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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178화 (178/233)

178화

이그리트가 있다는 장소는 그들이 깨어났던 시작점으로부터 서쪽으로 가야 나왔다. 그것도 단순한 서쪽이 아니라, 해안가에 도달할 때까지.

물이 많은 곳에 있지 않을까, 라는 샤를로테의 말이 맞았던 셈이다.

“잡혀 있던 국민들을 풀어 줬다 들었다. 도움에 감사를 표하지.”

그 과정에서 서브 퀘스트도 클리어했다. 산적에게 잡혀간 마을 사람들을 구출하는 퀘스트였다.

“보아하니 자유민 같은데, 병사가 될 생각은 없나?”

─병사아아?

─병사?

─구울왕한테 감히 병사를 들이미네;;

─어이어이 헤드헌팅할 거면 제대로 하라고

─구울들 날뛰는 거 봐라

시청자들의 반응은 가히 좋지 않다. 스크립트일 뿐인데도 저렇게 열 내고 싶을까.

은우는 유쾌한 기분으로 기사의 제의를 단호히 거절했다.

“그렇다면 이름이라도 듣고 싶군. 이 은혜는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 순간 창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창이었다.

【…이름은 너를 증명하는 무언가지. 기억을 잃은 상황에서 옛 이름을 고집할 이유 또한 없고. 네 마음대로 하렴.】

“이거, 그냥 지어도 되는 겁니까?”

─넹

─저거 특정 이름들 넣으면 특수 이벤트 나와요ㅋ

─헐 ㄹㅇ?

─싸크리트들은 그것도 다 넣어본 거임?

“흠, 그렇군요. 그렇지만 전 옛 이름을 모르니까 그냥 제 이름을 쓰겠습니다. 옛 이름을 썼을 때 나오는 히든 이벤트는 직접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은우는 그의 예명인 켄을 입력했다.

“켄. 켄인가.”

기사가 그의 이름을 읊조리는 동안 샤를로테는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진정, 이별이구나.】

무슨 뜻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기억하겠다. 언젠가 그대에게 반드시 이 빚을 갚겠다.”

기사는 그리 말하며 그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대단한 것은 못 되지만, 가지고 가도록. 그대의 여행길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은 부싯돌과 몇 개의 약초였다. 말 그대로 대단하진 않지만, 도움은 되는 것들이 아닐 수 없다.

─저거 가지고 빛 갚았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기사의 큰 그림;;

“설마 그러겠습니까.”

대화가 끝난 것 같았기에 은우는 기사에게서 멀어지려 했다. 그러자 기사 위로 말풍선이 떠오르며 목소리를 내었다.

“근데 이상하군. 그대, 정말 인간인가?”

“……?”

“…아니, 내가 말실수를 했네. 미안하네. 잡아 죽여도 시원찮을 비인간에게 빗대다니, 내 사과함세.”

─비인간혐오를 멈춰주세요!

─캬,,,,구울왕인 걸 단번에 알아보시네

─구울인 것 어케 알앗누;;

─알았다면 어서 팬티를 내려라!

“구울 아닙니다.”

그는 시청자의 말을 정정해 주며 기사 주변을 서성거렸다. 물론 주황색 띠가 생겨나지 않았으므로 말 걸기는 불가능했다. 키워드 대화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얻어 낸 것은 없었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을 줄이야…….】

산적들의 산채에서 빠져나오자 샤를로테는 감탄이라고 하기엔 모호한, 따진다면 안타까움에 가까울 말들을 흘렸다.

【국경이 근처라 도적 떼가 기승이라니? 정말로 끔찍하고 비탄스러운 말이구나.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더베드 왕국의 영토 내에선 산적 따위를 찾아볼 수 없었거늘. 그땐 동쪽 제도 전체가 이 나라의 것이었는데도!】

시청자의 말에 따르면 지도가 브리튼 제도에서 따온 것 같다던가. 어찌 됐건 ‘네 개의 가지’의 배경이 되는 땅덩이는 크게 서쪽 제도와 동쪽 제도로 나뉘었다. 서쪽 땅보다 동쪽 땅이 2배가량 컸고 말이다.

