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202화 (202/233)

202화

“근데 이 파티는 뭡니까?”

─5개씩 묶여서 한 파티라고 5개 섞어서 하는 거예요

─단일 겜 여러개를 묶어서 하는 거임

─화면 전환 빨라서 다섯 개 다 잘해야함

그러니까, 메뉴 중 하나를 고르면 그 하나만 하는 거고, 파티를 고르면 그 파티에 묶인 5개를 전부 섞어서 하는 모양이다.

“시작부터 파티 하긴 그렇고, 한 개씩 연습하겠습니다”

─아 벌써부터 재밌어...

─겜잘스 켄도 피하지 못하는 매운맛

─이분 암기 플레이로 해내는 거 아님?

─ㅋㅋㅋㅋㅋㅋ가능성 있다

은우는 첫 번째로 북을 골랐다.

채 두 개를 잡고 예시에 따라 박자에 맞춰 두드리면 됐다. 시각적 효과도 있긴 하다만, 움직이고 나서 소리가 바로 나는 게 아니므로 청각에 의지하는 바가 더 컸다.

“후.”

은우는 채를 양손에 쥔 채 뱅그르르 돌렸다. 북 치는 것 자체엔 보정이 들어가, 약하게 치든 세게 치든 소리는 일정하게 난단다.

그가 할 건 소리에 맞춰 북의 가운데를 치거나 옆부분을 치거나 둘 다 치거나다. 그것에 따라 나는 소리의 차는 시스템이 친절하게 알려 줬다. 상대가 친 후 ‘헛!’이나 ‘얼쑤!’란 효과음이 나오면 그가 칠 차례라는 것도 알려 주었다.

“갑니다.”

─간다 간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자 다들 사격 준비!

─형 괜찮아, 사람이 전부 잘할 순 엇지

은우는 시작 버튼을 눌렀다. 정말, 심장이 떨렸다.

“준비는 됐겠지? 좋아, 가자!”

“잘되겠죠.”

상대방이 하나, 둘을 세는 것에 그의 목소리가 묻혔다. 곧 들려온 리듬은 ‘쿵쿵쿵쿵쿵쿵쿵, 땅!’의 리듬이다. 휘슬 소리가 같이 울려 퍼져서 순간 분간이 안 될 뻔했다.

“채팅 창 잠시 안 봅니다.”

“얼, 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빡집중on

─켄이 집중하는 모습을 보다니,,,가슴이 웅장해진다...

이제 그 차례다.

은우는 아까 들었던 음을 고스란히 따라 했다. 그가 칠 때마다 휘슬 소리가 같이 들려왔다. 은우는 그게 그의 음을 따라 나오는 건지, 원 박을 알려 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처음이기 때문이다.

쿵쿵쿵 두둥 두둥 딱!

쿵 두궁 두궁 두궁 쿵 딱!

와중에 갈수록 치는 법이 다양해진다. 은우는 소리를 분류하고, 소리와 소리가 이어지는 타이밍을 분석해 손을 움직였다. 집중한다고 채팅 창도 보지 않았다.

어렵기로 유명한 보스를 잡을 때마저 보이지 않았던 집중력이었다.

그리고…….

쿵두둥쿵두궁쿵쿵딱! 쿵쿵딱!

박자가 빨라져 그의 손이 신들린 듯 움직인 직후, ‘어얼쑤!’ 하는 효과음과 함께 P가 그려진 알림 창이 올라왔다.

그의 머리 위에서 팡 터지는 건 축포였다.

─?

─???

─?

─어?

은우는 P 문장 아래 적힌 ‘퍼펙트’란 글자를 보았다. 그의 얄팍한 영어 실력으로도 저게 뭔진 알겠다. ‘완벽하다’란 뜻이었다.

“잘한 거 같은데……. 잘한 거 맞습니까?”

음치라고 해서 박치란 법은 없었다.

▣ 202. 어울린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은우가 다음으로 고른 건 리듬에 맞춰 무언가를 베는 거였다. 이건 더 쉬웠다. 배경음을 들을 필요 없이 시각에 의존해 베어 버리면 됐다.

애초에 그는 배경음과 저것들을 베는 타이밍에 무슨 연관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니 이걸?

─퍼펙트 실화냐고ㅋㅋㅋㅋ

─겜잘스 켄

─와 이걸,,,,해내다니...

─첫트장인...

“리듬을 안 들어도 되네요.”

