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의무 교육, 맹견 등록, 강아지 사회 교육 신청 등 오랜 절차 끝에 집에 새 식구가 들어왔다. 방송으론 딱히 소개하지 않았는데, 촬영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까 걱정돼서였다.
은우는 마당에 로건이와 민식의 집을 각각 지어 준 후, 담벼락도 따로 공사했다. 마당이 집에 딸려 있을 만큼 외진 곳이라지만 지나가는 행인이 아예 없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도베르만뿐이라면 모를까 핏불테리어가 있는 이상 정말 조심해야 했다. 항시 목줄을 채워 키울 게 아닌 이상 특히 더.
“…고양이 물면 안 되는데.”
은우는 요 근래 그의 집에 기웃기웃하던 고양이들을 떠올렸다. 그 조그만 것들은 이 중형견들에게 잘못 걸리면 쉽게 죽을 터였다.
강아지가 오늘 왔으니, 앞으로 방문할지 아닐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헥헥헥.
그는 그의 앞에서 얌전히 앉아 혀를 내밀고 있는 로건과 민식이를 보았다. 그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꼬리만 살랑거리는 게 참 귀엽다.
“고양이들 물면 안 돼.”
그들이 알아들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은우는 당부했다. 대형견 두 마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양이들 걱정으로 환장하겠지만, 그래도 귀엽다.
“…대신 많이 놀아 줄게.”
…일단 담벼락으로 구분해 둔 마당 안으로만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 마당 밖으로 나갈 땐 입마개를 채워서 걱정이 좀 덜하니까.
은우는 두 강아지들의 산책 시간을 측정하며 그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손을 떼려 하면 머리를 붙이고 비비는 게 아무튼 귀여웠다.
『레드바 님> 헬프! 헬프!』
레드바는 안 귀여웠다.
▣ 190. 지켜보는 자들만 꿀잼
발단은 이러했다. 공포 퍼즐 게임, ‘We were there’을 진행하던 도중 레리와 레드바 사이에서 남매 싸움이 일었다. 진행이 느려 터지자 누가 설명을 못해서라느니, 누가 설명을 못 알아들어서라느니 옥신각신한 것이다.
단순한 말싸움은 기어코 자존심 싸움으로 번져 해당 게임을 누가 먼저 깨느냐 내기가 걸렸다. 다만 문제는 ‘We were there’가 2인용 퍼즐 게임이란 것이었다.
레리는 냉큼 두뇌파로 이름 높은 우유에탄산을 영입했단다. 레드바는 어쩔 수 없이 남은 이들 중에서 인재를 물색했고.
“그런데 따악! 켄 님이 계시는 거 아니겠습니까!”
마침 피지컬도 있으면서 지능적인 사람이 있었다. 켄이었다.
앞선 방송 몇 개로 나름 친분이 쌓인 것도 선택에 한몫했을 터다.
“제가 그래서 모셔왔죠. 갓갓 켄 형님.”
“…오늘 하루 잘 부탁드립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두 남자.....협동에선 어떨까?
─켄이 캐리한다에 한 표ㅋㅋㅋ
─솔듀에서 이미 데여봤으면서 이걸?
─멈머 들어오셧다던데ㅠㅠ 멈머
─둘이 많이 친해졌다?
“뭐, 종종 함께 했으니까요. 봉사도 그렇고.”
─‘그 친분’ 오늘 손절 각
─민식이랑 로건이 입양하셧다는게 진짜임?
─손절게임 하시넼ㅋㅋ
─아 이거 켄이 형이랑 하는 거 보고 싶다
─헐 순두부 행님
“켄 형님, 이거 해 보셨어요?”
“아뇨. 해 보진 않았습니다.”
그들은 대기실에서 짤막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레리, 우유에탄산이 속한 다른 팀과 시작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대기하는 것이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실 필욘 없어요. 초반 제외하곤 둘이 갈라져서 탐색하고 퍼즐 푸는 게 다입니다. 대신 퍼즐을 풀 때 서로에게서 힌트를 얻어야 하는데… 문제는 이게 서로 대화하는 방법이 무전기밖에 없습니다.”
“말로 설명해야 하는 거군요.”
“그렇죠.”
