히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와 잘 굴러간다ㅋㅋㅋ
─성하 갑시다 ^^7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게임인 거 알죠 성하?
─와 몰아가는 것 봐....
─켄 인성 오지죠?
은우는 입술을 혀로 한 번 쓴 후 담담히 말을 이었다.
“확실히 전 시민이라 군인보다 효용 가치는 덜합니다. 그러나 레리 님이 정말 군인이라면, 그걸 왜 밝히셨습니까? 군인의 가치는 오직 본인만 알고 있을 때 빛을 발하는 법인데요.”
[맞아요. 시민이라고만 하셔도 솔직히 저흰 죽이는 데 고민할 수밖에 없어요.]
[아니, 와.]
[군인이나 시민이나 저희 입장에선 똑같이 시민의 투표권을 가진 사람이죠. 레리 님이 진짜 군인인지 마피아의 사칭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좀 그렇네요.]
[아니, 아니! 으아아아아!]
─성하ㅋㅋㅋ
─아니 진짜 논리왕이어서 더웃기다고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성하!!
─성하시여!!ㅋㅋㅋㅋㅋㅋ
[가만히 있으면 죽는데 당연히 말하죠! 님들, 진짜 이럴 거야? 신이 지켜보고 있어! 어?]
[아, 저러니까 더 수상해.]
[맞아요. 수상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할 수 있다!!ㅋㅋㅋㅋ
─마피아 우승 가즈아ㅏㅏㅏ!!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성하 억울해 돌아가시겠다고ㅋㅋㅋㅋ
레리가 열받아 돌아가시는 사이, 슬슬 투표 종료 시간이 되었다. 은우는 그것을 보며 못을 박듯 운을 떼었다.
“근데 어차피… 레리 님이 마피아든 마피아가 아니든, 저흰 다음 판에 지지 않습니까? 레리 님을 살리고 판 시작하자마자 건달이 마피아 협박하고, 마지막으로 그 판 안에 마피아 찾아서 보내 버린다는 우연의 우연이 겹치지 않는 이상.”
[네! 그러니까 저라도 살려 주세요!]
[음, 켄 님 말씀은 레리 님이 마피아인 것에 걸어 보자는 거네요?]
“네.”
은우의 의견을 뒷받침하듯 김대롱이 슬슬 풀어 주었다.
─와,,,괜히 바람잡이 넣는 게 아니구나.
─ㅋㅋㅋㅋ이런 식으로 시민인 척 오지구요...
─와 진짜.......
─머리 너무 좋다....ㅋㅋㅋㅋ
사람들은 그 합동력에 기막혀했다. 참고로 김대롱과 은우는 오늘 처음 만난 사이다.
[저, 저! 대롱 님이랑 켄 님이 마피아인 거 아냐? 어? 아까부터 둘이 너무 짝짜꿍하잖아요!]
그걸 레리는 기민하게 눈치챘다. 하여 은우는 잠시 긴장했으나…….
[저 두 분은 원래 말이 잘 맞지 않았어여?]
[맞슴다. 세모도 님두 글쿠 저분들 추리할 땐 착착 맞으셨슴다.]
안타깝게도 다른 사람들은 희대의 사기극에 홀랑 넘어가 버린 후였다. 시민들 보기에 둘과 연관 없다시피 한 세모도가 앞장서서 의견에 힘을 실어 주기까지 하니 더 문제 될 것도 없었다.
─성바~
─ㅋㅋㅋㅋ이걸 이렇게 갑니다
─성하 ㅂㅂ
─성하 가십셔 멀리 안 나갑니다
─진짜 이 판 끝나고 켄님 모든 신뢰 잃을 듯
[나 진짜 아니야!]
결국 레리가 최후의 반론 시간을 받았다.
▣ 206. 추리인지 선동인지
[나 진짜 아니라고! 나 진짜 군인이라고! 아니 군인이 직업의식 못 지켰다고 보내기 있어? 너희, 그럴 거야? 투표권 잃을 거야?]
[성하, 추해요…….]
[목숨이 걸렸는데 당연히 추해지지!]
─세속성하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아 목숨은 킹정이지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추하 성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음. 어차피 진 판, 레리 님이 저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반대하는 건 어떻습니까. 만에 하나 레리 님이 시민이 맞고, 만약 생존한 건달이 마피아를 협박하기라도 하면 저희 살 방도가 있는데.”
[아, 켄 님이 저렇게 말하니까 또 흔들리는데.]
[그러네요. 혹시 모르니까 살릴까요? 사실 완벽한 건 아닌데.]
