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176화 (176/233)

176화

─머임 귀신?

─와 디자인 개이쁜디?

─얼굴 좀 애매하긴 하다

“귀신입니까?”

은우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따라 저것의 정체를 추측했다.

공중을 떠다니는 여인 형상이라. 확실히 일반적인 귀신과 비슷한 인상이다. 다만 긴 머리가 허공에 떠오른 채 너울거리는 점이나 그리스식 천 옷은 을씨년스럽다기보단 신묘했다.

그녀를 구성하는 선들이 물결치듯 일렁이는 것이나 그 끝이 천천히 허공에 녹아들어 사라지는 것. 그리고 새로운 선이 허공에서 생겨나 다시 여인을 구성하는 것도 신비로움에 한몫했다.

영혼 따위를 선으로 그려 내 표현한다면 저런 형상일 것이나, 분명 한 맺혀 탄생한다는 귀신은 아닐 테다.

【귀신이라니. 마물과 나 같은 정령이 같겠니? 농담이라도 그런 말 마렴.】

그의 중얼거림에 자연스럽게 답하는 모습이 당연스럽다가도 조금 낯설었다. 은우는 늦지 않게 그것이 답한 이유를 찾아냈다.

“이 게임도 키워드 대사를 채용한 모양입니다.”

─ㅇㅇ 키워드 대사 가능임

─농담이라도 귀신이라 하지 말래ㅋㅋㅋ

─정령부심ㅋㅋㅋㅋㅋ

“그보다 정령이라.”

은우는 신기한 눈으로 정령을 보았다. 북유럽 신화를 어느 정도 익힌 상태라 정령이란 개념을 모르는 건 아니다. 다만 정령이란 건 그의 세계에 없던 존재였기에 게임 속에서라도 마주하는 게 퍽 새로웠다.

“신기하네요.”

면이 아닌 선으로 입체를 구현한 제작진의 구현력도 경탄스럽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상자부터 챙겼다. 정보도 중요하다지만, 지금 반나체 상태가 아닌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듯, 조사도 옷 입고 나서다.

상자를 열자 곱게 개어 둔 옷들이 보였다. 손가락으로 톡 치면 정보가 떠오른다.

『가방

물건을 수납할 수 있다.』

『낡은 셔츠 ???? 0 ▷ 1

오래되어 낡은 셔츠. 만들어진 지 한참 된 것 같다.

아직까진 입을 수 있을 것 같다.』

『낡은 바지 ???? 0 ▷ 1

오래되어 낡은 바지. 만들어진 지 한참 된 것 같다.

아직까진 입을 수 있을 것 같다.』

『낡은 부츠…….』

낡은 시리즈였다. 투구는 안타깝게도 없었지만, 몸을 가릴 수 있다는 점에서 감지덕지다.

은우는 그것을 착용했다. 습득과 동시에 가방으로 들어가 버리긴 했지만, 정령이 가방 사용법을 알려줘서 상관없었다. 착용도 가방에 손을 대면 뜨는 창에서 옷을 골라 ‘착용하기’를 누르면 자동으로 장착됐다.

─ㅠ벗고다니지ㅠ

─아 왜 입어

─반라 탈출

─어우 숭해....

─변태쉑들 쳐내!

“남의 몸에 너무 관심들이 많은 것 아닙니까.”

전쟁터에서 구른 사람은 정조 개념 따윈 없다. 때문에 시청자들이 그의 몸에 품평하든 말든 별 상관은 없다.

…상관은 없지만 낯뜨겁긴 하다. 은우는 슬금슬금 셔츠 소매를 당겨서 쭉 늘렸다.

정조 관념은 없을지언정 그가 대상이 되는 것은 익숙지 않다.

아무렴, 현생의 섹드립은 방송에서 처음 들어봤고, 전생에선 왜소한 체구와 앳된 얼굴 덕에 상대적으로 덜 들었다. 듣는다 해도 가늘어서 안기 좋다는 둥 허리가 한 줌일 것 같다는 둥 그런 반응이지 저런 식은 아니었다.

