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가, 감염잔가?”
“멍청한! 빨리 오기나 해!”
“사람, 사람이다!”
세 인간은 당황한 얼굴을 했다가 뒤쪽에서 들려오는 감염자의 소리에 일단 달렸다. 자신들이 나온 방문을 닫는 걸 잊지 않은 건 사소한 센스다.
그리고 그 세 명이 방에 들어왔을 때, 캐릭터는 문을 잠갔다. 열쇠가 짤랑거렸다.
“가, 감사합니다.”
“입 닥쳐. 죽여 버리고 싶으니까.”
은우는 거기서 주인공이 꽤나 성깔있음을 깨달았다. 컷신이 끝났다.
『뒤따라오던 감염자 중에 이상한 게 껴 있던 것 같은데……. 찝찝하니까 발전기를 꺼 두자.』
『목표│발전기 끄기』
내레이션─겸 알림 창─과 함께 목표가 갱신되었다. 은우는 엉거주춤 서 있는 세 인간을 힐끔 보았다.
“일반인 같은 단련 정도가 아닌데……. 저쯤 돼야 애 두 명을 달고서도 살아남는다는 의미인 걸까요.”
보통 세계관이었으면 수상할 수준이나, 이 세계관은 감염자로 인해 멸망해 가고 있는 상황이다. 무력이 있어야 살아남을 가능성이 큰 이상 몸 좋다는 것만으로 의심하긴 애매하다.
은우는 남자와 쿵쿵 두드려지는 철문을 흘겨보곤 다시 창가로 향했다.
“괴상한 감염자라 하면, 변이종 같은 걸까요.”
─그런듯
─와 아조씨!
─바테면 무조곤 변종이 나와야지
─애들 귀엽당
─강화된 한입충;;
─한입충 미쳣나봐ㅋㅋㅋㅋ
적어도 좋은 쪽은 아닐 거다. 은우는 서둘러 피난 계단을 오른 후, 발전기의 작동을 멈추었다. 수리할 때야 컷신이 동원됐지만, 끄는 작업은 단순했다. 접근하면 떠오르는 알림 창을 누르면 됐다.
덜덜거리며 큰 소리를 내던 발전기가 멈추었다.
“이, 일단 살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생존자가 있을 줄은 몰랐어요…….”
“덕분에 살았습니다.”
따라온 세 인간들이 주절거렸다. 일반인처럼 보이지 않는 근육질의 남자 하나, 성인 언저리의 소녀 하나, 가장 앳된 소년 하나다.
특별히 상호작용 마크가 떠오르거나 하진 않았으므로 은우는 그들을 무시했다. 아무리 떠들어 봐야 벽 두고 대화하는 거랑 같다.
그는 대신 내레이션과 떠오른 창을 보았다.
『아래층으로 나가는 건 더 이상 무리야. 저쪽 건물로 넘어가는 게 좋겠어.』
『목표│건물 탈출하기』
넘어가야 할 건물을 보면 점프 정도론 뛰어넘을 수 없는 폭이 있다. 아무래도 옥상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방법을 찾아야 하는 모양이다.
“제가 직접 방법을 찾아야 하는 모양입니다. 말은 하지 마세요.”
─퍼즐on
─읍읍!
─바테는 퍼즐이 많아서,,,
─아 몰랑 ㄹㅇㅋㅋ만 쳐ㅋㅋ!
그의 신장이 신장이니 어떻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옥상에서 옥상으로 건너는 건 무리여도, 건너편 창틀을 잡는 건 정돈 가능할 텐데.
그런 마음으로 옥상 끄트머리에 다가가도 보았다. 어림도 없었다. 투명한 벽 따위가 막아서고 있는 것이다.
은우는 몸을 틀어 옥상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발견한 상호작용 물품은 2개였다. 창고 안 갈고리(와 밧줄) 또는 나무판자.
다만 후자의 경우 성인의 무게를 버티기엔 너무 약해 보인다는 코멘트가 붙었다. 결국 갈고리밖에 없었다.
“초반이라 그런지 퍼즐도 쉽습니다.”
은우는 밧줄에 연결된 갈고리를 들었다. 걸 만한 곳이 있나 대충 살펴보면 상호작용 마크가 뜨는 곳이 있다.
