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zizo122’ 님이 ‘10,000원’ 투척!
켄님 끝나기 전에 한 번만 배틀로얄 돌려주시면 안 돼요?」
후원 하나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이밀었다. 슬슬 방송을 마치려 할 타이밍이었다.
“음…….”
판마다 15분씩 잡아먹어서 그런지 다이아몬드로 티어 업을 할 때엔 새벽에 접어들고 말았다. 평균적으로 방송을 마치던 시간보다 더 늦어진 것이다.
심지어 정확히 15분으로 정해져 있는 땅따먹기와 달리 배틀 로얄은 20분에서 40분까지 늘어질 수 있다고 들었다. 커다란 맵에서 최후의 생존자가 되기 위해 싸우고, 버티고, 견뎌야 하다 보니 발생하는 일이었다.
내일 컨디션까지 고려해야 하는 은우 입장에선 고민될 수밖에 없다.
─아 한 판만 하고 끄자 형
─딱 한판만
─우리 버리지 마
─한판 ㄱㄱ
─와! 배틀로얄!
그러나 은우가 방송에 익숙해진 만큼 시청자들도 그에게 익숙해진 상태다.
그가 단번에 거부 의사를 표시하지 않을 경우 설득의 여지가 남아 있음을 학습한 시청자들이 그를 살살 꼬드겼다. 훤히 보이는 얄팍한 수임에도 괜스레 마음이 동하는 건, 그와 함께하고자 하는 시청자들의 욕망이 귀여워서일 것이다.
“저랑 그렇게 같이 밤새고 싶습니까?”
─ㅇㅇ
─같이 밤새줘잉
─형님 덕분에 마감하는 밤이 즐겁습니다,,,^^,,,
─일하면서 잘 보고 있어요
─해외러인데 퇴근하면서 잼게 보고 있어요
은우는 실소를 흘렸다.
“시차가 나는 해외 거주자나 외국인분들은 그렇다 쳐도, 한국인들은 안 주무십니까? 내일 주말 아닌데요. 아니면 다들 해외러십니까?”
─저는 이탈리아인입니다.
─독일에서 살아용~
─서울인입니다^^
─하와이 거주중
─밤은 마감의 시간이죠
─광주에 삼
─와 글로벌!
“한국에 거주하는 분들이 거의 사분지 일이시네요.”
전체 시청자 수가 그렇게 적지 않다는 걸 감안하면 이조차 많다.
은우는 대기실 역할의 거리를 발로 톡톡 두드렸다. 할까, 말까.
“민식이랑 로건이가 기다릴 텐데.”
─강아지가 먼저야 우리가 먼저야
─이러기 있어?
─강아지는 킹정이지
─우리가 더 오래 했다.
─아 민식아 로건아 함만 봐주자
─형 걔야 나야
“이젠 반려동물한테도 질투하십니까?”
─ㅋㅋㅋㅋ
─질투on
─킹치만....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켄이 안 남아주는 걸!
─우리도 사랑과 관심이 필요해요
정말이지 어이가 없다.
“그럼 딱 한 판만 하고 끄겠습니다. 대신 내일 한 시간 늦게 시작할 겁니다.”
─와!!
─아싸
─제발 걸리게 해주세요ㅠ 제발 걸리게 해주세요ㅠㅠ
─너무 좋아
그럼에도 넘어갈 수밖에 없다.
“바라시는 대로, 뜨거운 밤 한번 보내 봅시다.”
▣ 195. 설득력 있는 설정
스플랫의 배틀 로얄은 90명 내외의 플레이어가 넓은 맵에 떨어지는 것부터 시작한다. 공중에 떠 있는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맨 채 원하는 위치로 추락하는 것이다.
어디로 떨어지는가에 따라 무기나 자원의 밀집도가 다른지라 잘 생각하고 떨어져야 한다. 자원이 많은 곳일수록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땅따먹기에 비해 맵이 넓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넓은 편도 아니다. 대략 야구 경기장만 하지 않나 싶다.
다행히 맵 선정이 랜덤인 땅따먹기와 달리 배틀 로얄은 맵을 지정하고 시작하는 게 가능하다. 게임 내내 어떻게 진행할지 전략을 짠 채로 시작할 수 있단 소리다.
