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허찬수는 다이아박스 사옥으로 가던 길에 한 광고를 보았다. 킨슨에서 대대적으로 때리는 게임 광고였다.
기실, 킨슨이 대기업임을 고려했을 때 특이할 건 없다. 자기네들 게임을 홍보하는 거야 으레 있던 일이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광고에 시선을 빼앗겼다.
게임이 재밌어 보여서? 방송에 적합할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절대 아니었다.
“…켄.”
순전히 광고 속, 보스 몬스터에게 달려드는 사람 때문이었다.
둥!
심장 소리가 마치 광고에 삽입된 효과음처럼 들려왔다. 전광판인 만큼 소리 따윈 지원되지 않는데, 허찬수의 뇌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제하고 기억하는 BGM 몇 가지를 골라 자동으로 재생하는 중이었다.
전기를 두른 검을 몬스터의 가슴팍에 박아 넣는 켄의 모습은 그 정도로 강렬했다. 연출된 장면인 걸 알아도 감탄이 나올 만큼.
꽈악.
허찬수는 무의식적으로 손에 힘을 주었다. 이유는 몰랐다. 그는 지금 그 자신이 분한 건지, 답답한 건지, 아니면 비참한 건지도 알지 못했다.
그냥, 소리가 지르고 싶었다.
허찬수의 손이 주머니 속에 든 것을 더욱 거세게 쥐었다.
▣ 198. 발버둥 쳐 봤자 추하고 비참한
“이거, 켄 님한테 고마워서 어쩌나.”
우유엔탄산이 도시락을 받아 들고 한 말이었다. 레리도 4층짜리 도시락을 받아 보더니 너무 감격했다.
아직 개봉도 안 했건만, 이렇게 좋아할 일인가. 무엇보다 이거, 벌칙이라서 고마워할 이유도 없는데.
은우는 그걸 보며 뺨─헬멧─을 만지작거렸다.
“벌칙이니 응당 했어야 할 일입니다.”
“그래도요.”
“…여름이라서 빨리 쉬니까 조심하세요.”
보온 도시락이라고 해서 만능은 아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갓 만든 음식의 맛을 서너 시간 이상 보존하는 건 어려웠다.
“그럼 여기서 먹지, 뭐. 식으면 맛도 덜해지는데 아직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지.”
우우에탄산은 선뜻 결정을 내렸다. 어쩌면 그녀는 처음부터 그럴 작정으로 이 방을 빌렸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전달식으로만 쓰기엔 모호한 가구 배치였으니까.
“헉, 그럴까요?”
─헐 먹방?
─먹방 감사
─안 그래도 맛 궁금했는데ㅠ
─과연 맛잇을까?
─하는 거 봣는데 맛없기가 어려워보이더라...
─아 나도ㅠㅠㅠ
레리도 그녀의 말에 긍정했다. 반사적으로 눈을 번뜩이며 화색을 띠는 건, 관객으로 끼어 있던 개불과 레드바였다.
“밥이 부족할 수도 있는데, 괜찮으십니까?”
반면 은우는 덤덤히 물었다. 사전에 합의가 되지 않았을 뿐, 이것도 벌칙의 연장선이라면 연장선이다. 하여 방송이 길어지는 건 상관없다.
로건이랑 민식이가 기다리긴 하겠지만, 애당초 예상 못 한 부분도 아니었다. 아무렴 전달식으로 끝마치면 재미없잖은가.
“아, 그거야 요 앞 편의점에서 X반 사 오면 되죠, 뭐.”
그나마 마음 걸리던 건 밥의 양이었는데, 그것도 레리가 햇X을 대책으로 내며 괜찮아졌다.
“아… 그럼 그렇게 할까요. 전 괜찮습니다.”
“저도 좋아요!”
은우는 쉽게 수긍하고 받아들였다. 대신 그는 돌아갈 때 건조 간식 하나 사 가지고 가야겠다는 다짐을 추가했다.
“누가 갔다 올래요?”
“제가! 제가 사 오겠습니다!”
서은우가 훌륭한 개 집사가 되어 가는 동안, 탄산의 물음에 레드바가 번쩍 손을 들었다.
은우의 표정이 순간 묘해졌다. 그가 알기로 그들이 있는 건물엔 편의점이 없다. 즉, 레리가 말한 ‘요 앞 편의점’은 진짜 건물 앞 건물로 가야 했다.
