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산탄총 3정과 권총 4정뿐인 인간 4명이 팬저를 상대하는 건 미친 짓이었다. 게일의 말로는 그랬다.
그러나 저것은 이미 그들을 목표로 오는 중이었다. 미친 짓도 해야 할 판인 것이다.
“헌터를 따라왔나 봐요…….”
“빌어먹을, P.C……!”
─그럼 완전 얘네 탓이네
─ㅇㅈ
─대민폐
─주인공은 뭔죄임ㅋㅋㅋ
시청자들의 말마따나 불청객들이 재앙을 계속해서 불러왔다. P.C가 뭔진 모르겠지만─예상 가는 건 있다─걔네가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던 것 같고.
주인공까지 휘말리게 만든 건 고의가 아닌 모양이지만 말이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은신처를 버려야 한다. 저 괴물이 연립주택에 부딪힌다면 박살 나는 건 한순간일 것 같으니까. 마침 은신처를 버려야 할 때를 대비해 구해 둔 차량이 있다. 설마 타의로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죽는 것보단 낫다. 시간이 없다. 어서 가자. 옥상에 마련해 둔 로프를 타고 내려가면 금방이다.』
분노와 원망을 첫 줄에 짤막하게 토해 냈던 주인공은 마지막 줄에서 퇴로를 알려 주었다. 심지어 쓸 만한 차량 한 대도 알고 있는 모양이다. 게일이 물어봤을 땐 모른다고 말했던 주제에.
하기야, 만일을 위해 준비해 둔 보험이었을 테니 불청객에게 알려 주긴 싫었을 것이다.
“이 순간에도 다가오는 걸 보면 아무래도 타임 어택인 모양인데, 옥상으로 빠르게 갑시다.”
안에서 챙겨 올 수 있는 모든 아이템을 챙겨 와서 다행이다. 은우는 서둘러 헌터가 뛰쳐나왔던 방으로 들어갔다. 옥상으로 가려면 피난 계단을 이용해야 하는 탓이다.
“잠깐, 어디 가세요?”
“이봐요.”
세 사람이 뒤에서 은우를 불렀다. 그렇지만 재앙을 끌고 온 자들에게 대답해 줄 이유가 있을까? 은우는 그냥 달렸고, 세 사람은 고민하다가 그를 따라왔다.
─어휴 짐덩이들
─이걸 또 따라오네;;
─아조씨 왜 따라와여
“뭐, 가만히 있으면 죽는 상황 아닙니까. 이 지역에 그나마 빠삭할 사람을 따라가는 건 당연한 거겠죠.”
피난 계단은 엄밀히 따지자면 그들이 있는 5층을 최상층이다. 그렇지만 은우는 계단참에 박스가 여럿 쌓여 있던 걸 보았다. 그 박스들을 밟으면 ㅅ자로 지어진 주택의 지붕도 밟을 수 있을 터였다.
쿵! 쿵!
팬저 녀석은 느리지만 꾸준한 걸음걸이로 주택 지근거리까지 도달한 상태다.
“무슨 방법이 있나요?”
“시안, 어서 올라가라!”
사라가 도도도 따라오고, 게일과 시안도 늦지 않게 따라왔다. 경사가 진 상태라 다들 달리기보단 경보에 그치고 있다.
그리고 그 지붕을 절반쯤 가로질렀을 때, 거대한 폭음과 함께 주택이 흔들렸다. 은우는 미끄러지지 않게 발에 균형을 맞추고 손으로 지붕 위쪽을 짚었다.
“괜찮니?”
“난 괜찮아. 삼촌이랑 시안은?”
“우리도 괜찮다!”
안타깝게도, 삼인방 역시 멀쩡했다. 그들이 잘못한 걸 꼽으라면 사실 없지만, 그들의 존재 자체가 불러온 일이 일인지라 조금 눈꼴시다. 적어도 시청자들은 그런 모양이다.
“뭐, 저들이 원해서 저지른 짓은 아니잖습니까.”
반면 은우는 저 세 사람을 크게 책망하지 않았다. 이건 그냥 주인공이 재수 없던 거다. 저들을 탓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렇다고 친절해질 생각은 없지만.