게임 진행 상황에 따라 전략 또한 유동적으로 변화하겠지만, 그렇기에 운영은 중요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맵이 침수되어 줄어드는지라 더욱 그렇다.
교전을 아무리 피하려 한다 해도 맵이 좁아지면 싸울 수밖에 없으니까.
“막판 시작합니다.”
은우는 그런 간단한 사실만을 암기한 채 본격적인 배틀 로얄을 시작했다.
인원수가 다 찼는지 시야가 잠깐 껌껌해졌다가 비행기 내부에서 다시 밝아졌다. 시야가 밝아지기 무섭게 배틀 로얄에 익숙한 사람들이 낙하를 시작하는 건 덤이다.
“어디서 뛰어내릴까요.”
─조기여
─가운데 구역이 침수 위험 적음
─가장자리가 파밍하긴 좋지 않나?
─가운데랑 가장자리 사이쯤?
─켄님이면 암데나 가셔도 될듯
무슨 전략을 짜든 맵을 알아야 진행에 유리하다. 그러나 은우는 이것이 첫판. 그가 내세우는 컨셉 덕에 정보 조사도 못 한 상태다.
유불리를 논할 최소한의 기반도 없으니 남은 건 결국 운을 믿고 선택하는 것밖에 없다. 그리고 그는 그의 운을 시청자들에게 맡겼다.
“저기 건물 쪽으로 뛰어내리겠습니다.”
은우는 사람들이 권하는 구역 중 적당히 하나를 잡아 뛰어내렸다. 바람이 그의 몸을 휘감으며 하얀 선들을 그렸다.
“이거, 낙하산 안 펼치면 어떻게 됩니까?”
─죽죠ㅋㅋㅋㅋ
─죽어요
─이런 건 대체 왜 궁금해하는 거임ㅋㅋㅋ
─최단시간 탈락각?
─죽어용
“너무 당연한 물음이었군요.”
바람 소리가 윙윙 귀를 때렸지만, 그렇게까지 시끄럽진 않았다. 실제로 이렇게 적당한 소음이 날 리는 없고, 그냥 제작진에서 봐준 것일 테다.
「‘닭장이’ 님이 ‘5,000원’ 투척!
첫판 최후의 1인 성공하면 이십만」
그때 누군가가 미션을 걸었다. 오랜만에 받는 미션이었다.
받아도 되고, 받지 않아도 좋다. 은우는 빠르게 가까워지는 지면을 보며 낙하산을 산개할 때 쓰이는 손잡이를 잡았다.
“그걸로 되겠습니까?”
낙하산을 펼치지 않은 만큼 추락 속도는 빠르다. 그와 같은 지역에서 내릴 것으로 보이는 유저들은 하나둘 낙하산을 펼친 상태지만, 은우는 여전히 고리를 잡고만 있는 중이다.
─으어어어어어어
─켄님 고리! 고리!
─낙사 가자아아아아아
─아니 이걸 진짜 시험해보는 거냐고ㅋㅋ
─슬슬 고리 잡아당기셔야
아슬아슬한 수위에 사람들이 슬슬 공포감을 토로했다. 은우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후원 알림음이 한 번 더 귀를 때렸다.
「‘강남건물주’ 님이 ‘50,000원’ 투척!
받고 삼십만 더.」
그 순간 은우의 손이 손잡이를 당겼다. 펄럭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순간적으로 부웅 떠올랐다. 실제로는 낙하 속도가 줄어든 것에 불과하나, 그 반동이 워낙 커서 위로 떠오른 것처럼 느껴졌다.
“해 봅시다.”
그는 조종 줄을 잡고 적절히 낙하산의 경로를 조절했다. 그가 선정한 착지 지점에 건물이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은우의 다리가 구부러지며 웅크리듯 자세를 취했다. 얼마 안 돼 바닥에 닿은 발바닥은 땅을 도로 박차며 몸을 굴린다.
해당 지역을 노린 유저 중 그 누구보다도 빠른 착지였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게 무기 파밍이었죠.”
은우는 어설프게 아는 지식을 토대로 첫 번째 행동거지를 정했다. 섣부른 판단도 아닌 게, 배틀 로얄 모드에선 파밍이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최후의 1인이 될 때까지 생존을 해야 하는데, 정작 생존에 필요한 무기나 탄약, 장비가 일절 제공되지 않는 탓이다.