반면 지금 자원한 레드바는…….
그는 레드바가 쓰고 있는 금색 롤빵 가발과 몸에 걸친 프릴 드레스를 보았다.
롤빵 가발은 큼지막하게 덩이 진 게 아니라 자잘하게 여러 가닥 나선으로 만 것이고, 프릴 드레스는 도발적인 붉은색이다. 심지어 무릎까지 오는 길이라 다리 아래론 하얀 니 삭스와 구두까지 보인다.
전부 벌칙으로 인한 의상이다.
“…제가 가겠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벌칙이기도 하고 막내니까요.”
은우의 말에 사람들이 눈을 껌뻑였다. 대략 2초. 오디오가 깔끔하게 비워졌다.
“아, 맞다. 켄 님이 제일 막내였지.”
“레드바가 행님, 행님거려서 레드바가 막내인 줄.”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랬지?
─ㅋㅋㅋㅋㅋㅋ
─기억조작on
─솔직히 레드바는 너무 철이 없어서,,,
─레드바가 어려보이는 거지
─켄은 어린 느낌이 잘 안 들고...
나이에 연연하진 않지만, 정작 저런 오해를 받으니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은우는 조금 불퉁해졌다. 어리다고 무시받고 싶은 건 아니나, 그렇게 삭아 보이나 싶은 것이다.
“켄 님 혼자 가긴 좀 그렇고, 레드바 님이랑 같이 가면 되겠네요.”
탄산이 껄껄 웃으며 지갑을 꺼내 들었다. 은우는 거절했지만, 나이로 밀렸다. 결국 은우의 손에 살포시 카드가 얹어졌다.
“참고로 까까 사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사 와도 돼요.”
“까까…….”
─ㅋㅋㅋㅋㅋ이게 바로 ‘노인장’이다
─켄 애취급 하는 탄산ㅋㅋㅋ
─근데 나이차 보면 애취급 할만하잖아ㅋㅋ
─까까 미쳣ㅋㅋㅋㅋㅋ
저번에 그 대화를 나눈 후 묘하게 어린애 취급이 됐다면 기분 탓일까? 은우는 손가락 사이로 카드를 휙휙 돌렸다.
“몇 개 사 오면 됩니까?”
“아까 영상 보니까 밥이 그렇게 적진 않던데……. 1개만 더 사 와도 되지 않나?”
“혹시 모르니까 2개?”
“그게 좋겠네요. 넉넉히 2개.”
“엥, 뭐야. 나도 껴 줘.”
레리와 탄산 자신만 고려한 발언에 개불이 슬쩍 나섰다.
“어이구, 내가 왜?”
“양 많잖아.”
“집에 어여쁜 딸내미 두고 바깥에서 저녁 먹게?”
“장인어른이랑 장모님이 아이 보고 싶다 하셔서 오늘은 거기 가 있어.”
사고로 마누라가 죽은 뒤, 처가댁에만 가면 고개를 들 수 없었던 이는 씁쓸히 웃기만 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이야 그를 꺼리지 않고 외려 반겨 준다지만, 그는 못내 그들의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그때 그 나들이만 가지 않았더라도 아내가 죽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에 사로잡힌 탓이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고, 분명 최선을 다했음에도 처가댁에 죄책감이 든다.
친구로서 그 고충을 들은 적 있는 탄산은 웃는 얼굴로 침묵을 잠깐 고수했다.
“어쩔 수 없구만.”
─앗....아앗...
─드십쇼 형님....
─아이씨 누가 내 눈물버튼 건드렸냐...
─혼자 먹는 거 쓸쓸하지..
그녀는 부러 꼿꼿하게 허락을 내렸다.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여상스러움이었다.
“아… 개불 님도 드실 줄 알았으면 더 싸 올 걸 그랬습니다.”
“에이, 괜찮아요. 아까 보니까 많더만.”
“내 것만 해도 뭐, 두 사람 먹고도 남을 양인데. 켄 님, 손 장난 아니게 크신가 봐요.”
손이 큰가? 은우는 그게 비유임을 알아도 반사적으로 그의 손을 보았다.
“…별로 안 큰데.”
그는 그의 입장에서 1인분─사실 저것도 좀 부족했다─을 싸 왔을 뿐이다. 은우는 억울해졌다.