【서쪽 제도에 군림하던 귀네드가 동쪽 제도의 북쪽까지 전부 차지할 줄이야……. 분명 에린과의 오랜 전쟁이 이 나라를 이토록 밀리게 만든 거겠지. 그 전쟁만 아니었어도 이렇게까진 형편없이 당하고 있진 않았을 것을…….】

은우는 처음 듣는 단어에 미간을 좁혔다. 에린이라.

“에린.”

【에린은… 바다 건너 존재하는 나라란다. 지고왕 브란이 더베드를 통치했을 때, 동맹을 제의하고자 에린의 지고왕이 직접 이 나라까지 건너왔었지.】

샤를로트는 거기까지 말한 후 한숨을 내쉬었다.

【그 남자는 브란 왕의 여동생, 브란웬과 혼례를 치렀단다. 다만 문제는, 그로부터 1년도 되지 않아 브란웬을 암살당했다는 점에서 발생했지. 지고왕 브란의 이복동생은 지고왕의 자리를 찬탈하고자 했고, 브란의 명예를 실추시키기 위해 그의 또 다른 이복동생마저 죽이고 만 거야.】

그다음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암살이야 이복동생이 저지른 거라지만, 에린 입장에선 눈 뜨고 국모를 빼앗긴 상황이니. 그로 인해 두 나라에서 전쟁이 벌어진 모양이다. 더베드는 거기서 국력을 엄청 소모했다가 귀네드에게 한 방 먹은 거고.

“브란 왕.”

【지고왕 브란……. 그는 왕으로선 굉장히 유능한 사람이었단다. 잔혹하고 비정한 면모가 있었지만, 군주에겐 모름지기 그런 성품이 필요한 법이니까. 생명 하나를 돌처럼 볼 수 있는 그런 무정함이…….】

정치에 정이 들어가선 안 된다. 그걸 아는 은우는 샤를로테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샤를로테의 눈동자가 어느 순간 깊어졌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우리’들은 그런 그가 정말로 싫었단다. 그가 유능한 군주이기만 했기에 도저히 좋아할 수 없었어.】

이건 제법 해석할 거리가 많은 말이었다.

“우리가 싫어했다라. 정령들만을 말하는 걸까요, 아니면 기억을 잃기 전 주인공까지 포함하는 걸까요.”

─글쎄요?

─왜 싫어한겨

─유능한 군주가 왜 싫지...

─막 비정햇던 거 아님?

“유능한 군주이기만 해서 싫었다는 건 그의 비정함이 싫었단 얘기일 텐데. 브란 왕의 정치에 소중한 사람을 잃기라도 한 모양입니다.”

은우는 새로 얻은 단서들을 정리하며 몇 가지 더 키워드 대사를 시도해 보았다. 된 것도 있고 안 된 것도 있었다.

다만 확실해진 것은, 샤를로테는 더베드 왕국도, 귀네드 왕국도 좋아하지 않았다. 전자가 애증이라면 후자는 분노나 증오에 가까운 형태로.

▣ 178. 어떻게든 된다

이그리트가 있다는 범위 안으로─정확히는 그 범위가 지정한 마을로 들어왔다. 그러자 퀘스트가 갱신되었다.

『새로운 임무 획득!

불꽃이 흘리는 눈물

정보를 수집하자』

굉장히 포괄적인 지시문이었지만, 메인 퀘스트는 주황색 느낌표로 표기된다. 주황색 느낌표를 띄우고 있는 NPC만 찾아내면 된다.

“항구도시라서 그런가, 서브 퀘스트가 많이 보입니다.”

─ㅇㅈㅇㅈ

─와 퀘스트 몇 개야ㅋㅋㅋ

─진짜 개많다

─저거 다 깨실 거?