[아니야. 보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마피아면 어쩌려고?]
은근히 제가 시민임을 피력하며 이길 가능성을 또 재 보는 시늉을 한다. 시민인 척 의태한 마피아가 사람들을 더욱 완벽히 속이고자 하는 입바른 말이었다.
그러면서도 착실히 찬성을 누르는 손이 그의 본성을 말해 준다.
─ㅋㅋㅋㅋㅋㅋㅋㅋ이와중에 찬성ㅋㅋㅋ
─진짜 미친 거 아니냐곸ㅋㅋㅋㅋㅋ
─입으론 반대를 말하지만 몸은 솔직한 거지...
─몸 솔직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우는 시청자들의 말을 보며 미리 음 소거를 했다.
“…원래 마피아란 건 앞으로 악수하며 뒤로 칼을 들어야 하는 직업 아닙니까.”
레리와 다른 사람들의 아우성이 오가는 와중에 유일하게 차분한 목소리는 평소보다 가라앉아 있으니.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댄 채 소곤거리듯 작게 말한 영향도 컸다.
“운 좋으면 이 판 안에 레리 님을 보낼 수 있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와 진짜 개태연햌ㅋㅋ
─이분 마피아 천직 아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최소 사패구연
─레전드다 진짴ㅋㅋㅋㅋㅋ
마피아가 전원 레리의 처형을 찬성하고, 시민 한 명이라도 넘어와 줬다면 레리가 죽을 확률이 있다. 마지막에 그가 흔들긴 했지만, 안 믿는 이들도 있었을지 모르니까.
─마피아들도 반대 누르는 거 아님?
─맢퍄들도 반대 눌러버림 어캄
─다들 능지파라서 ㄱㅊ을듯 레드바라면 반대했겠지
─ㅅㅂㅋㅋㅋㅋㅋㅋㅋ레드밬ㅋㅋㅋㅋㅋㅋㅋ
─레드바 능지 처-참
“글쎄요. 그분들도 동의하는 척 보내 버리시려 하고 계실 것 같은데.”
마지막에 김대롱이 은우의 말에 긍정해 주었지만, 속내는 그와 비슷한 판단을 했을 거라 본다. 아닐 수도 있지만, 그가 보기엔 김대롱은 이쪽과 똑같았다.
유대감으로 인한 신뢰라기보단, 그냥 해석을 통한 확신에 가깝다.
『…2, 1. 아무도 처형되지 않았습니다.』
[으아아악! 살았다!]
[자, 다들 마이크 꺼 주세요.]
놀랍게도 레리의 발악은 겨우 성공으로 돌아갔다. 시민들이 착실히 반대했거나 마피아들끼리 의견 합이 안 맞았던 모양이다. 혹은 그의 설득이 과하게 먹혔을 수도 있고.
“안 죽으셨네요. 마지막 말은 괜히 꺼냈나.”
─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안 죽어도 이미 유리하잖아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우는 건조하게 해당 사실을 평했다. 참 아쉬운 일이지만, 잘 되짚어 보면 그렇게 아쉬울 것도 없어서다.
일단 마피아 중 한 명도 죽지 않은 상태가 아닌가. 심지어 그는 레리처럼 마피아 직전까지 몰리지도 않았고, 행적이 묘연한 김대롱조차 주목받지 않은 채 흐지부지 넘어갔다.
이번 회의는 마피아가 내내 주도한 것이나 다름없다.
“밤이 왔습니다. 마피아는 고개를 들어 주세요.”
은우는 유명한 마피아 게임의 문구를 중얼거리며─시청자 댓글에서 배웠다─타자를 쳤다.
『선량한 세모도: 레리 님은 절대로 건드리지 말죠』
『켄: 혹시라도 건달이 살아 있을 경우를 대비해, 사람 죽이는 건 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
타자가 제일 빠르고 문장이 짧은 세모도가 먼저 대사를 올리고, 은우의 대사가 그다음을 차지했다.
『김대롱대롱: 레리 님 군인, 슬리퍼 시민, 자낳괴 의사.』
세 번째는 그간 써 온 능력을 통해 알아낸 사실을 보고하는 김대롱이다. 이걸로 레리는 정말 군인이었음이 확실시되었다.
『켄: 레리 님 군인 확정이니까 나머지 죽이면 될 것 같습니다.』
『선량한 세모도: 좋습니다. 일단 제가 레리 님 마크할게요. 여러분은 레리님 반대쪽으로 가 주세요.』
『켄: 의심 안 받게 조심하죠.』
『김대롱대롱: 레리 님 쪽으로 사람이 많이 가면 저희가, 레리 님 쪽으로 1 가면 세모도 님이 킬 ㄱㄱ.』
『선량한 세모도: 만약 건달 살아 있음 누명 씌우기 좋겠네요. 네.』
─진짜,,,,이쯤되면 시민팀이 불쌍함
─뒤에 칼 꽂혀도 모릅니다...