“헉. 누나, 누나. 나도.”
한편 레드바 또한 희망을 가졌다. 레리가 나눠 주길 바라는 희망이다.
“누구신지.”
물론 호적 메이트는 40대 친구 관계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잉.”
질 수 없다는 듯 레드바가 손가락 총을 만들며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그건 그의 의상과 결합하며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냈는데, 레드바의 얼굴이 화장 잘 먹는 편이라 그럭저럭 봐 줄 만했다.
위화감이 없는 건 아닌데, 그냥 봐 줄 만한 정도라 해야 하나. 그러나 그건 삼자가 보기에 그런 거고, 혈육이 보기엔 그냥 끔찍한 형상이었다.
“으악! 누구세요!”
─ㅋㅋㅋㅋㅋㅋ질색
─극-혐
─으악! 안 본 눈 삽니다!
─아 저자식 또 저러네
─구에에에엑
레리는 질색팔색을 하며 눈을 가렸다. 은우가 그의 손을 보며 억울해하다 말고 고개를 돌린 시점이 바로 그때였다.
앞선 대화를 좀 놓치긴 했는데… 그 잠깐 사이에 고통받는 주체가 달라졌다. 벌칙은 분명 레드바가 받고 있을 텐데, 더 괴로워하는 건 어째 레리 같다.
“흐.”
정정한다. 은우도 조금 괴로웠다. 레드바의 애교는 볼 만한 게 못 됐다.
─켄 ㅅㅂㅋㅋㅋㅋㅋ
─헬멧 쓰고 있는데 표정 예상되는 거 실화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드바 광역딜 ㅆㅌㅊ;;;
“아, 끔찍해!”
“아, 누나가 벌칙 정해 놓고 왜 그래.”
“으악!”
어쩌다 보니 레드바의 애교를 직격으로 봐 버린 은우가 정신을 다잡는 사이, 레리가 후다닥 은우의 뒤로 숨었다. 은우의 고개가 따라 돌아갔다.
하얀, 아니 현실이니 갈색 포메라니안인가? 하여간 옆에 붙으니 진짜 작다.
“어…….”
레리가 은우의 몸체에 완전히 가려져 카메라 화면에도 잡히지 않게 됐다. 그는 그의 등에 숨어 날 선 눈을 하는 레리를 돌아봤다가, 도와 달란 의미로 연상조를 보았다.
“호오.”
“오오.”
─호오&오오 ㅇㅈㄹㅋㅋㅋ
─애기들 노는 거 보는 어른이냐고ㅋㅋㅋ
─이게 바로 노인조다...
거긴 흡사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도시락에도 손 안 대고 흥미진진하게 보는 게, 심정도 비슷해 보인다.
“와. 누나, 진짜 작다.”
“뒈진다.”
은우의 등 뒤로 주먹을 불끈 쥔 손이 튀어나왔다.
─ㅋㅋㅋㅋㅋㅋㅋ
─와 진짜 작아
─성하, 안 보입니다
─성하 어디 가셧는지
“켄 님! 막아 주세요!”
“네?”
“아, 행님. 제 편 들어 주실 거죠?”
졸지에 남매 사이에 낀 은우만 곤란해졌다.
그는 여기서 쓸 만한 말을 고르고 골랐다. 생각보다 답은 쉽게 나왔다.
“레이디를 건드리는 건 신사의 도리가 아닌지라.”
쌈박질에서 여자고 남자고 뭐가 대수겠냐만, 핑계가 된다면 써야 하지 않겠나.
은우는 아가씨 분장 한 레드바도 레이디 취급, 여성인 레리는 완전 레이디 취급 하며 손을 위로 들었다. 항복의 의미였다.
“커어. 역시 켄 님, 좀 멋있어.”
─아 이럴 때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기 잇기?
─나 오늘부터 레이디 (덜렁덜렁)
─좀 설렛어?? (덜러덜렁)
─덜렁쉑들 쳐내!
─간신들 쳐내!
역시, 그 말은 꽤 좋은 효과를 불러왔다.
결국 레 남매는 그를 빼고 다시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승자는 당연히 레리였다. ‘신의 심판’이라고 외치며 다짜고짜 날린 펀치가 주효했다.
“일단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넉넉히 3개 정도 사 와요. 남으면 가져가면 되지, 뭐.”
