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그런데 침수면 높은 지대가 마지막으로 남게 되는 거 아닙니까?”
경기 시작 후 10분. 은우는 코너를 튀어 나감과 동시에 양동이를 휘둘러 적의 상체를 흠뻑 적셨다.
적이 깜짝 놀라 마주 총을 쐈지만, 이미 예상한 바였다. 은우는 슬라이딩하며 적에게 잉크를 또 한 번 끼얹었다. 펑 소리가 나며 적이 사망했다.
─ㄴㄴ 땅이 내려앉아버리는 구조라서 고지대 저지대 상관 없어요
─빌딩 윗부분은 좀 남긴 하는데... 그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가라앉아서
─정확힌 침수가 아니라 침하에 가까움
“아, 그렇습니까?”
은우는 양동이를 바닥에 버렸다. 양동이처럼 잉크 소모량은 큰데 사거리가 짧은 무기는 배틀 로얄에서 별 쓸모가 없던 탓이다.
본인이 뿌린 잉크 위에 서 있으면 자동으로 충전되던 땅따먹기 모드와 달리, 배틀 로얄은 오롯이 잉크 통 획득에만 의지해야 한다. 대걸레는 직접 공격일 때 잉크 통 소모가 없기라도 하지, 양동이는 그것도 아니었다.
무기 소지 개수도 정해져 있는 마당에 들고 다닐 이유가 없단 소리다.
애당초 이 양동이도 아래층 거실에 방치되어 있던 걸 위층에 사람 있다는 걸 감지하고 잠깐 집어 든 것뿐이다. 양동이를 줍느라 개틀링 건을 버려야 하긴 했지만, 이따 내려갈 때 회수하면 된다.
“그럼 침수된 지역은 못 들어갑니까?”
─들어갈 수는 잇어요
─근데 도트뎀 때문에 전용템 들고가야댐
─바니쉬 바르고 들어가야 함니다
─바니쉬 떡칠하고 들어가야 좀 버틸 수 잇습니다
“바니쉬? 이거 말하시는 겁니까?”
─ㅖ
─이게 딱 나오네
─ㅋㅋㅋ타이밍
─그거예요
은우는 적이 떨어트린 아이템을 획득했다. 방수 바니쉬. 아이템 외관에는 그런 글자가 똑똑히 적혀 있다.
“왜 물에 그냥 못 들어갑니까?”
─인간이 아니라서 그럼
─얘네가 나무인간이엇나?
─ㅇㅇ 피노키오족
─물에 닿으면 썩어용ㅋㅋ
“피노키오?”
온갖 신화는 공부했어도 동화는 공부하지 못한 편중된 지식인이 단어 끝을 올렸다.
그러나 지금껏 의뭉스럽게 넘겨왔듯 은우는 이번에도 그의 무지를 들키지 않았다. 로컬 동화라면 모를까 여러 매체를 통해 대중적이게 된 동화마저 모르긴 어렵다는 편견이 사람들의 눈을 가려 준 덕이다.
─피노키오랑 물이 뭔상관
─나무인형이 인간된 거라....습기에 약하단 설정임
─그래서 물에 닿으면 썩어버림
─ㅈㄴㅋㅋㅋ고속부패냐고
─거의 국K-1 수준
은우는 눈치껏 채팅을 읽으며 새로운 지식을 쌓았다. 동화라는 게 어렸을 때 이외엔 특별히 접할 일도, 관련 지식을 이용할 일도 없다 보니 지금껏 신경을 못 썼다.
“그래서 죽으면 나무 인형으로 돌아갔군요.”
─넹
─도로 나무인형되는 거
─아 그래서엿음?
“잉크에 닿으면 죽는 건 무슨 이유입니까.”
─인간되는 마법이 풀려서요ㅋㅋㅋ
─잉크 닿으면 마법 풀림
─마법 풀린댓나 잉크 닿으면?
─ㅈㄴㅋㅋㅋ개웃기네ㅋㅋ
단순히 잔인하게 보이지 않도록 그런 줄 알았다.