이걸 위해 서로 방송을 보는 건 금지했다. 상대측 팀도 마찬가지다.
훈수나 앵무새 시청자들을 막기 위해서 양측 채팅방에는 제한도 미리 걸어 놨다. 한 번 한쪽 채팅방에 채팅을 친 사람은 나머지 쪽에서 채팅을 칠 수 없도록.
물론 보는 건 두 방송 다 가능했으므로 여전히 앵무새 가능성은 존재했다. 그건 어쩔 수 없었다.
“참고로 여러분. 이거, 저랑 누나가 하는 내기인 거 아시죠? 벌칙도 있습니다! 무려 진 사람이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기!”
“아, 벌칙도 있습니까?”
“…제가 말씀 안 드렸어요?”
“네.”
─여윽시 빨간벌레ㅋㅋㅋㅋ시작부터 엿선사하죠ㅋㅋㅋ
─기대를 안 져버리네ㅋㅋㅋㅋㅋ
─아싸 벌칙
은우는 헬멧 속에서 레드바를 지그시 응시했다. 레드바가 ‘솔저 오브 듀티: 좀비 모드’에서 보였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데…….
“혹시 저도 받습니까?”
“…우리 꼭 이길까요!”
─ㅋㅋㅋㅋ어림도 없지!
─또 엮여서 벌칙 받을 각
─켄 벌칙은 못참지;;
“…죄송합니다. 제가 진짜 말씀드린 줄. 누나한테 게스트 벌칙은 빼 달라고 해 보겠습니다.”
그는 숨을 나른히 내뱉었다. 벌칙이 있다는 걸 알아도 응하긴 했겠지만, 많이 떨떠름하다. 레드바니까 뭐, 그럴 수 있다 싶지만. 적어도 이런 걸 고의로 할 성격도 아니고.
“…아뇨, 괜찮습니다.”
“엥,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이기면 되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이런 게 합방의 묘미인 법이다.
은우는 그의 벌칙을 기대하는 시청자들을 보며 목덜미를 쓸었다. 아직 나아갈 방향성은 찾지 못했으나 방송에는 충실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잘하고 있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다음부터는 말해 주세요.”
“넵.”
잘못한 게 있는 레드바는 빠릿빠릿하게 대답했다.
“아, 그렇지. 그… 켄 님, 이번에 ‘크루 러시’ 광고 찍으신 거 나온다면서요?”
“네.”
정말 오랜 기다림이었다. 광고란 게 본래 완성까지 석 달에서 다섯 달 정도 걸린다지만, 그간 다사다난 했다 보니 유독 긴 느낌이었다.
“커어, 저 봤어요. 몇 분밖에 안 되는데도 완전 개쩌시던데.”
“그 정돈 아니었던 것 같은데……?”
크루 러시는 정식 트레일러를 내보내기 전, 은우의 영상을 작게 쪼개서 공개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제 막 첫 번째 게 풀린 상태이니, 정식 발매까진 아직 더 남았을 거다.
“아뇨, 완전 개쩔었어요. 역시 바브에서도 폭주로 이름 날린 남자.”
“폭주로 이름 날린 적 없습니다.”
─아 형 빼면 안 되지
─?? 어디서 밑장빼기를....
─바브 때 과격운전을 우리 청자들이 기억하는데..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은우는 레드바가 그에게 씌우려는 누명을 거부했다. 그에게 그 정도 운전은 폭주가 아니었으므로 당연한 일이다.
“아, 저쪽에서도 준비가 다 됐다네요. 그럼 게임 켜 두고 매칭까지만 해 둘까요.”
그렇게 잠깐 떠들고 있자니 신호가 왔다. 그들은 먼저 게임을 켰다. 사암 동굴이 주변에 생겨났다. 바깥에선 모래폭풍 부는 소리가 살벌했다.
“형님, 준비 버튼 눌러 주세요.”
“네.”
레드바가 나서서 조작해 준 덕에 은우는 특별히 건드릴 게 없었다. 대신 은우는 주변을 살폈다. 캐릭터는 그대로 쓰는지 옷가지 정도만 바뀌었다. 헬멧은 다행히 존재했다.