그는 그곳을 향해 갈고리를 던졌다. 밧줄이 완벽한 포물선을 그리며 스르륵 날아갔다. 그가 완벽하게 던진 덕인지, 보정이 붙은 건지는 알 수 없다.
『저쪽은 일단 단단히 고정된 것 같아. 이쪽만 연결해 두면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겠는걸.』
“직접적인 목표 지시가 적고, 사소한 디테일은 캐릭터의 독백으로 처리하네요.”
─최고난이도라 그래용
─난이도 낮으면 힌트도 대놓고 줌
─그래도 퍼즐 좀 쉽지 않음?
─ㅇㅇ쉬움
“그렇습니까.”
그렇지만 은우는 지금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는 옥상에 튀어나와 있는 구조물에 밧줄을 칭칭 휘감았다. 세 얼간이는 그에게 몇 번 말을 붙여 보려다가 포기했는지 따라다니기만 하고 있다.
쾅!
철문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친!”
“문이 부서졌나 봐…….”
세 사람이 동요했다. 은우도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흔들리진 않았다. 애초에 도망갈 길을 만든다거나 기괴한 감염자 얘기가 나올 때부터 반쯤 예상했다.
『놈들이 올라오는 건 시간문제야. 빨리 넘어가야 해.』
“밧줄에 매달려 가야겠습니다.”
─켄이라면 밧줄 위도 달릴 수 있는 거 아님?
─아 쌉가능일듯
“달릴 순 있는데, 자동으로 매달려지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ㄲㅂㅋㅋㅋㅋ
은우는 재빨리 밧줄에 매달렸다. 과연 이 밧줄이 그의 무게를 버틸까 걱정됐지만, 다행스럽게도 충분히 버텨 주었다.
“우리도 따라가야 해!”
“조용히 해! 빗소리가 만능은 아니라고……!”
“일단 무기부터 들어.”
─근데 걍 다 죽이면 되지 않음?
─왜 안 싸우냐
─형 다 죽여줘잉
“수가 너무 많거니와, 소음으로 이목이 끌리면 더 몰려올 것 같아서 지금은 넘어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은우는 빠르게 밧줄을 건너갔다. 그 과정조차 무서워하는 이들이 있었으나, 대부분은 ‘켄이니까 걱정할 필요 없지’란 말을 주워섬기는 중이다.
“너부터 먼저 건너가.”
“괜찮겠어?”
“답답하게 굴지 말고, 빨리!”
그다음으로 밧줄을 사용한 건 세 얼간이 중 가장 어린 소년이었다. 꿀타래 같은 금발과 사파이어를 박은 듯한 벽안은 꾀죄죄한 꼴에서 퍽 수려하다.
“저것들 무시하고 바로 내려갈 수 있을까요?”
─ㅋㅋㅋㅋㅋ그럴리가욬ㅋㅋ
─못 갑니다ㅋㅋㅋㅋ
─자비없는 거 봐ㅋㅋㅋ
─약한 놈은 버린다 이말이야~
물론 저들이 뭐라 지껄이고 어떤 순서로 내려오든 그가 알 문제는 아니었다. 아무렴, 저들은 평화로운 캐릭터의 일상에 감염자 무리를 떨궈 버린 재앙이었다.
은우는 옥상 문이 잠겼는지 아닌지부터 점검했다. 잠겨 있진 않았지만, 투명한 막이 그의 출입을 가로막았다. 피난 계단도 떨어져 나가, 내려갈 길 자체가 없었다.
“올라왔다!”
“헌터Hunter……!”
그사이, 두 번째 이가 거의 넘어올 즈음에 감염자가 기어코 올라왔다. 캐릭터가 언급했던, ‘괴상한 감염자’였다.
기형적으로 긴 팔과 피부가 벗겨지다시피 하여 드러난 붉은 근육질, 재빠른 사족 보행 따위가 특이하다.
“죽여야 할 것 같죠.”
─ㅋㅋㅋ그런듯
─걍 애들 먼저 보내고 켄이 남앗어야하는 건데
─쟤네들 때문에 도망치고 있는 거 아님?
─메다닥 튀어!
“어서 가!”
마침 금발 소년은 다 넘어온 상태다. 남자가 다급히 엽총을 들었고, 소녀는 잠깐 망설이다가 빠르게 밧줄을 잡았다.
탕! 탕!
빗소리 속에서도 선명히 울려 퍼지는 총소리는 아래층의 감염자들을 끌어모을 것이다. 그러나 미래를 위해 아끼기엔 지금 마주한 위기가 너무 컸다.