은우는 세세한 것에도 설정을 짜 넣는 게임 제작진에 새삼 감탄하며 쌍권총을 위로 들었다. 테라스로 나가기 위한 문이 열리는 순간, 그의 손이 방아쇠를 당겼다.
쿵!
잉크 탄에 처맞은 적이 바닥을 구르며 역공을 했다. 그러나 은우는 스텝 한 번으로 가볍게 회피했다. 곧 또 하나의 목각 인형이 탄생했다.
『말랑잉크 Kill!』
『6Kill│54명이 남았습니다』
은우는 말랑잉크가 가지고 있던 잉크통과 몇 개의 회복 템을 획득했다. 이쪽도 바니쉬를 들고 있던 덕에 그의 바니쉬는 총 3개가 되었다.
“한 번 바르면 계속 적용됩니까?”
─아녕
─바른 시점부터 효과가 점차 떨어지는 느낌
─시간제한도 잇습니다
─ㄴㄴ
「‘정보’ 님이 ‘1,000원’ 투척!
물에 들가면 1초마다 댐지가 1씩 들어오는데 쟤 바른 직후에는 0.1로 줄고, 5초마다 0.1씩 상승되서 들어옴니다」
즉, 바른 직후 5초간은 초당 0.1씩 피가 줄고, 6초부터는 초당 0.2씩, 11초부터는 초당 0.3씩 주는 셈이다. 효과가 엄청 좋다고는 말 못 하나, 본래면 100초 안에 죽을 목숨. 연명해 주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은우는 소지 용량을 확인했다. 운 좋게 용량이 커다란 스포츠 백을 얻은 상태라 아직 공간은 넉넉했다.
“침수 예정 지역이니 계속 움직이겠습니다.”
그는 아래층에 두고 온 개틀링 건까지 꼭꼭 회수한 후 그 건물을 떴다.
▣ 196. 오늘 같은 밤이 계속되면 좋겠다
은우는 그를 노리고 쭈욱 날아온 잉크 선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쥐색 선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다.
그가 쏜 잉크만 색을 품고 있고─랜덤이다─, 타인이 쏜 잉크는 누가 쏘든 간에 쥐색을 띠는지라 어떤 사람이 쐈는지까진 특정할 수 없다.
그러나 누가 쐈는지 특정할 필요가 뭐가 있겠나. 어차피 전부 죽여야 하는 입장인데.
“저기 있네요.”
은우는 개틀링 건을 쥐고 달렸다.
어차피 지금 있던 장수가 침수 예상 지역에 포함되며 이동해야 하던 참이다. 마침 그를 노린 저격수의 위치는 이동 방향과 일치했고.
그는 스포츠 백만 한 크기의 개틀링 건을 쥔 채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었다. 중간중간 그를 목격한 호스 유저들이 그를 노렸지만, 은우를 맞출 수 있는 능력자는 없었다.
그리고 저격수가 이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에 다다랐다. 그의 예민한 귀는 콘크리트 바닥에 지익 끌린 신발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은우는 잠시 쌍권총으로 변경한 뒤 건물의 2층 난간을 쏘았다. 그러곤 뛰어내리며 개틀링 건으로 무기를 변경, 남은 한 손으로는 2층 난간을 붙잡았다.
촤악!
그의 발은 난간을 넘어 벽으로 흘러내린 잉크와 만나 벽을 단단히 딛고 섰다. 한편 개틀링 건은 난간에 걸쳐진 채로 건물 안쪽을 응시하는 중이다.
개틀링 건 너머로 눈이 휘둥그레진 적의 얼굴이 선명하다.
─와 이게 되네
─개 멋잇다
─와,,,,,
─영화가 필요 없다
─적 당황한 거 보소ㅋㅋ
─나여도 당황할 듯
두두두두두두!
여기까지 생존한 만큼 적의 반사 신경도 만만치는 않았다. 그러나 은우는 몸을 최대한 뒤로 눕혀 개틀링 건만 난간에 걸친 상태였다.
만약 카메라를 90도 돌리면 그가 다리를 벌리는 형태로 쪼그려 앉아 팔을 아래로 축 늘인 것처럼 보이리라.
