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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177화 (177/233)

177화

이름 모를 NPC의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샤를로테가 추적에 대해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노란색으로 추적 대상의 흔적을 표기해 주었고, 그는 그걸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물론 흔적이 띄엄띄엄 있는 데다가 흔적이 남겨진 시간에 따라 형태가 달랐으므로 그걸 잘 구분해서 쫓아야 했다. 은우에겐 어려울 것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를 구해 주세요!”

다만 그렇게 해서 찾아낸 건 아이들뿐이었다. NPC가 아내와 아이들을 찾아 달라고 한 걸 고려하면 절반의 성공인 셈이다.

“나쁜 사람들이 엄마를 마을로 끌고 갔어요.”

어머니 쪽은 아이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병사들의 시선을 끌다가 그대로 잡혀간 모양이다. 결국 임무를 성공시키기 위해선 마을까지 내려가야 했다.

“그래.”

은우는 그의 골반까지 오는 아이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곤 마을의 위치를 확인했다. 연기를 통해 마을과의 거리를 가늠하건대, 별로 멀지 않았다.

“구하러 갑시다.”

밀빛 머리카락 사이로 녹음을 품은 눈동자가 서늘하게 반짝였다.

▣ 177. 자질구레한 부분은 플레이어가 알아서

“끄응, 나도 맛 좀 보고 싶은데 말이야.”

“너만 못 보는 줄 알아? 참아. 곧 교대니까.”

“하여간 재수가 없으려니…….”

마을이 보이는 언덕에 도달했을 때, 병사들의 시시덕거림이 들려왔다.

《리베아 언덕 리베아 마을》

현재 위치가 떠올랐다가 금세 지워졌다.

은우는 옅은 숨을 내뱉으며 츠바이헨더를 들었다. 목표는 마을로 내려가는 언덕길 위 적군이다.

─학살좌 on

─나쁜놈 처리하러 가즈아ㅏㅏㅏ

─다 죽여!

─구울왕이 납셨다 이거야

츠바이헨더 같은 검 자체가 본래 패용하고 다니는 검이 아니다. 크기도 크기고 무게도 무게라서 등 뒤에 메고 있으면 사용할 때 뽑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건 키가 2m(-3cm)인 사람에게도 통용되는 일이기에, 은우는 칼을 미리 손에 쥐었다. 칼자루를 제외한 검신만 해도 1.5m를 넘기다 보니 검이 저절로 끌렸다.

그그그그극-

다져진 모래언덕길 위를 거대한 검이 긁어내렸다.

“어이, 저기 사지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 등신이 있는데?”

“하하! 안 그래도 찌뿌둥했는데 잘됐어. 저건 내가 상대한다!”

적병이 그를 인식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새로운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듯 귓가에서 메아리쳤다. 아까 투닥거리던 두 개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사람이다.

〚기억하라. 귀네드는 적이다.〛

『새로운 기억 획득!』

알림 창은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스치듯 금방 사라졌다. 애당초 은우가 그것에게 시선을 주지 않으리란 걸 아는지도 모른다.

“묵사발을 내 주지!”

─아;; 지건 마렵네;;

─묵사발 날 게 과연 누굴까...

─형님 처리할까요?

은우는 병사들의 외침에 굳이 호응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동공은 흔들림 없이 병사들만을 노려보았다. 사냥감을 결정한 살인자의 눈이다.

그는 결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으며 츠바이헨더를 양손으로 잡고 어깨에 걸쳤다. 적들이 경사진 땅을 밟으며 달려오는 중이다.

“저는 스태미나 때문에 오래 못 달리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바로 레벨 차이다 이마리야

─용사보다 체력 좋은 몹;;

“죽어!”

스태미나가 걸어 둔 제한에 혀를 차는 사이, 병사가 그의 앞에 다다랐다.

은우는 어깨에 걸쳤던 츠바이헨더를 띄우고 그대로 내려쳤다. 육중한 무게가 병사를 내리눌렀다.

“그나마 공격에는 스태미나가 안 달아서 다행입니다.”

─ㅇㅈ

─공격에도 달았음 존나 빡쳤을 듯

─지금도...뭐......

검의 무게에 첫 병사가 강제로 뒷걸음질 치자, 그것은 마치 도미노와 같은 작용을 만들었다. 넘어지진 않았지만, 다들 주춤거리며 균형 잡느라 바쁘다.

“좁은 길에서 연달아 올라오는 실수를 저지르면 저렇게 됩니다. 여러분도 주의하십쇼.”