메인 퀘스트와 달리 서브 퀘스트는 파란색으로 표기된다. 은우는 도시를 둘러보는 동안 발견한 서브 퀘스트의 숫자가 자그마치 7개나 되는 걸 보고 목덜미를 쓸었다.

다 받기는 좀 그러니, 메인과 겹치는 것만 수주하는 게 좋을 성싶다.

“형이 머맨에게 당해서… 흐흑! 부디 사악한 머맨들을 해치워 주세요! 녀석들이 다신 어부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혼쭐을 내 달란 이야기예요!”

“망할 아들놈이 한탕 하겠답시고 이오베네 섬에 가서 한 달째 안 돌아오고 있소. 후… 녀석이 살아 있는 건 기대도 하지 않아. 그렇지만 후레자식이라도 내 새끼라고, 최소한 장례는 치러 주고 싶소. 이오베네 섬에 갈 일이 있거든 유품이라도 좀 챙겨 줄 수 있소?”

“스켈레톤의 뼛가루가 포션의 재료로 쓰인다는 걸 알고 있나요? 그네들 뼈에 담긴 성분이 금 가고 부러진 뼈를 붙이는 데 아주 탁월한 효과를 보인답니다. 괜찮으시다면 스켈레톤의 뼛가루를 모아 주세요. 이오베네 섬에서 나온다고 들었어요.”

정령이 봉인된 장소를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붉은 보석이 숨겨져 있다는 소문은 있었다. 한때 수용소로 썼다는 이오베네 섬이었다.

“이오베네 섬에서 깰 수 있을 것 같은 서브 퀘는 이게 다네요.”

─ㅋㅋㅋ경로 겹치는 건 못참지

─아ㅋㅋㅋ효율은 챙겨

─다른 건 몰라도 가는 길에 몹 나오는 건 깨야지ㅋㅋ

은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마지막 주황색 느낌표를 향해 다가갔다.

특이한 차림새를 한 여성은 주점의 테이블 하나를 차지한 채 널브러져 있다. 소문을 들려준 상인이 이오베네 섬에 갈 거면 먼저 찾아가라 했던 사람이다.

“엽마꾼인 것 같습니다.”

기사나 병사 같은 정규군 차림새는 아니고, 짐승 잡는 사냥꾼이라고 하기엔 장비가 이질적이다. 아무렴 동물을 사냥하는 데 은을 도금한 검이 필요하진 않다.

마물을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이들, 엽마꾼이 분명하다.

“뭐야.”

주황색 띠 안으로 들어가니 여자가 테이블에 처박고 있던 얼굴을 느릿하게 돌렸다. 검은 머리를 잘게 땋은 후 포니테일로 한 번 더 묶은 그녀는 얼굴에 큼지막한 자상을 입은 상태다.

─커어 이쁘다

─팬더임? 눈가 왜이렇게 거뭇거뭇함

─그래픽의 한계;;

─누나아아아아아아

“너도 엽마꾼이냐? 이오베네 섬에 들어갈 생각이라도 하나 보지?”

여성은 콧김을 킁 내뿜었다.

“뒤지기 전에 관두는 게 좋을 거야. 거긴 지옥이야.”

『“엽마꾼이 마물을 두고 겁먹은 건가?”

“그곳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적대하는 관계도 아니고 굳이 도발해서 얻을 게 없다. 은우는 두 번째를 골랐다.

엽마꾼은 드디어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곤 그녀의 얼굴에 난 상처를 가리켰다.

“야, 보여? 이 상처 보이냐고. 이건 저 안에서 얻은 거야. 빌어먹을, 저 저주받은 섬에서 동료 둘을 잃고 나까지 뒈질 뻔했다는 증거라고. 그런데도 갈 셈이야?”

“그건 그쪽이 상관할 바 아닌 것 같은데.”

“하! 충고는 좆도 안 듣는군. 역시 엽마꾼 새끼들은 직접 당해 봐야 안다니까.”