결국 레드바가 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 불분명한 상태에서, 그들은 출발했다. 레드바가 입술을 삐죽 내민 채 팔을 치켜들었다.
“켄 님! 갑시다!”
레리에게 한 대 맞고 나가떨어졌으면서도 여전히 밝다.
“네.”
레드바의 차림새가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그래도 가장 친한 스트리머다. 은우는 다섯일 때보다 한결 편해졌다. 솔직히 셋 이상 모이면 그들 텐션을 따라가기가 벅찼다.
“아, 행님. 저 때문에 오늘 고생하시고. 죄삼다.”
“아뇨……. 별로 고생은 아닙니다.”
─그치ㅋㅋㅋ드레스 입는 것보단 낫지ㅋㅋㅋ
─ㅋㅋㅋㅋㅋㅋ드레스 벌칙이엇음 ㄹㅈㄷ
─아 드레스 궁금한데
─요리가 백번 나은 듯ㅋㅋㅋ
‘아뇨’에서 ‘별로’로 이어지던 간격에, 헬멧이 슬쩍 레드바 쪽을 돌아봤던 탓일까. 시청자들이 낄낄거렸다. 은우로선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눈갱
─화장 개잘햇다
─가슴뽕도 했냐?
─ㅋㅋㅋㅋㅋㅋㅋㅋ
─깔깔깔깔
“뭐? 눈갱 하지 말라고? 야, 나도 싫거든? 벌칙이라서 어쩔 수 없거든?”
드론 카메라를 달고 쫄래쫄래 가던 차라 채팅방은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외려 다섯이 있을 때보다 더 가파르게 올라갔는데, 이때가 질문 타이밍이다 하며 몰려든 사람들이 채팅을 치는 탓이다.
─켄님 레드바 이뻐요?
─레드바 분장 실물 어떰?
─실물도 이뻐요?
그건 은우 쪽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헬멧 입가 부분을 어루만지다가 가까스로 답변을 짜냈다.
“굳이 예쁨의 기준을 세워야 합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걸 이렇게 멕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형님. 저, 분장한 게 그렇게 최악입니까?”
아가씨 분장을 달가워하지 않더니, 그래도 얼굴에 자부심은 있던 모양이다. 레드바가 나름 충격받은 얼굴을 했다.
“평소 보던 거랑 달라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이 조합 너무 좋앜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뭉칠 때마다 레전드 갱신ㅋㅋㅋ
하긴 객관적으로 레드바가 못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미남까진 아니더라도 훈남은 된다고 해야 하나.
심지어 앳된 이목구비와 상대적으로 뽀송한 피부 덕에 실제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인상이었다. 화장을 했을 때 이상하게 나올 리 없다.
“최악까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은우는 이상하게 레드바의 분장이 불쾌했다. 막 혐오스럽고 끔찍한 것을 봤을 때의 불쾌함은 당연히 아니다. 단지… 화장하고 나온 희수를 보는 기분이었다.
객관적으로 저게 괜찮다는 건 알겠는데, 괜히 놀리고 싶다고 해야 하나. 괜히 소름 돋는다고 할까.
아마 희수가 저러고 있으면 실컷 비웃어 줬을 터였다.
“아마도.”
그건 슬슬 레드바를 친구 정도로 여기게 됐다는 신호였으나, 은우는 그걸 몰랐다. 그는 결국 모호하게 말을 흐렸다.
─레드바쉑ㅋㅋㅋㅋ
─아 켄이 이상하다잖아~~~!
─대역죄인은 어서 머리를 박아라!
─아 레드바 아직도 머리 안 박앗지?
─머리 박아!
“네? 아마도요?”
다만, 은우가 덧붙인 말에 레드바는 10t짜리 돌덩이를 얻어맞은 얼굴을 했다. 실제로 그만큼 충격을 받았다기보단 진심 반, 농담 반 과장한 표정이다.
“믿을 사람 없다더니, 켄 님까지 그러실 줄은!”
레드바는 입으로 우는 소리를 내며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달려 나갔다.
물론 정말 상처받아서 저러는 건 아닐 터였다. 코앞이 편의점이었으므로 따라잡기도 쉬웠다.
“X반… X반……. 아, 여기 있다.”
역시나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니 햇X을 찾고 있는 레드바가 보였다. 그의 품에는 인스턴트 밥 외 간식거리도 한 아름 들려 있다.