그것은 은우가 한발 앞으로 나아가며 올려 베기를 시도하기 충분한 틈이니.

“으악!”

결국 첫 병사는 반항도 못 하고 사망했다. 뒤쪽에 있던 병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한 손 검을 들고 덤볐지만, 은우는 옆으로 몸을 틀어 피했다. 그리곤 손을 움직였다.

물론 검 끝이 바닥에 닿은 채고, 검이 워낙 길고 무거워 들어 올리긴 글렀다. 그러나 그 상태에서 운신이 어렵다는 건 칼날로 상대를 베어야만 한다는 편견에 사로잡혀서 그런 것이다.

은우는 리카소riccaso부분을 붙잡았다. 검날의 뿌리 부분, 즉 크로스 가드와 맞닿은 부분이다.

그 부분을 잡고 검 끝으론 대지를 꾹 누른 채 팔을 움직이면 검 끝을 축 삼아 칼자루가 휘둘러진다.

빠악!

폼멜 부분이 정확하게 적의 투구를 강타했다. 크로스 가드가 살짝 걸리적거리긴 했지만, 그 부분은 옆으로 뉘니 어떻게 됐다.

챙!

적의 투구를 강타하다 못해 검은 은우의 몸 앞에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듯 섰다. 덕분에 세 번째 병사의 공격이 가로막혔다.

그는 적의 검을 떨치며 투 핸드 소드의 힐트를 잡고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곤 몸과 검을 같이 돌렸다. 마치 풍차처럼 한 바퀴 돈 검은 공격에 실패해 주춤거리던 두 병사를 갈랐다.

두 병사의 몸이 결국 땅과 등을 맞대었다.

“투구는 두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헬멧은 못참지

─<<<<헬멧 집착공

“아, 마법. 잊고 있었습니다. 근데 그거, 아직 공격 마법을 안 배운 상태 아닙니까?”

은우는 녀석들이 아이템을 떨어트렸는지 한번 보았다. 시야에 방해되지 않게 뒤쪽에서 동동 따라오던 샤를로테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쓸 만한 아이템을 찾기 힘들거든 오른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렴. 신호에 맞춰서 내가 바람을 불어 줄 테니까. 그냥 찾는 것보단 쉬울 거란다.】

아이템 수색 같은 능력인 모양이다. 싸움에 참가하지 못할 따름이지, 정말 다재다능하다.

은우는 샤를로테의 말을 따라 가슴을 툭 쳤다. 그러자 녹색 빛이 원형으로 우웅 뻗어 나갔다.

또한 그것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녹색 빛이 지나간 자리 일부에는 노란빛이 맺혔다. 병사의 시체─명치 즈음─나 길가에 잡초처럼 자라난 풀 따위였다.

“아, 이것도 아이템이었네요.”

『백굴채 ◐

줄기를 뜯으면 진노랑 유액이 나오는 풀.

초원에 다수 자생하며 대중적인 약재로 쓰인다.』

『찌그러진 투구 ???? 0 ▷ 3

귀네드 병사에게 보급되는 투구.

구릿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녹슨 병사의 장검 ⚔ 10 ▷ 5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해 녹이 살짝 슬어 버린 장검.

베이지 않도록 조심하자.』

“구릿한 냄새…….”

─앗,,,,,

─이건 좀

─켄무룩

─정수리 꼬순내 에바;;

백굴채 옆에 생긴 반 칸짜리 원이야 회복량을 뜻한다는 걸 알겠다. 다만 투구에 붙은 설명이 그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게임에서야 남의 무기건 방어구건 약탈해서 쓴 은우지만, 전생에선 방어구만큼은 맞춤으로 다녔다. 아무 설명이 없다면 모를까, 구릿한 냄새라 적어 두면… 쓰기는 쓰겠지만, 왠지 찝찝하다.

─이건 버리죠

─다른 거 주워 씁시다

─다른거ㄱㄱ

“…아뇨. 어차피 계속 이런 것만 나올 것 같으니 그냥 쓰겠습니다. 진짜 냄새날 것도 아니고.”

은우는 투구를 착용했다. 그러자 매끌매끌한 반구형에 넙데데한 챙 부분을 이어 붙인 철모가 그의 머리에 씌어졌다.

쇄자갑도 당연히 있었다. 실제 중세 시대 병사처럼 호버크Hauberk의 두건 부분에 해당하는 사슬 갑옷과 철모를 조합시킨 것이다.

왠지 구릿한 냄새가 나는 듯한 건 그저 기분 탓이리라 믿는다.