역시, 익숙하지 않다.

은우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라도 정령을 마주 보았다.

【다 입었니? 역시 잘 맞구나. 조금 오래되긴 했지만.】

그때 허공에 글자가 떠올랐다.

『“누구?”

“여긴 어디?”』

“선택지 대화도 있었군요. 누구?”

선택지를 고르자 창이 사라지며 둥둥 떠 있던 여인이 반응했다. 눈동자가 커진 게 퍽 당황한 눈치다.

【…설마, 날 모르겠니?】

“모릅니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곤 들었지만……. 그래, 그렇구나.】

그녀는 슬픈 얼굴을 하더니 이내 결연한 눈을 했다.

【나는 열일곱 가닥 바람의 네 번째 가닥, 샤를로테. 너를 돕기 위해 오랜 시간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단다.】

스스로를 바람의 일부라 소개한 정령은 그 이름마저도 바람처럼 흐르는 발음을 가지고 있었다. 샤를로테의 눈매가 흐리게 휘었다.

─누나아아아아아 나죽어

─죽어충 또 왔네

─아 근데 되게 느낌 잘 살리긴 했다

─이 그래픽에 저런 디자인이? ㄴㅇㄱ

예쁜 여캐만 나오면 날뛰는 자들이 채팅 창을 점령하려 들었다. 다행히도 시청자 수가 워낙 많아서 금방 묻혔다.

【혹시 왜 이곳에서 깨어났는지는 기억하니?】

“그럴 리가.”

【…역시, 이것도 기억 안 나는 거로구나. 일이 조금 복잡해졌는걸.】

일이 복잡해졌다라. 은우는 품은 의문을 삼켰다. 스토리가 풀리면 차차 해결될 일이다.

『“넌 내가 누군지 알아?”

“여긴, 어디지?”

“일이 복잡해져?” ◀』

“당신은 내가 누군지 압니까?”

정보 수집을 위해 그는 차근차근 위부터 물어보기로 했다. 마지막 질문에 특별한 마크가 붙은 걸 보면 그게 스토리 진행용 물음인 것 같다.

【글쎄, 안다면 알고 모른다면 모르겠지. ‘너’는 처음이니까 말이야.】

“여긴 어딥니까.”

【이곳은 네가 깨어나기까지 너를 보호하기 위한 곳, ‘염려하는 요람’이란다.】

염려하는 요람이라. 은우는 그 명칭의 기묘함을 곱씹으며 이제 하나로 줄어든 선택지를 골랐다. 샤를로테가 헝클어진 눈매를 했다.

【그 부분은 네가 걱정할 필요 없단다. 그보다, 일단 이곳을 나가지 않으련?】

샤를로테가 말한 ‘이곳’은 이 동굴을 통틀어 칭하는 것 같았다. 하기야 그가 방금 나온 방은 그래도 무언가의 기술력이 적용되어 있던 반면, 이 통로는 그냥 자연 동굴 같았다. 벽면이고 천장이고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이다.

“나가죠.”

은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샤를로테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 176. 구원자라 적고 호구라 부르는

어디서 물이 새어 들어오기라도 했는지 동굴 바닥에는 웅덩이가 살짝 진 채다. 은우는 그것을 잘박잘박 밟으며 빛을 향해 나아갔다.

통로는 제법 길었지만, 출구로 보이는 빛이 생각보다 크게 느껴지는 걸 보면 그렇게 긴 것 같지도 않다.

【벽에 손바닥과 발을 가져다 대 보렴. 너라면 아마 벽을 타고 오를 수 있을 거야. 그게 대지와 이어져 있다면 무엇이든.】

통로 중간에 점프로는 넘어가기 힘든 벽면이 나왔다. 그러나 샤를로테의 설명대로 벽에 손을 대면 그것에 달라붙을 수 있었다.

시야 한쪽에 스태미나가 떠오른 걸로 보아, 아무래도 스태미나가 허락하는 한 벽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오 모임 개신기하다

─ㅈㄴ 거미맨;;

─거미보단 바퀴벌레 같....

─진짜 나빴다....