─시각;;

─아니 그게 눈으로 될 게 아닌데요...

─치트 ㄴㄴ해

은우가 시각에 의존해서 클리어를 하자 사람들이 다급히 무언가를 추가했다.

“눈 감고?”

─눈 감고 해요

─핵 쓰는 건 좀 아니지

─맞아

─핵 금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차피 던져질 때 ‘휙’이나 ‘슉’ 소리가 난다. 배경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지만, 은우의 예민한 청력은 그 소리 정돈 쉽게 캐치할 수 있었다.

심지어 한 번 해 보기까지 했으니. 슉 소리가 들린 후 몇 초 후에 베야 하는지조차 이미 숙달해 버렸다. 은우는 시청자들이 원하는 장면이 나올까 반신반의했다.

─기척 느끼고 베는 건 아니지?

─ㅅㅂㅋㅋㅋㅋ라신ㅋㅋㅋㅋ

─안 보고 베기ㅋㅋㅋ

─기척을 왜 느껴ㅋㅋㅋ

“아뇨, 기척은 안 느껴집니다.”

말 그대로 박자 감각을 이용해 베라는 건지, 모든 오브젝트가 별다른 물리 엔진 없이 구현됐다. 은우가 직접 움직일 때마다 그런 느낌이 드는데 오브젝트라고 신경 썼을 리 없다.

“그럼 시작합니다.”

두 번째라서 튜토리얼 따윈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다. 은우는 눈을 감고 그가 쥔 나무 막대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이걸 당기면 연결된 팔이 움직이며 날아오는 사물을 벨 거다.

긴장감 넘치는 BGM과 함께 ‘휙’이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정확히 0.5초. 그 뒤에 당기면 베인다. 은우는 배경음 사이에 숨은 휙 소리를 이용해 팔을 움직였다.

가끔 연달아 나오거나 연속으로 나오는 사물의 경우 휙 소리가 안 나왔지만, 아까 했던 첫판과 동일해서 상관이 없다. 은우는 꼼수를 썼다.

그 결과 역시나 P가 나왔다. 하나도 놓치지 않았단 증거다.

─와.....

─이걸 진짜?

─운임 아무튼 운임

─말이 안 돼...

─내가 다 눈물이 나네..

─내가 저거 3일 거려서 겨우 했는데...

“뭐가 말이 안 됩니까.”

된 건 된 거다. 만약 그보고 처음부터 눈 감고 하라 했으면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들을 놓쳤을 것 같긴 하지만.

─이래선 안 돼

─자동차 하죠 자동차

─나사조립 해보세요

─자동차!

─자동차 좋다

─나사조립은 눈으로 못 보고 할텐데

다들 의견이 다르긴 했지만, 가장 말이 많은 건 자동차가 달려오는 것에 맞춰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그다음은 나사 조립인지 뭔지 하는 것이었고.

“자동차에 맞춰 찍는 거라면 더 쉬울 것 같습니다만.”

─ㄴㄴ 그건 나중에 시야가 가려짐

─시야 가려지는 게임 다 가지고 와!

─리듬월드 센세,,,,, 어째서 벌써 공략당하고 계십니까...

─이럴 순 없어,,,,

게임이 워낙 특이해서 직접 해 보기 전까진 어떤 형식일지 퍽 알쏭달쏭하다.

은우는 바로 해당 게임을 찾아 선택했다. 지우개가 나타나 세계를 지우더니 색연필 한 다스가 나타나 그의 시야에 휙 지나갔다.

곧 보이는 건 자동차가 도는 원형 경기장이다.

“시야가 가려진다는 게 무슨 의민지 알 것 같습니다.”

현재 그의 시야는 직선만이 허락된 상태다. 양쪽을 판자가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독서실에 온 기분이다.

그사이 그가 처음이란 걸 아는 게임은 이번에도 튜토리얼을 한 번 경험하게 해 주었다. 원형 경기장이니 차가 한 바퀴 돌 텐데, 그에게서 멀리 있는 도로부터 돌아 그 바로 앞에 있는 도로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는 그들이 그 바로 앞 도로에 도착했을 때 사진을 찍으면 됐다. 정확히 정면에 찍혀 있어야 인정이란다.

“보기엔 쉬워 보이네요.”

은우는 카메라에 손을 올렸다. 옛날에 쓰던 셔터 카메라라는데, 전자 노트에 내장되어 있던 카메라만 쓰던 은우에겐 퍽 낯설다.