* * *

“녀석을 죽여라!”

“계집애처럼 뒤에서 슬금슬금 걸어오는 것이냐!”

은우는 그를 향해 달려드는 적들을 보며 상승한 적응도로 찍은 재능을 발휘했다. 마을에 들어와서 제법 많은 이들을 죽였던지라 적응도가 어느새 3을 향해 달리고 있다.

“여자라고 다 슬금슬금 걷진 않을 텐데.”

─차별발언 신고감

─차별자 쳐내!

─차별법 벌금 달달한데

─중세인가 배경이라서 그런거 아님?

─걍 시대 반영인듯

“글쎄요, 마법도 있는 마당에 그렇게 뚜렷이 힘의 고저가 갈릴 것 같진 않습니다만……. 뭐, 시대 배경을 탄 발언은 맞겠습니다.”

하기야 마법과 신앙이 있는 전생에서도 여자를 약하게 보는 사내놈은 널리고 널렸더랬다. 여인네들은 역으로 남자들보고 힘만 센 저능아들이라 놀려 댔지만.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전쟁이란 게 그런 식─타인을 괄시하는─으로라도 스트레스를 풀지 않으면 정말 미쳐 버리는 장소라서 그런 것 같다. 십 년간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는 이 게임의 배경도 같은 거겠지.

“그래도 저렇게 편견을 가지면…….”

퍼엉!

불꽃이 입을 함부로 놀린 병사를 집어삼켰다. 피통이 ⅓ 좀 넘게 까였다.

“살아남기 힘듭니다. 여러분은 주의하세요.”

─어디서? 전쟁터?

─ㅋㅋㅋㅋ사회에서도 비슷하긴 함

─ㅇㅈ 별 시덥잖은 이유로 편견 먹었다가 큰코 다침

─글고보니 차별금지법 이번에 형량 또 늘어난다던데

─크 드디어?

마법의 여파로 짧은 경직이 걸렸기에 은우는 연속으로 검격을 넣었다. 적의 팔을 차 공격을 막고 검으로 가슴팍을 찌른다. 그러면서 몸을 돌리면 병사의 몸통을 가르고 검이 빠져나왔다.

캉!

빠져나온 검이 옆에서 쏘아지는 창을 튕겨 냈다. 은우는 그 상태에서 검을 역수로 쥐고 뒤로 찔러 넣었다.

“이 개 같은……!”

보지 않아도 뒤에 있던 이가 죽었음을 알 수 있다. 기척이 사라졌으니 당연하다.

은우는 친절히 살아 있는 검집이 되어 주었던 이에게서 검을 뽑아냈다. 살아 있는 검집을 바랐지 죽은 검집은 필요 없다.

“묵직한 대검도 좋지만, 유려하게 휘둘리는 장검도 손맛이 좋습니다.”

─난 그래도 대검뽕이 제일 좋드라

─대검 맞추기 힘들어서 별로...

─마법은요

─이분 근데 마법재능 찍었잖아ㅋㅋ

“마법은 영……. 견제용으로 써먹긴 하겠습니다만, 메인으로 삼긴 좀 그렇지 않습니까?”

─왜 찍었어ㅋㅋㅋㅋ

─ㅋㅋㅋ이럴 줄 알았다

─마법 혐오를 그만둬주세요!

“화려하잖습니까. 안 찍으면 못 쓰기도 하고.”

그는 검을 털었다. 피가 말라붙고 지방질이 끼면 절삭력이 떨어지다 보니 이렇게 한 번씩 털어 줘야 했다. 물론 이 게임은 피가 묻지 않지만.

“죽여!”

“버러지 하나 처리를 못 해!”

멀리서 석궁병이 석궁을 쏘아 댔지만, 적중률이 형편없다. 은우는 몸을 빙글 돌아 춤추듯 그것을 피해 냈다.

그의 손끝에서 노니는 장검은 그 순간에도 적들의 수급을 베어 넘긴다.

순식간에 열댓 명의 병사가 시체로 돌아갔다.

─크 깨끗하다

─너모 깔끔하구연

─아이템 뭐 나올까?

은우는 장검을 검집에 넣고 루팅을 시작했다. 그나마 가방 제한에 수납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수색하기 쉽게 경로를 은근히 정해 놨네요.”

오픈 월드 게임이라 들었는데 생각보다 수색이 어렵진 않을 것 같다.

그는 집집 사이에 난 길목들이 판자나 물건 따위로 막혀 있는 걸 보았다. 거기에 대로도 어찌어찌 바리케이드 따위로 막아 놔서 진로 정하기가 쉽다.