─다윗과 골리앗 싸움;;
─시민들 불상해서 어캄...
─켄이 걸린 시점부터 시민들에겐 망판이엇던 거임
지능 상위권들만 모였을 때의 모략은 스트리머 합방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시청자들은 그 밤 대화를 보며 고개만 도리도리 저었다. 대체로 레리를 향한 애도의 고갯짓이었다.
그리고 낮이 밝았다. 마피아들이 총과 칼을 장비한 낮이.
은우는 일단 대롱과 떨어져서 오른쪽으로 향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레리 쪽엔 세모도, 세븐브레드가 향했다. 은우 쪽엔 슬리퍼와 5월마녀였다.
어떻게 죽여야 할까. 은우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승자와 패자를 가르고 게임을 종료시키는 어몽 시티즌 고유의 기적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쿨타임 차자마자 죽이셨나 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모도님도 ㄹㅇ 화끈하다
─저분도 마피아 싹인 듯
─여기 왤케 마피아들을 잘하세요
─마피아 맛집이네 진짜
아무래도 세모도가 먼저 일을 저지른 모양이다.
[거봐요, 저 아니라니까!]
가장 먼저 레리가 소리를 질렀다.
[어, 머임.]
[하… 졌다.]
[으헣.]
[와, 진짜. 마피아 누구야, 그럼?]
사람들이 당황하는 사이, 게임은 이번 판 승자를 밝혔다. 화면에 빙글빙글 웃으며 서 있는 것은 붉은색 이름을 머리에 단 은우와 세모도, 김대롱 캐릭터다.
은우는 그것이 퍽 감회가 새로웠다. 같은 팀이 된 이들이 워낙 머리가 좋아서 될 것 같다 생각은 했었지만, 정말 될 거라곤 생각 못 했기 때문이다.
“가능할 것 같다 싶긴 했는데, 전원 생존 성공했네요.”
─이걸 해냅니다
─ㅋㅋㅋㅋㅋㅋㅋ진짜 개쩐다
─캐리면 켄이니까 그러려니 하겟는데 다들 잘해ㅋㅋ
─능지팟 오졋죠,,,
아군 전원 생존이란 사실이 마피아로서 참 감개무량하다. 동시에 생면부지에 가까운 사람들과 팀을 이뤄 승리를 일궈 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은우는 헬멧을 손으로 더듬었다. 생각해 보면, 그는 처음의 당황과 당혹감도 잊은 채 어느새 사람들과 잘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타 스트리머에 비해 말수가 적은 건 여전하지만.
외려 아는 사람들만 있던 합방보다 좀 더 편한 감이 있다. 대면한 게 아니라서? 아니면 단순히 보고와 추론이 주가 되고 잡담은 곁가지가 되는 게임이라서?
이유가 무엇이든 그가 불편함 없이 오늘 방송을 즐기고 있단 건 똑같다.
[대롱 님, 믿었슴다……. 진짜 믿었슴다…….]
[헐, 뭐야. 켄 님이랑 세모도 님? 대롱 님도?]
[이걸 밸런스라고…….]
[으아아아아! 소름 끼쳐!]
[너무 무서워…….]
[모도야… 내가 첫판에서 퍼블했던 게 그렇게 화났었니?]
[그건 아니고, 너무 각이 잘 나와서…….]
[진짜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거짓말을…….]
그사이 피해자와 생존자들이 밝혀진 전말에 진저리 쳤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범인이 밝혀지지 않아 혼란스러웠던 상태였기에 더욱 섬뜩한 모양이다.
“흠.”
그러거나 말거나 범인이었던 사람은 코를 찡긋거렸다. 편한 사람─스트리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레드바고, 레드바를 떠올리니 자연스레 ‘그랑 같은 팀이었다면?’ 하는 가정을 해 버린 탓이다.
이 판에 많은 운이 따라 준 것도 사실이지만, 레드바가 걸렸다면 이 결과가 안 나왔겠지.
“레드바 님이랑만 팀플하다가… 김대롱 님, 세모도 님과 함께 하니 너무 편하네요.”
그는 금방 사라지는 승리 페이지를 보며 순도 100%의 진심을 뇌까렸다.
