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은우는 경찰청에서 다량의 총과 탄약을 얻었다. 자원을 이유 없이 퍼 주지 않는 게임 특성상 곧 전투가 있으리란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리고 ‘밤 넘기기’를 택하자 컷신이 시작됐다.
“저, 저희가 불침번 설게요. 좀 주무세요.”
“하, 피로에 찌든 얼굴로 잘도 말하네. 닥치고 자빠져 자기나 해.”
마을까지 걸어오느라 쌓인 피로는 두 아이의 눈을 가물가물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노아 또한 마찬가지였으나, 그는 어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견뎌 냈다.
“뭐 해, 어서 안 자고.”
“잠이 안 와요…….”
“지랄.”
사라는 곧바로 곯아떨어졌지만, 시안은 쉽게 눈을 감지 않았다. 그것을 보며 노아는 코웃음을 쳤다. 강제로 재울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무시하기로 한 거다.
그는 대신 경찰청 한곳에 놓여 있던 피 묻은 기타를 들어 올렸다. 약간의 조율 끝에 기타가 그럭저럭 괜찮은 소리를 내었다.
“기타 칠 줄 알아요?”
“그래.”
시안은 소심하게 물어 왔다. 노아는 그런 소년을 보지도 않은 채 현을 튕겼다. 손가락으로 여섯 개의 현을 눌러 음정을 고르는 솜씨가 숙련된 자의 그것이었다.
“빌어 처먹을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이걸로 밥 먹고 살려 했으니까.”
“진짜요? 가수였어요?”
소극적이던 소년은 몸을 벌떡 일으키며 물어 왔다. 노아 대할 때 어려움이 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호기심이 그 어려움을 뛰어넘는 모양이다.
“아니.”
“그걸로 밥 먹고 살았다면서요.”
“염병, 살려 했댔지 살았댔냐?”
노아는 까칠한 어투로 말을 톡 쏘곤 슬그머니 말을 덧붙였다. 본래도 어투가 사나울 뿐 친절했지만, 지금은 유독 너른 느낌이었다.
기타를 보는 눈이 어쩐지 다정하다.
“뭐, 모르는 일이지. X-factor 참가에 성공했다면 이걸로 밥 먹고 살았을지.”
“X-factor!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 경연 프로그램 맞죠? 시즌 3 이후로 안 나와서 엄청 실망했었는데!”
“그래. 세상이 이 꼴 나서 강제로 취소됐다만.”
“세상에, 거기에 참가할 정도면 노래에 자신 있다는 거잖아요! 헉, 그럼 꿈이 가수였던 거예요?”
강제 침묵 상태이던 은우의 눈이 껌뻑였다. 꿈이라. 어쩐지 현실감 없는 단어였다.
“노래 한 번만 들려주면 안 돼요?”
“미쳤냐? 감염자들 죄다 끌어오게?”
“제발요. 콘서트 한 번 가 보는 게 꿈이었단 말이에요.”
“콘서트는 무슨…….”
그사이 시안은 열심히 노아를 졸랐다. 패배한 건 아이가 아닌 어른이었다.
“딱 한 번만이야.”
“좋아요.”
노아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자세를 단단히 잡았다. 은우의 얼굴을 빌린 상태에서도 그의 표정에서는 숨길 수 없는 즐거움이 흘러나온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할 때 인간이 어쩔 수 없이 드러내고 마는 기쁨이었다. 은우의 가슴 어드메가 묵직해졌다.
“아이, 씨… 쑥스럽게.”
노아는 큼큼, 목을 작게 풀었다. 감염자가 몰려올 수 있으니 노래 못 부르겠다는 핑계는 마냥 핑계만이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다.
“I sat alone in the cold. In my room that night. My face was red with the tears.”
대체할 수 있는 노래가 없어서 그런가, 노래만큼은 원어로 흘러나왔다. 시청자들의 말에 의하면 가수 Cimorelli의 Alive였다. 배경이 2010년대 말인 만큼 그 시대 때 노래를 쓴 모양이다.
작게 불러도 되는, 잔잔한 노래가 기타 소리와 함께 방을 은은히 울렸다.