“그보다 밧줄 타기에 이어 짚와이어를 완강기 없이 하게 생겼네요.”
─ㅋㅋㅋㅋㅋㅋ
─안전장치 없는 짚라인 ㅗㅜㅑ;;
─짚라인 대유잼인데
─ㅇㅈ
은우는 주택 지붕 끄트머리에 묶인 와이어를 보곤 떠오른 상호작용 창을 꾹 눌렀다.
몸이 순간 자동으로 움직이며 품에서 끈을 꺼냈다. 양쪽에 손을 집어넣을 수 있는 둥근 고리가 있고, 마찰할 부위에는 가죽이 덧대진 끈이었다.
짚와이어, 또는 짚라인이라 부르는 그것에 최적화된 형태다.
“갑니다!”
─우아ㅏㅏㅏㅏ
─으ㅏ아아아아ㅏㅏㅏ
─와
와이어가 연결된 곳은 맞은편 2층짜리 건물 옥상이니.
지이이이이-!
끈을 걸고 냉큼 뛰어내리자 끈과 와이어가 마찰하는 소리가 나며 그의 몸이 쭈욱 미끄러졌다.
▣ 168. 있는데 안 나올 리 없다
“이대론 도망칠 수 없어!”
“어떻게든 녀석의 시선을 끌어야 해…….”
은우는 플레이어의 개입 없이 옥신각신 전개를 설명해 주는 캐릭터들을 보았다.
플레이어를 너무 배제한 채 대화한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컷신이 끔찍할 정도로 많은 것보단 낫다. 그렇게 말해도 지금은 컷신이지만.
“내가 미끼가 되겠다.”
그리고 게일이 나섰다. 그는 주인공이 혹시 몰라 준비해 둔 또 다른 보험─이 대목에서 시청자들은 주인공의 치밀함에 혀를 내둘렀다─, 바이크를 두드렸다. 은우와 거의 맞먹는 키로 그러니 위압감이 제법이다.
“내가 바이크를 타고 녀석들의 이목을 끌며 반대쪽으로 도망치겠어. 너희는 저것들이 멀어지면 서둘러 도망가라.”
“삼촌!”
“위험해요!”
“그럼? 이대로 버틸 순 없어!”
현재 상태는 하나뿐인 탈출로가 감염자들에게 점거된 상태이니. 차가 통과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인데, 하필이면 팬저가 그곳을 틀어막은 것이다.
심지어 그 주위를 배회하는 수준도 아니었다. 팬저는 움직임을 아예 정지한 채 길을 도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녀석은 그곳에서 몇 달이고 버틸 수 있지만, 우린 아니란 걸 알잖니!”
게일의 설명에 따르면 특수종의 경우 열량 소모를 아끼기 위해 수면 상태에 들 때가 있단다. 특히 덩치가 큰 팬저의 경우 자주.
저 상태에서 외부 자극, 요컨대 소음 같은 게 느껴지면 다시 활동 상태가 된다 한다. 먹잇감이 있을 때만 움직이는 셈이었다.
“나쁜 계획은 아니야. 바이크 정도의 속도면 녀석들을 피할 수 있을 테니까.”
그즈음, 한 걸음 물러나 있던 주인공이 나섰다.
“그렇지만 기름이 부족해. 네가 저 녀석들을 따돌릴 정도로 받으려면 이쪽 탈출이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물론 도시를 이 잡듯 헤집어 보면 기름을 더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깥엔 감염자 떼가 잔뜩이다.
감염자 자체야 하나하나 해치울 수 있다 해도, 자칫해서 팬저가 깨어나면 재앙이다. 섣부르게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셈이다.
“많이 줄 필요 없어.”
“…삼촌, 설마?”
시안은 이해하지 못한 눈치지만, 사라는 단박에 알아들었다. 주인공도 마찬가지였다.
“미쳤어! 설마, 죽을 셈이에요?”
“이것밖엔 방법이 없어!”
이러다 감염자들 다 몰려오겠네. 은우는 높아지는 언성을 보며 다분히 그런 생각을 했다. 저들의 절절함이 와닿지 않는 건 아니었다. 단지 저런 것에 익숙할 뿐이었다.