그녀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의자 앞다리를 세웠다. 균형을 절묘하게 맞춘 채 끼익거리는 게, 제법 솜씨 있다.

그에, 시야에 익숙한 노이즈가 끼고 몸이 찌릿 굳었다.

〚내가 이곳에서 물러나면 저들은 누가 지켜주지? 나는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

〚이이……! 후퇴도 하나의 전술이야. 아무도 너를 비난하지 않을 거라고!〛

〚가능한 일을 두고 죽을 가능성이 두려워 물러나는 것도 전술이라고? 아무도 비난하지 않을 거라고? 그럴 리가! 내가 두고 간 이들이 나를 비난할 것이요, 그 이전에 내가 나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멍청아! 세상을 바꾼다며! 대를 위해선 소를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해! 여기서 죽으면 그냥 개죽음에 불과할 뿐이라고!〛

흰빛 사이로 어렴풋이 흔들리는 건 누군가가 두른 망토와 그가 쥔 지팡이다.

〚개죽음이라도 좋다. 애당초 이런 곳에서 꺾이고 부러질 의지라면 개혁 따위 불가능할 것이니.〛

〚저 멍청이가……!〛

〚어차피 오래 살 수도 없는 몸, 미련은 없다. 나는 이곳에서 나의 운명을 시험하겠다.〛

『새로운 기억 획득!』

“…기억 떠오를 때마다 진짜 제 기억 떠오르는 기분이라서 좀 그렇습니다.”

─과몰입 겜ㅋㅋㅋ

─ㅇㅈㅋㅋㅋㅋ

─회상씬을 되게 잘 만들었어..

은우는 눈을 껌뻑였다. 그가 기억을 회상하는 동안 멈춰 있던 엽마꾼이 다시 의자를 끼익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네가 뒈지지 내가 뒈지나. 뭐가 듣고 싶은데?”

『“나오는 마물.”

“특이한 점.”

“가는 방법.” ◀』

은우는 위에서부터 차근차근 물어보았다.

“일단 섬 해안가에선 머맨들이 나와. 섬 안쪽 수용소로 가면 구울들이 나오고.”

머맨은 물고기 인간이니 해안가에서만 출몰하는 게 맞을 테고, 구울이라면 이미 마주친 바 있다.

그 당시 샤를로테가 해 준 설명에 의하면, 산 인간이 마물화됐을 때 탄생하는 하급 내지 중급 마물이란다.

─팬미팅ㅋㅋㅋㅋ

─구울 대기타구 있누

─사생팬on

─혀어어어엉

─손 한 번만 잡아줘요

─한 입만 먹고 놔줄게

구울의 등장에 애꿎은 구울 시청자들만 신났다.

“숨어서 지하실까지 가는 덴 성공했는데… 거기서 재수 없게 둘라한과 마주쳤어. 둘라한 알지? 구울의 강화종.”

【둘라한……. 기사 같은 강자가 산 채로 마물화된 걸 일컫는단다. 인간일 때의 지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까다로운 마물이지. 제법 위험한 곳임은 분명하구나.】

샤를로테의 적절한 도움으로 둘라한의 정보도 얻었다. 은우는 다음 질문을 던졌다.

“마계화가 진행 중이야. 내가 갔을 때도 끔찍했지만, 지금은 더 끔찍해졌겠지.”

“마계화? 이건 또 처음 들어 보네요.”

몰라도 감은 잡히지만, 그래도 확실한 게 좋다. 그리고 게임에서 이렇게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땐, 누구 하나는 설명해 줄 사람이 나온다.

【한 장소에 마물이 밀집되어 있을 경우 벌어지는 게 마계화란다. 지형지물을 뒤틀어 마물에게 유리한 환경으로 바꾸지. 아무래도 단단히 각오를 하는 게 좋겠어.】

─고마워요 샤를로테웨건!