─구울왕에게 바선생을 어따 갖다대냐 ㅡㅡ

“이거 발로만 오를 수도 있을까요?”

─?

─발로만...?

은우는 호기심이 발동해 발만 벽면에 대 보았다. 일단 발바닥은 벽에 붙었다.

연이어 양손을 땠다. 여전히 몸은 아래로 추락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그는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자 몸이 벽과 수직으로 선 상태가 되었다.

“되는 것 같습니다.”

─챠크라;;

─나 이거 어디서 봄 나X토 아님?

─아 ㅅㅂㅋㅋㅋㅋㅋㅋ

─리메이크가 원작을 초월해버린 그 만화....

─가슴이 웅장해진다....

중력은 느껴지지 않지만, 벽을 밟고 선 건 참 묘한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거기서 못 걸을 것도 없다.

은우는 뚜벅뚜벅 걸어 벽을 올랐다. 스태미나 소모를 어떻게 카운트하는지는 차차 알아봐야겠지만, 대강 움직인 거리에 맞춰 차감하는 것 같다. 가만히 있을 땐 소모가 안 됐다.

“나중에 스태미나가 늘어나면 편해지겠습니다.”

─ㅇㅈ

─와 이거 길치가 하기 좋은 겜인듯

─스태미너 늘면 걍 직선으로 가도 되겠는데?

─오.....

벽을 완전히 오르니 동굴 밖이 보인다. 샛노란 햇빛은 세상을 희게 물들일 정도로 강렬해 눈이 반사적으로 찡그려졌다.

─눈뽕!

─마이 아이즈!!

─내 눈!

─아 눈뽕

은우는 손을 들어 눈가에 그늘을 만들었다. 그러곤 달갑지 않은 금빛 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다. 시야가 그나마 원색을 되찾으며 풀과 나무로 가득한 숲을 비추었다.

그가 나온 동굴 주변만 나무가 없어 햇빛이 직격으로 쏟아지는 상태다.

“이 정도면 괜찮네요, 그래픽.”

─ㅇㅈ 갠춘한듯

─솔찌기 엑헌에 옾월 에바인거엿지...

─그래픽 이정도면 나름...?

─엪뎈도 오픈월든데 나름 괜찮지 않음?

─쉿

─이방송에서 그 게임은 금지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엿먹은 건 솔직히 그쪽인데ㅋㅋㅋ

배경이 이 정도면 괜찮다 싶다. 은우는 동굴 앞에 경사지도록 쌓인 돌덩이들을 밟고 내려왔다. 샤를로테가 뒤나 옆에서 유들유들 따라왔다.

【이 세계에 대해서도 기억이 나지 않겠지?】

“네.”

【세상은 전란에 휩쓸린 상태란다. 십 년 전, 귀네드의 왕이 더베드를 향해 칼을 뽑아 들었고, 그게 아직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지. 그 과정에서 자연은 파괴되고 마물들은 사방에서 범람 중이란다.】

숲길을 거닐며 은우는 샤를로테의 설명을 들었다. 가벼운 세계관 설명이었다.

【본래 너는… 전쟁을 막기 위해 예비된 존재란다. 그렇지만 안 그래도 일이 틀어진 상태에서 네가 기억까지 잃어버렸으니…….】

“예비된 존재라. 용사 같은 거려나요.”

─용사물이엇누

─용자!

─일어나세요 용사여....

─기억 잃는 것부터 뻔하다

【나는 잘 모르겠구나. 솔직히 네가 예비된 길을 따른다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것에 따를 시련과 역경은 너를 괴롭게 할 텐데.】

─올

─무조건 하라고 안 하네

─그나마 좀 양심적이다

─그래봤자 강요할 거잖아ㅋㅋ

“양심적이라…….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기억을 잃은 주인공에게 세계 구원을 떠미는 걸로 시작하는 게임들을 떠올리며 은우는 쓰게 웃었다.

【…그러나 내가 막아섰다가 기억을 되찾기라도 하면 넌 내게 화를 내겠지. 어쩔 수 없네. 일단 마을부터 들르자꾸나. 기억이 떠오를지도 모르는 노릇이니.】

『새로운 임무 획득!