“후, 얘들아.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난… 이 사태로 내 아이를 잃었어. 그 아이를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
불쌍하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
“그렇지만 지금은 달라. 그때와 달라. 나는 너희를 구할 수 있다. 너희를, 내가 구할 수 있어.”
타인의 불행은 그의 목숨이나 안위가 걸려 있을 땐 아무런 공감도 살 수 없다.
“이제부턴 너희들끼리 살아가야 한다. 힘들겠지만 절대 지지 마라. 너희만이 희망이야. 기억하지? 나랑 약속한 거.”
“…삼, 촌.”
“기억, 해요.”
아이들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결국 게일의 설득에 납득했다. 게일의 고개가 주인공 쪽으로 돌아왔다.
“염치 없는 말이지만… 아이들을 잘 부탁합니다. 적어도 이 도시를 벗어날 때까지만이라도요.”
“…나름 목숨 빚을 졌으니, 그 정돈 해 주지.”
“감사합니다.”
결국 게일은 죽을 걸 알면서도 미끼를 자청했다. 흐린 미소와 함께 바이크를 타고 나가는 뒷모습은 커보이기보단 서글프다. 단 한 발만 채워진 권총이 그 손에 쥐어져 있는 상태이기에 더더욱.
“가자.”
바이크 소리가 멀어지고, 깨어난 팬저의 걸음 소리가 멀어졌을 때 그들은 움직였다. 서럽게 울던 두 남매는 주인공이 재촉하고 나서야 차에 탑승했다.
컷신이 풀렸다.
─저땐 자동운전 없었음?
─없엇음
─ㅠㅠㅠㅠㅠ
─아 민폐엿는데 이러니까 또 눈물나네,,,
─게일 변하는 거 보면 이제 개꿀잼
“다들 감수성이 풍부하…시진 않군요.”
게일이 감염자 되는 거 남매한테 보여 주자는 사람은 어디서 올라온 사탄인가.
은우는 목덜미를 잠깐 매만지다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조금 큰 소리가 나고, 내려 둔 차고 문마저 박살 내며 나가면 거리에 남아 있는 감염자들이 반응을 보인다.
대부분은 바이크에 끌려간 상태라 무시해도 됐다.
쾅!
멋도 모르고 끼어든 감염자들이 차에 치여 튕겨 나갔다.
은우는 액셀을 밟으며 속력을 더욱 올렸다. 멀리서 총성 하나가 아련히 들려왔다. 남매의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ㅠㅠㅠㅠ게바
─게일 죽었누ㅠ
─? 게일 죽었음?
─방금 총성 울렸잖..... 물리기 전에 자살한 거겠지
─ㅇㄴ;;;
일부 시청자들이 이해를 못 한 이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사이, 시야가 잠깐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뭐가 달라졌는지 보면 창밖으로 비치는 배경이 다르다. 아까까지만 해도 동이 터 올랐던 도심이 배경이었는데, 지금은 해가 거의 진 평야인 것이다.
부르르르르… 덜컥.
때마침 차가 멈췄다. 슬쩍 계기판을 보면 연료가 다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물 덩어리 같으니라고. 중간에 들른 도시에서 기름을 채워 줬는데도 이따위군.”
캐릭터는 키를 몇 번 더 돌려 보더니 그대로 핸들을 콱 밀었다.
“내려. 이제부턴 걸어가야 해.”
“…네.”
그는 조수석에 둔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남매도 우울한 얼굴로 그를 따랐다. 캐릭터가 그걸 보며 한쪽 눈을 씰룩거렸다. 입술과 광대근이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간다.
“내 이름은 노아 존슨이다.”
“……?”
“또, 미리 말해 두겠지만, 난 너희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아. 네놈들만 오지 않았어도 나는 그곳에서 잘 살았을 거니까.”
틱틱거리는 말투는 보통 체구만 됐어도 심기 불편 정도로 넘어갈 수 있을 터였다. 그렇지만 커다란 덩치는 그 말투를 말 그대로 위협으로 바꾸었다. 시청자들이 그를 골려 먹기 좋은 포인트였다.