─설명충 on

─샤를로테가 다 말해주네ㅋㅋ

─훈수충

─싸크리트들 훈수자리 뺏겼누;;

과연, 샤를로테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가는 방법.”

“머맨 수가 늘어서 배로는 더 이상 못 가. 마법을 이용해 날아가거나, 바다를 얼리면서 가거나, 엘프를 포섭하는 수밖에 없어.”

은우의 눈살이 좁아졌다. 날아가거나 바다를 얼린다는 개념은 이해하겠는데, 엘프를 포섭하는 게 왜 방법 중 하나인지는 모르겠다.

─엘프!!

─ㅋㅋㅋ아 기대하는 놈들ㅋㅋㅋ

─싸뉴비들 방긋

─엘프다!!

─엘프 나옴?

─싸크리트들 웃는 거 보니까 안 좋을 것 같은데

그사이 아름다움의 대명사라 불리는 엘프 언급에 채팅 창이 술렁였다. 엘프 포섭이 왜 필요한 건지는 몰라도 예쁜 캐릭터가 나올 걸 생각하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엘프는 동물을 넘어서 마물까지 부릴 수 있다지. 확실히 좋은 방법이구나.】

“설마 비인간 차별주의자인 건 아니지? 아니면 소개 정돈 해 줄 수 있어.”

“당연히.”

차별주의자고 뭐고, 애초에 엘프가 어떤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은우는 엽마꾼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가져가서 보여 줘. 최소한 문전박대는 안 할 테니까.”

엽마꾼은 주점 주인에게 강탈해 온 종이에 글자를 쓱쓱 새겨 넣었다. 언어 설정 덕에 한글로 적고 있긴 한데 지독한 악필이라서 읽기가 힘들었다.

애초에 교육 수준이 그렇게 높을 것 같지 않은 세계관에서 글이라도 알고 있는 게 대단한 일 같지만 말이다.

『새로운 임무 획득!

불꽃이 흘리는 눈물

엘프를 포섭하자』

“비인간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드디어 만나겠습니다.”

─엘프 만나러 가즈아아ㅏㅏ

─엘프남은 인정 안한다 족온 엘프녀

─안 예쁜 거 아님?

─이 그래픽이면 별로일 것 같은데...

과연 이 게임의 엘프는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은우는 엽마꾼이 알려 준 엘프의 거주지로 향했다.

* * *

“뭐야, 넌.”

─?

─???

─?

시작부터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톤이 높다기보단 조곤조곤 말해도 소리 지르는 느낌의 목소리였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벌써부터 갈고리 수집가가 된 상태였다. 물론 목소리에서만 충격받은 게 아니라 외모 보고 충격 먹은 것도 있을 거다.

“하, 이오베네 섬? 자살 희망자였냐? 자신의 무능함을 자만과 허세로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인간답군.”

쨍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엘프는 아름다움이란 단어와 썩 공존하지 못할 것 같은 외형이었다.

코는 들창코에 콧대는 아예 없다. 입은 길게 찢어졌고 볼살은 축 처져서 턱과 함께 3개의 봉우리를 만든 것 같았다.

거기에 눈썹 없는 눈은 눈두덩이만 움푹 파여서 그늘이 옴팡지게 졌다. 그 가운데 번들거리는 홍채는 비열한 보랏빛이었다.

광대뼈는 툭 튀어나와서 안 그래도 치켜뜬 눈을 더 신경질 난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얼굴만 해도 인간의 미의식과는 거리감이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 엘프는 뼈밖에 없나 싶을 정도로 빼빼 말랐는데, 그 와중에도 키는 크고 온몸에는 털이 부숭부숭 났다. 가죽 바지와 천 따위로 몸 대부분을 감싼 게 다행일 지경이었다.

─아니 미친;;

─걍 키큰 고블린이잖아

─아 ㅅㅂ 내눈

─내 환상 돌려줘요

보편적인 엘프의 설정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이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별 기대 없던 은우만이 여상스럽게 엘프를 대했다.