벽을 타고 넘어간다든가 할 수는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인다.

“───!”

“…방금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은우는 눈썹을 들고 귀를 기울였다. 뭉개져서 들려오던 소리가 서서히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살려 주세요!”

여럿이서 외치는 구조 신호였다.

“흐랴─!”

“끌려간 사람들이 영 안 보인다 싶었는데, 어디 한곳에 몰아서 가둬 둔 모양입니다.”

그는 뒤에서 기습하는 이의 가슴을 찌르고 그 목을 베었다. 그러곤 슬쩍 길을 훑었다.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보아… 딱 보이는 집이 있다.

『열쇠가 없습니다.』

“열쇠?”

열쇠는 또 어디서 구해야 하는 거지. 은우가 잠시 생각에 빠지려 할 때, 뒤에서 잘 따라오던 샤를로테가 입을 열었다.

【특정 문은 부술 수 있는 거 아니? 내 바람을 이용하면 부술 수 있는 문이나 벽을 찾을 수 있단다.】

“…이거 좋네요.”

─ㅋㅋ아 근데 저거 은근 안 써먹게 됨

─숨겨진 아이템 찾을 거 아니면 마주칠 일 없긴 하지

은우는 혹시 몰라 가슴을 툭 쳐 보았다. 역시나랄지, 문이 노랗게 빛났다. 그다음은 당연히 발차기로 문을 박살 내는 작업이다.

“끼아아악!”

“끄악!”

“해치지 마세요!”

“살려 주세요!”

“해치려는 게 아닌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상대가 비명을 지르는 해프닝이 벌어지긴 했지만, 문은 일단 부수었다.

은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들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그중 한 명에게 주황색 느낌표가 붙어 있었다.

“호, 혹시 저흴 구해 주러 오신 분인가요?”

『“이제 안전할 거야.”

“아이들에게 부탁받았어.”』

“아이들에게 부탁받았습니다.”

그의 대답에 여인은 화색을 했다. 아이들이 멀쩡히 살아 있는 걸로도 모자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퍽 기쁜 모양이다.

“제 아이들이 살아 있나요……?”

“언덕 너머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기쁜 일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택지를 따라 아이들의 안부를 전해 주니 어머니란 이가 감사를 표하며 다급히 집 밖으로 나갔다. 다른 NPC들도 마찬가지로 아이들이나 가족 이름을 부르짖으며 건물을 빠져나갔다.

보상은 없었지만, 굳이 붙잡고 싶진 않다.

─보상은 주고 가야지

─저걸 튀네

─이걸 이렇게?

─애 핑계 되고 튀는 것 보소

─무보상 지렷네

“뭐… 아이를 만나려는 부모를 탓할 순 없잖습니까.”

이해하진 못하나, 경험의 형태로 쌓인 지식이었다.

“마을 정리나 마저 합시다.”

은우는 사람들을 풀어 준 후 다시 나아갔다. 예닐곱 명 정도 더 죽이니 귀네드 병사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었다.

“더베드다! 더베드가 뒤에서 쳐들어온다!”

아무래도 마을을 구하기 위해 더베드 쪽에서 군을 보낸 모양이다. 야만적이고 잔인한 귀네드의 병사들이 결국 퇴각을 결정했다.

“수가 너무 많다 했더니, 다 처리할 필요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켄속마음’ 님이 ‘1,000원’ 투척!

아씨...왜 벌써 와」

─ㅋㅋㅋㅋㅋ저거다

─천재냐?

─켄잘알ㅋㅋㅋ

“저렇진 않습니다.”

투명한 장막이 귀네드를 쫓는 걸 가로막았기에, 은우는 멀건이 서서 그것들의 도주를 지켜보았다. 정확힌, 다리가 굳어 버려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의미한 싸움이다.〛

순간, 시야에 노이즈가 꼈다. 은우는 반사적으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일방적으로 선고하던 저음과 중음이 또다시 들려왔다.

〚왜 윗사람들의 결정에 백성들이 고통받아야 하지? 나는 인정할 수 없다.〛

〚…인정 못 하면 어쩔 건데? 어쩔 수 없는 일이야. 필요한 일이고. 그래도 저들은 불만 없을 거야. 조국을 위하여 죽는 건 고결한 일이니까.〛

〚하! 고결? 우스운 소리다. 그것은 상대를 죽음으로 내몬 자가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아무렇게나 지껄인 말일 뿐. 진정 네가 죽어 갈 때도 고결을 논할 수 있는가?〛

〚…그럼 뭐, 어떡할 건데? 네가 저걸 바꾸기라도 할 거야?〛

〚그래.〛

나부끼는 머리카락이 담담히 고했다.