기억을 잃어버린

주변 마을로 가자』

【연기가 올라오는 곳에 마을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단다. 그래도 길 찾기가 어렵다면 그땐 내 이름을 부르렴. 바람의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

“이건 메인 퀘스트인 것 같은데…….”

길 찾기가 어려울 땐 이름을 부르라니. 은우는 시험 삼아 샤를로테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그러자 샤를로테를 이루던 선 하나가 빠져나와 허공에 글자를 새겼다.

『-캐릭터

-일지

-지도

-저장하기

-게임 불러오기

-옵션

-대화 그만하기

-게임 종료』

“아, 샤를로테가 시스템을 담당하네요.”

─ㅋㅋㅋㅋㅋ

─이거 괜찮다

이런 식으로 시스템을 녹여 낸 것, 마음에 든다. 은우는 샤를로테가 준 힌트─연기─를 따라 이동했다.

“으아아악!”

5분도 가지 않은 상태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샤를로테가 어서 가 보자며 그를 채근했다. 아무래도 스토리 진행인 듯하다.

“어서 도망쳐!”

“흐아아아악!”

어느 정도 이동하니 도망치는 이들이 보였다. 그들을 쫓는 건 끽끽거리는 녹색 피부의 작은 괴물들이었다.

【고블린이구나. 약해 보이면 단체로 사냥에 나서는 하급 마물이지. 참, 마물은 아랫세계에서 기어 올라온 저주받은 존재란다. 말린 갈대처럼 억새고 말라비틀어진 구더기의 유충처럼 끔찍하지.】

샤를로테가 그 녀석들을 규정해 주니 매부리코의 녹색 괴물 위로 글씨가 떠올랐다. 고블린. 레벨은 따로 없었다.

그리고 그때, 시야가 부예지며 목소리가 하나 들려왔다.

〚그위디온, 가자.〛

〚잠깐, 당신이 왜 가? 저들과 관련 없는 거 아니었어?〛

〚글쎄. 그대야말로 우리와 관련 없지 않나? 우리가 무엇을 하든 무슨 상관이지?〛

〚그건…….〛

강한 빛을 쐰 것처럼 새하얗게 물든 시야 사이로 두 개의 인영이 어른거렸다. 차디찬 저음과 약간의 당황을 머금은 중음이다.

〚대답할 수 없다면 물러나라.〛

눈과 코가 보이지 않는, 그렇지만 입가만큼은 어스름히 보이는 이가 읊조렸다.

〚그토록 강인한 힘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한 조각의 자비도 베풀 줄도 모르는 자와 이 이상 대화를 나누고 싶진 않다.〛

시야가 또렷해졌다.

『새로운 기억 획득!』

『새로운 임무 획득!

기억의 파편

고블린을 처치하자』

기억을 획득했다는 알림 창과 미션을 알리는 알림 창이 거의 동시에 떠올랐다.

대충 눈에 담을 시간이 흐르면 알림창은 자동으로 쪼그라들며 샤를로테에게로 흡수된다.

【나는 힘 상당수가 소실되어 널 도울 수 없어……. 어쩌면 위험해질지도 몰라. 그래도 나설 거니?】

“선택지도 안 뜨는 걸 보면 행동으로 증명하라는 것 같습니다.”

─아ㅋㅋ가서 해치우라 이말이야

─놀고 먹겠다 선언하는 것봐

─튜토 고블린 처치는 국룰이지

그는 트루 투 핸더, 독일 발음으론 츠바이헨더인 검을 들었다. 염려하는 요람의 통로를 빠져나올 때, 바깥은 위험하단 핑계로 샤를로테가 하나 들고 가라 했던 무기다.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재빠른 시청자에 의해 츠바이헨더로 결정되었다.

끽?

끽끽!

그가 끼어듦으로써 어그로가 튀었나 보다. 고블린 다섯 마리가 그를 바라보았다. 한쪽에는 원 모양의 피통이 3칸 떠오른 상태다.