편의점 알바가 레드바를 ‘저건 또 뭐냐’ 하는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물론 스트리머가 자주 오가는 편의점이었으므로 그는 금세 평온을 되찾았다.
“탄산 님이 허락해 주셨으니 까까도! 이 정도면 되겠죠?”
─인간적으로 너무 많지 않냐
─레드바에게 인간성이 어딧음;; 애벌레지
─레드바 양심 출타했냐ㅋㅋㅋ과자 개많이 사네ㅋㅋ
─과자 사가봤자 한 명만 먹지 않음?
─까까 ㅇㅈㄹㅋㅋㅋㅋㅋ
“엥, 왜 한 명만 먹어. 다섯이지.”
─도시락 때문에 세 사람은 못 먹을 것 같은데
─애벌레는 솔직히 빼야지ㅋㅋㅋ
─설마 님 과자 먹으실 생각?
─켄이 일 다했는데?? 님이??
“왜, 난 먹으면 안 돼?”
─님 양심있?
─와 님 때문에 켄 음식 노동형 금식형 벌칙 받는 건데 그 옆에서 먹겠다는 인성 보소;;
─레드바 인성 갱신;;
시청자들의 영원한 샌드백, 레드바가 본인 시청자들에게 격침당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은우는 한 뭉텅이의 제품 앞에서 고민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뭐가 더 맛있을까요?”
─켄넴....그건 강아지용 까까인데요...
─반려동물 거야 먹으면 안 돼
─민식이랑 로건이한테 양보하세요
─형 그거 반려동물용이야
─인간용 아닙니다
은우는 사람들의 오해에 잠깐 어이없어했다. 그가 뭐든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맞지만, 인간용 간식을 두고 강아지용 간식을 왜 먹겠는가.
“…제가 이걸 왜 먹습니까. 민식이랑 로건이 주려는 겁니다.”
─개덕후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켄: 얼척
─앗,, 아앗,,,,,
─순간적으로 켄이라면 먹을 수 있지 않아 싶엇다
─근데 저거 은근 맛잇긴 잇음..ㅋㅋㅋ
“로건이랑 민식이가 집에 있는 거 아시면서 왜 제가 이걸 먹을 거라 생각을…….”
─형이 짐승같아서 그래
─켄이,,,짐승,,,같아,,,,메모
─퍄퍄;;
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건조 닭가슴살을 골랐다. 당연히 닭가슴살 결제는 그의 카드로 했다. X반 결제할 땐 탄산이 보란 듯이 후원하는 바람에 실패했지만.
* * *
허찬수는 사옥 앞에서 잠시 주저했다.
그가 지금 저지르려는 일이 옳은 건지 아닌지, 애초에 이걸 정말 그가 해낼 용기는 있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던 탓이다.
이대론 안 된다,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몰아치다가도 어느 순간 벽에 막혀 그대로 침전되고 만다.
마치 물속에서 움직이는 기분이다. 숨이 막히고 몸도 둔하다. 사방의 소리만 괜히 크게 들려와 귀가 윙윙거렸다. 몸이 계속 늘어지기만 한다.
우울함에, 혹은 그 이상의 감정에 사고가 먹혀 버린 것이 분명했다.
“…….”
그렇지만 이대로 계속 있어? 다른 방법은 다 실패해 버렸는데? 여기서 더 찾을 수는 있냐고.
그는 방송을 켜 보려고 노력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복귀를 위해선 감을 잃으면 안 되니까, 카메라라도 혼자 돌려 가며 찍어 낸 자신을 회고했다.
돌아본 영상은 그 무엇도 그답지 않았다. 아니, 빌리답지 않았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게임에 몰두한 후, 인기 게임의 랭커부터 시작해 프로를 거절하고 스트리머로서 승승장구해 왔던 빌리는 저렇지 않다.
허찬수는 숨을 뱉었다. 여름임에도 그의 더운 숨은 한 줄기 길이 되어 허공을 갈랐다. 그의 생명 일부가 빠져나가는 듯하다.
그는 그걸 멍하니 보다가 주머니 속에 고이 들어 있는 것을 매만져 보았다. 피부를 후끈하게 덥히는 더위 속에서도 그것만은 퍽 서늘했다.