“자, 이제 10초 뒤에 시작합니다! 과연 능지 게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일단 레드바는 아닐듯
─넌 일단 아님
─본격 2:1전;;
─ㄴㄴ 2:-1전임
─ㅅㅂㅋㅋㅋㅋ에벌레 전력 마이너스 취급ㅋㅋ
“가즈아!”
그사이, 레드바가 기합 넘치는 목소리로 시작을 외쳤다.
두 사람이 게임 시작을 동시에 누르면 인트로 영상이 빠르게 지나간다. 사막에서 피랍당한 연구원들이 모래폭풍이 그친 후, 갑자기 나타난 피라미드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들 직업이 고고학자였던 탓에, 그리고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기에 그들은 피라미드 안쪽으로 진입했다. 구조 신호는 이미 보냈으니 본업에 충실하기로 한 것이다.
“캐릭터 입장에선 그냥 기다리는 게 제일 나을 것 같습다만.”
“에이, 무료 겜인걸요. 스토리는 너무 기대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건 그렇지. 은우와 레드바는 글자가 별처럼 수놓아진 천장을 뒤로하고 계단 안쪽으로 내려갔다. 초반이라서 그런지 아직은 둘이 같이 행동했다.
“이게 무전기입니까?”
“네. 참고로 동시에 말 못 하니까요, 말이 끝날 때마다 오바를 붙이는 걸로 하죠.”
은우는 그것을 가만히 매만졌다. 버튼을 누르고 말을 하면 상대방 무전기에 불이 들어오며 소리가 들렸다.
“레리 님과 미리 해 보셨다고 하셨는데, 앞부분은 아십니까?”
“아, 그거요? 저랑 누나가 한 건 이거 다음 작품이라서 이번 건 몰라요.”
“그렇습니까.”
그럼 별 도움은 안 되겠군. 그는 냉정히 레드바의 쓸모를 0에 맞춰 두며 주변을 살폈다.
벽에 기둥이 세워져 있고, 앞쪽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기둥은 글자에 가까운 지점부터 하나, 둘, 셋, 넷, 다섯까지 있다. 하나 하고 간격, 두 개 하고 간격… 이런 식이라 알아보긴 쉬웠다.
“와, 시작부터 뭔지 모르겠다.”
“글쎄요, 아무래도 표 같은데.”
“표요? 어? 그러네?”
기준선이 없을 뿐이지 일종의 표처럼 보인다. 머리글 행은 글자이고 머리글 열은 숫자(기둥)다. 칸의 자리에는 각각 버튼이 있었기에 알아보긴 더욱 쉽다.
“위에 글자가 있었죠.”
“그런 게 있었어요?”
“…네.”
─벌써부터 쎄하다ㅋㅋㅋ
─켄 벌칙 받는 모습이 선하네
─왜 레드바랑 얽혀서;;
─켄핵 가지고도 못 이기는 레드바 수듄;;
─아냐 아직 모른다
은우는 레드바의 관찰력에 대해 고민을 해 보았다. 면허는 시험 때문에 안 따, 대본도 외울 자신이 없어 최소한만 준비하는 사람이다.
물론 약간의 과장도 들어갔을 테지만, 적어도 이런 쪽으로 크게 기대해서 좋을 것 같진 않다. 그는 쓸모없을 고민은 그만두었다.
“제가 위로 가서 보고 오겠습니다. 숫자에 맞춰 버튼 눌러 주세요.”
“넵.”
은우는 레드바를 아래에 두고 그가 올라갔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잘못된 판단이었다.
그는 죽어도 레드바를 위로 보내야 했다. 교사(Teacher)와 학습자(Learner)로 나뉘는 두 역할 중 학습자 쪽을 맡기 전에.
* * *
이 게임에서 교사와 학습자의 역할은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진 않다. 다만 대체로 교사 쪽이 학습자 쪽의 탈출을 위한 정보 따위를 제공했다.
즉, 교사 역이 잘해 주는가 아닌가가 시간 단축에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다.
“레드바 님, 조금만 왼쪽으로. 아니,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이요. 네, 네. 거기서 멈춰주시면… 아뇨, 너무 오른쪽으로 갔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처음에 올라가 버린 여파로, 학습자 역을 맡게 된 은우는 잠시 회의감을 느꼈다. 그 앞에서 뱅글뱅글 도는 길이 있다.