아이템을 얻기 위해선 오롯이 파밍에 의존해야 했고, 파밍 상태에 따라 승패가 뒤집어지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뒤따라 오는 적들을 처치하려면 무기가 급했다.
쾅!
그는 의도적으로 노리고 착지했던 옥상의 문을 걷어찼다. 건물 안에 아이템이 많다는 시청자의 팁을 받은 후 일부러 선정한 건물이니, 수색은 당연하다.
4층짜리라서 오래 걸릴 것도 없다. 폐건물처럼 콘크리트 벽과 바닥만 보이는, 가구 하나 없는 상태이기도 하고.
─교전 피하고 도망치셔도 됨
─비폭력 메타ㅋㅋㅋ
─하지만 켄이 하면?
─be 폭력 메타
“뭐, 그 방법도 좋은 선택입니다.”
시청자의 말마따나 교전을 피해 도망치는 것도 좋다. 그가 저들을 본 것처럼 저들 또한 그를 보았을 것이나, 교전을 피하고자 또는 파밍을 노리고 그를 쫓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하지만 은우는 위협의 원인을 제거해 후일의 가능성을 밟아 버리는 것이 더 취향이었다. 당장의 위험을 회피할지언정 언젠가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 분명하므로.
“그래도 이렇게 운이 따라 줄 수도 있지 않습니까?”
─ㅇㄴ
─미친 거 아니냐
─ㅋㅋㅋ뽑기운이,,,좋은건가,,,나쁜건가,,,
─나쁘지 않음
─무기가 있다는 것부터가 뭐...
더구나 오늘 든 생각인데, 그는 생각보다 뽑기 운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여실전화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정말 필요할 땐 운이 따라 준다. 공포 게임 때는 예외였지만.
어쨌거나 은우는 거실 한복판에 둥둥 떠 있는 무기를 잡았다. 바닥과 50cm 정도 떨어지도록 띄워졌던 것은 대걸레였다.
─와 미친 저거 잉크 안 먹어도 공격 가능 아님?
─ㅇㅇ
─근접 공격은 잉크 안 먹어도 가능
─켄이 들면 걍 전부 사기템이지
─맞말추
“뭐가 다릅니까?”
「‘바다맨’ 님이 ‘1,000원’ 투척!
잉크 뿌리면서 원거리 공격하려면 잉크가 따로 필요해요 물총이나 쌍물총, 호스 같은 애들은 잉크 없음 아예 공격 자체가 안 됩니다」
─대걸레 자체로 후려치면 대미지 들어가긴 함
─흩뿌리기 공격은 잉크 먹어야 가능함다
“아, 이해했습니다.”
그러니까, 대걸레로 직접적인 타격을 주어 상대를 죽이는 건 잉크가 없어도 가능하다. 그러나 대걸레를 휘둘러 잉크를 흩뿌리거나 하려면 잉크가 따로 필요한 모양이었다.
“별로 큰 페널티는 아니네요.”
대걸레 옆에 잉크 통이 존재했거니와, 없더라도 은우에겐 별문제 없다.
그는 대걸레 옆에 있던 소모품들도 회수했다. 잉크 통 3통과 소모품 하나였다.
“이건 뭡니까.”
은우는 익숙한 외관의 소모품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검은 귀의 강아지가 그려진 캔은 그가 알기로 밤샘형 인간들의 영원한 친구, 커피 음료였다.
─ㅋㅋㅋㅋ도핑약이요
─도핑제
─버프 주는 물약이에요
─도핑 빠실?
“그런 거군요.”
도핑이라. 과연 쓰일 일이 있을까? 잘 모르겠다.
은우는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바깥을 향해 귀와 눈을 기울였다. 건너편 건물에 하나가 있다.
“바로 처리하죠.”
무기에 내구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확인했다─근접으로 처리하면 잉크가 달지도 않는다. 거기에 무기도 생긴 이상, 후환을 남겨 둘 이유가 없었다.
대걸레를 든 채 은우의 몸이 건물 밖으로 튀어 나갔다. 도로를 통해 다른 건물로 들어가는 정상적인 방식은 당연히 아니다.
그는 2층 창가에서 반대편 건물 2층으로 뛰어넘었다.
“내려오네요.”
─ㅇ?
─어디요?
─소리 들렷냐?