언젠가, 집구석을 뛰쳐나올 때 그는 외쳤다. 실패했음에도 구질구질하게 목숨을 연명하느니, 나는 깔끔하게 끝을 볼 거라고. 당신처럼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그러니까, 그렇게 다짐했으니까. 그는 이대로 가만히 붕괴를 기다리지 않을 거다.
어차피 무너질 탑, 발버둥 쳐 봤자 추하기만 하지 회생 따윈 불가능할 것이므로. 그의 발악이 타인의 구경거리가 되어 비웃음만 사게 될 것이므로.
오직 그러할 것이므로.
그 전에 먼저 무너트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 * *
우여곡절 끝에 도시락 먹을 준비가 다 됐다. 은우는 개봉되지 않은 도시락과 전자레인지에서 데워 온 흰쌀밥을 차례로 보았다.
참고로 그들은 전원이 카메라에 들어오도록 나란히 앉은 상태다.
왼쪽부터 레드바, 레리, 그, 탄산, 개불이었다. 왜 그가 가운데인지는 아직도 모른다. 양쪽에서 음식 냄새 맡고 고문당하란 의미가 아닌가 싶다.
“켄 님, 진짜 잘 먹을게요.”
“아, 진짜 나 안 줄 거야?”
“내 눈 썩게 하지 말고 가 줄래? 넌 켄 님께 미안하지도 않니?”
레리가 레드바를 밀어내는 동안 탄산과 개불이 먼저 도시락을 열었다. 희뿌연 김과 음식 냄새가 화악 퍼졌다.
“와. 김 나는 거 봐라.”
“크으, 전 너무 오랜만인데.”
“냄새 죽인다…….”
“…배고파.”
─와 미쳤다...
─켄 배고파하는 것 봐ㅠㅠㅠ
─하긴 저녁시간이지 지금;;
─죽을 맛이겠다
─헬멧 쓰고 있는데 배고파하는 게 보임?
─용의 눈으로 보면 보며
─백안!
갇혀 있던 열기가 빠져나오며 증기를 모락모락 피웠다. 그 후 보이는 것들은 살짝 흐트러졌을지언정 여전히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다.
“쓰읍.”
그들은 제공받은 젓가락을 뜯으며 목울대를 움직였다. 군침이 돈 모양이다. 은우도 비슷했다. 그가 했지만 맛있는 건 맛있는 거였다.
“일단 카메라, 카메라.”
각도를 잘 설치한 덕에 시청자들에게도 도시락이 잘 보일 터. 그럼에도 그들은 구태여 화면에 한 번씩 비춰 주었다. 시청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켄 님, 잘 먹을게요. 세상에, 진짜 맛있어 보이네.”
“하하, 나도 잘 먹겠습니다. ”
“아, 나도 줘잉.”
“아, 좀 가!”
“…네.”
그의 음식을 이렇게 좋게 봐 줄 줄 몰랐다. 사진이야 반응이 뜨겁긴 했지만, 그거랑 이건 또 느낌이 다르다.
은우는 뻘쭘한 얼굴로 헬멧 표면을 쓸었다. 근데 그건 그거고, 지금은 배가 고프다. 집 가서 밥하려면 또 걸릴 텐데.
“으와. 켄 님 덕에 호식하네, 오늘.”
은우는 탄산의 흰쌀밥 위, 각종 나물이 올라간 걸 보며 입맛을 다셨다.
초고추장 양념에 조물거린 비름나물. 앙념 특성상 초고추장 고유의 달고 시고 짠 맛이 강하지만, 비름나물 특유의 맛도 무시할 순 없다.
은우 개인적인 판단으론 흰쌀밥 특유의 담백한 단맛이랑 찰떡궁합이었다. 나물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맛을 싫어하긴 어려울 거다.
“저는 못 먹는데.”
“벌칙이니까 어쩔 수 없죠.”
“그런 그렇네요.”
“솔직히 미안해서라도 규칙 완화 해 드릴 마음이 있긴 한데… 권해도 켄 님, 헬멧 안 벗으시겠죠?”
“그것도 그렇네요.”
탄산의 말이 맞다. 은우는 아쉬움에 살짝 혀를 찼다.
─아 벗고 먹자
─형 배고프지? 벗으면 먹는 거 허락해줌
─이참에 얼공하고 먹자
─비수들 관대한 것 보소
─^^ 딱 눈감고 벗자
─배고프잖아요오호홍
“벌칙은 벌칙이니까요. 끝까지 안 먹고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이걸 안 넘어가네
─ㄲㅂ...