참고로 저 길을 조작하는 키는 레드바 쪽에 있다. 이곳에 막힌 지는 5분째고.
[됐어요? 켄 님, 됐어요? 진짜 된 거 맞아요, 오바?]
─이걸 왜 못하는데ㅋㅋㅋ
─아 존나 웃겨ㅋㅋㅋㅋㅋㅋㅋㅋ
─레드바 이쯤되면 고의적 엿먹이기 아님?
─킹능성 ㅇㅈ합니다
“…됐습니다, 오바.”
그는 오다 만 계단을 보며 그냥 됐다고 하기로 했다.
졸지에 왼쪽에 붙어 있어야 할 계단 중 중간 부분을 뚝 잘라 내 오른쪽에 붙인 꼴이 되었지만, 그래도 되었다.
계단의 너비보다 통로의 너비가 3배는 넓고, 계단이 있는 쪽 공간은 바닥이 뚫려 있다는 것도 괜찮았다.
[옐로들이 안 됐다는데?]
“아뇨, 됐습니다.”
은우는 계단으로부터 멀어진 후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계단 양 끝 가장자리, 난간이라고 하긴 너무 낮은 부분을 그의 다리가 아슬아슬하게 밟았다.
그러곤 뚝 잘려 나간 중간 부분 계단을 향해 대각선으로 뛰었다. 유난히 긴 다리가 기어코 넘어가는 데 성공했다.
속력을 줄이지 않은 다리가 그것을 계속 박차며 다시 왼쪽으로 뛰었다. 지그재그로 놓인 계단과 계단 사이의 거리가 2m에 가깝단 것은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제가 됐으니까, 된 겁니다.”
기어코 계단 끝에 그의 몸이 섰다.
“…진즉에 이럴걸.”
─이건 깬 게 아니잖아ㅋㅋㅋㅋ
─이쯤되면 레드바 진짜 절해야한다
─떠먹여주는 수준이 아닌뎈ㅋㅋ
─레전드ㅋㅋㅋㅋㅋㅋ
이 게임이 현실 능력치를 반영한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걸까.
“원래 이렇게 깨는 게임이 아닌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우는 목덜미를 쓸며 다음 방으로 넘어갔다. 널찍한 방에는 가구 하나 없이 중심에 홈만 있었다.
“제가 먼저 말하겠습니다. 제 방 안에는 바닥에 홈이 다섯 개 있습니다. 홈 위에는 그림이 각각 그려져 있습니다. 홈에 맞는 사각형 판은 4개 제공됐고 판에는 글자가 있습니다. 홈에 그려진 그림과는 연관이 없어 보입니다.”
은우는 한 호흡 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또한 수식이 있습니다. 홈이나 판에 적힌 그림 및 글자와는 전혀 다른 것들로 구성되어 있는 수식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가시 붙은 천장이 조금씩 내려오고 있습니다, 오바.”
[네? 천장이 내려와요? 그러면 죽잖아요!]
“일단 레드바 님이 침착하게 방 풍경을 묘사해 주시면 살 것 같습니다.”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침착하게 돌려까기on
─이걸 멕이네ㅋㅋㅋㅋㅋㅋ
─켄 점차 가차없어지는 중ㅋㅋㅋㅋ
─억지로 끌고 가기 위한 큰그림
[어… 제 방에도 수식이 있어요. 근데 그 수식이 글자랑 그림이랑 막 섞여 있는데, 그 그림에는 불 뿜는 용이랑 도마뱀, 염소, 고양이도 있고, 글자는 그림이랑 확 다르게 생겼는데……. 또 켄 님이 말해 주신 홈이 저한테도 있어요. 어, 근데 저는 천장이 안 내려오는데…….]
그가 희수한테 과거 고백 할 때 수준으로 횡설수설한 설명이었으나, 은우는 침착하게 레드바의 말을 끊었다.
“그러니까 저와 비슷하게 홈과 판이 있고, 수식이 있으며, 그 안에 글자와 그림이 섞여 있다. 맞습니까, 오바.”