“카메라… 이런 것도 있군요.”

─오....

─박물관에서나 보이는 물건;;

─저게 카메라임?

그는 잠시 옛 세대의 물건이 주는 향취를 느끼다 본업에 집중했다. 멀리서 자동차가 달려왔다.

“옵니다.”

─개모태 하고 싶었는데....

─진짜 어케 했냐....

─피지컬 신은 박자까지 포함이었던 것인가...?

─괜찮아 노래는 내가 이겨!

지금까지 P만 받은 게 긴장을 덜어 주어, 은우는 채팅 창을 볼 여유가 생겼다. 그동안 시야에서 벗어난 차량은 힌트라도 주듯 부릉 소리를 내 준다.

아까 튜토리얼에서 경험해 본 바, 숫자와 차량에 따라 이다음 셔터 누를 타이밍이 다르다. 귓가엔 계속해서 경쾌한 BGM이 울려 퍼진다.

은우는 셔터 누를 준비를 했다.

부릉부릉-

촥촥.

조리개 닫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자 노트로 사진 촬영할 땐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불법 촬영을 제한하고자 촬영음이 나도록 설정되어 있긴 하지만, 이런 소리는 아니었다.

삥뽕.

그가 찍은 사진이 전광판에 떠오르며 O 사인을 보내 주었다. 잘 찍었다는 것 같다.

부릉부릉부릉-

이번엔 세 번이다. 은우는 타이밍에 맞춰 3번 촬영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완벽하다.

“쉬운데.”

여기서 시야가 가려진다 해도 저 부릉부릉 소리만 캐치하면 꺼려질 게 없다. 은우는 사람들이 이걸 골라 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잘하네...

─하.......

─이것도 성공....?

─어케하는 건지도 몰겟다

추천한 장본인들도 몰랐다.

결국 그는 제각기 속도로 달려오는 부품 파츠를 보며 나사를 쏘아 보내야 하는 나사 조립까지 쉽게 해내고 말았다. 게임을 추천받을 때만 해도 그를 짓누르던 음악에 대한 압박감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역시 그는 음치일 뿐이지 박치가 아니었다. 음이 틀려서 박자를 놓친 것처럼 보였을 뿐, 그는 한 번도 박자는 안 놓쳤다 이거다!

─그럼 탭댄스

─응원단은 어떰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시청자들

─이미...끝났어....

은우가 그렇게 자기 확신을 되찾는 사이,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그가 하지 못할 것 같은 미니 게임을 찾아냈다.

탭댄스와 응원단이었다. 전자는 정박과 엇박을 오가는 미친 난이도의 미니 게임이고, 후자는 가사에 맞춰 박수를 쳐야 하기 때문에 신경 써야 할 게 많았다.

그러나 본인이 음이 내는 게 아닌 이상 은우에겐 무소용이었다.

『ⓟ 퍼펙트!

대체 어디서 이런 리듬의 신이 나타났나요?

완벽합니다!』

은우의 박자 감각은 완벽했다.

“앞으로 세계 최악의 음치박치란 오명에서 박치는 지워 주시기 바랍니다.”

─음치인 건 인정하는 거냐고ㅋㅋㅋㅋ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루머는 용납 못해ㅋㅋ

─세최음ㅋㅋㅋㅋ

못 부르는 걸 잘 부른다고 우길 생각은 없지만, 잘하는 것까지 못한다고 취급받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은우는 부득불 세계 최악의 음치박치란 별명을 세계 최악의 음치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 * *

판 게임당 2분씩 50종. 5개의 게임이 혼합되어 있는 파티조차 3분 남짓이다. 튜토리얼 시간까지 합해지면 나름 한 방송을 채울 만한 수준이 됐으나, 문제는 그가 너무 잘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그의 성공을 믿지 못하고, 초반 쉬운 메뉴를 제한 채 난이도 높은 것들만 시켰다. 그럼에도 은우는 올 퍼펙트를 만들어 냈다.

이건 말도 안 된다며 사람들이 다른 게임을 외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형 투핸드 하자

─투핸드ㅋㅋㅋㅋㅋ

─‘그 게임’

─투핸드 좋닼ㅋㅋㅋㅋ

“투핸드는 싫습니다.”