이 정도쯤 되면 직진으로 쏟아지는 호스 공격에 맞긴 어렵다. 비록 떨어지는 잉크에는 살짝 젖겠지만, 그마저도 상체를 대각선으로 틀면 그만이다.
『김미치 Kill!』
『10Kill│23명이 남았습니다』
그는 킬 로그가 뜨기도 전에 아래로 뛰어내렸다. 간발의 차로 그가 있던 자리를 향해 잉크 탄이 쏟아졌다.
착!
도로에 착지한 은우의 몸이 낙법을 펼치며 건물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했다. 그러자 그를 쫓던 공격이 그쳤다. 맵이 거의 좁혀진 상태에서 함부로 잉크를 소모하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 수 있는 탓이다.
그는 그것에 힘을 입어 유유히 2층으로 올라갔다.
슬슬 가방이 다 차 추가로 아이템을 확보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교환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적이 들고 있던 호스가 필요했다. 아까 죽일 때 호스 들고 있던 걸 보았으니 확실히 얻을 수 있다.
“드디어 호스를 먹네요.”
─호.스.
─모두 호스하세요
─아 안 산다고!
─야호!
─뱉랼에선 호스 좋아
─(잘 쓰면) 좋아
스플랫의 무기는 대체로 사거리가 짧은 편에 속한다. 총 종류가 그나마 길지만, 이마저도 보통 총에 비했을 땐 짧다.
그 속에서 호스는 독보적인 사거리를 자랑했다. 기종마다 다르지만, 최소 다른 무기의 2배, 최대 4배까지 유효 사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수량 자체가 워낙 적어서 얻기는 힘들지만, 한 번 얻으면─에임이 준수하다는 가정하에─반드시 이득을 본다. 치고 빠지기 정말 좋은 탓이다.
잉크의 선이 남아 저격 장소를 대놓고 가르쳐 준다는 단점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사거리가 워낙 길다 보니 자리를 들켜도 도망치기 쉽다. 잉크 소모량이야 잉크 탄 자체가 워낙 넉넉히 나와서 남발하지만 않으면 걱정 없고.
배틀 로얄 유저들이 호스를 갈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은우가 호스를 원한 건 비단 그런 이유에서만은 아니었다.
“호스로 킬할 때마다 만 원, 맞습니까?”
─넹!
─크... 호구 하나 입장하십니다
─흑우: 음머어어어어
─판 우승도 무난하게 해내실듯
─이쯤되면 그냥 자판기;;
남은 인원은 고작 23. 서로 싸우다 죽는 경우도 있을 테니 많이 죽여 봐야 5명 내외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딱히 돈을 원해서 호스를 얻고자 한 건 아니었다.
“호스로 죽이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여 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단지, 미션을 걸 정도로 그 장면이 보고 싶은 것 같아 바랐을 뿐이다. 그야 앞으로도 이런 미션을 몇 번 받을 수 있겠지만, 상대에겐 아닐 테니까.
은우는 개틀링 건을 버리고 호스를 쥐었다.
반짝.
창가 근처에 서니 건물 옥상에서 반사되는 빛 쪼가리가 보였다. 그를 노리고 있는 건 아니었다. 거리 자체도 멀고 빛 반사 방향이 그를 향하지도 않았다.
은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잡으러 갈까요.”
─사냥 시작한다
─긴장타라
─ㅋㅋㅋ아 이걸 걸리네
─??: 아 함만 봐줘요
『경기 지역이 침수됩니다. 지도에 표시된 구역까지 물러나세요. 5분 남았습니다.』
때마침 새롭게 지역이 지정됐다.
은우는 그가 있는 구역과 맞붙은 구역이 천천히 무너지는 걸 보았다. 도로가 격자 형태로 블록을 구분하고 있는지라 가라앉는 것쯤은 확인하기가 쉽다. 바스러지는 형태가 아니라 블록 하나하나 차례로 침하되는 형상이라서 그렇다.
“그 전에, 다른 사람들부터 잡아야겠습니다.”
남은 블럭은 고작해 봐야 열댓 개 정도. 가장자리 쪽 블럭들이 침하되면 9구역 정도만 남을 거다. 사람들이 말해 주기론, 바니쉬와 회복 약에 의존해 침수 구역에서 파밍하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그런 그들도 슬슬 중앙 구역으로 들어올 때가 됐다.