─벗고 좀 드시지
“아이고, 켄 님께 미안해서 어째.”
그사이 개불은 애석함을 표하면서도 전을 건드렸다. 그가 가장 먼저 집은 건 계란 흰자를 묻혀 구운 동태전이다.
얇은 계란 옷 아래에는 이가 닿기만 해도 으스러질 정도로 부드러운 동태살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씹으면 열기를 후욱 뿜으면서도 보드라니 으깨질 거다.
크기가 커서 두 번 나눠 먹어야겠지만, 그렇다 해서 맛이 반으로 줄어들지도 않을 테고.
심지어 그는 동태전으로 선택을 마치지 않았다.
개불은 깻잎전까지 베어 물었다. 사이에 소를 넣고 잎사귀를 반으로 접어 부친 깻잎전은 입안에 들어오자마자 고유의 향부터 강렬하게 퍼트린다.
열기에 쓰으, 하고 숨을 들이켜면 깻잎 향은 비강까지 가득 메우고 마니. 그런 상황에 고기소가 입안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면 기름의 느끼함보다는 야들야들하게 부서지는 소의 맛이 더 진하게 이어진다.
“와, 진짜 맛있어.”
개불이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걸 보던 탄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장모님 것보다?”
“…우리 장모님 솜씨는 아무도 못 이기지?”
─회피 만렙ㅋㅋㅋ
─자연스레 처세
─장모님!! 여깁니다!!
─회피력 봐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이 낄낄 웃었다.
“와, 와. 고기 너무 좋아.”
반면 젊은 레리의 선택은 갈비찜이었다. 푹 익어 뼈에서 쏙 벗겨지는 갈빗살을 물자, 양념이 그녀의 입술에 한가득 묻었다.
레리는 혹시라도 국물이 떨어질까 손으로 턱을 받치며 그 커다란 고기를 입에 욱여넣었다. 음! 음! 말이 되지 못한 소리가 떨리는 다리와 함께 맛 표현으로 전달됐다.
“으아, 맛있겠다!”
─ㅠㅠㅠㅠㅠ
─와 진짜 개맛있겟다ㅠㅠ
─성하 당근도 먹어주세요ㅠㅠ
─하 흰쌀밥에 고기,,,,
─저건 진짜 진리지......
─맛알뇌라서 더 미치겠다..
─외국인들도 난리임ㅋㅋㅋ
─걔넨 그래도 맛몰뇌잖아....
얻어먹는 데 실패한 레드바는 이도 저도 못 하다가 옆에서 오두방정만 떨었다. 물론 그 오두방정은 곧 땡깡이 되었으나, 레리는 훌륭한 제압자였다.
“너는 켄 님께 죄송하지도 않아? 너 때문에 직접 요리하신 것도 입 못 대고 계신데?”
그녀의 호적 메이트는 촌철살인 앞에 무너졌다. 별로 안타깝진 않았다.
집중할 거리가 있다면 모를까, 없는 상태에서 음식을 앞에 두고 가만히 있자니 너무 배가 고프다. 자업자득이기에 뭐라 할 마음은 없지만, 마음이 박해지는 것 정돈 허용 범위라 본다.
“아, 진짜 너무 맛있어요. 켄 님, 너무 대박. 벌칙으로 넘어가도 되는 건가, 이거?”
“…전 괜찮습니다.”
“아녜요. 진짜 공짜로 먹고 입 씻기 뭐한 수준이야.”
은우는 레리와 개불의 찬사를 들으며 ‘그 정도인가…….’ 하는 고민에 빠졌다. 남이 해 준 요리도 맛있게 먹는 그로선 별로 공감이 가지 않았다.
물론 가끔 식당 가면 그가 한 것보다 맛없는 곳이 종종 있긴 한데… 그가 식당을 고르는 기준은 집에서 하기 귀찮거나 힘든 음식이었기에 대부분은 맛있다고 여겨 왔다. 앞으로도 별반 달라지지 않을 테고.
“정 마음에 걸리시면.”
그는 사례를 하고 싶어 하는 세 사람을 보며 입을 열었다.
“조금만 빨리 드셔 주시기 바랍니다.”
집 가서 얼른 밥 차려 먹고 싶다. 은우의 절실함을 세 사람은 단박에 알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