─천상계 사플은 이런 것인가..
─저기있는 듯
하필 스플랫은 그래픽과 달리 현실적인 사운드 플레이를 채택했으니. 걷는 방법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것마저 구현해 놨다. 버릇처럼 은밀하게 걷다가 파악한 사실이었다.
그다음부턴 완전히 소리를 죽이는 데 집중했으니. 그로 인해 적 플레이어는 은우의 발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 채로 건물 밖에 나왔다.
퍼억!
막 계단을 통해 내려오던 이의 몸을 대걸레가 강타했다.
“좋은 그림은 아니군요.”
대걸레 손잡이의 끝부분으로 때리면 그나마 모양새가 괜찮았을 테다. 그러나 상대에게 잉크를 묻혀 탈락을 유도하려면 걸레 부분으로 상체를 쓸어야 했다.
그래픽상 대걸레에 잉크가 묻어 있다는 게 다행이다. 걸레가 아니라 롤러였다면 상대에게 더 좋았을 것 같긴 하지만.
─ㅋㅋㅋㅋㅋㅋ
─모욕잼
─이것 때문에 대걸레 빼자고 말 많잖아ㅋㅋ
─진짜 기분 더럽겠닼ㅋㅋㅋ
그렇다고 얼마 없는 잉크를 써 줄 순 없는 노릇이다.
은우는 의례적인 사과를 건네며 적의 상체에 대걸레를 문댔다.
적도 어이없고 분한데 와중에 웃긴지 허파 빠지듯 웃다가 사망했다. 적의 몸이 빛에 휘감기며 나무 인형으로 변했다.
『LQL666 Kill!』
『1Kill│86명이 남았습니다』
“아이템이 남네요?”
호랑이가 죽어 가죽을 남기듯, 죽은 플레이어는 무언갈 남기고 사라졌다. 그가 획득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템이었다.
“이걸로 잉크 통이 벌써 다섯 개. 한 통당 공격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꽤 오래 씀다
─대걸레 기준 한 20번 정도 휘두를 수 있나?
─물총은 한 40번 정도
─잉크통 자체는 은근 넉넉히 나와서 ㄱㅊ
─적당히 쓰면 괜찮습니다
생각보다 오래 쓰고, 다섯 통이나 모았다 해도 함부로 쓸 생각은 없다. 대걸레로 원거리 공격을 하느니 물총 종류를 먹은 뒤 쓰는 게 더 이득이었다.
“저쪽도 하나 있네요.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은우는 방금처럼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었다. 다만 이번엔 안타깝게도 접근 전에 발각당했다.
계단에서 막 내려오던 적과 막 이쪽 건물 창가를 디딘 은우의 눈이 마주친 것이다.
탕!
아무래도 저쪽은 총 종류를 먹은 듯 잉크 탄이 날아왔다.
쥐고 있는 총의 형태는 물총. 아직 무기 종류를 외우지 못한 상태라 어떤 종인진 모르겠다. 시간 관계상 이 건물을 전부 뒤져 봤을 리는 없고, 위에서 총만 먹었다가 그와 마주친 게 분명하다.
은우의 발이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렸다.
“배틀 로얄 모드도 잉크 밟으면 속도가 빨라지거나 느려집니까?”
─ㅖ
─킹쎄요?
─모르면 죽어야지
─ㅖ
─ㅔ
“네, 그런 걸로 알겠습니다.”
은우는 그의 발치에 퍼진 쥐색 잉크를 뛰어넘으며 상대를 쫓았다. 상대방 역시 내려오던 걸 포기하고 도로 위로 올라갔다.
총이 제법 탐났기에 곧장 뒤따랐으나, 당연하게도 적은 쉽게 총을 내주려 하지 않았다. 옥상으로 넘어간 뒤 은우가 그랬듯 건물 사이사이를 뛰어넘으며 도망간 것이다.
탕! 탕!
중간중간 적 플레이어가 돌아보며 사격을 시도했다. 뻔히 보이는 사격 경로에 맞아 줄 이유가 없어 전부 피해 버리니, 옥상 바닥에 쥐색 잉크 자국이 띄엄띄엄 남았다.
적중률이 형편없다는 걸 깨달은 적은 아예 공격을 포기하고 달렸다. 그가 총을 쏘지 않는 걸 보고 안전하게 도주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선 것도 있을 것이다.