통신이 연결된 상태라 이게 레드바의 귀에 들어갈 수 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행한 일이었다. 고의라기보단 ‘레드바가 듣든 말든’이란 심정에 더 가깝겠다.
[켄 님?]
[으핰핰핰핰.]
─ㅋㅋㅋㅋㅋㅋ펙-폭ㅋㅋㅋ
─아 고건 맞지ㅋㅋㅋㅋㅋㅋㅋㅋ
─레드바였음? 어림도 없다 캐뤼~
─레드바 일찍 탈락하고 켄 올킬 각이죠
─ㅋㅋㅋㅋㅋㅋ점점 가차 없어지죠?
“죄송하긴 한데 취소는 안 할 겁니다.”
[아니! 아니이!]
[켄 님, 얼마나 레드바 트롤링에 한 맺히셨으면.]
어쩔 수 없는 게, 레드바와 팀을 먹고 활동했을 때와 느낌이 다르다. 레드바에게 유감이 있는 건 아니지만, 레드바랑 했을 때 족족 패배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그 과정마저 처절했다.
한데 그런 레드바와만 같이 하다가, 척하면 척인 이들이랑 합을 맞춰 보니 몸과 머리가 편할 수밖에 없다.
듣는 레드바가 배신감에 잠긴 듯 엉엉 우는 소리를 냈다 해도 말이다.
─레드바 2패 적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개재밌어ㅋㅋㅋㅋㅋㅋㅋㅋ
─켄 다 예의 차리는데 레드바한테만 너무함ㅋㅋ
─근데 너무할만 하잖아
─그건 그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초반에 ‘민식이와 로건이가 있다.’ 발언 이후 은우의 말이 또 한 번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와, 저도 너무 편했어요.]
[진짜 세모도 님이랑 켄 님, 역할 분담해서 저쪽에서 쓱싹하고 이쪽에서 쓱삭하고.]
[켄 님, 진짜 특수부대셨던 거 아니야?]
곧 웃음기가 겨우 잦아들고, 사람들은 다시 한번 이번 판에 대해 감탄과 몸서리만 번갈아 쳤다. 은우로선 앞선 판들과 비슷했다 생각하는데, 이번 판은 뒷풀이가 좀 길다.
[대롱 님… 근데 진짜 대롱 님일 줄 몰랐슴다.]
[아, 죄송해요. 그렇지만 자낳괴 님이 죽은 걸 보자마자 켄 님이 마피아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었어요.]
“저도 대롱 님이 알아채셨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무 말도 안 하고 덮어 주시기에 혹시 아군인가 싶더라고요. 그래서 세모도 님께 대롱 님은 살해 리스트에서 빼자 제의드렸습니다.”
은우의 말에 다시 이승으로 기어 올라온 망자와 생존자들이 탄식을 뱉었다.
[와, 진짜 저 셋이 마피아 되면 난이도가 저세상이네.]
[…저, 진짜 무서웠어여. 모도 님 잠깐 찾아오시는데 쓱싹하시고, 아무런 동요도 없이 레리 님께 다 떠넘기셔…….]
[죄송해요. 그래도 이거, 게임인 거 아시죠?]
[아니, 난 대롱 님이랑 켄 님은 마피아다 싶었는데, 세모도 님이. 와.]
[다음부터 마피아 감 안 잡히면 무조건 저 세 분 중 한 분일 것 같슴다.]
─ㅋㅋㅋ다들 신뢰 잃은 것 보소
─크으....
─다들 말하는 것 봐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같아도 무서워서 못 믿음
다들 충격과 공포를 수다로 소화했다. 그 과정에서 살가운 질책과 불만 토로는 덤이었다. 장난인 걸 알기에 핀잔을 들어도 기분 나쁘진 않다.
[저, 진짜 다들 못 믿어. 이제 지이인짜 못 믿어.]
[이제 신뢰를 잃은 거야? 난 진즉에 잃었어…….]
[다들 불신자 된 거 봐.]
사람들이 낄낄 웃고, 그것에 동조하던 레드바가 ‘하’ 하고 숨을 내뱉으며 방송을 본궤도로 돌렸다.
[자자, 이제 다들 신뢰를 잃으신 듯하니… 더 재밌어지겠네요.]
[불신자들의 게임 on.]
[맞아, 맞아. 지금까지 저 세 분의 추리는 항상 믿음을 받았는데…….]
[이젠 추리인지 선동인지 분간해야 함.]
[전 이제 혼자만 살 검다.]
[그럼 바로바로 다음 판 갑시다!]
사람들의 믿음 관계를 산산조각 내는 마피아 게임은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