“그럼에도 너희를 데려가는 이유는 딱 하나야. 누구누구들로 인해 은신처를 날려 먹은 지금, 혼자보단 여럿이 생존에 유리하니까.”
─애한테도 비정한 남자;;
─켄 인성 수듄ㄷㄷ
─삼촌 잃은 애들한테 넘하네
컷신만 아니었어도 반박했을 텐데, 아쉽게도 은우는 강제 침묵 상태였다.
“몸을 맡기기 괜찮은 도시가 나올 때까지만 함께할 거니까, 그다음부턴 너희들끼리 알아서 해. 알았어?”
“…알았어요.”
“…네.”
“애 주제에 죽상도 떨지 마! 애들이 죽을상 하는 게 더 거지 같아. 살았으면 산 걸로 기뻐하라고.”
캐릭터는 거기까지 말한 후, 중얼거리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기껏 지켜 줬더니 죽음에 매몰되면 죽은 사람은 뭐가 되겠냐.”
츤데레란 별명이 너무나 납득되는 순간이었다.
* * *
『날이 늦었다. 물자도 찾고 차량도 찾아야겠지만… 일단 잠자리가 우선이겠지.』
물자 보급 겸 운반 수단 찾을 겸 은신처 찾기─노아 한정으로─를 위해서 그들은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이 작아서 새 보금자리를 만들긴 힘들겠다며 알림 창 속 노아가 투덜거리는 건 덤이다.
“감염자들이 꽤 많네요.”
은우는 오픈된 듯 은근히 길이 정해진 마을을 돌아다니며 잠자리로 쓸 만한 건물을 찾았다. 뭘 하든 간에 일단 시계가 좋지 않은 밤보단 낮이 좋으니 어쩔 수 없다. 여기까지 걸어오느라 체력이 떨어진 것도 한몫했고.
텁.
그르르륵!
감염자는 대부분 수면 상태라서 깨어나기 전에 먼저 죽이는 게 가능했다. 일종의 암살 플레이였다.
물론 총을 쏘면 다 깨어날 것이므로 사살은 근접 무기로만 가능했다. 그마저도 정면이 아닌 뒤를 노려야 했고, 조금만 실수하면 깨어나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역시나 은우에겐 어렵지 않았다. 뒤따라오는 두 꼬맹이가 방해하지 않기에 더더욱 그랬다.
“제가 걸리지 않으면 얘네들은 뭘 해도 안 걸리나 보네요.”
AI의 한계로 시안과 사라가 감염자들 앞을 뛰어다닌 적이 몇 번 있었다. 플레이어의 행동을 적당히 따라 하도록 프로그래밍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발생되는 장면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대놓고 달려도 감염자들은 두 사람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아무래도 플레이어가 발각되지 않으면 그들은 인식 불가로 쳐지는 모양이다.
─쟤네 인식 가능하게 만들면 난이도 미쳐돌아감
─맞아ㅋㅋㅋ 진짜 인공지능 능지 답답해 미쳐,,,
─저건 2050년대가 되도 발전이 없어;;
“하드 모드라서 그렇게 해 둘 줄 알았습니다.”
─미쳣냐구요ㅋㅋㅋ
─그쯤되면 하드모드가 아니라 한국인 난이도일듯
─켄 난이도지ㅋㅋㅋㅋㅋㅋ
─뭐만 하면 걸려서 다 죽이고 가야하는 거 아님?
─ㅇㅈㅋㅋㅋㅋㅋ
은우는 이번에도 감염자 옆을 후다닥 걸어서 튀어온 시안을 보고 시청자들의 채팅을 보았다.
하긴, 플레이어의 은신 여부와 더불어 동료 NPC까지 발각 가능하게 만들면 게임이 너무 어려워지긴 하겠다.
정확히 따진다면 어려워지는 것보다 플레이어 화를 돋우는 쪽이 더 문제겠지만.
AI의 멍청함 때문에 걸리면 난이도고 뭐고 화가 날 테니 말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시안을 따라온─경로가 겹친─감염자의 대가리를 시원하게 후려쳤다. 야구 배트가 망가졌지만, 감염자도 뇌수를 터트리며 죽었다.