소년 또한 총을 들고 엄호사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헌터라 불린 그 괴이한 감염자는 재빠른 몸놀림으로 총알 대부분을 피해 냈다.
물론 접근해서 피해 낼 자신은 없는지 남자와 거리를 두긴 했다. 그러나 그것도 시간 벌이에 불과했다.
그즈음에서 은우도 권총을 들었다.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판단이 섰고, 저 괴상한 개체에 대한 파악도 끝났기 때문이다.
“사냥감을 두고 원을 그리다가 빈틈이 보이면 돌진하는 패턴이네요. 간단하네.”
권총의 총구가 헌터의 움직임을 쫓아 느리게 돌아갔다.
그리고 가늠좌에 헌터가 약간 비껴 그려졌을 때.
타앙!
탄환이 날아갔다.
▣ 167. 뜻 자체가 그거일 거라곤
시안은 헌터와 대치하고 있는 삼촌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헌터와 일대일로 대치했을 때 인간이 살아남을 확률은 사실상 0에 수렴한다. 발달한 후각을 통한 추적과 사족 보행으로 인한 엄청난 속도는 총을 지니고 있어도 잡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엄호사격에 힘입어 겨우겨우 버티고 있지만, 이게 언제까지 이어질까.
더구나 철창 밟는 소리가 들리는 걸로 보아 감염자 무리가 곧 당도할 거다. 사라 누나가 건너올 동안 삼촌이 버틸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몸만 컸지 아직 어린 소년은 울먹이며 방아쇠를 당겼다.
“삼촌! 어서 건너와요!”
건너오는 데 성공한 사라 누나가 총을 들며 외쳤다. 게일 삼촌이 주춤주춤 로프 쪽으로 뒷걸음질 쳤지만, 헌터가 호시탐탐 그를 노리는 이상 섣부른 움직임은 불가능할 것이다.
캬르르륵!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어코 감염자 떼가 올라왔다. 이대로 게일 삼촌은 죽는 건가? 시안의 머릿속이 헝클어졌다.
탕!
엽총과는 다른, 그것보단 좀 더 가벼운 소리가 울려 퍼진 건 그때였다. 재빠르고 끈질겨서 악명 높은 헌터의 관자놀이에서 핏줄기가 튀었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감염자들은 대체로 머리나 심장 등의 급소를 맞으면 움직임을 정지한다. 그러나 헌터처럼 한 번 변이한 이들은 머리를 맞춰도 한 번에 죽지 않는 경우가 있다. 특히 권총에는.
그렇지만 적어도 멈칫거리긴 하니.
“흐랴앗!”
게일 삼촌이 밧줄을 밟고 뛰더니, 몸이 흔들리며 넘어갈 때쯤 밧줄을 꽉 끌어안았다.
탕!
헌터는 정신 차리기도 전에 권총에 또 한 번 당했다. 그것의 끔찍한 몸이 옆으로 넘어갔다. 감염자 떼 또한 삼촌을 잡으려 달려들었지만, 대부분 건물 아래로 추락했다. 밧줄을 잡고 건너올 지능을 가진 개체는 없었다.
“허억, 허억.”
“어서 건너와!”
산 건가? 정말 산 건가? 시안의 머릿속이 실감 나지 않는 희망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소년의 고개가 이 결과를 만들어 낸 이를 향해 돌아갔다.
“시발, 발전기 잃었네.”
마스크와 후드로 가려진 얼굴.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퉁명스러운 눈매는 그다지 친절해 보이진 않는다.
“뭘 봐?”
그럼에도 빛나는 구원이었다. 빗줄기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 * *
헌터를 죽인 시점부터 총성을 듣고 감염자 떼가 몰려드는 모습까지, 컷신이 끝났다. 그래 놓고 탈출은 플레이어에게 맡겼는데, 은우는 실력을 십분 발휘하여 은신처까지 도주했다. 세 명의 떨거지도 함께였다.
그 과정에 은우는 마스크를 끼고 움직이는 주인공의 폐활량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게임적 허용일 확률이 더 높긴 하지만, 어쨌든.
“그래서 누구야, 너희?”
자연스럽게 이어진 이벤트 신 속 주인공은 발을 구르며 물었다.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게 여실히 보였다.