─아이고! 왜 여길 오니!
─엄마가 여기 오랬잖아!
─파리지옥on
─저절로 먹잇감들이 굴러들어오누;;
“노란 머리부터 보내겠습니다.”
지금 은우가 보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팡!
렌즈와 조리개가 빛나는 걸 막기 위해 난간 아래로 내려놨던 호스를 들었다. 거의 동시에 출격한 잉크는 선명한 초록색을 자랑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오토바이를 타고 전진하던 노란 머리 플레이어가 초록색 잉크에 흠뻑 젖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는지 한 방에 사망하진 않았으나, 연속으로 호스질을 하니 금세 목각 인형이 됐다.
『정진실 Kill!』
『11Kill│20명이 남았습니다』
“하나 더 옵니다.”
─진짜 불쌍하다...왜 여기 도로를 택해서...
─(대충 짠하다는 눈)
─그보다 벌써 만원 올린 거 실화냐
─호스 좋다니까?
많고 많은 방위 중 하필 은우가 있는 건물 쪽 도로를 고른 게 그들의 불운이다. 그는 그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네며 호스를 발사했다.
『ㅇㅇ Kill!』
『12Kill│19명이 남았습니다』
『MaNDRa Kill!』
『13Kill│16명이 남았습니다』
순식간에 3킬을 올렸다. 그가 적 플레이어를 죽이는 사이, 다른 이들도 킬 수를 적립했는지 인원이 훅훅 줄어든다.
“한 명만 더 죽이고 갑시다.”
─ㅖ?
─??
─?
─더 잇어?
은우는 차분히 호스를 장전한 후, 아까 호스 유저를 죽일 때처럼 난간 쪽 벽에 섰다.
팅, 팅팅팅-
수류탄이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가 그대로 터졌다. 쥐색 액체가 콘크리트 바닥을 적셨지만, 은우에겐 아무런 유효타도 주지 못했다.
─와;; 이걸 듣네
─사플의 신인가?
─켄이 켄했을 뿐-
“내려옵니다.”
바깥에서 저격이 들어오기 전, 계단을 타고 누군가가 먼저 뛰어내렸다. 은우로선 다행이었다.
파앙!
아까 플레이어 김미치를 죽일 때와 같은 상황이 또 한 번 벌어졌다. 달라진 것은 죽임당한 대상과 그를 죽일 때 쓰인 무기였다.
『읭닝읭닝 Kill!』
『14Kill│13명이 남았습니다』
탕!
킬 로그가 올라간 찰나, 은우의 옆구리가 쥐색 잉크로 젖어 들었다.
은우는 망설임 없이 바닥으로 뛰어내린 후, 보통 낙법을 취했을 때 구르는 방향 반대쪽으로 점프했다. 덕분에 예측 샷을 회피, 그의 HP를 아낄 수 있었다.
“호스 하나 더 오네요.”
─안돼 도망가!
─여긴 지옥이라고!
─켄이 있다고!
─근데 이미 걸렸죠? 끝났죠?
반짝, 하는 게 은우의 시선에 닿는 것도 잠깐. 그는 돌려 차기를 하듯 다리를 돌리며 몸을 띄웠다. 그의 등 아래로 잉크가 주욱 선을 그렸다.
탁.
은우의 한쪽 발이 땅에 닿았을 때, 그의 손은 호스를 들고 장전했다. 그리고 돌아가던 몸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며 나머지 발까지 땅에 붙은 순간, 그는 호스 구멍을 한쪽으로 겨누었다.
팡!
터져나간 잉크가 방금 전 쏟아진 쥐색 잉크 물과 비슷한 경로를 그렸다. 차이점이라면 한쪽은 상대를 맞추지 못했고, 한쪽은 상대를 정확히 저격했다는 점이다.
『Kr3737 Kill!』
『15Kill│9명이 남았습니다』
─첫판 15킬 실화냐...?
─첫판 최후 10인각 실화?