은우는 단칼에 거절했다. 다른 사람들은 20분이면 깬다지만, 그에겐 2시간짜리였다. 그동안 받을 고통 또한 그렇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질색하는 것 봐ㅋㅋㅋㅋㅋ

─아 하자ㅋㅋㅋㅋㅋㅋ

그가 질색하는 이유를 알면서도 사람들이 깔깔 웃었다. 그러면서 한쪽으로는 음악이 나오되 음치가 쉽게 깰 만한 걸 모색하고 있다. 모인 사람이 사람이라 대안은 금방 나왔다.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어려울 수준이었다.

“고대의 달인, 구해 줘! 리듬★영웅, 디몬, 저스트 댄싱…….”

세상에 이렇게 리듬 게임이 많단 말인가. 은우는 고개 하나를 넘으니 나오는 새로운 고난에 잠시 미간을 좁혔다.

그러나 그것들이 꼭 리듬감이 없어도 타이밍에 맞춰 빠르게 터치하는 식이란 걸 깨달았을 땐 그 미간이 풀렸다.

사람들이 ‘이것도 잘하는 거 아니야?’라며 노트에 맞춰 두드리는 게임을 제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더불어 그의 춤을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무척 많았다.

그러자 그가 할 게임은 쉽게 정해졌다. 평소 방송 종료 시간까지 얼마 안 남은 것도 사람들의 선택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후원으로 『켄이 춤추는 거 보고 싶다』라고 말한 게 가장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지만.

“여러분들이 요청하신 대로 2부는 저스트 댄싱 2052, 갑니다.”

저스트 댄싱은 캡슐을 통해 하는 VR이 아니라, 피트니스 어드벤처처럼 현실에서 화면에 연결해 하는 게임이었다. 피트니스 어드벤처만큼이나 사람을 강제 운동 시키기로 명망 높은 게임이기도 하다.

은우로선 무술이 아닌 무용의 가치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그는 예술과 거리가 멀었기에─, 굳이 토 달진 않았다.

컹!

월!

평소보다 일찍 캡슐을 나온 주인의 모습에 로건이와 민식이가 신나서 꼬리를 흔들었다. PC 게임과 달리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게 아니므로 출입을 막지 않았다.

─으악 민식아!!

─멈머ㅜㅠㅠㅠㅠ

─소리만 들어도 기여어ㅠㅠ

─아 캠 얼른 켜줘요ㅠㅠ

─현기증ㅡㅡ

사람들이 좋아라 했다. 은우도 귀여워서 잠시 시선과 관심이 팔렸다. 사람들은 그것도 좋아했다. 카메라에 비치는 거구의 남성이 강아지에게 주의해 달라는 모습이 왜 좋은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

“1부처럼 오래 하진 않을 거고, 간단하게 한 시간만 할 겁니다.”

─한 시간만 해도 죽을 맛 아니냐

─아 헬멧...현기증...

─헬멧 벗을 때까지 숨참는다 흡!

저스트 댄싱이 어떤 게임인지 아는 사람들은 그 한 시간만으로도 만족했다. 자정에 가까워져 가는데 지켜보는 사람은 어째 더 늘기만 한다.

“노래가 엄청 많네요.”

구매와 다운로드는 금방 이뤄졌다. 본래 몸에 부착해야 하는 스티커가 있지만, 마침 피트니스 어드벤처에서 쓰던 것들이 있다. 호환성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안 됐으면 내일 써먹었을 텐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임 분쇄기on

─근데 요즘 게임 가뭄이긴 해...

─검기사2만 기다릴 뿐

─검기사2가 유일한 희망....

은우는 아쉬움에 혀를 찼다.

어쨌거나, 게임에 접속하니 현시대에서 가장 유명한 곡들이 리스트로 떠올랐다. 문제는 은우가 아는 곡이 하나도 없었다. 뉴스나 다큐는 볼지언정 가요 방송은 안 챙겨 보는 탓이다.

그가 아는 노래는 기껏해야 TV 효과음으로 나오던 곡 몇 개다. 그마저도 이름이나 가수는 몰랐고.

“여러분이 아무거나 집어 주시죠.”

그는 결국 선택을 타인에게 맡겼다. 이것을 예상했는지 은우가 그 말을 마치기도 전에 누군가가 후원을 터트렸다.

「‘jhlimk’ 님이 ‘1,000원’ 투척!

아폴론 - 불타는 밤.」

「‘заявление об отставке’ 님이 ‘1,468원’ 투척!