[맞습니다, 오바.]
“글자 중 가로획에서 대각선으로 두 줄 내려오고, T자가 대각선에 붙어 있는 글자가 있습니까, 오바.”
[어어어… 있습니다, 그거랑 K자가 들어간 글자랑 합치면 염소입니다, 오바.]
“수식은 아직 말하지 마십시오. K자가 그려진 글자가 있다면, 세로획에서 미끄럼틀처럼 내려온 후, 아래 하(下) 자랑 맞물리는 글자가 있습니까, 오바.”
[있습니다, 오바!]
“마지막으로 대각선으로 누운 화살표 형태의 글자가 있습니까, 오바.”
[네! 다 있어요!]
─이거 원래 저쪽 역할 아니냐고ㅋㅋㅋ
─학습자가 교사 멱살잡고 끌고가네
─레드바 능지 처-참
─저쪽방 여기 넘었던데ㅋㅋ
“죽을 위험이 있는 건 저인 것 같으니 저부터 문제를 풀도록 하겠습니다. 수식을 알려 주세요, 오바.”
은우는 그럼 이제부터 수식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레드바가 하나둘 일러 주었다.
워낙 설명을 못했기에 설명하는 사이 천장이 다 내려와 한 번 죽고 레드바가 잘못 알려 줘서 또 죽어, 이번이 3번째 시도였다.
[형님. 지금 옐로들이 위험하다는데 괜찮은 겁니까, 오바?]
“깔려 죽긴 할 것 같습니다만, 괜찮습니다.”
[아니, 그게 괜찮은 게 아닌데요?]
“T자 들어간 글자와 도마뱀을 더하면 고양이 맞습니까, 오바?”
[네네. 맞습니다, 오바.]
그는 지금까지 들은 수식 여섯 개를 떠올리며 머리를 굴렸다.
“아래 하가 들어가는 글자가 염소고… 화살표가 고양이…….”
쿵!
천장이 더 내려왔다. 은우는 쪼그려 앉다 못해 등이 천장과 붙은 상태였다.
[형니이이임!]
“정신 사납게 하지 마십시오.”
[넵.]
─켄 빡쳣누ㅋㅋㅋㅋ
─아 이 콤비 괜찮은데?
─한쪽만 복장 터지는 게 괜찮은 조합인지
─애벌레 너무 날먹하는데;;
─켄핵이 있어야만 전진할 수 있는 레드바선생... 당신은 대체....
게임 속이긴 하지만, 목숨이 걸려서인지 목소리가 까칠해졌다. 레드바가 조용해지고, 은우는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K가 날개용… 끝.”
판을 홈에 한번 잘못 끼우면 되돌리기가 까다로우므로─빼기가 힘들었다─정답이라는 게 확실할 때만 끼워야 한다. 그렇지만 잘못 끼워 죽으나 안 끼워서 죽으나 그게 그거였다.
무엇보다 은우는 레드바를 닦달해 얻어 낸 정보를 토대로 도출한 자신의 답을 신뢰했다.
덜컹.
함정이 멈췄다. 다시 올라가 주는 친절은 없었으므로, 은우는 끼인 그 자세 그대로 있어야 했다.
─이게 원래ㅠ 레드바쪽에서 계산해서 줘야하는데ㅠ
─보고 계산한 레드바는 오답인데 듣고 계산한 켄이 정답인 거 실화냐
─켄이 다 캐리하냐 어떻게ㅋㅋㅋㅋㅋ
─피지컬도 졌는데 뇌지컬도 져버린 그.....
[형님, 됐습니까?]
“네, 됐습니다. 그런데…….”
은우는 내려온 천장으로 인해 가려진 벽을 바라보았다.
“그냥 죽고 다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바.”
[네?]
“제 쪽 수식을 기억하고 있긴 한데 정확하진 않아서요. 불확실에 매달려서 시간을 소비하느니 빨리 재시작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오바.”
[그러면 형님이 죽잖습니까?]
“그러게요.”