근처에 쇠파이프가 떨어져 있는 걸 고려하면 손해는 아닌 교환이었다. 아랫입만 남기고 위쪽은 산산조각 난 감염자의 시신이 바닥에 털썩 엎어졌다.
“계속 갈까요.”
─ㄱㄱㄱ
─으웩 징그러
─시원하게 부수시넹
─가자.
은우는 아이들과 함께 대로를 천천히 걸었다. 곧, 거대한 화물차 두 대와 자동차 몇 대가 추돌해 넘어져 있는 사거리가 나타났다.
화물차의 컨테이너 박스 부분이 약간의 거리를 두고 부등호 꼴(<)로 쓰러져 있고, 다른 자동차들이 화물차를 들이받아 본의 아니게 바리케이드 같은 걸 형성한 상태다.
세 사람이 화물차와 맞닿는 지점의 거리는 그 바리케이드 때문에 감염자가 없었지만, 나머지 거리는 아니었다. 자동차 바리케이드 때문에 넘어오지 못했을 뿐, 사거리의 좌우 거리는 감염자들로 득시글했다.
화물차에 올라서기 위해 먼저 일반 자동차에 올라갔다가 안 사실이다. 감염자들이 죄다 수면 상태라서 다행이었다.
“화물차 위로 걸으면 조용히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문제는 거대한 화물차를 넘어갈 방도가 없단 것이라. 차량을 밟고 화물차 위로 올라서는 건 가능한데, 부등호 꼴로 놓인 컨테이너 박스 사이가 떨어져 있었다. 뛰어넘는다면 얼마든지 넘겠지만, 그랬다간 감염자들이 전부 깨어날 것이다.
─학살좌 등판 각인가
─전원 사살ㄱ?
─소리 내면 다 몰려오겟네
─ㅗㅜㅑ;;;
“자원 아까우니 조용히 갑시다.”
근접 무기에 내구도가 존재하는 이상 다툼은 지양하고 싶다. 은우는 능숙하게 주변을 수색했다. 곧 차량에서 떨어진 듯한 사다리 따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달칵.
그들은 조용히 화물차 위로 철 사다리를 올렸다. 사라와 시안이 먼저 올라가고, 은우는 아래에서 사다리를 드는 형식이었다.
이후 그들은 조용히 컨테이너 박스 사이에 철 사다리를 놓았다. 먼저 건넌 건 상대적으로 가벼운 아이들이다.
“조심해.”
먼저 건너간 사라가 두 번째로 건너는 시안을 걱정스럽게 보았다. 시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조심 철 사다리를 건너갔다.
중간에 살짝 위태롭긴 했지만, 큰 소리 안 내고 건너편에 도달했으니 괜찮다고 본다. 화물차와 자동차들 사이사이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감염자들은 아직 미동이 없다.
“애가 유약하네요.”
─ㅋㅋㅋㅇㅈ
─애니까 뭐....
─누나쪽은 야무진데
─마! 허리 펴라!
적이 등장하면 나름 침착하게 사격도 하고 대응도 하는데, 평소 행실 자체가 유약하다. 시안은 은우로선 살짝 떨떠름한 캐릭터였다.
그는 목덜미를 쓸며 화물차 사이를 건너갔다. 다행히 그도 큰 소리 없이 철 사다리를 넘을 수 있었다.
“다행히 안 걸리고 통과했네.”
“응.”
탁!
그들은 건너편 대로로 건너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만 아이들은 서로에게만 말을 건넬 뿐, 노아에겐 말을 걸지 않았다. 살기 위해 같이 다니게 됐지만, 아직 사이가 어색해서 그런 것 같다.
─어색 그 자체,,,
─켄 왕따 당함?
─켄왕따설
─애들한테 따돌림 당하시는 거임?
“아닙니다.”
은우는 반박하며 앞으로 조용히 나아갔다. 한참에 걸쳐 발견한 곳은 경찰청 비슷한 곳이었다.
무너지긴 했지만, 아직 뼈대가 남아 있는 바리케이드가 하룻밤을 보내기엔 좋아 보였다. 노아는 그곳에 터를 잡았다.
캬악!