─다섯마리;;

─어려움은 3마리인가?

─피통 개쪼그매

“뭐, 고블린이잖습니까.”

어떤 게임이든 고블린은 약하기 그지없게 나온다. 숫자가 쉰쯤 되지 않는 이상 잡는 건 어렵지 않다.

끼익!

시작은 다섯 마리 중 두 마리가 크게 점프해서 덮치는 패턴이었다. 한 걸음 정도의 거리를 두고 양쪽에서 교차하며 점프한지라 한 걸음만 비켜서면 피할 수 있다.

그렇지만 피하기만 하면 재미가 없다. 은우는 한 발짝 옆으로 물러나며 검을 휘둘렀다. 1m가 넘는 검신이 고블린의 몸을 갈랐다.

그의 어깨까지 오는 검은 캐릭터 능력상 휘두르는데 별다른 무거움이 없다. 단지 조금 느릴 뿐. 그러나 그 느림조차도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한 채 휘두른다면 전혀 느리지 않게 된다.

이름과 정수리 사이의 공간에 체력 바가 떠올랐다가 각각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손맛은 괜찮네요.”

안타깝달지, 상처가 남거나 피가 흩뿌려지는 이펙트는 없다. 대신 공격에 맞아 튕겨 나가듯 추락하는 것은 모든 공격에 붙는 넉 백 효과다.

야구공을 정타로 때린 듯한 감각이 손에 찌르르 남았다.

끼이익!

동료가 당하자─죽진 않았지만─고블린 하나가 땅을 발로 콩콩 찼다. 두 놈은 포효를 하더니 그대로 다다다 달려왔다.

“난이도를 최대로 높이긴 했는데 딱히 그런 느낌은 안 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님이 넘사인 거라고;;

─킹직히 켄이면 튜토로 오우거쯤은 내줘야;;

─ㅋㅋㅋㅋㅋㅋㅋ

은우는 그중 한 마리를 찌르기로 꽉 눌렀다. 칼날이 머리통을 통과했다가 다시 회수되었다. 머리통을 때려서 그런가, 그건 한 번에 사망했다.

다른 한 마리는 마찬가지로 발만 살짝 움직여 피했다.

끼이익!

땅을 콱콱 밟던 고블린과 피가 절반이 된 고블린들이 연이어 그에게 달려들었다. 점프 둘, 돌진 하나다.

“고블린은 점프 패턴과 돌진 패턴이 다인 것 같습니다.”

은우는 제자리에서 발만 살짝살짝 트는 식으로 녀석들을 상대했다. 거대한 검신은 허공을 유영하는 속도가 느릴지언정 리치가 길어 녀석들을 베어 넘기기 쉽다.

순식간에 고블린 다섯 마리가 떨어져 나갔다. 마물들은 약간의 돈과 손톱 따위의 잡템을 내놓았다.

“가,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고블린에게 쫓기던 두 사람이 절을 하며 감읍했다. 은우는 그걸 보며 츠바이헨더를 패용했다. ‘패용한다’ 생각하면 손에서 검이 사라지고 자동으로 등에 장착된다.

『❂ 적응도 상승!』

그때, 발밑에 태양을 형상화한 듯한 원형 무늬가 크게 그려지며 빛을 번쩍 흘렸다. 동시에 알림 창으로도 소식을 전달했는데, 샤를로테가 그걸 보고 박수를 짝짝 쳤다.

【기억을 잃어도 참 한결같구나. 그보다 몸은 좀 어떠니? 적응됐니?】

그건 제법 묘한 문장이다. 선천적으로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는 시점에서 ‘적응됐니?’라는 말을 들을 이유가 없으므로.

은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네 육신에는 많은 재능이 잠재되어 있단다. 육체에 적응할수록 그 재능들을 쓸 수 있을 거야.】

샤를로테는 그의 정면에 서서 손을 느리게 교차하듯 휘저었다. 그녀의 팔짓을 따라 흰 선이 모여들며 어떤 그림을 만들어 냈다.