“I'm alive. I'm alive. I'm alive. I'm alive. I'm alive. I'm aliveeee. I'm aliveeeeeeee.”
갑작스러운 만큼 초라한 무대였지만, 감염자의 눈치를 보느라 속삭이는 듯한 성량이었지만, 그것은 시안을 비롯해 은우와 시청자의 마음까지 썩 괜찮게 흔들었다.
─괜찮은데?
─목소리 개좋다,,,
─켄은 저거 못하지?
─개자식앜ㅋㅋㅋ
─너어는 지인짜 나빴다;;;
약간의 놀림을 동반하긴 했지만.
“될 것 같아요.”
“뭐가.”
“우승자.”
“세상이 개판됐는데 뭔 우승자…….”
“그러지 말고요.”
“됐고, 잠이나 자라.”
“치.”
밤이 저물어 갔다.
▣ 169. 가수가 꿈이라고
안타깝게도 밤의 평안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감염자들이 대거 몰려든 것이다.
시청자나 은우에겐 그 시간이 스킵되었기에 더욱 평온이 짧게 느껴졌다.
“시발, 잠도 못 자고 개지랄이군!”
아이들까지 깨운 노아는 부서지는 바리케이드를 실시간으로 보수하고 다가오는 감염자들을 향해 총을 쏘는 등 밤새 디펜스전을 벌였다. 자지 못해 쌓인 피로는 간당간당한 목숨줄 앞에서 날아갔다.
“빌어먹을. 감염자들이 습격을 하다니, 어떻게 돼 가는 거야?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렇게 동이 틀 무렵, 겨우 디펜스에 성공했다.
노아는 마지막으로 출현한 변종 감염자의 머리를 쇠파이프로 내려치며 외쳤다. 특정 인물에게 화내는 것이 아니라 겪어 보지 못한 현상에 분노를 토로하는 것이었다.
다만 그 외침이 자신들에게 향하는 것이 아닌 걸 앎에도 남매는 몸을 움찔거렸다. 딱 봐도 무언갈 아는 모양새였다. 노아가 그걸 보지 못한 게 문제지.
“…재수가 없으려니. 조금만 쉬고 바로 출발한다. 또 습격이 오면 못 버텨.”
매사 철저한 노아라지만 설마 특정 조직이 저 두 남매를 노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 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 부분은 시청자나 플레이어같이 제3자의 입장에서 봐야 잘 보일 터였다. 경험으로 각인된 편견도 있겠고, 당사자일 땐 시야가 좁아지기 마련이니까. 플레이어만 알 수 있는 메타적 요소도 있고 말이다.
“이러다 보스턴까지 따라가게 생겼군. 제기랄.”
투덜대는 노아를 뒤로하고 체감상 2막이 끝났다.
짤막하게 이어진 시간 스킵용 영상은 그들 세 사람이 다음 도시로 넘어가기 위해 자동차를 수배하려는 걸 보여 준다.
“P.C가 이 감염 사태의 원인이겠죠? 감염자까지 부릴 수 있는 걸 보면.”
그동안 은우는 숨겨진 진실에 대해 추측성 발언을 했다. 노아와 달리 이 상황에 대해 제3자의 시점으로 볼 수 있는지라 별로 어렵지도 않았다.
─피씨는 또 머임
─컴퓨터?
─게일이 스쳐지나가듯 말햇음
─설마 컴퓨터겟냐 멍청아
─그렇지 않을까요?
“헌터가 은신처까지 왔을 때 게일이 언급했잖습니까.”
설마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를 말할 리는 없으니, 어떤 단체의 약어일 확률이 높다.
더구나 게임 제목도 하필이면 BioTerrorism이 아닌가. 영어를 잘 모르는 은우라도 바이오테러리즘이 뭔지 안다. 생화학 테러. 아무리 봐도 P.C가 이 감염 사태를 만든 게 분명하다.
은우는 검지로 턱과 뺨 사이, 각진 부분을 톡톡 두드렸다.
이런 메타적 요소가 아니더라도 힌트는 많다.
일단 혼자 살 땐 변종을 본 적도 없는 노아가 저 남매와 함께하고부턴 빈번히 부딪치고 있다. 자연 발생으로 변종이 탄생했다 하기엔 경로상에 부딪친 변종의 숫자가 너무 많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수상하다.