밤을 보내기 위한 마지막 작업으로 안에 있는 감염자 처리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감염자가 은우를 발견하고 달려들었다.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이 감염자들이 무는 행위가 포식과 감염을 동시에 목표로 합니까?”
─어,,,,킹세요?
─ㅋㅋㅋ그건 왜 궁금해하는 거임ㅋㅋ
─ㅁㄹ
─뭔 뜻임?
─어휴;; 책 좀 읽어라;;
─물었을 때 먹으면서 감염시키냐 이 말임
“둘이 동시에 이뤄지면 좀 이상하잖습니까. 이성이 거의 없다시피 하긴 하지만…….”
캬아아아악!
“쏴!”
사라와 시안이 다급히 권총을 들었다. 그네들은 난이도에 상관없이 총알이 무한이라서 쏘든 말든 신경 쓸 필요 없다.
물론 그 소리에 의해 다른 이들이 끌려올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얘네밖에 없어서 괜찮다.
“먹고 있는데 감염이 될 경우, 우리 입장에서 보면 먹고 있던 고기가 갑자기 인간으로 변하는 느낌일 거 아닙니까.”
뒤에서 소년 소녀가 총을 쏘든 말든, 은우는 그 나름대로 싸웠다. 쇠파이프가 다가오던 감염자의 머리를 깨트리고, 두 번째 감염자는 상체를 낮춘 채 발을 잡고 뒤로 넘어트린 것이다.
콰직!
워커의 굽이 넘어진 감염자의 두개골을 으스러트렸다.
─ㅋㅋ발상 미쳣냐고ㅋㅋㅋㅋ
─ㅈㄴ 뻘줌할듯ㅋㅋㅋㅋ
「‘방금먹힌좀비’ 님이 ‘1,000원’ 투척!
아 님;; 나 일어낫는데도 먹으면 어케요;;」
─아 ㅈㅅ 배가 너무 고파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궁금하지 않습니까? 저만 그렇습니까?”
그렇지만 솔직히 궁금할 만한 부분 아닌가? 그의 세계에선 감염자나 좀비란 존재가 없었다. 죽은 시점부터 부패가 시작되는 이상 관리가 까다롭고, 살이나 근육 무게로 조종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구울이야 원래─그가 살았던 세계 한정으로─산 생물이어서 상관 없고.
「‘ㅋㅋㅋㅋㅋ’ 님이 ‘1,000원’ 투척!
별개로 취급되요 입안에 감염독 같은게 따로 잇다고함」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다행히 포식과 감염은 별개인 모양이다. 하기야 같이 이뤄지면 동족이 자신을 뜯어먹는 상황에서 깨어나게 되는 셈인데, 그렇게 되면 얼마나 뻘쭘하겠나. 저것들이 뻘쭘함 같은 감정을 느낄 리는 없겠지만.
“으아악!”
뒤쪽에서 시안이 비명 질렀다. 잘 보면 감염자 하나가 시안을 깨물려 하고, 시안은 그것에 저항하고 있다.
옆에 표기된 십자 마크는 시간이 지날수록 마크의 원형 테두리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아, 완전 무적이 아니었네요.”
─ㅇㅇ 완전 무적은 아님
─은신이랑 총 맞는 거에만 무적
─민폐on!
“난전일 땐 이것도 신경 써야겠습니다.”
이런 시스템이 있는데 안 나올 리 없다. 은우는 통통 튀듯 걸어 시안을 붙잡은 감염자의 머리를 박살 냈다. 그러자 십자 마크가 사라졌다.
아마도 그 십자는 시안이 저항할 수 있는 시간을 뜻하는 것 같다. 그게 다 될 때까지 구하지 못하면 대상은 사망할 것 같고.
“가, 감사합니다.”
시안이 조그맣게 감사를 표했다. 다만 눈을 마주치지 않고 우물쭈물하며 말하는 게, 아직 노아가 어려운 것 같다.
“괜찮아?”
“응.”
나머지 둘을 처리한─정확힌 하나는 시안이 처리했었다─사라가 시안에게 다가가 안위를 확인했다. 잠입AI는 아직 부족해도 이런 건 자연스럽다.
은우는 남매를 슬쩍 보다가 수색을 이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