“그, 저는 게일 고든입니다. 이쪽은 제 조카, 사라와 시안이고요.”
“난 너희 이름을 물은 게 아니야. 너희의 정체와 여기에 온 목적을 물은 거지.”
은우는 그 대사를 들은 시점에서 ‘주인공 성격이 어지간히 꼬였구나’란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꼬였다 이상으로 평가하지 않는 건, 과거의 그도 저렇게 군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흰… 안전한 곳을 찾아다니는 떠돌이입니다. 지금 가고 있는 곳은 동부에 있는 보스턴이에요. 그곳에 안전망이 쳐져 있다든가… 백신을 개발한단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캐릭터의 눈꼬리가 위로 치솟았다. 기본 베이스가 되는 은우의 얼굴─설정한─이 처진 눈이라 그런지 그렇게까지 올라간 느낌은 아니었다. 그래도 서늘한 인상 정도는 되어 주었지만.
“보스턴?”
“네.”
“여기가 텍사스주 서쪽 끝자락인 건 알고 하는 말이야?”
“물론, 알고 있죠.”
게일의 말에 캐릭터는 마스크 안으로도 돌겠다는 표정을 했다. 그러곤 램프에 의지한 채 의자에 털썩 앉았다.
참고로 그들이 앉아 있는 방은 주인공의 전용 거주지가 아니라 그 옆에 있던 빈방이다.
“그래, 그래. 세상엔 이런 미친놈도 있고 저런 미친놈도 있는 거지. 그 미친놈이 내 구역을 엉망으로 만든 건 전혀 달갑지 않지만.”
“그 부분은 정말 죄송합니다…….”
“감염자가 깔려 있으니 오늘 하룻밤 정돈 재워 주겠어. 그렇지만 내일 점심때가 되도록 내 눈에 보이면 총을 갈겨 주지. 알겠어?”
지은 죄가 있기도 하고, 선천적으로 순한 성격들인지 세 사람은 고개만 끄덕였다.
“그, 괜찮으시다면 이 마을 안에 가동 가능한 차가 있는지만 알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 도움까진 바라지도 않습니다.”
“말해 주는 건 도움이 아닌가?”
주인공은 혀를 차곤 ‘모른다’란 답변을 남겼다. 하기야 소음에 민감한 감염자들의 특성을 생각하면 자동차 따위 주인공이 알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군요…….”
게일은 실망한 듯했지만, 그 이상 조르진 않았다. 여기까지만으로도 충분히 도움받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꼬르르르륵-
비록 한 사람의 배는 도움이고 자시고 눈치 없게 울었지만 말이다.
금발 소년, 시안의 얼굴이 새빨개지고 주인공은 그런 소년을 흘겨보았다.
“너, 따라와.”
“네?”
“네놈들이 발전기를 잡수신 덕에 냉장고가 멈춰 버렸거든? 상하느니 입에 쑤셔 넣는 게 낫겠지.”
─츤데레네ㅋㅋㅋㅋ
─아ㅋㅋㅋㅋ츤냄새ㅋㅋㅋ
─선수네ㅋㅋㅋ
주인공은 시청자들이 그의 행위를 비웃는지도 모른 채 사라에게 먹을 걸 들려 보냈다. 비가 멈춘 하늘에는 밤이 몰려왔다.
쾅!
검어졌던 화면이 굉음과 함께 밝아졌다. 정확힌, 어둠에 잠긴 방의 윤곽이 흐릿하게 비쳤다.
은우는 상체를 들어 올렸다. 쾅! 굉음은 여전히 나고 있었다.
“철판 부딪치는 소리인데.”
정확힌 철문을 향해 질량을 가진 무언가가 부딪치는 소리다.
『목표│소음의 주체 확인하기』
─아 머임;;;
─곰보겜on
─어우시 깜짝아
시청자들이 공포감에 몸을 떨고, 은우는 랜턴을 얕게 켰다. 컷신 때문에 잠들기 전 방 상태를 확인하지 못해,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보려면 랜턴을 켜야만 하는 탓이다.
본래 육체라면 모를까, 게임상 육체는 야맹증이 심한 것 같았다.
“무기가 많네요.”
낮에 들고 나갔던 권총뿐 아니라 엽총 한 정이 있었다. 야구 배트는 비록 망가졌지만, 대신 주워 온 쇠파이프가 여전히 장비되어 있고, 추가로 서바이벌 나이프도 획득했다.