거기에 오늘 일은 또 어떤가? 있을 리 없는 일이라고, 이 사태를 오랫동안 겪어 왔을 캐릭터가 단정 지었다.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란 소리다.
결국 조직에서 남매를 죽이기 위해 변종과 감염자를 조종했다는 설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다만 이 경우 의문인 것은, ‘왜 남매를 노리는가’랑 ‘변종을 어째서 띄엄띄엄 보내는가’ 정도? 또 헌터 같이 약한 변종만 보내는지도 의아하다.
게임사야 나름 레벨 디자인을 한 거겠지만, 세계관상으로는 앞뒤가 안 맞다. ‘게임이니까 넘어가.’라고 하면 또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은우는 주인공 보정과 그의 피지컬이 합쳐져서 헌터가 쉬운 것뿐, 실제론 어지간한 특수부대원조차 쩔쩔맬 존재라는 걸 까먹은 채 판단했다. 제작진이 알면 통탄할 사정이었다.
“아니면 앞으로 더 강한 특수종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레벨 업이 있는 시스템은 아니지만, 계속 이렇게 잔챙이만 보내서야 재미가 없다. 보스다운 것이 올지도 모른다.
은우의 추측에 시청자들이 ‘ㄹㅇㅋㅋ’를 쳤다. 그의 가설이 더욱 신빙성을 가지게 되는 순간이었다. 저 사람들은 자기들 재밌을 것 같으면 정보를 안 준다.
“나온다면 아마… 곧 나오겠네요.”
─어케 암??
─게이머의 직감인가
─나올때 되긴 햇지
─ㅇㅈ 곧 나올듯
“대충 3챕터 아닙니까, 지금이. 사건 두 개를 부분적이나마 평화롭게 넘긴 이상 중간 보스전 비슷한 게 나올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합당한 논리로 합리적인 추론을 펼쳤다. 스트리머 일을 시작하기 전만 해도 게임 한 번 손대 본 적 없었건만, 이제는 섭렵했던 게임들을 바탕으로 전개를 예측할 수준이 되었다.
은우는 차량을 찾기 위해 경찰청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부분 기름도 없고 기계에 문제가 생겨 작동이 안 됐지만, 그래도 하나 정도 멀쩡한 건 있었다.
『조금만 손보면 어떻게 굴러가긴 하겠군. 다만 기름이 부족해. 어젯밤에 감염자들을 대거 처리한 만큼 이 근방엔 녀석들이 얼마 없겠지. 기름을 좀 보충해서 가는 게 좋겠어.』
『목표│기름 찾기』
“아… 기름이 부족한 건가요?”
대사도 없었건만, 눈치 좋은 사라는 찰떡같이 알아챘다.
“이걸 쓰세요.”
소녀는 제 동생을 등 뒤에 꼭 붙인 채 어디서 기름통을 구해 왔다. 안에 기름은 없었지만, 기름을 구하거든 저기에 담아 옮길 수 있을 터였다.
“나눠서 찾는 건 어떨까요? 그게 더 효율적일 것 같아요.”
가져온 기름통은 여러 개였기에 남매는 갈라져서 찾기를 제시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삼촌의 죽음에 주눅 들어 있었는데, 목숨 걸고 디펜스 한번 하고 나니 많이 잊힌 모양이다.
“저희는 저쪽으로 갈게요.”
“다녀오겠습니다!”
별개로 두 사람은 뭐라 말할 타이밍도 주지 않았다. 먼저 방향을 지정해 출발해 버리는 바람에 그의 수색 장소는 그 반대쪽으로 강제 확정 된 것이다.
“수색할 구간이 줄어들었네요. 나쁘지 않습니다.”
은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남매가 향한 쪽 반대 도로를 훑었다. 중간중간 감염자들이 있었지만, 머리를 부수면 조용해졌다.
남매가 좀 걱정되긴 했지만, 저들이 먼저 나선 만큼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으리라.
“기름 찾다가 아이템 파밍을 더 많이 하네요.”
─ㅋㅋㅋㅋㅋㅋ
─아 자원퍼주는 것 보니까 딱 각이네
─ㄹㅇㅋㅋ만 쳐!