〚나는 바꿀 거다, 반드시.〛

『새로운 기억 획득!』

샤를로테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이밀었다. 갑자기 다리가 왜 굳나 했더니 스토리였다.

【무언가, 기억이 떠올랐니?】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어.”

“무의미한 싸움이라고 했어.”』

은우는 잠깐 고민하다가 첫 번째를 골랐다. 샤를로테의 눈매가 파르르 떨리더니 그 목소리의 주인을 기억하느냐 물었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래, 아직은 이르단 거겠지.】

샤를로테는 턱을 짚으며 진중히 고민하다가 무언가가 갑자기 떠오른 듯 손뼉을 쳤다.

【아무래도 기억을 되찾으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은데, 그동안 흩어진 내 동료들을 찾아보는 건 어떻겠니? 다들 봉인된 상태지만, 그들을 깨우거든 분명 네게 큰 힘이 될 거란다. 기억을 떠올린 후에 네가 무엇을 택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쁜 선택은 아닐 거야.】

“동료 모으기……?”

─알피지의 정석 나왔다

─아 동료는 못참지ㅋㅋ

─동료들 1도 도움 안 된다에 한 표

─2222

─333333

흔한 전개지만, 기억도 없는 상황에서 할 게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애초에 메인 퀘스트를 거부하는 게 가능할 리도 없고.

은우는 샤를로테의 제안을 수락했다.

『새로운 임무 획득!

네 정령을 찾아서

샤를로테와 대화하자』

새로운 임무가 생겨났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정령은… 그래, 이 타오르는 힘. 이그리트 같아.】

주황색 느낌표와 띠를 두른 샤를로테에게 다가가니 대화가 시작되었다.

【위치는… 보여 주면서 말하는 게 빠르겠지.】

샤를로테는 그녀의 힘으로 지도를 펼쳐 보였다.

【참, 오랜 시간을 동굴 안에서 보내느라 지금의 대륙이 어떤 상황인지 나는 모른단다. 대신 네가 지나간 자리만큼은 명확히 기록해 두마.】

대륙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모른다는 말에 어울리게, 그녀의 지도는 대륙의 형태만 명확히 표기되었을 뿐 그 내용물이란 게 없다. 산이나 강 같은 건 표시되어 있어도 도시라거나 마을이라거나 그런 건 표기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거다.

【만약 네가 바람이 모이는 곳을 찾아낸다면 그 일대의 지도를 한 번에 개방할 수 있겠지만… 꼭 찾아낼 필요는 없단다. 관도만 따라가도 길을 잃을 걱정은 없으니까.】

─맵 개방 떴다!!

─저거 무조건 찾아야함니다

─찾으면 맵 바로 열려용

“아, 그렇습니까. 그럼 바람이 모이는 곳을 찾는 게 좋겠네요.”

하긴, 저걸 다 돌아다니면서 밝히는 것보단 이렇게 지역별로 개방할 수 있는 게 편할 거다. 전부 돌아다니기엔 너무 넓은 세상이니까.

【하나 더 미안한 게 있구나. 이그리트가 봉인되었기도 하고, 내 힘도 약화된 상태라 대략적인 위치는 알겠지만, 정확하게 추측하기가 어려워. 때문에 내가 표기해 둔 선 안에서 네가 적당히 찾아내야 할 것 같구나.】

밝혀지지 않은 한곳에 노란색 원이 쳐졌다. 아마 저기 안에 이그리트가 있다는 것 같다.

【힌트가 될 만한 게 있다면… 이그리트는 불꽃의 정령이야. 그를 봉인할 수 있는 건… 역속성인 물밖에 없지. 아마 물이 많은 곳에 있을 것 같구나. 이렇게 말해도 찾기는 어렵겠다마는. 근방에 도착하면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겠지.】

“음, 자질구레한 부분은 플레이어가 알아서 하란 소리 같습니다. 그래도 이유가 현실적이라서 기분 나쁘진 않네요.”

─ㅇㅇ 설정 좀 괜춘한듯

─브리튼 제도네

─저거 설마 다 돌아다님?

─개 넓네;;;

샤를로테의 말을 들으며 은우는 고개를 적당히 주억였다. 목표도 결정됐겠다, 이제 할 일은 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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