─그러게요 ㅁㅊㅋㅋㅋㅋㅋㅋ
─켄 쓰앵님 당신의 희생은 잊지 않겠읍니다,,,,
─레드바랑 붙이면 왜 개그캐 되냐고ㅋㅋㅋㅋ
은우는 낑낑거리며 판을 다시 빼냈다. 함정이 다시 작동하며 그를 결국 깔아뭉갰다. 보기에만 압착이지 실제 감각은 베개로 얼굴 꾹 문대는 기분에 가까우므로 그다지 트라우마가 되진 않았다.
몸 눌리는 감각 이후 눈뜨면 방에 막 들어왔을 때인 것도 한몫한다.
“이거 맞추고 설명드리겠습니다, 오바.”
[넵.]
─켄=조별과제 조장
─레드바랑 합방 할때마다 레전드ㅋㅋㅋㅋㅋ
─특) 한쪽만 고생한다
차라리 그가 대학교를 갔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왜 레드바는 객관적 정보 나열에도 재능이 없는 걸까. 그냥 보이는 걸 말하면 되는데.
은우는 한숨과 함께 설명을 시작했다.
* * *
[형님. 저 왠지 형님한테 머리 박아야 할 것 같은데, 오바.]
“…벌써 다음 퍼즐에 도착하셨습니까? 대체 무슨 퍼즐입니까.”
[아니, 다음 퍼즐 때문이 아니라 지금 하는 것 말이에요.]
“다음 퍼즐 문제가 아니면 머리는 나중에 박으세요.”
[박지 말라고는 안 하시네요?]
“…….”
은우는 침묵했다. 레드바가 그렇게까지 멍청하냐면 그건 아닌데, 설명을 정말 못했다. 그거 하나만으로 너무 끔찍한 방송이 됐다.
은우는 살다 살다 그보다 설명 못하는─그는 추상적 정보 한정으로 못하는 거지만─사람은 처음 봤다.
[형님?]
“지금은 레드바 님의 정수리 안위보다 내기 자체에서 승리하는 걸 생각합시다.”
[형님!]
─아ㅋㅋㅋㅋㅋㅋㅋㅋ
─레드바의 매운맛에 화들짝!
─솔직히 정수리는 상납해야지
─옐로들 지금 정수리가 아니라 모발상납도 토론하던데
─ㅅㅂㅋㅋㅋ모발 받아서 뭐에 쓰는데ㅋㅋㅋ
은우는 통로를 건너 다음 방으로 진입했다. 퍼즐이 새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게임, 어디까지 왔는지 아시는 분 계십니까.”
─이거 아직 절반밖에 안 왔어요
─저쪽팀은 이거 벌써 통과했는데ㅋㅋ
─킹직히 이건 레드바탓이다 ㅇㅈ?
[아, 미친. 돌겠네. 또 있어. 켄 님! 여기 언 놈이 열쇠를 달라는데요! 연장 들까요?]
“…후우.”
레드바 때문에 한숨이 나오는 건지, 게임이 답 없어서 한숨이 나오는 건지는 모르겠다.
은우는 잠시 벽에 몸을 기댔다. 솥뚜껑 같은 손이 기어코 헬멧 안면부를 연거푸 쓸었다.
[으하항, 이게 뭐야아아아. 흐에에에에. 뭐냐고.]
“…레드바 님.”
[흐어어엉, 엉? 헉, 켄 님, 네.]
“무전 키고 울지 마세요, 오바.”
[아, 무전 켜 놨네. 죄송함다.]
─사과 하난 진짜 빨라ㅋㅋㅋㅋ
─우리 퇴근 언제하누ㅋㅋㅋㅋ
─ㅇㅈㅋㅋㅋㅋㅋㅋ
“방에 뭐가 많네요. 열쇠를 제작하려면… 보석과 쇳물, 틀이 필요한 것 같은데.”
재료도 그에게 있고, 만들 수 있는 장비도 그에게 있다. 다만 조합법이 없을 뿐. 아마 그건 레드바에게 있을 거다. 지지리도 설명 못하는 레드바에게.
은우는 예상되는 미래에 다시 한번 얼굴을 쓸었다.
“…하아.”
─한숨에서 모든게 드러난다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켄이 저러는 거 첨보는듯
─아ㅋㅋㅋㅋㅋㅋ레드바 1승
언제나 그렇듯, 지켜보는 자들만 꿀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