─어우 탄약 넘치는 것봐
─약을 준다? = 맞을 일이 있다
은우는 이상할 정도로 많이 나오는 자원을 보며 눈썹을 들었다. 자원 많이 나오는 거야 좋은 일이지만, 탄약 비중이 너무 높다. 거기에 천과 알코올도 은근 비중이 높다.
천으로는 붕대, 천과 알코올을 조합하면 화염병이 나오는 걸 고려했을 때, 단순히 ‘자원 많이 나온다’라고 넘어갈 게 아니었다.
“전투가 있을 것 같은데.”
그는 가장 먼저 장비부터 점검했다. 엽총과 매그넘 권총 각각 한 정. 근접 무기로는 망치, 서바이벌 나이프가 있고 투척 무기로는 수류탄 두 알과 섬광탄 하나, 제작한 화염병 세 개가 있다.
대부분 경찰청에서 새로 얻은 무기들이었다.
“헌터 여러 마리 나오는 식만 아니면 좋겠습니다.”
─아ㅋㅋㅋㅋ
─다굴은 못참지ㅋㅋ
─다구리는 진리 아님?
─풀 장전 가즈아
은우는 그가 가진 총 전부를 풀 장전 했다. 그리고 누가 봐도 보스전이 열릴 것 같은 커다란 공터에 들어섰다. 이 마을 사람들은 아마 광장으로 썼을 것 같은, 자동차로 외곽 부분이 묘하게 막힌 공터였다.
한가운데 세워진 동상이 시체들 사이에서 팔을 뻗고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의 손이 산탄총을 거머쥐고, 조심스럽게 그 가운데에 들어섰다. 대충 동상과 가까워질 때쯤이야 그의 다리가 굳었다.
긴장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컷신과 컷신 아닌 것 사이에 걸쳐진 장면이라 시스템이 움직임을 제한했을 뿐이다.
쿵, 쿵, 쿵!
그리고, 그가 들어온 길 쪽에서 무언가가 걸어왔다. 팬저보다 작지만, 그것만큼 우람한 괴물이었다.
가죽이 벗겨진 건지 녹아내린 건지, 표피는 근육 섬유처럼 결이 보였다. 대신 살짝 녹은 지방처럼 찐득찐득한 윤기가 흘렀다. 얼룩덜룩하게 붉은 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심지어 일부 관절에는 뼈가 기이한 형태로 돌출되기까지. 제법 뽑고 싶게 생겼다.
크아아아아!
그 괴물이 침인지 피인지 가래인지 모를 액체를 튀기며 포효했다. 은우의 뺨에 투둑투둑 튀었다.
─ㅗㅜㅑ;;;
─개징그러워
─어우ㄷㄷㄷ
─무친
─오우쉣
─구아아아악
사람들이 기함하는 사이 은우는 샷건을 괴물에게 겨누었다. 그리고 녀석이 입을 벌리며 달려들 때, 그 입안으로 탄환을 쑤셔 넣었다. 녀석이 파드득 몸을 떨며 뒷걸음질 쳤다.
은우는 그사이에 손을 허리춤으로 내렸다. 화염병 하나가 단단히 잡혔다.
크아아아!
괴물이 다시 한번 그에게 돌진하려 들었다. 은우는 야구공 던지듯 화염병을 던지며 옆으로 굴렀다.
쨍강!
괴물은 아마 우람한 팔과 날카로운 뼈들로 그를 단칼에 가르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괴물의 입에서 화염병이 깨지며 불꽃을 일으키는 것이다.
괴물의 입에서부터 불꽃이 일더니 곧 몸 전체로 영역을 확장시켰다. 피하지방층이 완전히 드러난 몸이라 입 부근에만 알코올에 젖었음에도 불이 옮겨붙은 모양이다.
─잘 탄다아
─활활 타네
─지방이 드러나서 더 잘 타는 듯
─고통을 안 느끼나봄ㄷㄷ
은우는 그 상태에서 샷건을 계속 격발했다. 탄환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화약을 조합해서 공수할 수도 있었고, 왜인진 모르지만 외곽의 자동차 안에도 탄약이 놓여 있었다.