레드핑크. 따랏따랏두.」

간발의 차로 보이 그룹과 걸 그룹의 댄스가 순서대로 나열됐다. 보이 그룹은 파워풀한 댄스고 걸 그룹 건 섹시 댄스다.

“순서대로 하겠습니다.”

물론 섹시 댄스고 뭐고 시키면 하는 스트리머는 그냥 순서대로를 고집했다. 춤을 동작의 연속으로만 받아들일 뿐, 그것이 주는 느낌에는 별 감상을 받지 않는 까닭도 있을 것이다.

─섹시 댄스ㅋㅋㅋㅋㅋㅋ

─아 미쳤나봐ㅋㅋㅋㅋㅋㅋㅋ

─러시아좌 천재 아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부야 말로 개꿀잼 예약

─이 와중에 급해서 100루블만ㅋㅋㅋㅋ

─간발의 차였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춤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 ‘운동을 잘하는데 저스트 댄싱을 시켜 봐야 재미가 있을까?’라며 회의적이던 사람들이 저스트 댄싱의 본가치를 깨달은 것도 그즈음이었다.

후원이 차례대로 섹시 댄스, 혹은 요염한 댄스곡으로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가끔가다 절도 있는 댄스나 코사크 댄스처럼 난이도 있는 곡들도 튀어나왔다.

노래를 몰라 춤도 모르는 은우로선 다 의미 없는 신청들이었다.

“지금 후원 오는 건 안 받습니다. 곡 끝나고 말해 주십쇼.”

─ㄲㅂ

─아 후원 꿀꺽 하는 것 보소

─지금부터 대기탄다

─흑우들 넘치죠?

─레.드.핑.크.좋.아.

은우는 화면을 다시 한번 조정한 다음, 캠에 비추는 배경을 투명화까지 시켰다. 그리곤 게임 시작을 눌렀다. 댄서 선택 창을 지나친 후, 휘파람과 함께 노래가 시작됐다.

“저걸 보며 따라 하면 되는 거군요.”

은우는 둥둥거리는 소리를 무시한 채 화면의 댄서를 확인했다. 혹시라도 동작을 놓쳤을 플레이어를 위해 하단엔 동작 설명 또한 지나간다.

은우를 구경하고자 자리에 앉았던 강아지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벌떡 일어섰다.

“생각보다 쉽네요.”

─?

─보통은 그 말 후회하게 될 것이다 하겠는데 켄이라서..

─민식아아아아 로건아아아아ㅏㅇ아

─아앗....이게 바로 피지컬

─현실에서도 운동 잘하는 거 에바잖어

─와 근데 카메라가 꽉 차네 키 개크다

─민식이랑 로건이 눈 동그래진 거 보솤ㅋㅋㅋ

시청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불합리할 정도로 몸 다루는 데 재능이 있는 이에겐 아무리 봐도 쉬운 게임이었다.

그는 한 번 점프한 후 발을 털었다. 화면에 떠오른 댄서를 보면서 해야 하기 때문에 반의반 박자 느렸지만, 워낙 은우의 눈썰미가 좋고 머리 회전도 빨라서 거의 동시에 추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 강아지들은 안절부절못하듯 그를 중심으로 뱅글뱅글 돌았다가, 이내 엉덩이를 붙이고 그를 구경했다. 은우의 동작이 이어질 때마다 고개가 휙휙 따라왔다.

“이거 잘못 추면 발목에 무리 가겠습니다.”

─잘....춘다....

─와..... 개박력

─멈머들ㅋㅋㅋㅋㅋㅋㅋ

─헬멧 좀 벗어봐유

─진짜 개멋잇다

─와, 우리집 개는 나 무는데;; 쟤네 되게 침착하다...

양쪽 발목을 틀거나 골반을 살짝 튕기듯 허리를 움직인다. 이후 다시 한번 뛰고 착지하며 몸을 옆으로 튼다. 그러곤 다리를 벌리듯 양쪽 무릎을 굽히되 발 앞부분은 들어 발뒤꿈치로만 뛴다.

가볍게 뛰기엔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동작들이 엄청나 쿵 소리가 나야 정상이지만, 은우는 특유의 몸 버릇을 버리지 못해 소리 없이 착지하며 움직였다.

“그래도 전신운동은 되네요.”

─아니,,,형,,,,

─헬창 같은 발언

“형 시키면 좋겠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형님: 아니 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심이다. 일상에서 쓰지 않는 근육을 자극하는 건 물론, 유연성도 기를 수 있다. 무술처럼 직접적인 무력 강화를 기대할 순 없겠으나, 만년 체력 부족인 형에겐 도움이 될 거다.