마인드맵처럼 중심으로부터 여러 갈래로 나뉜 그림이었다. 굉장히 거대했거니와 그 종류가 2개였다.

【어떤 재능을 먼저 깨울지는 네 선택이란다. 그렇지만 너무 망설일 필요도 없어. 네 가능성은 무한하니까.】

“재능이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노가다겜

─2회차에서 이어갈 수 잇어서 다행이지ㅋㅋ

전투 재능으로는 근접 전투, 방패, 편, 격투, 궁, 마법. 이렇게 6가지가 존재했다. 더 놀라운 건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생활 재능이 있다는 점이었다. 여행, 사냥, 무역, 야장, 연금, 재단까지. 이쪽도 6가지였다.

“그나마 재능 포인트를 따로 받네요.”

은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마법을 골랐다. 이유는 별것 없었다.

“근접 전투야 스킬 찍어 봤자 쓸 일 없을 거 아닙니까. 제가 움직이는 게 더 효율적인데.”

그렇다고 재능은 아예 안 찍을 수도 없다. 마법의 경우 안 찍으면 사용이 안 됐고, 격투 스킬 중에는 발로 대미지를 입히게 해 주는 것도 있었다. 생활 재능은 말할 것도 없다.

─아ㅋㅋㅋ킹받네

─자연스럽게 자-랑

─이게 바로 격의 차이다

─이거 스킬 따라서 스텟 달라져용

“아… 스탯도 있었군요. 스태미나도 찍는 스킬에 따라 달리 올라갑니까?”

─ㅇㅇ 스텟 찍지는 못함

─스킬 찍으면 관련 스텟이 올라가는 시스템

「‘야이야이’ 님이 ‘1,000원’ 투척!

스태미너랑 체력은 레벨업때마다 최대치가 조금씩 늘어요」

체력은 필요 없고 스태미나는 알아서 올라간다니 다행이다.

다만 스탯이 따로 있을 줄은 몰랐다. 은우의 눈이 두 번 깜빡였다.

“그럼 혹시 능력치에 따라 신체 능력이 달라집니까?”

─ㄴㄴ

─그건 아님

─걍 공방에만 관여하는 느낌

─안 달라집니다

“그럼 됐습니다. 공격이야 안 맞고 더 때리면 되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스탯이 있든 없든 실질적인 속도나 힘에 관여하는 거 아니면 쓸모없다. 대미지가 낮다면 그만큼 더 때리면 될 일이다. 슬슬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사람들 참 매번 이런다.

【네가 개화한 재능에 맞춰 네 육체도 변할 거란다. 한 가지 재능에만 몰두하는 것도 좋지만, 다양한 재능을 개방해 보는 것도 좋겠지.】

시청자가 앞서서 알려 준 사실을 샤를로테가 뒤이어 설명해 주었다. 이미 들은 말이지만, 한 번 더 들어서 나쁠 건 없다.

은우는 샤를로테의 말이 끝나고 나서야 인간 두 명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중 하나에겐 주황색으로 느낌표가 떠올라 있다.

바닥에 그려진 주황색 원은 그 안에 들어설 경우 퀘스트를 수주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그 안으로 냉큼 발을 넣었다. 금을 밟기만 해도 인정이 되는지라 어렵지 않게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 목숨을 부지했군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어쩌다 쫓기게 된 거야?”』

“어쩌다 쫓기게 됐습니까.”

어느 쪽이든 똑같이 전개가 될 듯하지만, 이왕 고르는 거 정보를 좀 더 얻을 수 있는 쪽으로 택했다. 이름 모를 NPC의 표정이 슬픔으로 물들었다.

“귀네드의 군이 우리 마을까지 마수를 뻗고 말았습니다. 녀석들은 마을을 불태우고 먹을거리와 패물을 죄다 가져가고 있어요.”

“성인 남자는 죄다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것을 피해 도망치다 그만…….”

NPC는 도망치다 헤어져 버린 아내와 아이들이 걱정된다며 꺽꺽 울었다. 그 상태에서 주어진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제가 그들을 찾아보겠습니다.”

구원자라 적고 호구라 부르는 이야기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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