“그래서, 안 할 건가?”

“뭐, 돈만 낸다면 못 데려다줄 것도 없지! 얼마까지 알아봤는데?”

그 엘프의 반응을 두고 샤를로테가 부연 설명을 해 주었다. 엘프는 그들이 추한 만큼 귀하고 예쁜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이야기였다.

다른 말로는, 돈을 밝혔다. 귀하고 아름다운 것은 대개 비싸니까.

『“돈은 없어.”

“원하는 게 있나?”』

“원하는 거라도.”

“뭐? 설마 돈을 준비 안 한 거야?”

엘프가 화난다는 듯 발로 땅을 쿵쿵 찼다. 다만 그것도 잠시, 엘프는 그의 강함 여부를 물어보았다. 은우로선 당연히 뭘 생각하든 그것보단 이상일 거라는 답을 줄 수밖에 없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지. 이오베네 섬에 세상에 단 하나뿐인 보석이 숨겨져 있다는 소문은 들어 봤겠지?”

알다마다. 애초에 그 보석이 그들의 목적이었다. 아마 이그리트가 봉인된 돌일 거라고 샤를로테가 말해 주었으니까.

“데려다주는 건 공짜로 해 주겠어. 대신 섬을 나갈 땐 그 보석을 내게 값으로 치러 줘야겠어.”

─거래조건 실화냐?

─엘프가 아니라 깡팬데;;

─보석 ㅗㅜㅑ;;;

─퍄퍄,,,

─손 함 봐주죠 켄님

이건 뭐, 양아치가 따로 없는 거래제안이었다. 이오베네 섬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존귀한 보물을 대가로 내놓으라니.

심지어 그 보석은 구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거니와, 존재가 확실하지도 않았다. 은우야 샤를로테가 있다고 확인해 줘서 아는 거지, 보통 역마꾼은 모른단 이야기다.

【미안하구나. 내가 본연의 힘만 되찾을 수 있다면 널 저곳까지 날려 주는 건 일도 아닐 텐데…….】

샤를로테가 정말 미안하단 얼굴을 했다. 딱히 그녀가 사과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그녀의 사과를 막을 방도는 없다.

“선택지가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는 걸 보니, 어떻게든 된다는 것 같습니다.”

일단 주고 내륙으로 돌아와서 빼앗든, 이그리트를 깨웠을 때 탈출할 방도가 생기든, 게임 스토리가 알아서 해 줄 거다.

그가 이런 상황이었다면 그냥 머맨을 다 죽이면서 갔을 테지만, 뭐.

“받아들이지.”

“좋아, 좋아! 아주 훌륭한 판단이야!”

엘프가 낄낄 웃더니 자신은 먼저 선착장에 먼저 가 있을 테니 준비가 되면 오라고 외쳤다. 그를 제집에 남겨 둔 채로 먼저 뛰어가는 모양새가 저 엘프의 성질을 어느 정도 알게 만든다.

─집에 뭐 잇나 보죠

─집 털어버릴 순 없음?

─쌩양아치 아녀 저거

─엘프에 대한 환상이....

“어쩔 수 없죠. 일단 갑시다.”

준비할 건 딱히 없다. 은우는 바로 선착창으로 출발했다. 먼저 튀어나갔던 엘프가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붉은 보석이야. 그 보석을 주지 않으면 내륙으로 안 돌려보내 줄 거라고.”

엘프는 낄낄 웃곤 목에 걸고 있던 피리를 불었다. 곧, 온갖 물짐승들이 몰려왔다.

“킬킬, 가자고.”

그 물짐승들 사이에서 엘프는 조그만 뗏목을 바다에 띄웠다. 펼친 돛은 바람을 타고, 물짐승들은 뗏목을 받치며 앞으로 밀었다.

【바람이 좋아. 순풍이 불겠어.】

바람의 정령이 하는 말 그대로, 순풍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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