은우는 춤이 나름 효율적인 운동임을 인정했다.

「‘순두부’ 님이 ‘1,000원’ 투척!

아니야. 주지 마.」

─형님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ㅋㅋㅋ본인 등판ㅋㅋㅋㅋㅋㅋㅋㅋ

─형님 화들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것이 진심을 잘 아는 서건우가 방송 보다 말고 기겁한 건 여담이다.

컹!

민식이가 한 번 짖고 로건은 은우가 폴짝 뛰었다가 내려앉았을 때 언 것처럼 멈췄다. 다행히 얼음은 금방 풀렸지만, 껌뻑거리는 눈이 영 좋아 보이진 않는다.

하기야 인간들의 눈에는 대단하게 보여도, 개들 입장에선 날뛰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을 터. 깨물거나 난입하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민식이랑 로건이가 당황하잖아요ㅡㅡ

─인간 주제에 개 놀래키면 어캄

“시킨 건 여러분들입니다.”

은우라고 해서 뭐, 하고 싶어서 하나. 시청자들 때문에 하지. 그는 실로 찔릴 것 없이 당당했다.

당당만 했다.

“…애들 스트레스 받을까요?”

─눈치 보는 것봐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눈치는 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저정도면 양반임,,,, 우리집 멈머는 불안해서 계속 짖음....

─난 깨물렷는데,,,,

─? 우리집 애들은 -_- 이 얼굴이던데...

─케바케인 듯

─아니 그래서 다들 반려 동물 키우는 거냐고ㅠ 나만 멈머없어ㅠ

그런가. 은우는 춤을 이어 나가며 슬쩍슬쩍 두 강아지의 눈치를 보았다. 아이들이 과격한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름 적응됐는지 구경하는 것도 그렇고.

“정 스트레스 받는 것 같으면 마당으로 잠시 내보내겠습니다.”

─ㅠㅠ

─그게 맞찌...

─문 긁어대는 거 아님?

─그러진 않을 듯?

그는 앉았다 위로 뛰는 자세를 한 후 한쪽 발을 뒤로 차고 팔을 흔들었다. 그 속도가 엄청나 처음 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따라 하지도 못하는 편인데, 은우에겐 아무래도 좋았다.

크고 굵직굵직한 안무는 훤칠한 키와 어울려 안 그래도 강렬한 동작들을 더욱더 강인하게 보이도록 한다. 집이라서 가벼운 티셔츠만 입고 있음에도 헬멧을 써서 그런가 느낌이 무거웠다. 바지는 트레이닝복이었지만.

「‘옷이저게뭐야’ 님이 ‘1,000원’ 투척!

셔츠로 갈아입어주세요」

“…왜 옷까지.”

그렇지만 패션에 민감한 시청자들은 쉽게 봐주지 않았다.

결국 첫 번째 춤을 마친 은우는 투덜거리며 셔츠로 갈아입었다. 맨날 셔츠라서 그는 좀 질리는데, 사람들은 그게 아닌가 보다.

그나마 민무늬 검정 트레이닝 바지는 봐줘서 다행이다.

─아 화면 내에서 갈아입어야지

─ㄲㅂ

─하악....셔츠....

─근육에 셔츠는 킹정이지

─여청자들 겁나 많네

─여자 아닌데?

“왜 봅니까, 그걸.”

언제나처럼 사람들은 성희롱에 진심이다. 은우는 이 사람들이 일상생활은 가능한지 고민해 보았다가, 일상생활에서는 그래도 잘 숨기겠거니 하며 넘겼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민식이와 로건이의 턱을 긁어 준 다음 두 번째 춤을 골랐다. 후원이 쏟아졌지만, 이미 그는 정한 게 있다. 아까 신청받은, ‘레드핑크’라는 걸 그룹의 ‘따랏따랏두’였다.

시작부터 허리를 유연하게 돌리는 자세에 은우의 눈매가 좁아졌다.

“아까랑은 댄스가 조금 다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개잘춰

─ㅋㅋㅋㅋ잘추는데 왜이리 웃기냐ㅋㅋㅋ

─ㅗㅜㅑ....;;;

─형 섹시하다~~!!

─이것도 퍼펙트네

─어우야....