─켄이 켄-햇다
─이게 바로 구울왕이다
─캬,,,, 격의 차이
─이와중에 에임 미쳣냐;;
은우는 호스의 줄 부분을 잡고 빙빙 돌렸다. 그의 다른 손은 회복 아이템인 알코올을 꺼내 그의 몸에 뿌리고 있다.
그래픽상 옷이 젖어 달라붙거나 비치는 등의 이펙트는 없으나, 옷 자체에 물방울이 맺히며 뚝뚝 떨어지는 이미지는 생겨난다.
“50만 원, 가능해 보입니까?”
쥐색 잉크가 알코올에 씻겨 내려갔다.
* * *
컹!
캡슐을 나오자마자 민식이가 퍼뜩 일어나며 작게 짖었다. 졸다 말고 캡슐 열리는 소리에 깬 모양이다.
로건이도 상체만 들지 않았을 뿐 목을 들고 눈을 껌뻑인다. 얕게 켜둔 무드 등이 두 쌍의 까만 바다에 노을을 얹었다.
그가 나오기만을 기다린 듯 캡슐 앞에 착석해 있는 두 강아지를 볼 때마다 새삼스럽다. 은우는 멈칫거리다 말고 무릎을 천천히 굽혔다.
“…기다렸어?”
그는 민식이의 목과 얼굴을 쓱쓱 쓸었다. 로건이도 고개를 들이밀며 그의 손에 코를 가져다 댔다. 살짝살짝 닿아 오는 코가 미지근하니 사랑스럽다.
“…….”
매번 방송이 끝나고 드는 허전함은 온데간데없고, 어이없을 정도의 기쁨만이 남는다.
은우는 눈가가 뜨끈해지는 감각과 함께 두 마리의 이마에 입을 가볍게 맞췄다. 입술에 닿는 부드러운 털들이 그를 간지럽혔다. 두 강아지가 멋대로 그의 심장과 입술을 연결해 버렸는지, 심장마저도 자리자리했다.
“…더 자.”
은우는 한동안 두 강아지의 뺨을 쓸고 이마를 비비다가 마지못해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 바로 누워도 부족할 시각이나, 최소한의 세수는 하고 자야 하지 않겠나.
토돗토돗.
자라 했는데도 그가 발을 옮기는 것에 맞춰 로건이와 민식이가 따라왔다. 그건 화장실 입구까지 이어졌는데, 두 강아지는 화장실 문턱을 두고 고개만 들이밀었다. 그게 퍽 귀엽다.
은우는 칫솔을 움직이며 그들 앞에 쪼그려 앉았다. 칫솔질을 해도 한 손은 남으니 가볍게 놀아 주고자 한 것이다. 손가락이 제각각 형태로 움직이며 두 강아지의 시선을 끌었다.
“가자.”
그렇게 잠깐 놀아 주며 양치와 세수까지 마무리한 후, 다시 침실로 복귀했다. 이젠 정말 자야 했다.
톳톳톳톳.
강아지 두 마리가 양쪽에서 시립하듯 따라왔다. 심지어 그가 침대에 누운 후에도 마찬가지다. 매트리스 위로 그의 무게감이 얹어지고, 이어서 강아지 두 마리의 무게까지 추가됐다.
“…그래, 같이 자자.”
발을 이리저리 옮기며 자리를 잡던 녀석들이 금세 그의 옆구리 쪽에 웅크렸다. 고양이처럼 둥글고 말랑하진 않을지언정 강아지 특유의 묵직하고 단단한 존재감은 든든한 느낌이 있다.
은우는 그런 두 강아지의 머리를 쓱쓱 쓸었다. 따끈한 감촉이 손에 감돌 때마다 마음이 편해졌다. 그의 취침 장소를 침범당했는데도 불쾌함보다는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감상이 더 크다.
정말이지, 거리낌 없이 그와의 거리감을 좁혀 버리는 녀석들이다. 그는 섣불리 결정하지 않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잘 자.”
은우는 민식이의 이마에 다시 한번 입술을 문대며 어렴풋이 생각했다. 오늘 같은 밤이 계속되면 좋겠다고.
사색이라고 하기도 모호한, 정말 어렴풋한 생각이었다.
한여름 밤이 그렇게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