─태연하게 파밍
─아 파밍은 킹정이지
─탄약 개많네;;
─템손실은 못참아
본진이라 그런지 탄약도 꽤 있었다. 은우는 알차게 그것들 전부를 챙겨 든 후 집을 나섰다. 아까 헌터 녀석이 헤드 샷 한 방으로 죽지 않는 걸 봤기에 허술하게 나갈 순 없었다.
끼익!
현관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니 또 다른 문도 열렸다. 나온 건 게일을 위시한 일행이었다.
은우와 게일의 시선이 마주쳤다. 당신이 낸 소리는 아니지? 잠깐 동안 그런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은우는 목덜미를 쓸곤 엽총을 들었다.
사박사박. 아주 얕은 발소리가 복도 카펫을 울렸다.
“대체 무슨 소리─”
콰앙!
철판 나가떨어지는 소리가 복도를 크게 울렸다. 은우는 그 순간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에 이어 사진 찍히는 듯한 소리와 함께 탄피가 바닥에 떨어졌다.
키에에엑!
“산탄총에 맞고도 한 방이 아니네요.”
─판단 지리고요
─아까 그놈이네
─좁은 길 개꿀
─쏘면 맞겠네
권총으로 한 헤드 샷 두 발에 죽기에 산탄총은 한 발이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던 모양이다. 하긴, 아까 그 녀석은 그가 쏘기 이전에 게일과 시안의 공격을 몇 대 얻어맞았었다.
타앙!
그렇지만 산탄총 한 발 사망이 아니면 뭐 어떤가? 한 번 더 쏘면 그만이다.
총에 맞아 잠시 비틀거리던 헌터가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노래지만 흥얼거림조차 최악인 남자는 정말 최소한의 음계만 넣어 중얼거렸다. ‘왜’에만 강세를 넣은 거다.
─이 노래를 아네?
─노래 에반데;;
─음계 안 넣으니까 들어줄만 하다
─음 넣는 순간 지옥on
─이거 어케 앎?
“희윤이가 그림 그릴 때 부르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
─희윤앜ㅋㅋㅋㅋㅋ
─타방송에서도 존재감 만땅인 희윤이
─? 그게 누구임?
─잇음 애기
─켄 애 있음?????
─멍청아 켄한테 애있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런 애가 있다고;;
그러고 보니 시청자에게 빨리 희윤이 그림을 자랑해야 하는데. PC 게임 할 타이밍이 안 나온다.
은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죽은 헌터에게로 다가갔다. 특수종이라 그런지 아이템도 주지 않았다. 옷가지라도 걸친 일반 감염자와 달리, 헌터는 옷을 다 벗고 있으니 아이템 주긴 어려울 테지만 말이다.
“허, 헌터가 또…….”
사라가 뒤에서 짓씹듯 말했다. 은우의 눈은 당황보단 체념의 빛깔을 띠고 있는 게일을 슬쩍 살핀다.
그르르르르르르-
“거리에 하나 더 있는 모양입니다.”
은우는 복도에 있는 창문 하나에 얼굴을 대었다. 나무판자 사이 틈에 눈을 가져다 대면 어둠이 내린 거리에 무언가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소리는…….”
“팬저Panzer……. 팬저 맞죠, 삼촌?”
“아마도.”
팬저? 은우는 소년의 중얼거림을 듣고 눈살을 좁혔다. 그보다 지식이 많은 채팅 창은 팬저가 뭔지 아는지 그것의 별명을 조잘대고 있다.
─장갑차쉑...
─팬하
─전차놈 왓누
장갑차가 별명인 모양인데─은우는 팬저의 뜻 자체가 그거일 거라곤 생각 못 했다─생물인 이상 생김새가 전차 닮아서일 리는 없고, 위력이 그만해서가 아닐까 싶다.
마침 달빛이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 찰나간, 은우는 팬저의 외형을 똑똑히 목격할 수 있었다.
어지간한 탱크 정도의 거구와 고릴라처럼 상체가 발달한 상태로 사족 보행을 하는 신체.
가히 괴물이었다.
“팬저라면… 절대 상대가 안 돼요. 도망쳐야 해요.”
글쎄, 그도 반쯤 동의하는 바였다. 그런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르르르르!
팬저가 향하는 곳은 그들이 있는 은신처였다.