골반 튕기는 부분이라거나 허리 돌리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파워풀하긴 한데 이쪽은 섹시에 좀 더 중점을 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은우는 옆으로 서서 발을 비틀게 선 후 골반을 흔들고, 몸을 돌려 다시 정면을 보았다. 그러곤 손을 위로 올린 후 허리와 가슴을 유연하게 틀고 흔들었다.

어깨를 흔드는 것도 단순히 흔드는 게 아니라 양쪽의 높낮이를 달리해야 했다. 섹시 댄스라고 파워풀한 댄스보다 쉬운 게 아니다.

─와ㅋㅋㅋ

─잘 춰서 너무 웃겨ㅋㅋㅋㅋ

─하,,,, 오빠 연예인 하자

─반응 속도 봐

─근돼핑크

“잘 추는데 왜 웃습니까.”

은우는 느린 움직임으로 입에 댔던 손을 앞으로 뻗고, 뻗었던 다른 쪽 팔을 회수해 입에 대는 등의 동작을 했다. 이 와중에 다리는 조신하게 모은 상태라 사람들의 웃음을 유발했다.

착실한데 잘하기까지 해서 웃긴 유형이었다.

─하이힐도 신어주세요

─ㅋㅋㅋㅋㅋㅋ변태on

─ㅗㅜㅑ....

─ㅋㅋㅋㅋㅋㅋㅋㅋ

“하이힐까지 신는 건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발에 맞는 게 없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그걸 진심으로 받아주는 거냐고ㅋㅋ

─와 저 허리 트는 거 어케 하냐

─방금 장골ㅠㅠㅠ

─셔츠 올라갈 때 근육 보이는 거 봐라....실화냐..?

발에 맞는 게 없어서 안 된다는 건 진심이다. 찾아보면 있긴 하겠지만, 맞춤화라 시일이 좀 걸릴 터였다.

아무리 시대가 발전했다 해도 330짜리 힐의 수요가 많지는 않을 거 아닌가. 신는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만, 수요가 적은데 공급이 많은 건 생리적으로 어렵다. 미리 만들어 뒀다가 안 팔리면 상업적으로 손해니까.

은우는 게임이 끝나자마자 자세를 바로 했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이 앞다투어 후원을 던졌다. 정확히 끝난 후의 것만 카운트하는 은우의 철저함을 아는 까닭이다.

「‘아프디망’ 님이 ‘1,000원’ 투척!

Havanabrown이요.」

“다음은 하바나브라운 하겠습니다.”

─개 예쁠 듯

─그녀가 온다!

─ㄹㅇ 춤신춤왕

─하바나브라운 ㅁㅊ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벌써부터 기대됨ㅋㅋㅋ

선정권을 얻은 행운의 시청자가 결정됐다. 곡을 선정하자 화면에 한쪽이 트인 롱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댄서로 나왔다.

─느낌 온다 온다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오져ㅋㅋㅋ

─레전드다 진짜

─유어튜브에 꼭 올려줘야 해 형?

“이건 춤이 쉬운 듯 어렵네요.”

역시나 이어지는 댄스는 골반을 요염하게 돌리고 맵시 있게 손짓을 해야 하는 춤이다. 외국 곡인지 가사가 외국어다.

“부드러운 느낌이 잘 안 나는데.”

곡선형 신체의 매력을 극도로 드러내는 춤은 하바나브라운(고양이 종중 하나)란 제목에 맞춰 약간의 도도함도 담고 있으니.

고양이의 느긋한 분위기를 풍기고 싶던 것인지 느린 템포로 이어지는 데다가, 특유의 묘한 음악과도 어울려 상당히 나른한 분위기를 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 추는데 ㅈㄴ 이상해ㅋㅋㅋ큐ㅠ

물론 그게 어울린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은우의 말대로 그의 근육 가득한 체형은 부드럽고 가는 신체의 미를 극대화한 춤에 어울리지 않았다.

은우가 잘 따라 하는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였다.

“뭐가 웃긴진 모르겠지만, 여러분이 좋아하니 됐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왜 저렇게 좋아하나 싶다가도, 사람들이 좋아하면 됐다며 넘어갔다. 민식이와 로건이가 그를 한심하게 보는 기분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새로운 장르의 시도로는 완벽한 성공이 아닌가.

다음에는 형까지 잡아 와서 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

은우는 누군가가 알면 기함할 생각을 하며 그 뒤로도 한 시간 넘게 춤을 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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