기실 그것마저 쓸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가방은 탄약이 가득한 상태지만.
“이건 뭐.”
초반 달려들 때의 움직임은 꽤 빠르다 싶었지만, 캐릭터 신체 능력을 고려해서 그런가. 충분히 피할 만하다.
심지어 넘쳐나는 자원과 녀석의 단순한 패턴은 순식간에 공략법을 찾아내도록 만들었다.
은우는 간발의 차로 피한 덕에 코앞에 있는 머리를 향해 산탄총 방아쇠를 당겼다. 괴물이 머리를 멀리 떨어트리고, 그는 그 상태에서 뒷걸음질을 치며 샷건을 장전했다. 탄피가 튕겨져 나가는 게 잘 보였다.
“간단하네요.”
─간,,,단,,,,?
─너무 가까워 형
─이쯤되면 감염자가 아닌데요;;
─캬 에임 지렸다 진짜
탕!
헤드 샷이 2연으로 들어가자 괴물이 거대한 손을 내려쳤다. 은우는 뒤로 구르며 총구를 다시 겨눴다. 탕! 3연 헤드 샷이었다.
그로기 상태에 빠졌는지 괴물이 잠시 엎어졌다. 은우가 워낙 밀접한 채로 싸웠다 보니 두 걸음만 성큼 걸으면 머리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로기 굳이 안 줘도 되는데…….”
은우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괴물에게 태연히 접근했다.
그러곤 수류탄의 두 개를 한 손에 쥐고 핀셋을 동시에 뽑았다.
“이왕 받은 거, 선물을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괴물의 입에 수류탄을 그대로 쑤셔 박은 뒤, 뒤로 물러났다. 두 번 구르니 쾅! 하고 폭음이 울려 퍼졌다.
─ㅋㅋㅋㅋㅋㅋㅋ
─ㅎㅊㅇㄴ?
─수류탄 꺼-억
─???: 넣을게?
그로기 시간이 끝났는지, 아니면 충격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괴물은 지뢰 밟은 것처럼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폭발이 일어난 것도 완벽했다. 선후가 바뀌긴 했어도.
탕!
그 틈을 놓쳐서야 쓰나. 은우는 엽총으로 녀석을 계속 사격했다. 불이 꺼졌길래 화염병도 친절하게 먹여 주었다.
괴물이 포효와 함께 빠른 속도로 내달리기 시작했지만, 그것 또한 한정된 공간이라서 별 소용 없다.
기껏해 봐야 녀석은 원형 공터를 뱅글뱅글 따라 도는 게 다이고, 그 정도는 얼마든지 맞출 수 있으니까.
─아아... 플레이어가 도망 못간다? 이곳은...보스가 도망 못간다....
─2페이즈 나오지 말지,,,그냥 죽지,,,,
─깔끔하게 죽었음 행복했을 텐데;;
「‘괴물’ 님이 ‘1,000원’ 투척!
모에요! 보내줘요!」
─켄에게 걸린 이상 어림도 없다 이거야!
─못 지나간다!
결국 괴물은 등장한 순간의 임팩트가 허무해질 정도로 한낱 우스갯거리에 불과해졌다. 죽음을 맞이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썅! 엉덩이를 쪼개 버려도 시원찮을 놈이 날 엿 먹이네!”
컷신 속 노아가 욕설과 함께 불타는 괴물의 시체를 발로 찼다. 그러면서도 안심이 안 되는지 머리를 쇠파이프로 마구 내려쳤다.
“저기! 이상한 괴물이 돌아다니고 있어요! 당장 도망쳐야……!”
“괴물이… 괴물이 오고 있……!”
그때, 괴물이 열어 버린 길 사이로 남매가 후다닥 달려왔다. 괴물을 목격하자마자 달려온 듯 그들 이마와 등은 땀범벅이다.
“하는, 데…….”
“뭐, 시발. 이거?”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이네요……?”
“괴물이 죽었어…….”
남매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노아와 괴물의 시체를 번갈아 보았다.
“…사실 정부 특수 요원이셨나요?”
“아빠…가 아니라, 가, 가수가 꿈이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뭔 개소리야.”
개고생한 일반인은 화풀이 삼아 망가진 쇠파이프나 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