“도핑 먹으면 이속 증가합니까?”
─증가하긴 하는데 커피 하나론 안 됨
─커피 한 3개는 빠셔야 도핑 게이지 차서 이속증가함다
─커피 하나는 ㄴㄴ
─게이지 일정 수치 채우면 증가는 함
“그럼 무기 자체를 던져서 대미지 주는 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술래잡기에 은우는 최후의 수단을 꺼내 들었다. 사람들이 바로 웃었다. 된다, 안 된다 말이 없는 건 그에게 힌트를 주기 싫은 심보일 것이다.
“흠.”
은우는 혹시 몰라 대걸레를 창처럼 쥐었다. 그러곤 앞을 향해 던졌다. 대걸레가 창처럼 곧게 나아가다가 어느 순간 부자연스럽게 꼬꾸라지며 빛에 휘감겼다.
이후 보이는 광경은 그가 처음 대걸레나 잉크 통을 주울 때처럼 변한 아이템이다. 그것은 자신을 획득해 달라는 듯 빛을 뿜으며 허공에 둥둥 떠 있다.
“아, 버림 취급 되는군요.”
─ㅋㅋㅋㅋ
─아쉽
─뭐가 아쉽이냐 저거 가능했음 켄 양학 쌉가능;;
─아 그러네
아쉽다. 은우는 대걸레를 다시 주운 후 걸음을 멈추었다. 이대로 쫓아 봤자 아무 이득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탓이다.
아무렴 달리기 속도는 서로 동일. 주변 환경은 건물들이 빽빽하게 밀집되어 있는 계획도시다. 이렇게 옥상을 통해서만 추격전을 할 경우, 따라잡기가 어렵다.
이렇게 무의미한 소모전을 계속하느니, 차라리 건물 수색이라도 해 두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하물며 알림 창이 뜨며 침수 구역을 알려 주기까지 했다.
다행스럽게도 그가 있는 지역은 침수 대상이 아니지만, 그렇다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침수 예정 지역이 전부 물에 잠기면 또 다른 예정 지점이 생겨날 테니까.
“이런 식의 데스 매치는 또 처음이라서 어렵네요.”
그가 아는 미덕은 한 번 정한 표적을 끝까지 추적해서 죽이는 것이었다. 후환이 남지 않도록.
지성이 떨어지는 괴수들마저 그럴진대, 원한을 명확히 기억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아흐레간 추적의 추적을 거듭해 사살한 전적마저 있으니 그의 끈기에 대해선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배틀 로얄 장르는 다르다. 한정된 땅, 제한된 시간, 좁아지는 지역, 1인만이 생존 가능한 설정까지.
배틀 로얄 장르는커녕 타인과 대전하는 게임 자체도 몇 번 해 본 적이 없다 보니 여러모로 어색하다.
은우는 멋쩍은 상태로 건물 수색을 진행했다. 2분에 걸쳐 한 건물을 수색한 결과 얻은 아이템은 쌍물총, 앞치마, 잉크 통, 알코올(소)였다.
앞치마가 방어구인 건 바로 알 수 있었지만, 알코올은 사용처가 영 아리송했다. 알코올이 술의 성분 중 하나임은 아는데, 정작 획득한 아이템의 외관은 술보다 의약품에 가까웠던 탓이다.
─그거 회복템입니다
─오 개꿀
─이분 드랍운 상태가...?
─회복템이에여
“이걸 마십니까?”
─아녀ㅋㅋㅋㅋ
─옷에 묻은 물감 지울 때 소독용 알코올 쓰면 직빵임
─ㅋㅋ마시면 저승직행일듯
─순수 알코올이니까 저승은 아닐걸..?
─몸에 뿌리는 용도예욬ㅋㅋㅋ
“아.”
미술 쪽 지식이 없어서 몰랐다.
은우는 새삼스레 알코올 통을 보았다. 잉크에 물들어서 탈락하는 구조이니, 그 잉크를 빼는 약품이 회복 템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설득력 있는 설정이었다.
『경기 지역이 침수됩니다. 지도에 표시된 구역까지 물러나세요. 5분 남았습니다.』
그사이, 슬슬 움직일 시간이 됐다.
“갑시다.”
50만 원이 걸린 한 판은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